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7. 6. 30. 01:12

'표절이 관행'이었다고요?

     -김상곤 선생님께- 

 

 

새 정부의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서 어제 하루 종일 국회의원들에게 시달리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는지요? 사실 어제 하루 뿐 아니라 교육부 장관 하마평이 나오면서부터 선생님의 표절문제가 도마에 올랐으니, 벌써 한 달 가까이 진한 고문을 당하신 셈이네요. 최근에 모든 언론 매체들이 선생님의 표절 소식과 분석 기사들로 도배되다시피 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선생님께서 언제쯤 후보직을 내려놓으실까 예의주시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결국 청문회에까지 오게 되었으니, 우선 그 두둑하신 배포와 자신감에 경의를 표합니다. 귀가 얇고 기가 약하여 어쩌다 들려오는 친구들의 사소한 뒷 담화마저 못 배겨내는 저로서는 그런 배포가 부럽기도 하고 경이롭기만 합니다. 비록 언론사 기자들의 필설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어제 접한 선생님의 말씀들 가운데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말씀드리기 전에 제가 선생님의 논문들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음은 물론 이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저는 선생님께서 사회운동가이거나 정치인일 뿐 교수나 학자라는 사실을 제대로 몰랐었음을 고백하며, 그 점에 대하여 사과드립니다. 워낙 전공분야가 저와 다르기도 하지만관련 단체들에서 심각한 표절 사실들을 모조리 파헤쳐 '증거들이 차고 넘치는' 마당에 제가 굳이 찾아 읽을 필요가 없었을 뿐 아니라 읽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이은재 청문위원은 선생님의 27년 간 교수의 연구실적을 요구했더니 석·박사 논문을 포함 달랑 5가지가 왔는데, 자신들이 찾은 논문만 49건이었다는 요지의 지적을 내놓았고, 이종배 청문위원은 선생님께서 1982년에 발표한 석사논문을 분석해보니 일본 문헌에서 119, 한국 문헌에서 16곳 등 총 135곳을 출처 표시나 인용 표시 없이 갖다 썼는데, 논문의 어떤 부분은 일본의 문헌을 그대로 번역한 수준이었다는 충격적인 지적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은재 청문위원의 말 속에는 논문의 다수가 떳떳치 못하여 일부만 제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 들어있고, 이종배 청문위원의 말 속에는 학위논문 모두가 표절에 의해 쓰였음을 강조하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청문위원들의 거듭된 지적과 비판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35년 전 석사학위논문을 쓸 당시에는 포괄적인 인용이나 출처 표시가 일반적이었다거나 선행 문단이나 후행 문단에 출처 표시를 다 했다. 포괄적인 인용 방식이 그때 방식이었다는 등의 해명을 하셨습니다. 아울러 당시의 기준과 관행으로 보면 전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말씀까지 덧붙이셨습니다. 저도 그 비슷한 시절에 석사학위논문을 썼습니다만, 과연 남의 글을 ‘(포괄적인 인용이나 출처 표시라는 미명 아래)정확한 각주 표시 없이 뭉텅 뭉텅 베끼는 것이 관행이었을까요 표절과 '포괄적 인용'이 같은 뜻의 말이라는 사실을 저는 선생님의 해명을 듣고야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당시에도 심사위원들이 신경 쓰던 문제들 중의 하나가 표절이었으며, 표절하다가 들켜 망신당하던 사례들이 한 둘이 아니었음을 선생님만 모르고 계셨는지요? 무엇보다 논문작성법의 맨 첫 장에 나오는 내용이 논문은 독창적이어야 하고 남의 글을 참고할 때는 정확한 인용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상식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진정 모르셨단 말씀인가요? 석사논문 쓰시면서 논문작성법 한 번 읽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표절하면 안된다'는 것이 논문작성법을 읽어야 알 수 있는 난해한 이론인가요? 당시에 요즘의 '연구윤리규정같은 건 없었다 해도, ‘남의 글을 훔치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 아니었나요? 어찌 남의 글을 훔치면 벌을 받는다라는 명문 규정 없는 것이 남의 글을 훔쳐도 됨을 의미한다고 보시는지요? '남의 돈을 훔치는 것'보다 '남의 글을 훔치는 것'이 훨씬 고약한 범죄라는 것은 글줄이나 써본 사람이라면 절감하는 사실 아닌가요? 고심참담 날밤을 새워가며 글을 써본 사람만이 글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데, 그래 본 적 없는 사람들이 쉽게 남의 글을 절취(竊取)하는 것이지요. 표절은 비양심적 행위이고, 드러난 표절사실을 애써 숨기려 하거나 부정하는 인사들이야말로 '양심에 털난 사람들'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 겁니다.    

 

이런 이유로 남의 글을 훔치는 것이 관행이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선생님과 한솥밥을 먹어 온 교수들이나 이 땅의 학자들에게 가한 끔찍한 폭력입니다. 그들의 얼굴에 '똥을 퍼부은 격'이지요. 남의 글을 훔치는 도둑질이 누구나 저지르는 관행이었다고요? 무슨 근거로 모든 교수들을 범법자로 몰아가시는 겁니까? 물론 그런 교수들도 더러 있었겠지만, 관행이라 할 만큼 그리 많지는 않았다는 것이 제 관점입니다. 대다수 선량한 교수나 학자들이 선생님의 억설과 강변으로 입은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시렵니까? 교수나 학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을 어떻게 달래실 생각이십니까? 이번의 장관 후보 선정 과정이나 청문회에서 불거진 불미스러운 소식들은 해외에도 광범하게 퍼져 나갔을 텐데, 그 과정에서 땅에 떨어진 국격은 어떻게 회복할 생각이신가요?

 

선생님은 일생 봉직하셨던 학교의 후배교수들이나 같은 시절 대학에 몸담았던 이 땅의 학자들을 표절 관행의 동참자들로 낙인찍으신 셈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미 대학에서 정년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래서 그런 말씀을 하셨나요? ‘다시는 찾지 않을 우물에 침을 좀 뱉으면 어떠랴!’라는 심정은 아니셨나요?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표절문제가 불거졌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야 합니다. 

참 부끄럽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학자로서 교수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 대다수의 동료 후배 교수들, 믿고 따라 준 학생들에게 미안하다. 내 스스로 참회하며 교육부 장관 후보직을 사퇴한다.” 

선생님의 사고방식이나 도덕성이 1980년대의 관행 아래서는 일부 양해되었을지 모르지만, 2017년의 대학에서는 용납될 수도 없고 용납 되어서도 안 되겠지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나름대로 치열하게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정신은 그 시대의 그것과 같지 않습니다. 지금 추상같은 학자정신으로 무장한 연부역강(年富力强)의 인재들이 그들먹하다는 사실을 정말로 모르시는 겁니까? 그런 모습으로 교육부 장관의 리더십이 발휘될 수 있겠는지요? 전국의 교원들이나 학생들, 아니 국민들에게 장관으로서의 영(令)이 서겠는지요? 선생님께서 대한민국 지도부의 일원이 되기 어려울 만큼 이념적으로도 의심을 받고 있다는 점까지 이 자리에서 거론할 여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너그럽게 양보한다 해도 학문적 엄정성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계시는 선생님이 교육부의 수장이 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어떤 기회라도 잡아서 표절이 관행이었다는 말씀만은 수정하심으로써 본의 아니게 학계의 후배들이 뒤집어 쓴 똥물만큼은 닦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대합니다.

