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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4.15 내부자들의 파티 (2)
  2. 2008.10.26 황주홍 강진 군수님의 매서운 회초리
글 - 칼럼/단상2016. 4. 15. 14:21

 

 


영화 <내부자들>의 포스터

 

 

 


논설주간 이강희

 

 

 

내부자들의 파티

 

 

 

모처럼 한 건 올렸다. 은근히 보고팠던 영화 <내부자들>친견한 것이다. 비록 답답한 아파트 거실에서이지만, 모처럼 엔딩 타이틀이 뜰 때까지 졸지 않았다. 배우들의 미친 연기, 충격적인 장면들이 내내 나를 쫄게했다. ,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배우들을 갖고 있었던가? 도끼로 찍히고 톱에 썰려 나뒹구는 손목, 튀는 피, 빙빙 돌려 뽑은 의수(義手)로 상대의 눈앞에 종주먹을 들이대는 안상구(이병헌 분) 눈동자의 살기, 뜨거운 피를 얼려버리는 저음의 협박, 갈가리 찢기는 영혼...상대 심장의 생명 에너지를 느글느글 뽑아가는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는 아예 사이킥 뱀파이어(Psychic Vampire)’였다!

 

그러나 스토리는 뻔했다. 재벌정치인법조인언론인정치깡패 등등, 참으로 휘황찬란하지만 식상한 스타일의 내부자들이었다. 은밀하게 우리나라를 휘어잡고 있는 그들.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이는 배신과 복수극이 기똥차게리얼해서 오히려 미학적었다. 사실 미학이 아름다움의 원리만은 아니다. 아름다움을 뒤틀면 추함이 된다. ‘추한 아름다움추미(醜美)’가 엄연한 미적 범주의 하나로 정착된 건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부와 권력으로 옹골차게 짜인 최상층부 리그의 행태가 늘 궁금했다. 세계는 세계 나름대로, 나라는 나라 나름대로, 대학은 대학 나름대로 내부자들의 리그가 움직여 나가는 건 아닐까? 궁금증은 상상의 원동력. 상상력은 그럴 듯한 가설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늘 그러리란 가설을 내가 만들어 갖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법과 정의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것이고, 세상을 돌리는 힘은 으레 내부자들의 스크럼에서 나오는 법. 제법 멋진 가설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연구실에 처박혀 읽히지 않는 논문이나 줄창써온 내겐 식은 죽 먹기라고나 할까.

 

그럴 듯한 글줄로 장삼이사들의 여론을 움직이고 뒷거래의 판을 짜는 논설주간, 뒷거래의 주역인 유력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 이들이 만든 리그에 참여하려 애쓰다 버려지는 정치깡패와 족보 없는검사의 복수극. 이 영화를 보고나서야 내 가설이 그럴 듯했음을 알았다. 물론 내가 논설주간이나 유력 대통령 후보, 혹은 재벌회장 중의 하나가 되거나, 하다못해 족보 없는 검사 우장훈 아니면 정치깡패 안상구라도 되어야 내 논문의 그 가설은 완벽한 결론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 텐데. 멋진 원작, 멋진 각색, 멋진 캐스팅, 멋진 연기... 이제 바야흐로 더러운 세상비판도 예술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

 

덤으로, 우스갯소리 하나.

 

주고받는 비자금을 매개로 권력을 설계하며 검은 거래의 현장에 모인 그들은 늘 애국과 정의를 농하곤 했다. 죽이거나 병신을 만들어버리는 복수극 또한 또 다른 정의를 그들 식으로 패러프레이즈(paraphrase)한 데 지나지 않았다. 검은 거래에 복수가 따르는 것은 희랍 시대 이래 연극의 정석 아닌가. 그러니 그런 것들 쯤이야 내 논문 속에서는 스테레오 타입(stereo type)에 불과할 뿐이다.

