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14.11.05 13:59

 

 

 

 

 

저는 2013년 2학기 풀브라이트 방문학자(Visiting Fulbright Scholar)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 역사학과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현지를 틈틈이 답사하고 체험한 기록들을 정리하여, 최근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푸른사상)라는 제목의 문화 답사기를 펴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토네이도의 본고장으로만 알려졌을 뿐인 오클라호마를 보물찾기라는 테마를 통해 새롭게 읽어내고자 했지요. 책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물 1: 스틸워터와 OSU, 그 안식과 탐구의 낙원

평온과 정밀(靜謐)의 오클라호마에 안착

역사학과를 찾아

학과 비서들과의 만남

카우보이 풍의 노신사, 학과장 로간 교수와의 만남

브렛 학장과의 만남

평원 속 지성의 오아시스, OSU에서

역사학과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마치고: 한국의 이미지를 새것으로!

카우보이들, 풋볼의 진수를 보여주다!

미국 대학의 졸업식과 감동: 왜 우리는 이렇게 하지 못하는가?

안식과 힐링의 낙원 스틸워터에서

 

보물 2: 인디언, 인디언 역사, 인디언 문화

오클라호마와 인디언 부족들

대초원에서 만난 오세이지 인디언들

체로키 후예의 집을 찾아 패러다임 전환의 증거를 찾다

오클라호마 동쪽에서 체로키 인디언들을 만나다!

체로키어오시요(Osiyo)’와 우리말‘ (어서) 오세요!’의 정서적 거리

스틸워터의 이웃동네에서 만난 판카 인디언들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아이오와 인디언 족

지혜로운 치카샤 족, 인디언 사회의 자존심

촉토 족의 뿌리와 투쟁, 그리고 예술

촉토 족의 탁월한 교육열, 풍부한 역사 자취

놀라운 세미놀 인디언들의 역사와 문화의식

카이오와, 아파치, 코만치, 그리고 대평원의 서사시

카이오와 족의 삶과 예술

무서운 코만치에서 상식의 미국인으로!

크릭 족의 꿈과 현실을 찾아

오클라호마 밖의 인디언: 뉴멕시코의 앨버커키와 스카이 시티, 그리고 푸에블로족

암굴 속에 서린 생존 의지‘, 반델리어 국립 유적지와 푸에블로 족의 말 없는

외침

부드러운 어도비, 완강한타오 푸에블로인디언들

 

보물 3: 미국의 길, 66번 도로(Route 66)의 낭만

미국에서 길을 찾으며: 우리도 스토리가 있는 길을 한 번 만들어 봅시다!

작은 일탈을 꿈꾸는 66번 도로, 그 낭만과 허구

엘크 시티와 국립 66번 도로 박물관 단지

클린턴 시티와 ‘66번 도로 박물관

엘 르노 시티와 캐나디언 카운티 뮤지엄

66번 도로에 살아 있는 역사의 공간, 유콘 시티

누구 혹시 이 소녀를 아시나요?: 유콘에서 만난 우리들의 누이

한국전 참전용사의 아들 리차드 카치니와 유콘 참전용사 박물관

오클라호마의 숨은 별: 거쓰리 시티/ 66번 길의 경이로운 옛 건축물: 아카디아 라운드

 

 

 

 

 

 

보물 4: 박물관과 미국 역사

서부 개척시대 미국의 소리: 국립 카우보이와 서부유산 박물관

예술로서의 역사, 역사로서의 예술: 털사의 길크리스 박물관에서 길을 잃다!

인간의 악마성을 깨우쳐 준 공간: 오클라호마 시 메모리얼 뮤지엄
오클라호마 밖의 박물관: 예술과 역사의 도시 산타페와 박물관들

 

보물 5: 열정과 도전의 대학인들

미국의 중남부에서 아시아 역사를 가르치는 젊은 학자: 용타오 두 교수

학자와 목자의 삶: 한인 교수 장영배 박사

빛나는 한국학생 브라이언

한반도에 관심이 큰 소련 역사 전문가 림멜 교수

탁월한 젊은 영어 교육자 제이슨 컬프

역사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온 프레너 교수

 

보물 6: 아름다운 자연, 안식의 낙원

부머 호수에서 찾은 마음의 고요

리틀 사하라에서 되찾은 고향의 꿈

대초원에서 멋진울음 터를 발견하고

낙원 속의 산책로: OSU 크로스 컨트리 코스의 안식과 힐링

 

 

 

 

 