 가뜩이나 힘드실 텐데, 두서없는 말로 혼란스럽게 해드려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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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6. 1. 8. 16:33

우리 시대 교수들의 자화상

 

 

 

#아침에 조교로부터 전화가 왔다. 몇 년 전 교수들에게 지급한 노트북 컴퓨터의 사진을 찍어내라는 학교 본부의 공문이 내려왔단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지급받아 써온 세월이 오래지만, 사용하는 도중에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건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 어쩌면 학교에서 지급받은 컴퓨터마저 사적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교수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난 해 모처럼 국가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받게 되었다. 그 사이에 바뀐 규정들 때문일까. 연구비를 집행하기가 아주 까다로워졌고, 그에 따라 기분 또한 묘해졌다. 예컨대, 연구과제 관련 도서를 구입하려면 연구비 카드로 결제해야 하고, 영수증과 거래 명세서는 물론 책의 표지까지 일일이 복사하여 제출해야 한다. 사지 않았으면서도 샀다고 돈을 요구하는 교수들이 있는 걸까. 영수증만으로는 그들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이리라.

 

#병아리 교수 시절. 갓 부임했을 때 인상 좋게 나를 환대해주던 이공계의 호남형 시니어 교수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의 연구비를 수주하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난 1년 뒤 검찰에 불려 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수군대는 연구비 횡령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당시 병아리 인문학 교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로부터 1년쯤 뒤 형사처벌과 교수직 파면의 소식이 들려왔고, 또 그로부터 얼마쯤 뒤 작고 소식이 들려왔다. 교수들이 구름 위의 존재들이 아님을 처음으로 깨달았고, 선배 교수들에게서 비로소 갖가지 사람냄새들을 맡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연구비에 관련된 교수들의 추문이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시작했다. 군 복무 중인 아들을 연구원으로 허위 등록하고 수천만 원을 용돈으로 지급한 일, 연구원의 인건비를 빼돌려 수억 원을 동생의 통장으로 입금해 편취한 일, 학생 십여 명을 허위 연구원으로 등록하고 수억 원을 빼돌린 일, 연구원들에게 입금되는 수당 중 상당액을 자신의 통장으로 돌려받아 생활비로 쓰다가 들통 난 일, 빼돌린 수억 원의 연구비로 주식 투자를 하다가 발각된 일, 연구비로 집에서 피자를 시켜 먹거나 해외에서 아이들 장난감을 샀다가 들통 난 일 ...그 수법과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남의 논저를 표절하거나 부정하게 중복 게재하여 연구윤리를 위반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장관이나 국회의원으로 진출하려다가 청문회의 그물망에 걸려들기도 했다. 매스컴의 매서운 추적을 따돌리지 못하고 그런 비리가 발각되는 경우도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 뿐 아니라, 남의 책에 이름만 바꾸어 다시 출판하는 이른바 표지갈이에 참여한 파렴치 교수들 수백 명이 최근 법망에 걸려들기도 했다.

 

#“2015년 굵직한 현안마다 교수들이 안 보였다/부정·비리·불공정평가에도 침묵이대론 안 된다.()내년에도 올해처럼 교수들이 무기력에 빠져 월급봉투만 들여다보고 있다가는 더 큰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교수신문>(20151228)의 아픈 지적이다. 교수 집단의 나태와 패배의식을 이처럼 매섭게 꼬집은 글을 근래 목격한 적이 없다. 그나마 교수들에 대한 애정이 눈꼽만큼이라도 남아 있기에 <교수신문>은 이런 고언을 실었을 것이다 

 

***

 

사실, 검찰에 소환되거나 매스컴의 추궁에 답해야 하는 교수들 모두 관행을 방패막이로 들고 나선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회개만으로도 벅찰 텐데, 이른바 물귀신 작전으로 남까지 옭아매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물 타기 해보려는 것일까.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의 선후배, 동료들을 모두 공범으로 모는, 또 한 번의 파렴치를 자행하는 뻔뻔함을 보라. 물론 교수도 인간, 무엇보다 생활인이다. 교수라는 직업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고 자식들을 가르쳐야 하는 속계(俗界)의 범부(凡夫)들임에 틀림없다. 이들을 데려다가 장관이나 국회의원으로 쓰고자 한 꺼풀 벗겨보곤 진동하는 구린내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세상 사람들의 무지와 편견을 접하면서, ‘내가 참 그동안 좋은 시절을 보냈구나!’라는 깨달음을 비로소 갖게 된다.

 

대학이 망해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밥벌이를 못하는 젊은이들이 그득그득 쌓이면서 국민들이 대학을 불신하게 되었고, 밥벌이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학문이나 교수들을 불신하게 되었다. 밥벌이도 못하는 대학이나 학문, 그리고 교수가 과연 필요한가.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이 제 앞가림이라도 하게 만들려면 대학은 과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 대학을 둘러싼 세상 사람들의 의심과 질타가 이제 정점에 이른 듯하다.

 

그 불신의 핵심적 대상이 인문학인데, 그러나 인문학만 도려낸다고 대학이 제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이공학이나 경영학이 도려낸 인문학의 빈 자리까지 차지한다고 옛 대학의 영화가 회복될까. 사실 국민들이 대학 무용론을 깨달아가면서 등록금의 액수에 대한 저항이 높아져왔고, 설사 등록금이 더 낮아진다 해도 앞으로 대학은 텅텅 비어버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해당 학문 분야의 교수들은 스스로 변하기보다 혹시 지금까지 지탱해 온 밥그릇이 날아갈까 봐 전전긍긍한다고 정부의 교육당국자나 대학 본부는 이들에게 눈총을 쏘아댄다. 사정이 나은 분야의 교수들은 궁한 분야의 교수들을 우습게 여기고, 코너에 몰린 교수들은 잘 나가는 분야의 교수들을 경계한다. 그래서 지금 대학은 불신과 반목이 만연한 연옥이고, ‘큰 학자 하나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소시민이나 양산하는 공작소일 뿐이라고 누군가는 질타하는 것이리라. 제대로 된 학문적 업적을 이룰 수 없도록 세팅된 지금 대학의 시스템과 의식 아래 큰 학자가 출현하기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의 어리석음일 것이다.

 

생활인 혹은 소시민! 참 좋은 말이다. 하루하루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착하게 살아가는 장삼이사들이 바로 생활인 아닌가. 공적인 돈을 주머니의 용돈처럼 꺼내 쓰려는 교수들, <교수신문>의 질타처럼 할말을 하지 못하고 월급봉투만 바라보는 요즘의 교수들이 존재하는 한, 21세기 한국의 대학교수들은 대부분의 착한 생활인들보다 몇 단계 아래쪽에 위치한 못난이들임을 결코 부정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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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4. 7. 19. 20:58

빗나간 우리나라 언론 

 

 


 

 

 

재작년 언제쯤이던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제자 한 녀석이 자못 분개한 듯한 어투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첨부파일을 열어본즉 가관이었다. 국내 모 대학의 어떤 공학 교수가 외국 학자들의 논문 십 수편을 표절하여 국제학술지들에 게재한 사실이 해당 학회 홈페이지의 전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내용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가 재직하는 대학의 사이트에 가보니, 그는 그 대학의 최우수 연구자로 선정되어 사진과 이름, 공적사항들이 홈페이지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참 놀랍고 한심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같은 교수로서 그 사실을 내게 알려 준 그 제자에게 몹시 부끄러웠다.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그 교수의 이름을 넣어보았다. 그런데 그는 해당 분야의 훌륭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공로가 인정되어 이미 정부의 해당 부처로부터 큰 상을 받은 바 있었는데, 그 수상논문이 바로 표절논문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 부처에서는 표절여부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에게 덜컥 상부터 안긴 것이었다. 정부 부처로 전화를 걸었다. ‘이러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으나, 금시초문이란다. 조사해볼 용의가 있느냐고 물으니 앞으로 알아보고 연락 주겠다고 시큰둥하게 답변했다. 그러나 지금껏 일언반구 연락이 없다.