 

그보다 내 눈을 비비게 한 건 그들의 파티 현장이었다. 술상 뒤편으로 발가벗고 늘어선 팔등신 미녀들. 마찬가지로 벌거벗은 채 그녀들을 골라 앉힌 뒤 곧추세운 거시기로 폭탄주를 제조하며 미쳐가는 그들. , 두어 해 전 법무부 고위관리 아무개로 인해 세상에 까발려진 성 접대의 현장이 바로 그거였다! 벌거벗은 그들 사이사이에 발가벗은 여인들을 하나씩 끼워 앉히고 술을 마시며 고담준론(?)을 토해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옛날 책에 나오는 좌우보처(左右補處)’를 떠올렸으니, 나도 참 못 말리는 거시기임에 틀림없으리라.

 

성종 때 대학자 성현(成俔)<<용재총화(慵齋叢話)>>에 나오는 일화다. 새로 과거에 급제하여 삼관(三館)에 들어가는 자가 고참 관리들을 위해 열곤 했던 신고식이 허참면신지례(許參免新之禮)’였다. 그 중 신참에 대한 행패로 치면 예문관(藝文館)의 파티가 가장 심했다. 처음으로 직위를 받고 베푸는 연석을 허참(許參), 50일이 지나 베푸는 연석을 면신(免新), 그 중간에 베푸는 연석을 중일연(中日宴)이라 했다. 춘추관과 여러 겸관(兼官)들을 청해 연석을 즐기고 한밤중에 파한 뒤 손님들이 돌아가면 그 때서야 본 공연(?)은 시작되었다. ‘선생들을 맞아 베푸는 연석인즉 상관장(上官長)이 곡좌(曲坐)하고 봉교(奉敎) 이하 모든 관리들은 각각 기생 하나씩 끼고 앉는데, 그걸 좌우보처라 한다는 것. 원래 사찰의 극락전에 봉안된 아미타 삼존도에서 아미타불의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배치되는 그것이 좌우보처였다. 그들만의 파티에서 좌우보처가 이루어지고 난 뒤 아래로부터 위로 술을 부어 돌리고 차례로 일어나 춤추되, 혼자 추면 벌주를 먹였던 모양이다. 새벽이 되어 상관장이 주석에서 일어나면 모든 사람은 박수하며 흔들고 춤추며 <한림별곡>을 부르는데, 매미 울음소리 같이 맑은 노래 사이에 개구리 들끓는 듯한 소리를 섞어 시끄럽게 놀다가 날이 새면 헤어진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술에 취한 뒤 무슨 난장판이 벌어졌을지는 독자 여러분이 상상하실 일이다. 묘하게도 그 좌우보처의 광경이 영화 속 파티와 오버랩되었으니, ‘내부자들의 파티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그들만의 일상아닐까.

 

 


대통령 후보 장필우

 

 

 

검사 우장훈과 정치깡패 안상구

 

 

 


안상구

 

*이 글은 <<인문시보>> 12호(숭실대학교 인문대학/2016. 4. 15.)에 실려 있습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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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2016.06.08 18:12 [ ADDR : EDIT/ DEL : REPLY ]
  2. 좋은 정보 잘보고 갑니다

    2016.06.11 22:04 [ ADDR : EDIT/ DEL : REPLY ]

카테고리 없음2008. 10. 26. 15:16

황주홍 강진 군수님의 매서운 회초리
*이 글은 <조선일보> 2008년 10월 20일자에 실린 기고문으로,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경구'라고 생각되어 이곳에 옮겨 놓습니다. -백규-


[기고] '저녁 6시 이후'가 선진화돼야 한다
먹고 마시는 모임에 시간 탕진
이런 풍토에서 노벨상 나올까
황주홍 전남 강진군수
 


일본 열도가 떠들썩하다. 이틀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였으니 그럴 만하다. 물리학상은 3명 모두 일본인이었고, 화학상은 일본과 미국의 학자들이 휩쓸었다. 그 바람에 우리 한반도도 떠들썩했다. 내용은 좀 달라서, 왜 우리는 일본처럼 될 수 없느냐는 주제로 요란했다.