***

일반적으로 미국은 역사가 짧고, 넓은 땅에 비해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역사 문화유적의 답사라는 여행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공간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백인들의 이주 후 200여년, 인디언으로부터 따지면 그보다 훨씬 더 긴 역사가 이어져 온 땅이고, 그에 따르는 문화유산들이 적지 않은 곳입니다. 더구나 경쟁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의 대학들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문화를 생각하면, 미국은 유럽과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을 지닌 지역입니다. 무엇보다 39개에 달하는 인디언 부족의 보호구역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오클라호마는 대초원(Tall Grass Prairie)과 대평원(The Great Plains)등 풍부한 목초지와 함께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원유 등으로 오랜 동안 풍요를 구가해온 지역이기도 합니다. 풀브라이트(Fulbright)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곳의 대표적인 교육기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에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만. 이곳에 오자마자 연구 과제 외에 이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의미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가 관심을 가졌던 대상은 인디언의 역사와 문화였습니다. 저는 사람, 자연, 도시, 제도, 역사, 문화 등 감고 있던 마음의 눈을 뜨게 한 모든 것들이 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간 모르고 지내온 것들이 그의 편견을 바로잡아 주었기에 보배로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디언들과의 만남은 무엇보다 소중했습니다. 인종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백인들에 의해 고통을 받아온 인디언이야말로 역사의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보물이었던 것입니다. 서부영화나 백인들에 의해 저술된 책들을 통해 제 마음에 뿌리 내린 왜곡된 인디언의 이미지가 비로소 바로잡혀지게 된 점을 가장 곰지게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배자들이 펼쳐 온 자기 합리화의 억설(臆說)에 의해 일그러진 인디언들의 실체를 삶의 현장에서 바로잡음으로써 내면에 고착된 편견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 인디언에 대한 발견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을 통해 미국 대학들의 경쟁력이 바로 미국의 경쟁력임을 깨닫게 된 점입니다. 대학의 역사와 현실을 통해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체력을 단련하며 단합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운영되는 미국 대학의 장점을 읽어낸 것은 제 글 내용의 핵심적인 축입니다.

인디언이나 대학의 힘에 대한 발견과 함께 오클라호마나 스틸워터의 깨끗한 자연으로부터 얻게 된 힐링의 감동은 이 책 내용의 또 다른 축입니다. 부머 호수, 리틀 사하라, 산책로로 쓰이고 있는 크로스 컨트리 코스 등 잘 보존된 자연이 인간의 내면적 평정이나 행복을 위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체험적으로 진술하고자 했습니다. 제 글의 에필로그 가운데 마무리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풀브라이트 학자로서의 가볍지 않은 사명을 짊어지고 오긴 했지만, 연구 외

에 이곳에서 발견한 또 다른 것들이 나를 달뜨게 했다. 오클라호마 사람들과의

만남, 인디언의 역사나 문화와의 만남, (특히 Route 66)과의 만남,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과의 만남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했던 스틸워터는 문만 닫으

면 절간처럼 조용해지는 공간이었다. 맑은 공기 속에 한 발만 나서면 온갖 새

와 나무들이 그들먹한 낙원이었다. 그래서 기대 이상의 힐링을 체험하며 마음

속의 온갖 찌꺼기들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물론 이곳이라고 어찌 사람들 사

이의 갈등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불행들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러나 유목민들이

아름다운 꽃향기와 산토끼의 해맑은 눈빛, 그 지순(至純)한 추억으로 광풍 몰

아 치던 수많은 밤들의 괴로움을 지우듯,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걸러내는 능력

이야말로 지혜로운 인간의 전유물 아닌가. 사실 짧지 않은 6개월 동안 걸러내

야 할 단 하나의씁쓸함도 만나지 못한 나였다.

                                                          ***

스틸워터에서 화려한 행복보다는 작고 따스하며 담백한 즐거움 속에 거의

완벽한 힐링의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으니, 이제 맛있고 영양가 풍부한 풀들이

많이 자라 있기를 기대하며 다시 옛 고향으로 노마드의 소떼를 몰고 재입사(

入社)하기로 한다.”

