'표절이 관행'이었다고요?
-김상곤 선생님께-
새 정부의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서 어제 하루 종일 국회의원들에게 시달리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지요? 사실 어제 하루 뿐 아니라 교육부 장관 하마평이 나오면서부터 선생님의 표절문제가 도마에 올랐으니, 벌써 한 달 가까이 진한 고문을 당하신 셈이네요. 최근에 모든 언론 매체들이 선생님의 표절 소식과 분석 기사들로 도배되다시피 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선생님께서 언제쯤 후보직을 내려놓으실까 예의주시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결국 청문회에까지 오게 되었으니, 우선 그 두둑하신 배포와 자신감에 경의를 표합니다. 귀가 얇고 기가 약하여 어쩌다 들려오는 친구들의 사소한 ‘뒷 담화’마저 못 배겨내는 저로서는 그런 배포가 부럽기도 하고 경이롭기만 합니다. 비록 언론사 기자들의 필설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어제 접한 선생님의 말씀들 가운데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말씀드리기 전에 제가 선생님의 논문들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음은 물론 이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저는 선생님께서 사회운동가이거나 정치인일 뿐 교수나 학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몰랐었음을 고백하며, 그 점에 대하여 사과드립니다. 워낙 전공분야가 저와 다르기도 하지만, 관련 단체들에서 ‘심각한 표절 사실들’을 모조리 파헤쳐 '증거들이 차고 넘치는' 마당에 제가 굳이 찾아 읽을 필요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읽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은재 청문위원은 ‘선생님의 27년 간 교수의 연구실적을 요구했더니 석·박사 논문을 포함 달랑 5가지가 왔는데, 자신들이 찾은 논문만 49건이었다’는 요지의 지적을 내놓았고, 이종배 청문위원은 ‘선생님께서 1982년에 발표한 석사논문을 분석해보니 일본 문헌에서 119곳, 한국 문헌에서 16곳 등 총 135곳을 출처 표시나 인용 표시 없이 갖다 썼는데, 논문의 어떤 부분은 일본의 문헌을 그대로 번역한 수준이었다’는 충격적인 지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은재 청문위원의 말 속에는 논문의 다수가 떳떳치 못하여 일부만 제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 들어있고, 이종배 청문위원의 말 속에는 학위논문 모두가 표절에 의해 쓰였음을 강조하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청문위원들의 거듭된 지적과 비판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35년 전 석사학위논문을 쓸 당시에는 포괄적인 인용이나 출처 표시가 일반적이었다’거나 ‘선행 문단이나 후행 문단에 출처 표시를 다 했다. 포괄적인 인용 방식이 그때 방식이었다’는 등의 해명을 하셨습니다. 아울러 ‘당시의 기준과 관행으로 보면 전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씀까지 덧붙이셨습니다. 저도 그 비슷한 시절에 석사학위논문을 썼습니다만, 과연 남의 글을 ‘(포괄적인 인용이나 출처 표시라는 미명 아래)정확한 각주 표시 없이 뭉텅 뭉텅 베끼는 것’이 관행이었을까요? 표절과 '포괄적 인용'이 같은 뜻의 말이라는 사실을 저는 선생님의 해명을 듣고야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당시에도 심사위원들이 신경 쓰던 문제들 중의 하나가 표절이었으며, 표절하다가 들켜 망신당하던 사례들이 한 둘이 아니었음을 선생님만 모르고 계셨는지요? 무엇보다 논문작성법의 맨 첫 장에 나오는 내용이 ‘논문은 독창적이어야 하고 남의 글을 참고할 때는 정확한 인용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상식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진정 모르셨단 말씀인가요? 석사논문 쓰시면서 논문작성법 한 번 읽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표절하면 안된다'는 것이 논문작성법을 읽어야 알 수 있는 난해한 이론인가요? 당시에 요즘의 '연구윤리규정’ 같은 건 없었다 해도, ‘남의 글을 훔치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 아니었나요? 어찌 ‘남의 글을 훔치면 벌을 받는다’라는 명문 규정 없는 것이 ‘남의 글을 훔쳐도 됨’을 의미한다고 보시는지요? '남의 돈을 훔치는 것'보다 '남의 글을 훔치는 것'이 훨씬 고약한 범죄라는 것은 글줄이나 써본 사람이라면 절감하는 사실 아닌가요? 고심참담 날밤을 새워가며 글을 써본 사람만이 글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데, 그래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쉽게 남의 글을 절취(竊取)하는 것이지요. 표절은 비양심적 행위이고, 드러난 표절사실을 애써 숨기려 하거나 부정하는 인사들이야말로 '양심에 털난 사람들'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겁니다.
이런 이유로 ‘남의 글을 훔치는 것이 관행’이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선생님과 한솥밥을 먹어 온 교수들이나 이 땅의 학자들에게 가한 끔찍한 폭력입니다. 그들의 얼굴에 '똥을 퍼부은 격'이지요. 남의 글을 훔치는 ‘도둑질’이 누구나 저지르는 관행이었다고요? 무슨 근거로 모든 교수들을 범법자로 몰아가시는 겁니까? 물론 그런 교수들도 더러 있었겠지만, 관행이라 할 만큼 그리 많지는 않았다는 것이 제 관점입니다. 대다수 선량한 교수나 학자들이 선생님의 억설과 강변으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시렵니까? 교수나 학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을 어떻게 달래실 생각이십니까? 이번의 장관 후보 선정 과정이나 청문회에서 불거진 불미스러운 소식들은 해외에도 광범하게 퍼져 나갔을 텐데, 그 과정에서 땅에 떨어진 국격은 어떻게 회복할 생각이신가요?
선생님은 일생 봉직하셨던 학교의 후배교수들이나 같은 시절 대학에 몸담았던 이 땅의 학자들을 ‘표절 관행’의 동참자들로 낙인찍으신 셈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대학에서 정년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셨나요? ‘다시는 찾지 않을 우물에 침을 좀 뱉으면 어떠랴!’라는 심정은 아니셨나요?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표절문제가 불거졌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야 합니다.
“참 부끄럽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학자로서 교수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대다수의 동료 후배 교수들, 믿고 따라 준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내 스스로 참회하며 교육부 장관 후보직을 사퇴한다.”
선생님의 사고방식이나 도덕성이 1980년대의 관행 아래서는 일부 양해되었을지 모르지만, 2017년의 대학에서는 용납될 수도 없고 용납 되어서도 안 되겠지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나름대로 치열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정신은 그 시대의 그것과 같지 않습니다. 지금 추상같은 학자정신으로 무장한 연부역강(年富力强)의 인재들이 그들먹하다는 사실을 정말로 모르시는 겁니까? 그런 모습으로 교육부 장관의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겠는지요? 전국의 교원들이나 학생들, 아니 국민들에게 장관으로서의 영(令)이 서겠는지요? 선생님께서 대한민국 지도부의 일원이 되기 어려울 만큼 이념적으로도 의심을 받고 있다는 점까지 이 자리에서 거론할 여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너그럽게 양보한다 해도 ‘학문적 엄정성’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계시는 선생님이 교육부의 수장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어떤 기회라도 잡아서 ‘표절이 관행이었다’는 말씀만은 수정하심으로써 본의 아니게 학계의 후배들이 뒤집어 쓴 ‘똥물’만큼은 닦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가뜩이나 힘드실 텐데, 두서없는 말로 혼란스럽게 해드려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