 

 나는 즉시 그가 소속되어 있다는 해당 학회에도 문의했다. 회장은 연락이 안 되고, 여러 명의 부회장들 가운데 한 사람과 통화가 되었다. ‘귀 학회 회원 한 분이 표절행위로 해당 전공분야 국제학회의 홈페이지 전면을 장식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물으니, 마찬가지로 금시초문이란다. 나중에 확인하여 알려주겠노라고 약속을 했다. 당시는 그 교수의 표절행위가 게시된지 한 달이 넘은 시점이었는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한국의 해당 전공학회의 임원들이 한 번도 그 학회의 사이트에 접속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국문학자인 나도 이름을 알고 있는 그 국제학회를 어째서 한국의 내로라 하는 해당 분야 학자들이 제대로 접속조차 안 하고 지내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다. 직접 확인해보진 않았으나, 지금껏 그는 그 학교에서 잘리지 않고 '교수노릇'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게 대한민국의 대학이다!

 

더 이상 호소할 데가 없던 나는 평소 사회의 목탁으로 자처하며 목소리를 높이던 유수 언론사의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평소 잘 알고 지내는 그였다.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자 머뭇거리던 그는 조 교수님, 언론사는 정의를 구현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 사건을 폭로하는 경우에는 앞, , 옆을 조심스레 살펴야 하는 겁니다.”라고 점잔을 빼는 게 아닌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언론사가 정의를 구현하는 곳이 아니라니? 그 젊은 기자가 틀렸든 내가 틀렸든 무언가 잘못 된 게 틀림없었다.

 

 


                                      <독립신문 창간호>

 

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 사건은 이미 해당 국제학회 홈페이지의 얼굴에 대문짝만하게 공개되어 대한민국이 세계만방으로부터 망신을 당하고 있는데, 그걸 보도하는 게 어찌 단순한 폭로란 말이오? 그런 사실을 국내에 널리 알려 다시는 유사한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언론의 임무가 아니란 말이오?”라고. 그러자 그는 말씀은 잘 알겠으나, 그런 일일수록 사회적인 맥락을 잘 살펴야 하는 법이지요. 우리가 먼저 나설 수는 없는 일이지요.”라고 능청을 떠는 것이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수화기를 꽝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못된 친구였다. 그 젊은 기자는 잘못 배운 처세술로 나를 가르치려 하는 것이었다. 그는 썩은 선배들로부터 그런 처세술을 배웠을 것이다. 그로 미루어, 언론계는 이미 썩어 있었다. 그 뒤 그 사건은 강변의 자갈돌처럼 흔하디흔한 대한민국의 어느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은 채 넘어갔고, 정보를 건넨 어느 기관이나 학회로부터도 조치 결과에 대한 연락을 받지 못했다.

 

***

 

그 때나 지금이나 언론들은 자기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세월만 보내고 있다. 아니 언론 뿐 아니라 대학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지식사회는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썩어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언론이 사법부는 아니니 정의를 규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들을 다룰 때 상식에 비추어 옳고 그름 정도는 분간할 수 있어야 하고, 최소한 독자들이 옳고 그름을 판별할만한 자료는 제공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의의 잣대보다는 진영(陣營)의 논리에만 근거하여 옳고 그름을 판별하려 한다면, ‘우익 기관지좌익 기관지일 뿐, 상식적 차원의 언론기관이라 할 수는 없을 터. 이미 정체성을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정치 지형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있으며, 강호의 지사들 사이에 망양지탄(亡羊之歎)의 한숨소리 또한 높아가고 있다. 언제쯤이나 언론이 다시 정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며, 언제쯤이나 한국의 지식사회가 최소한의 양식을 갖추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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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도덕이 땅속에 처박힌 쌍놈의 나라로 전락했나! 우리는 끝내 선진국이 될 수 없는 것인가! 정말 슬프다!

    2014.08.06 21:36 [ ADDR : EDIT/ DEL : REPLY ]
    • 목탁

      도덕도 문제지만, 법이 제 구실을 못해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선진국민들을 보면 우리보다 도덕심이 앞선 점도 물론 있습니다만, 그보다는 법이 무서워서 감히 나쁜 짓을 못하는 경우도 많지요. 고의로 살인을 해도 고작 3~4년 때려 놓고는 '중형을 선고했다'고 의기양양하는 우리나라 엉터리 법관들좀 보세요.^^

      2014.08.07 05:24 [ ADDR : EDIT/ DEL ]

글 - 칼럼/단상2014. 7. 10. 12:13

교육부 장관 후보 청문회를 보며

 

 

 

몇 년 전의 일이다. 가까이에 있던 지인들 중의 하나가 연구비 부정 집행으로 검찰에 불려간 일이 있었다.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할 돈의 상당부분을 자신이 편취(騙取)’한 혐의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새파랗게 젊은 검사에게 그건 자신이 주도한 일은 아니며, 그간 학계에서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이라는 요지로 강변을 했다 한다. 평소 그에게 별 호감을 갖고 있지도 않았지만, 당시 그가 했다는 그 말을 듣고 나서 그에 대한 최소한의 기대마저 접고 말았다. 자신의 범죄행위를 학계의 관행으로 눙치려고 한 그의 그 말만으로 판단하자면, 그는 인간도 아니었다. 

 

                                 청문회에서 진땀을 닦고 있는 교육부 장관 후보[사진은 중앙일보에서 가져 옴]

                    

 

요즘 또 다시 내 속을 긁는 인간이 하나 등장했다. 언론 매체들을 매일 매 시간 새로운 뉴스로 도배하고 있는 인물. 바로 교육부 장관 후보로 내정된 김명수 교수다. 처음에 그 이름을 접하곤 하도 듣보잡이라서, ‘박 대통령이 모처럼 의외의 인물을 하나 찾아냈구나!’ 하고 은근히 기대를 했었다. 나와 분야가 다르니 처음 듣는 이름이라고 무조건 폄하할 일은 아니고, 무엇보다 똑똑한 인물로 차고 넘치는 대한민국에서 상아탑에 틀어박혀 조용히 학문을 연구해온 참 학자이려니!’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보 지명의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그에 관한 온갖 추잡하고 저급한 소식들로 매스컴은 도배되기 시작했다. 논문 표절[*후보자의 사례는 '표절'과 '탈취'가 뒤섞인 경우다], 칼럼 대필, 사교육 업체 주식 투자 등등. 학자로서는 가장 추악하면서도 빠져나갈 수 없는 범죄행위들의 한복판에 그는 서 있었다. 급기야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은 그런 범죄의 과정들을 언론에 낱낱이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도 얼굴을 들고 청문회 자리에까지 나온 그는 참으로 후안무치했다. 더욱 고약한 건 청문회장에서 자신의 비행을 변호하기 위해 관행이란 말을 꺼내들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그런 행위들이 그 시대의 관행이었으니, 잘못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의 그 말 한 마디에 나는 조금 전에 먹은 음식을 토하고 말았다. 앞에 말한 연구비 부정 집행 교수가 사용한 관행이란 말을 김 교수 역시 청문회장에서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만 것이다.