 

그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책을 펼치기만 하면 오클라호마와 스틸워터의 감동과 아름다움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지리라 생각합니다. 강호제현의 질정(叱正)을 고대합니다.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 푸른사상, 2014.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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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3.09.30 12:17

Moore 시에서 들은 소녀의 울음소리 

 

 

 

금요일 저녁 OSU의 한국인 교수 모임에서 경제학과 김재범 교수는 내게 무어(Moore) 시를 가보는 게 좋을 거라고 했다. 자연의 위력을 현장에서 느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었다. 지난 5월 무어 시를 휩쓸고 간 토네이도 소식을 한국에서 접했던 나로서는 자연과 인간의 대응구조에 대한 내 마음 속의 의문을 풀어줄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김 교수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오늘[929/일요일], 날이 밝자마자 아내를 채근하여 무어 시로 차를 몰았다. 35번 하이웨이를 타고 쭉 내려가다가 오클라호마 시티를 지나며 여러 번 길을 바꿔 탄 다음 무어 시로 들어갔다. 1시간 반 이상의 비교적 긴 여행이었다. 타겟이란 큰 마켓에서 몇 가지 물건을 산 다음 이곳저곳 둘러보았으나, 김 교수가 말한 폐허 같은 토네이도의 현장은 보이지 않았다.

 

점심 참으로 들른 월남국수집[Phao Lan] 종업원의 덕을 보게 되었다. 그의 말대로 길을 따라 달려가니 과연 토네이도가 할퀴고 간 자국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입에 있는 침례교회[Southgate Baptist Church]로 들어가니 노신사[Mr.James Fugate] 한 분이 주차장에 서 계셨다. 다짜고짜 지난 5월 토네이도 피해의 현장을 보고 싶어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말문을 열시 시작했다. 이번까지 자신들이 그간 겪어온 3차례의 토네이도, 토네이도에 말 한 마디 못하고 날아간 초등학생들, 집이며 자동차 등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이웃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소상히 들려주는 그의 눈가에 물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를 더 이상 처연함의 늪에 빠뜨려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성함만 여쭙곤 그 자리를 서둘러 벗어나 현장으로 달렸다

 


 무어 시 초입에 서 있는 조형물 


무어 시 Southgate Baptist Church에서 만난 James Fugate 옹이 토네이도 피해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이럴 수가! 허허벌판이었다. 김 교수가 말하던 가옥의 잔해들은 이미 말끔히 치워져 있었고, 휑하게 너른 벌판엔 인영(人影)이 불견(不見)’이었다. 토네이도 이전엔 예쁜 집들이 제법 촘촘히 들어 차 있었을 그곳엔, 부러진 나무와 지저분한 쓰레기들만 날리고 있었고, 벌써 잡초가 우거지기 시작했으며, 간혹 시멘트로 조성된 집터들이 보이기도 했다. 그 사이로 도로들은 간신히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온통 진흙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이제 몇 집은 새로 짓기 시작한 듯 뼈대만 세워두었거나 뼈대에 벽체까지 두른 집도 보였다. 그 넓은 피해지역의 외곽에 몇 채의 가옥들이 처참하게 뚫린 채 서 있었는데, 모두 지붕도 벽체도 마구 뜯겨 나가 사람의 체온을 느낄 수 없는 흉물들이었다.

                                                 


토네이도가 모든 것을 쓸어간 현장에 남아 있는 나목



토네이도의 습격을 받아 엉망이 되었으나,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주택

 

나는 질퍽거리는 폐허 위를 걸었다. 그러다가 어떤 집이 통째 날아간 집터(시멘트로 만들어진)에 오를 때였다. 집 앞 풀밭에 이쁜고양이 인형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의 주인이었을 소녀의 장난감과 함께 흙투성이가 되어 나동그라져 있었다. , 그 눈은 바로 소녀의 눈이었다. 아마도 그 소녀는 토네이도가 들이치기 직전까지도 저 인형을 안고 있었으리라. 차마 눈도 감지 못한 채 그녀는 어디로 날아갔을까. 나는 그 고양이를 바라보며 한동안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혹시 그녀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그녀의 강아지 토토와 함께 토네이도에 휘말려 뭉크킨에 갔다가 여러 가지 모험을 거친 다음 다시 고향 캔자스로 돌아오듯, 마법사를 만나기 위해 어디론가 떠난 것이나 아닐까. 그렇다면 그녀는 왜 사랑하는 고양이를 이렇게 버려두고 떠난 것일까. 나는 그 고양이의 눈을 차마 정시하지 못한 채 원래는 집 안이었을 시멘트 바닥 위로 오르기 위해 몇 발짝 옮기다가 시궁창에 쳐 박혀 있는 넥타이, 양복, 키보드 등을 보았다. , 그 소녀의 아버지 또한 어디론가 떠났음을 알게 되었다. 그 자리엔 소녀가 토네이도에 휘말려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며 남겼을 마지막 외침만 남아 맴돌고 있었다. 과연 그 소녀는 동화속의 도로시처럼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어떤 꼬마가 데리고 놀았을 고양이 인형과 장난감 