일본은 되는데 한국은 왜 안 될까? 결론은 하나다.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쏟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성과는 노동시간에 비례한다. 일본인이 특별히 우수해서가 아니라면 연구한 시간이 더 많았기 때문에 노벨상을 휩쓰는 거다. 그뿐이다.

한국인은 선진국 사람보다 훨씬 덜 연구하고 공부한다. 한국 성인 1인당 독서량이 192개국 중 166위라는 UN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한국인들은 이 부족분을 인맥과 로비와 '배째라'라는 저돌성으로 충당하며 사는 것 같다.

대한민국은 '소모임의 박람회장'이다. 한국인의 모임 성격은 딱 두 가지다. 친목모임 아니면 접대모임이다.

친목모임은 과거지향적이다. 같은 곳에서 태어난 이들의 향우회, 같은 해 태어난 이들끼리의 (동)갑계, 교문을 같이 드나든 사람들의 동문회, 미국 같이 다녀온 직장인들의 찬미회, 시청 총무과를 거친 공무원들의 총우회, 배낭여행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배사랑회…등등 우리들의 소모임은 과거 어느 한때의 인연을 매개로 한다. 당연히 주된 활동과 이야기도 미래보다는 과거를 향한다. 접대모임은 안면 터서 청탁하는 것이다. 고위험 사회에서의 '보험'들기다. 공식적으론 안 되는 일을 사사롭게 해결하는 모임이다. 거의 매일 저녁 접대하고 접대받는 분들도 부지기수다.

밥 먹고 술 먹고, 1차 가고 2차 가고, 노래방 가고 찜질방 가고, 폭탄주 마시고 건배하고… 공무원이건, 직장인이건, 사업가건, 교수건, 법조인이건, 예술인이건 예외가 없다. 찾아다녀야 할 모임이 너무 많고 만나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 '진짜 일'을 할 시간이 없는 나라가 한국이다.

문제는, 다른 선진국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퇴근해서 집으로 직행하는 한국인 드물고, 퇴근해서 1차 2차로 직행하는 선진국 사람 드물다. 발렌타인 한번 안 마셔본 교수가 드문 게 한국인 반면, 발렌타인 한번 마셔본 교수가 드문 게 일본이고 미국이다. 그 차이에서 승부가 크게 갈린다.

낮 시간에 일하는 것은 한국이나 선진국이나 별 차이 없다. 결정적 승부처는 오후 6시 이후의 '자유시간'에서다. 긴긴 자유시간을 우리는 과거를 위해, 편법을 위해 소비한다. 선진국 사람들은 마치 낮 시간의 연장처럼 저녁과 밤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생활은 밋밋하고 심심하고 외롭다. 재외동포들은 한국을 '즐거운 지옥'이라 한다. 야간생활이 어쩌면 이리도 위태위태 박진감 있고 육감적인지 힘들지만 재밌어 죽겠다는 거다. 노벨상은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장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내 단언이 틀리기를 바라지만, 한국에선 노벨상이 나올 수 없다. 공부하지 않고 공부할 수 없는 나라에서 무슨 용빼는 재주로 노벨상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우리들의 6시 이후가 '선진화'되지 않는 한 노벨상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일이 될 것이다.

노벨상뿐이랴. 한국과 한국인이 6시 이후의 긴 시간을 이렇듯 철저히 과거 찾기, 인연 만들기에 사용하는 한 조국에 더 큰 희망은 솔직히 어렵다. 한국의 선진국 반열 진입은 6시 이후의 과거몰입적, 인맥제일주의적 행태의 변경 없인 불가능하다. 백약이 무효일 것이다. 이 인식이 일본의 노벨상 독식에 따른 우리들의 요란한 반성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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