 

 

관행이라?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할 연구비를 편취한 행위가 관행이라? ‘제자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제1저자로 얹고, 그 논문으로 연구비를 받아 챙기고, 한국연구재단의 실적목록에는 아예 자신의 단독논문으로 올리고, 그런 논문들로 승진을 하고, 일간신문에 기고하던 칼럼을 학생들에게 대필시킨그런 행위들이 관행이라?

 

 

국가가 발주하는 모든 프로젝트의 경우 반드시 연구원들에게 돌아갈 인건비의 액수가 예산으로 정해져 있고, 연구비 집행 기관에서는 연구 책임자인 교수를 경유하지 않고 그들에게 직접 지급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연구 책임자가 연구원들이 지급받는 돈의 일부를 자신에게 보내도록 강요한다면, 어렵지 않게 그 돈을 편취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칼을 들고 행인들의 돈을 빼앗는 것만큼이나 극악한 범죄행위다. 자신이 책임자로 되어 있는 프로젝트에서 가난한 젊은 학자들이 일시적으로라도 생활비를 지급받게 되는 사실에 마음 편해 하고 안도하는 것이 대부분 교수들의 상정(常情)이다. 주변의 젊은 학자나 학자 지망생들이 생활고에 부대끼지 않고 연구할 수 있는 여건을 자신이 만들어 주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논문 한 편을 써보면 안다. 글 쓰는 노동이야말로 등잔 속의 기름이 바작바작 말라가듯얼마나 삶의 진액을 소모하는 일인가를, 직접 써본 사람만 알 수 있다그런 논문을 빼앗는다는 것은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는 범죄다. 그것도 다른 사람 아닌 제자의 논문을 자신의 것으로 빼앗았다니, 말문이 막힐 일 아닌가. 교직에 종사해온 그 긴 세월 동안 단독저서 한 권 내지 못했다는 사람이니, 단독 논문인들 제대로 낸 적이 있을까. 학문과는 거리가 먼 국회의원들이 표절의 의미에 대해서 물었으나 제대로 답변조차 못했다니, 다시 무슨 말을 덧붙이랴! 그런 사람을 교육부 장관으로 간택하고 국회에 통과시켜 줄 것을 요청한 대통령은 대체 어떤 사람인가. 

 

 

이제 다시 찾을 일 없을 것처럼, 우물에 똥을  퍼붓고 간못된 인간들이다관행이란 편리한 말로 자신들이 몸담았던 대한민국의 지식사회를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몰고 갔기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가 아무리 궁하다 해도 대다수 선량한 이웃들의 얼굴에 똥물을 끼얹어서는 안 된다. 물론 어느 공동체에도 범죄자는 있다. 그렇다 해도 그런 범죄행위를 관행 운운의 궤변으로 일반화시켜서는 안 된다. 똑똑하지만 가난한 제자들이나 주변의 배고픈 학자 지망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길 바라는 대부분의 교수들에게, 지금도 연구실에 틀어박혀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기력을 소진하고 있는 학자들에게 그 이상 더한 모욕이 어디에 있을까?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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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2. 10. 1. 16:21

안철수가 걸린 또 하나의 덫

                                                                                                        백규

나는 평소 안철수 선생에 대하여 호감을 가져 왔고, 그 마음을 작은 글로 이곳에 올린 적도 있다.[백규서옥 블로그 http://kicho.tistory.com 참조] 따라서 이 글 역시 그런 호감과 걱정의 연장선에서 쓰게 되었을 뿐, 특정 진영이나 인물에 대한 '호(好)/불호(不好)'의 차원에서 쓰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

최근 대통령 예비후보 안철수 선생에게 닥친 악재(惡材)는 서너 가지다. 그 가운데 부동산 ‘다운 계약서’는 목하 거론 중이고, 연구업적 문제는 조금씩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나머지 문제들도 곧 입줄에 오르내릴 전망이다.

오늘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한겨레신문[http://hani.co.kr]의 1면 톱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의 연구업적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세대학 강모 교수의 뛰어난 작문실력에 놀랐고, 아무리 뛰어난 작문실력으로도 그의 치부가 가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장문의 글을 소상히 기억할 수는 없으나,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다고 표절이라니…어이쿠!”라는 매우 선정적인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제목은 강 교수의 의도가 너무 빤하게 읽혀져서 오히려 애처로웠다.

지금 안철수의 연구업적에 대하여 벌이는 논란의 핵심은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한 것이 표절인가 아닌가’에 있지 않다. 지금 세상에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거나 책으로 출판하는 것을 표절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강 교수는 흡사 세상 사람들이 ‘안철수가 자신의 석사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가 표절했다고 비난한다’라는 엉뚱한 논지의 제목을 붙이고 말았다. 따라서 ‘표절’이란 잣대를 끌어대어 ‘안철수 논문 논란’이 어불성설임을 강변함으로써 그에 대한 도덕성을 따지려는 세상의 비난을 잠재우거나 물타기하려는 강 교수의 논의야말로 어처구니없는 궤변일 수밖에 없다.

안철수 논란의 골자는 이렇다. ‘세 사람이 공저로 되어 있는 영문 논문 한 편이 서울대학 발간의 모 학술지에 실렸는데, 안철수도 저자의 한 사람[제2저자]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원래 제1저자의 석사학위논문을 영문으로 번역한 논문이라는 것. 그런데 안철수가  그 논문에 대하여 기여한 내용이 모호하다는 것[그 논문을 지도했거나, 그 논문의 어느 부분을 작성했거나, 실험을 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이름을 붙일만한) 기여를 했다면, 그의 이름이 저자의 한 사람으로 끼어 들어간 것이 이공계의 관행으로  미루어 얼마간 양해가 될 수는 있을 텐데, 그것을 도통 알 수 없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더욱 해괴한 것은 그 논문에 대한 기여도를 안철수 스스로도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 알려진 바로는 지금까지 그의 연구업적은 석⋅박사논문 두 편과 세 편의 학술지 논문을 합쳐 총 다섯 편이란다. 그 세 편 가운데 바로 이 논문이 핵심연구업적으로 서울대학 당국에 제시된 모양이다. 자신의 핵심 연구업적으로 제출된 논문이 어떤 경로로 타인의 석사논문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자신이 그에 대하여 무슨 기여를 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다면, 누가 그 연구의 진실성을 의심치 않겠는가. 만에 하나 그 논문의 발행일자가 그야말로 수십 년 전이라면 혹시 기억을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들은 대개 5년 이내의 업적물 만을 임용심사 자료로 요구하고, 그 가운데 임용 신청자가 지적한 핵심 업적에 대해서만 실제 심사에 붙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대체로 5년 이내[아니 좀 더 여유를 두어 10년이라 해도 좋다!]의 연구물에 대한 기억조차 없다면, 우리는 학자로서 안철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나의 논문을 집필하기 위해 1년, 2년 혹은 수년의 실험과 검증을 거친다고 볼 때, 어떤 과정을 거쳐 그 논문이 완성되었는지 모른다면, 애당초 연구자의 자격이 없었거나, 남의 논문에 이름만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약간 과장할 경우 최근 자신이 써낸 논문의 토씨 하나까지도 기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학자들의 기본 생리이자 의무임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참으로 면구스런 가설이지만, 연구업적이 모자라는 안철수를 동정하여 누군가가[석사논문 작성자 자신 혹은 그의 지도교수?]‘앞으로 별 문제될 일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어떤 논문의 공동저자로 안철수를 끼어 넣어주었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그는 ‘힘 하나 안 들이고’ 흡사 ‘이미 차려진 밥상 위에 수저를 올리듯’ 남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림으로써 손  쉽게 연구업적을 부풀린 것 아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안철수 스스로가 부탁하여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은 없는가. 이것들이 바로 항간의 식자층에서 갖고 있는 의혹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해당 글의 필자 강 교수는 흡사 세상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안철수가 표절을 행했다!’고 공격하는 것처럼 호도하여 세상사람들이 몰상식하고 무지몽매하다는 투로 ‘적반하장(賊反荷杖) 식’의 언설을 농(弄)한 것이다. 이른바 ‘교묘한 물 타기’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안철수 교수가 스스로 각종 콘서트나 예능프로그램, 저서 등에서 밝힌 바 있듯이, ‘연구진실성’의 문제는 한 인간인 연구자의 도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잣대로 활용될 수 있고, 또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과연 그는 이 논문의 한 부분이라도 실제로 쓴 것일까. 원래의 석사논문과 영문번역 후의 학술지 논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에 대하여 안철수는 몇 %나 기여했는가 등은 시급히 밝혀져야 할 문제다. 사실 '논문 진실성‘의 문제는 지금 거론되고 있는 ‘다운 계약서’문제보다 오히려 크고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 쪽 캠프 인사들의 인식대로 ‘다운 계약서’는 과거에 흔하게 자행되던 관행의 문제로 칠 수 있다 해도, 활자로 찍혀 후세에 두고두고 학문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논문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고 파급력이 큰 양심과 양식의 소산(所産)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궁한 논리로 그를 변호하고자 하는 인사들이 모두 서울대학이나 연세대학이라는 국내 굴지의 대학에서 밥을 먹고 있는 교수들이라는 사실이다. 흡사 ‘서울대학이나 연세대학 같이 훌륭한 대학의 교수들이 별 일 없다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왜 왈가왈부하느냐?’ 라고 질타하는 듯한 논조다. 실제로 강 교수의 논리 가운데는 ‘학문에 무지한 세상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말도 안 될 뿐 아니라, 불순하기까지 하다’는 투의 ‘진짜로 무례하고 몰상식한’ 사고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제1저자와 제3저자가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세상 사람들은 그의 연구진실성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거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비교의 대상으로 끌어와 안철수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는 강 교수가 참으로 가엾기까지 하다.

과연 우리는 자기편에 대해서는 한 없이 너그럽고, 상대편에 대해서는 한 없이 엄정한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자들의 자가당착적 잣대나 비윤리적이기까지 한 현실인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강 교수가 결론이랍시고 자못 ‘사자후라도 토하듯’ 자신의 글 말미에 달아놓은 언설을 참고자료1로, 황우석의 연구비리를 밝혀냈고 현재 안철수의 연구진실성 문제에 대하여 뜨거운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이트 BRIC(http://bric.postech.ac.kr)
의 토론글 한 편을 참고자료2로 아래에 적어 두노니, 강호의 제현들은 몸소 읽고 판단해 보시라. 존경하는 안철수 선생은 더 이상 함량 미달의 지식인들 을 보호막으로 삼지 말고, 대중 앞에 직접 나서서 자신의 연구진실성, 아니 윤리와 도덕의 바탕인 양심의 문제를 속 시원히 해명하기 바란다. 만약 답변이 궁하다면, ‘미안하다. 다음부턴 안 그러겠으니 이번만은 너그럽게 봐주라’는 식으로라도 사과하기 바란다. 그런 다음 국민들에게 표를 요구하기 바란다.<2012. 9. 29.>
  

   참고자료 1

“또 하나의 논쟁거리는 발표된 학술지 논문에 누구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이 문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한다. 즉 이번 논문의 제1 저자인 석사학위 논문 제출자, 그리고 지도교수로 추정되는 제3 저자 이외에 안철수 후보가 이 논문의 작성에 기여를 했는지 여부이다. 그랬다면 제2의 공저자로 참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안 후보가 한 일도 없이 ‘숟가락 하나 얻은 격’으로 학자들 사이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제1, 제3 저자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논문 분석 결과도 안 후보의 기여가 있다고 평가했다. 더욱이 이러한 저자권(authorship)의 문제는 제3자가 평가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고,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학자들 사이의 논란 거리지 학자의 정치력을 평가하는 문제가 될 수 없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유재석의 오스틴파워 풍 댄스나 노홍철의 저질 댄스가 싸이의 미국 진출에 기여한 여부를 정치부 기자가 예단해서 말할 능력이 있는가와 비슷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논문의 저자에 누가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학계의 주장은 상당히 다양하지만 현대 과학이 진행되는 일반적인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기여가 필요하다. 연구 아이디어를 내고 제안하는 단계, 실제 연구와 실험을 수행하는 단계,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고 토의하는 단계, 그리고 최종적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투고하여 심사를 받는 단계 등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국제 학계에서는 이러한 기여 중 3가지 이상에 참여하면 저자의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고, 따라서 제자의 학위 논문이라도 그 학위 논문이 작성되는 과정에 위와 같은 기여가 있었다면 지도교수나 관련된 다른 사람이 학술지 논문에 공동으로 저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한국의 관례가 아니라 국제 학계의 윤리이다.

정치인의 개인적인 도덕성과 윤리성에 대해 꼬치꼬치 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또 이로 인해 우리 공직자의 윤리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관계나 정확한 판단에 근거하지 않은 정쟁적 비난은 정치를 혼란하게 만들 뿐이다. 또 더 나아가 학자들의 연구 활동이 위축되거나 우수한 인재가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모두 도로교통법 위반이긴 하지만 음주운전을 해서 인사 사고를 낸 운전자와 새벽 4시에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슬금슬금 지나간 운전자 모두를 다 똑같은 놈이라 비난하고 같은 정도로 처벌하는 것도 공정치 못하다.

제발, 주요 일간지 정치부 기자들은 어줍잖은 술자리 얘기들로 아까운 지면을 소비하지 말고, 대선 후보자들의 정책에 대한 정확한 분석, 비판, 실현성 여부 그리고 대안 제시로 내용을 채워주길 간절히 기대한다. 정치인도 바뀌겠다고 난리인데, 이젠 언론도 바뀔 때가 되지 않았는가?“ <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이상의 자료문은 <http://hani.co.kr>에서 퍼옴>

 

 

참고자료 2

안철수 팀 논문(1993년)의 표절에 관하여
빈쿨룸
(2012-10-0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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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팀 논문(1993년)의 표절에 관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안철수 팀의 논문 표절에 관한 글을 올린다. 표절 대상으로 의심되는 논문은 1992년, 안철수 팀의 논문은 1993년에 발표되었다. 전자는 국문이고 후자는 영문이다. 그러나 학계(인문, 사회, 이공, 의학 모두)에서는 국문 논문이라도 영문이나 기타 외국어 초록(요약문)을 싣게 되어 있다. 필자는 인문계통 전공자인 관계로 두 논문의 본문은 비교 분석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두 논문의 영문 초록을 비교해보았다.

1. 제목

1992년 논문 - 토끼 단일 심실근 세포에서 Cyclic GMP의 Ca2+ 전류 조절기전에 관한 연구/ Modulation of Calcium Current by Cyclic GMP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s of the Rabbit.

1993년 논문 - Effect of Cyclic GMP on the Calcium Current in the Ventricular Myocytes of the Rabbit.

안철수팀의 영문 논문을 국역하자면 <토끼 심실근 세포에서 Ca2+ 전류에 대한 Cyclic GMP의 영향(효과)> 정도가 되겠다. 논문 제목만으로도 두 논문의 주제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록에서 드러나지만 안철수팀의 논문에서도 “단일” 심실근 세포를 분석한다. 두 논문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Cyclic GMP에 의한 변화과정이다. 1992년 논문은 그 변화과정을 “조절기전”(Modulation)으로 표현하고 1993년 논문은 “영향/효과”(effect)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 논문의 주제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1993년의 논문이 동일한 분석대상을 통해 1992년 논문과 다른 분석결과를 제시한다면, 안철수팀의 논문은 독창적인 연구가 될 것이고 표절에 관한 모든 논란은 무지한 자들의 헛짓거리가 된다. 이 부분은 의학계 전문가들이 밝혀낼 필요성이 있다.

2. 첫 문장

1992년 논문 -

In order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intracellular cyclic GMP on the calcium channel, whole cell patch clamp technique with internal perfusion method was used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 of the rabbit.

1993년 논문 -

In order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intracellular cyclic GMP on calcium current, the whole-cell patch clamp technique with internal perfusion method was used in isolated ventricular myocyte of the rabbit.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싱크로율 98% 이상의 동일한 문장이다. 정확히 3군데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다:

1) on the calcium channel - on calcium current

안철수팀의 초록에서는 the를 빼고 channel 대신에 current를 넣었다. 두 단어는 다른 뜻인가? 거의 동일한 뜻이다. 사실 두 논문이 공통으로 다루는 주제가 어떤 “관”에 일어나는 변화이다. channel도 current도 모두 “경로”, “전류”, “통로”, “관” 등으로 유사어라 할 수 있다. 혹시 표절을 피하기 위해 the를 의도적으로 뺐다면 꽤 꼼꼼한 처사라 하겠다.

2) whole cell - the whole-cell

이 부분은 별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역시 the와 - 으로 차이를 둔 것뿐이다.

3)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 - in isolated ventricular myocyte

외국어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부분은 참으로 간교한 작업으로 보인다. isolated는 무슨 뜻인가? 격리되거나 분리된 것이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따로 떼어놓고 그것 하나만 본다는, 즉 “single”을 관찰한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오히려 the를 뺌으로써 변화를 주었다. 1992년 논문의 영문 제목 끝부분이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 of the rabbit”이었음을 상기하자.

3. 두 번째 문장

1992년 논문 -

Cyclic GMP, cGMP analogues, cAMP, isopernaline and forskolin were perfused into cells and their effects on the calcium current were analysed by applying depolarizing step pulese of 10mV in amplitude for 200msec from holding potential of -40mV. (원본)

1993년 논문 -

Cyclic GMP, 8-bromo-cyclic GMP, cyclic AMP, were perfused into cells and their effects on the calcium current were analysed by applying depolarizing step pulse of 10mV in amplitude for 300msec from holding potential of -40mV.

역시 98% 싱크로율인데, 좀더 교활해보인다. 또 세 군데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다.

1). Cyclic GMP, cGMP analogues, cAMP, isopernaline and forskolin - Cyclic GMP, 8-bromo-cyclic GMP, cyclic AMP

1992년 논문은 더 추상적인 동시에 더 구체적인 주체를 제시한다. 더 추상적이라 함은 “cGMP analogues”, 즉 “cGMP과 유사한 것들” 혹은 “cGMP 류의 것들”로 표현하기 때문이면, 더 구체적이라 함은 “isopernaline and forskolin”을 첨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팀에서는 1993년의 추상적 표현 대신에, “cGMP”는 “Cyclic GMP”로 풀어서 표현하고 구체적으로 “8-bromo-cyclic GMP”를 덧붙였다. 그리고 1992년 논문의 “cAMP”는 “cyclic AMP”로 풀어서 표현했다.

달리 말하면, 표현들이 조금씩 다를 뿐 분석 내용은 같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2) pulese - pulse

1992년 논문의 철자 오류 pulese를 안철수팀이 pulse로 바로잡았다.

3) 200msec - 300msec

실험 수치가 바뀌었다. 그러나 다른 수치는 동일하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부디 실험 결과가 온전하게 나왔기를 바란다. 전문가들이 해결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cf. 중간에 두 논문 모두 수치를 통한 분석을 제시하는데, 이 부분이 두 논문 초록에서 차이가 나는 유일한 부분이다. 그러나 "In the presence of..." 문장이 두 초록 모두에서 발견되는데, 꽤 다른 듯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마지막 문장

1992년 논문 -

From the above results it could be concluded that cGMP increases the calcium current not through cAMP dependent protein kinase nor cAMP dependent phosphodiesterase pathway, but through independent phosphorylation pathway, possibly cGMP dependent protein kinase pathway.

1993년 논문 -

From the above results it could be concluded that intracellular perfusion with cyclic GMP increases the basal calcium current via a mechanism involving a cyclic GMP dependent protein kinase.

언뜻 보면 두 문장이 꽤 달라 보이지만, 사실 거의 흡사하다. 역시 3부분으로 나눠서 고찰해보자.

1) cGMP - intracellular perfusion with cyclic GMP

1993년 논문은 cGMP를 cyclic GMP로 표현하고 “intracellular perfusion”를 첨가함으로써 주어가 바뀐 듯한 문장을 만들었으나, 사실 연구 내용상 “intracellular perfusion”은 덧붙여도 삭제해도 마찬가지 의미의 문장이 될 것이다.

2) the calcium current - the basal calcium current

1993년 논문은 “basal”(기본적인)을 첨가했는데, 당연히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문장이다.

3) not through .... but through - via a mechanism

이런 부분을 보면 필자 또한 학자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외국어에 다소 무지한 이들을 완전히 무시하려는 의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1992년 논문에서는 친절하게 “... 이러한 점을 통해서 ..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저러한 점을 통해서 증가한다”라고 설명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1993년 논문은 증가의 이유가 아닌 부분은 필요 없어 보였는지, “via a mechanism”, 즉 “~ 저러한 과정(기제)을 통해”서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물론 두 논문은 증가의 이유가 동일하다고 결론 내린다. 단지 1992년 논문이 “cGMP dependent protein kinase pathway”라고 표현한 것을 1993년 논문은 “a cyclic GMP dependent protein kinase”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섬세하게 a를 첨가했고, 역시 “cGMP”는 “cyclic GMP”로 풀어서 표기했으며,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 “pathway”(통로)는 단호하게 삭제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했다.

4. 결론

두 논문의 영문 초록만을 보았을 때 1993년 논문이 1992년 논문을 표절한 것은 거의 확실하다. 다만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혹시나 1993년 논문이 다른 분석 결과를 내놓기 위해 동일한 분석 대상을 연구했다면 모르겠으나, 초록의 마지막 문장의 의미를 고려해볼 때 그 가능성은 없다. 본문의 표절 여부는 의학계의 전문가들이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 BRIC(http://bric.postech.ac.kr)>

참고자료 3

표절과 무임승차, 그리고 학자로서의 양식의 문제.
[일반인] 금빛노을
(2012-10-06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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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후보의 박사학위논문의 표절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다. 이 사안이 MBC에서 보도된 뒤, 서울대의 조국교수는 “(학계 규칙을) 모르고 안철수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무식한 것이고, 알고도 했다면 악의적인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안철수후보 역시 2008년 8월 한 인터넷 매체 인터뷰에서 “표절에 대한 관대한 문화 역시 걸림돌이다. 학생들조차 표절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화 속에서 지식 산업이 성장하기는 쉽지 않다”고 발언한 바 있다. 따라서 안철수후보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조국교수처럼 표절시비에 대해 ‘무식’하고 ‘악의적’이라는 식으로 세치혀의 칼날을 휘두르기보다는 냉정하게 표절논란의 옳고그름을 가리는 것이 필요하다.

총선을 전후해서 문대성의원의 논문표절이 문제되었을 때, 조국교수는 <'참고문헌 빼고 72쪽 논문 중 9쪽(전체의 12%)을 따옴표 없이 출처도 명기하지 않은 ‘오타’까지 베꼈다>고 비판한 적이 있었다. MBC에서 지적한 것도 <따옴표 없이 출처도 명기하지 않고’ ‘오타’까지 베꼈다>는 것 아닌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문대성의원을 대상으로 지적하면 정의롭고 안철수후보를 대상으로 지적하면 무식하고 악의적이 되는가? 필요에 따라 임의로 잣대를 들이대거나 들이댄 잣대를 빼앗는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

석사학위논문을 수정하고 다듬어서 관련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분명 학계의 관행이다. 하지만 관행도 관행나름이다. 석사학위논문을 다듬어서 관련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대개 연구쪽으로 진로를 정한 사람이 박사과정 진학을 전후해서 하는 것이지, 문제가 된 논문의 제1저자인 김규현처럼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이 그것도 석사학위논문을 제출한 지 5년이 지나서 영역한 것 외에는 거의 수정없이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김규현과 안철수후보는 1988년에 서울의대 생리학교실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안철수후보는 석사를 받은 직후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단국대 의대교수로 채용이 되었으니 당연히 석사학위논문을 다듬어서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이 조국교수가 말한 ‘학계의 관행’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자신의 석사논문을 학술지에 싣지 않아도 무방했을 김규현은 석사학위 취득 후 5년이 지난 1993년에 학술지에 학위논문을 재수록하였고, 서울의대에서 조교도 지내고 단국대 의대 교수로서 학과장까지 했으니 마땅히 ‘학계의 규칙’을 따랐어야 할 안철수후보는 자신의 석사학위논문을 학술지에 싣는 대신 석사동기의 재수록논문에 제2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안철수후보가 석사동기의 논문에 제2저자로 슬쩍 이름을 올린 이 논문을 학회지에 게재된 지 18년이나 지난 2011년에, 그것도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임용서류에 주요연구업적으로 실었는가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교수를 공채할 때에는 응당 제출된 논문의 전공일치 여부를 심사한다. 그리고 연구업적은 대개의 경우, 석박사학위와 최근 5년간의 논문실적을 서류에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안철수후보는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임용서류에 5편의 주요연구업적을 기재했는데, 석박사논문을 제외한 나머지 3편이 모두 1993년에 작성된 논문이었고 문제가 된 김규현의 논문은 이 3편의 논문 가운데 한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은 안철수후보가 제3저자로 된 논문인데, 이 논문은 부산의 모 의대교수가 자신이 1993년 2월에 쓴 석사학위논문을 가필하고 안철수후보를 포함한 총 7명을 공저자로 하여 대한생리학회에 실은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편이 역시 1993년에 대한의학협회지에 <의료인의 컴퓨터 활용범위>라는 제목으로 쓴 안철수 자신의 논문이다. 이들 논문은 모두 안철수후보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임용되기 위해 제출한 서류에 주요연구업적으로 기재되었고,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임용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이들 논문에 대한 검증은 대한민국 대통령후보로서의 안철수에 대한 후보검증 이전에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대학교의 교수공채시스템에 대한 공정성과 절차적 적법성을 가리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기도 하다.

안철수후보는 2011년에 서울대학교에 제출하는 서류에 왜 하필이면 1993년에 작성된 논문들을 주요연구업적으로 기재했던 것일까? 그리고 안철수후보는 왜 1993년에 동기와 후배의 논문에 제2저자, 제3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일까? 1993년 이후에 전문학술지에 실은 논문이 없어서라면 ‘석좌교수’나 ‘대학원장’으로 불리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1993년에 작성된 3편의 논문이 해당 학과나 해당 대학원과 무관한 논문이라면 굳이 이를 서류에 올릴 필요도 없는 것이고, 서류에 이를 올리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논문에 대한 논란은 안철수후보 자신이 자초한 것이므로, 이들 논문에 대해 논란을 ‘무식’이니 ‘악의적’이니 하고 비난하는 조국교수의 발언이 오히려 무식하고 악의적인 것이다.

안철수후보가 자신의 이름을 동료와 후배의 논문에 제2저자, 제3저자로 끼워넣은 1993년 당시는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의 표현에 따르면 ‘커다란 공백기’였고 ‘의학연구를 할 수 없는’ ‘엄청난 고문’같은 시절인 군의관 복무시절이었다. 안철수후보는 39개월의 군복무기간을 ‘공백기’라고 하였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1993년부터 2년동안은 서울의 연구소에 배치되어 집에서 출퇴근했다고 한다. 그의 말과 달리, 어느 정도는 공부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었을 법하다. 그런데 안철수후보는 의학공부 대신 컴퓨터바이러스백신 개발에 몰두해 있었다. 그 연구소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컴퓨터바이러스백신 개발에 몰두했던 그가 그래도 제2저자, 제3저자로 의학학술논문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보아 생리학관련 연구소에 근무했었을 듯하다. 그래서 팀원의 일원으로 이름이 올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전역 이후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연구실적이 필요해서 동료와 후배의 논문에 슬쩍 이름을 끼워넣었을 수도 있을 듯하다.

어쨌든 이들 논문에 대한 심사를 거쳐 바로 1년전인 2011년에 안철수후보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되었고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란 직함이 그가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데 있어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학위논문을 포함하여 5편의 논문에 대해 표절이든 무임승차든 논란이 생긴 부분에 대해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동안 교수출신의 유명인들이 장관등의 고위직 후보로 내정되어 인사청문회를 할 때마다 ‘자기표절’이니 ‘이중게재’니 하고 온갖 독설을 퍼붓던 바로 그 사람들이 자신들과 정치적 성향과 이해관계가 엇갈린다고 해서 안철수후보의 석박사 학위논문과 여타 학술논문에 대한 표절시비와 무임승차논란이 확산된다고 해서 이를 ‘정치적 의도’라는 말로 차단막을 치고 ‘무식’이니 ‘악의적’이니 하는 막말로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도 ‘정치적’이다.

정치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모든 칭찬과 비판은 당연히 정치적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인 논란을 학문적으로 밝히는 것이 바로 이곳 브릭에서 할 일이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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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1. 11. 5. 01:30

2011년 숭실⋅인하⋅중앙 대학원 연합심포지움 토론요지



연구부정에 무감각한 지식사회, 방황하는 학문후속세대



                                                                                                              조규익(숭실대)


몇 달 전 외국 유학 중인 20대 중반의 제자[이른바 ‘학문후속세대’라 할 수 있는]가 메일을 보내왔다. 공학 분야 어느 전공의 세계적인 학회 홈페이지에 ‘대한민국 교수 및 학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자행한 논문표절 사실들’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세계 지식인들의 웃음꺼리가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더군다나 그의 메일에는 그들 가운데 한 교수가 얼마 전 그 표절논문들 가운데 하나로 한국의 국토해양부 장관으로부터 우수논문상까지 받았다는 사실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 논문들이 외국 학자들의 논문에 들어 있는 아이디어를 ‘살짝 도용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송두리째 베낀 경우들이라 했다. 깜짝 놀라서 그 사이트를 방문한 결과 과연 그곳엔 복수의 대학 교수들을 포함한 한국학자들이 ‘여러 건의 논문들을 표절한 파렴치범들’로 낙인 찍혀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고, 우리나라의 신문기사를 검색하니 과연 그 교수는 장관상까지 받은 것으로 되어 있었으며, 해당 교수의 대학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그 교수는 ‘우수교수’로 대학 홈페이지의 첫 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전공의 많은 학자들이 포진해 있는 해당 학계나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잠잠했다. 그 사실을 몰라서 그러는 것인지 알고도 그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언제까지 국제적인 수모를 견뎌내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 시점으로부터 무려 석 달이 지나서야 그 사실은 우리나라 언론에 보도되었고[조선일보, 2011. 10. 5.],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언론에서 몇 마디 떠들다가 모두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어제 그 대학의 사이트를 다시 방문해보니 그 교수는 아직도 해당학과의 ‘시니어 교수’로 당당하게 남아 있었다. ‘특정분야 극소수의 일’이라고 편한 마음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남의 지식을 훔쳐 재미 보는 일’을 아무런 죄의식이나 죄책감을 느낄 만한 사건으로 보지 않는 지식인이 존재한다면, 우리 지식사회엔 미래가 없다. 과연 우리나라 대학들은 이들을 교수로 인정해도 되는 것인가. 가능성과 실력을 갖춘 학문후속세대들이 존경과 감시의 눈초리를 번뜩이고 있는 이 시대에 과연 우리의 교수집단이나 지식사회는 연구윤리의 정립자 혹은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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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에 발탁되는 교수들이 많아지면서, 청문회 등 검증의 기회가 정립되면서, 비로소 ‘연구부정’은 우리 지식사회의 치부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상당수 고위 공직 후보자들이 연구부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지식사회에 대하여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게 되었다. 언론이나 네티즌들은 고위 공직의 물망에 오르는 학계인사들의 논저들을 검증하기에 바쁘고, 야당은 그런 정보를 빌미로 후보자 본인은 물론 집권세력을 흠집 내기에만 전념한다. 문제의 후보자들은 으레 ‘당시에는 관행이었다/제자가 모르고 한 일이다/기억에 나지 않는다/확인해 보겠다’ 등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지만, 매우 떳떳하지 못하다. 초창기에는 그런 문제로 공직의 입구에서 낙마한 사고들도 더러 있었으나, 지금은 연구부정 문제로 낙마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그만큼 짧은 기간 연구윤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이 무디어진 것이다. 처음 그런 문제들이 불거졌을 때 국회에서라도 연구부정의 문제를 논의해볼 법도 했건만, 그들이 연구나 연구윤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 턱이 없고 관심조차 없었으니 애당초 기대할 필요도 없었던 일이긴 하다. 사안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정부와 학계가 부랴부랴 ‘연구윤리 규정’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연구부정에 적극 대처한다고 해왔지만, 지금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연구부정의 사례들은 그런 노력들이 대체로 문제의 본질에 훨씬 못 미치는 ‘격화소양(隔靴搔癢)’격의 시늉에 불과했음을 입증할 뿐이다. 입만 열면 대학생들의 리포트부터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고 떠들어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리포트를 작성한다고 하면서 인터넷 사이트에서 긁어다가 짜기워 내거나 돈 몇 푼으로 구매하여 제출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전담 교수들까지 채용하여 대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지만, 어린 새싹들까지 연구부정의 고전적 수법에 능숙해져 가는 현실을 보면 우리가 가르치고 있는 글쓰기란 다만 ‘글의 겉을 꾸미는 기술’에 불과하지나 않은가 불안해지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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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윤리의 문제, 즉 서구에서 이미 개념 정립이 끝난 날조[fabrication]⋅변조[falsification]⋅표절[plagiarism] 등 연구부정의 행위들에 대한 국내외 학자들의 연구 또한 화려하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경우도 지식사회의 폭이 넓어지고 지식이 재화 창출의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지적 소유권 문제나 연구윤리의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에 따라 이 분야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결과들도 많이 보고되었고, 비록 형식에 그치는 감이 없지 않지만, 학회들의 논문집 말미에는 ‘연구윤리규정’이라는 것도 실리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부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빈번해지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학문적 아이디어를 얻고, 그것을 골격으로 저작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야말로 철저히 ‘양심’에 관련된 문제임에도, 우리가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일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부정의 사건이 일어날 경우 그냥 외면하거나, 기껏 ‘기술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실수’ 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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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 글 쓰는 일의 윤리성’은 유치원 단계부터 교육하여 ‘심성(心性)으로 고착’시켜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 문제는 너무 크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논할 수는 없고, 당면한 우리의 관심사는 3개 대학원[중앙⋅인하⋅숭실]의 학생[학문후속세대]들을 어떻게 제대로 교육시킬 것인가에 있다. 토론자로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우선 세 대학원만이라도 「정의롭게 사고하기와 연구윤리」(가칭)를 공통과목으로 개설했으면 한다. 인문계[예술계 포함], 경상계[사회계 포함], 이공계 등 대학원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전공에 해당하는 이 분야의 한 과목을 반드시 이수케 할 필요가 있다. 세 대학원이 ‘연구윤리 공동위원회’를 만들고, 그 위원회에서 매년 혹은 매 학기 세 대학의 교수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강의를 맡기고, 그 교수에게는 일정액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이 좋다. 연구 윤리가 교수 개인의 전공분야는 아닐 것이며, 강의내용을 새롭게 개발하고 조직하는 일이 수월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학기 동안 전문적으로 동⋅서양의 연구풍토나 윤리 등을 공부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연구부정의 폐해를 깨닫게 하는 것은 물론, 지식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된 이후에는 그들 스스로 연구윤리의 전도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그 길만이 그나마 우리의 학문후속세대가 연구부정의 탁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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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가 ‘연구부정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담하다. 학문후속세대로 하여금 지적 생산 작업에서 갖추어야 할 정직한 자세야말로 국가 간의 경쟁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 있는 ‘최종 병기’ 그 자체다. 후속세대에게 아무리 현란한 이론과 학설을 가르친들 이런 병기를 갖추지 못한다면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하다. 어설픈 미봉책이나 시늉만으로 문제의 본질을 덮을 수 있을 만큼 지금의 우리 처지가 한가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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