토네이도가 할퀴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키보드와 넥타이 


다 날아간 집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변기와 욕조 

 

차를 돌려 스틸워터에 돌아오는 동안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원주민이든 이주민이든 미국인의 조상들은 자연과의 대결을 통해 오늘날의 문명을 이룩했다. 자연의 위력에 인간의 의지가 꺾인 듯한 순간들도 많았지만, 뒤에 보면 인간 의지의 승리를 입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끝내 어찌 자연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오늘날 과학의 힘을 발판으로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는 미국에서 이토록 참혹한 인간 패배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을 보라. ‘토네이도는 이 넓은 숲이나 들판을 지나지 않고 왜 하필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도심만을 골라 지나는지 모르겠다는 아내의 말 속에서 의미 있는 자연의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 같아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무어 시는 다시 일어서겠지만, 자연이 던져 준 알 수 없는 수수께끼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할지 다시 눈앞이 캄캄해지는 순간이다.


토네이도의 습격을 받은 무어 시의 당시 모습[Google.com] 


토네이도 피해지역 외곽에 설치된 희망 기원 조형물[꽃송이로 HOPE라는 단어를 만들었음]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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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덕회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참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인 것 같다. 물론 우리도 저렇게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기는 하지바....

    2013.10.05 22:00 [ ADDR : EDIT/ DEL : REPLY ]
  2. 그럼에도 불가사의한 것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이곳 사람들이 다시 그곳에 집들을 짓고 있다는 사실이야. 우리 같으면 차라리 노숙을 할지언정 아무도 다시 그곳에 들어가 살려고 하지 않을텐데. 이런 현상을 보면서 미국사람들이 매우 낙천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2013.10.06 12:44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13.09.21 11:41

 

 


가까이에서 잡은 Arcadia Round Barn

 


라운드 반 복원자 로비슨 부부에 대한 감사의 뜻을 담은 헌정 표지판


라운드 반 입구의 길에 깔아놓은 기념벽돌들



라운드 반 1층의 내부


1층에서 목격한 스케치(설계도?)


1층에서 발견한 스케치(설계도?)


2층에서 올려단 본 천정(모두 목재로 이루어졌음)


2층에서 올려다 본 천정


좀 멀리서 잡은 라운드 반

 

 

길가의 경이로운 옛 건축물

 

Arcadia Round Barn

 

 

2013915일 일요일 오후. 카우보이 박물관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들른 Arcadia Round Barn[아카디아의 둥근 곳집]. 카우보이 박물관을 지도에서 확인하던 차에 그로부터 가까운 곳에 이런 이름의 유적이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알게 되었다. 35번 하이웨이에서 66번으로 갈아타고 Arcadia 마을로 들어서자 과연 저 멀리에 둥근 돔이 보이는 것 아닌가. 참으로 기이한 모양이었다. 모양으로 미루어 어쩜 천문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액셀을 눌러 밟았다. 가까이 가본 즉 천문대는 아니었고, 안을 넓게 만든 그냥 옛날 건축물이었다. 목재만으로 흡사 오늘날의 천문대처럼 둥근 건축물을 만들었다니, 경이로운 일이었다. 안에는 세계 각지의 각종 골동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늙은 판매원 하나가 앉아 있을 뿐, 특이한 모습은 없었다. 2층에 올라가 천정을 바라본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도대체 어쩌자고 딱딱한 목재를 엿가락 다루듯 구부려 이런 건축물을 만들었단 말인가.

 

***

 

이 건축물은 1898년 오도[William H. Odor]가 디자인하고 세웠는데, 그는 이 건축물을 세우기 위해 제재소를 세우고 가시 열매를 맺는 이 지역 토종의 상수리나무를 켜서 목재로 만들었다고 한다. 목재들을 켜자마자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동안 굽어지도록 특별히 고안한 형틀에 묶어놓아 모양을 잡았다.

 

사람들은 모두 말렸지만, 그는 고집스럽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아마도 그는 토네이도가 올 때 가축을 피신시키거나 건초를 저장하는 장소로 쓰기도 하고, 마을 사람들이 회동하는 장소로도 쓰이게 될 것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했던 것 같다. 1903년 윌리엄과 그의 부인 미라 오도는 그들의 땅 일부를 내 놓았고, 벤자민과 사라 뉴커크도 땅을 내 놓아 보탰으며, 인근의 미주리와 캔자스 텍사스주 등을 부추겨 이곳을 지나는 철로를 부설하게 하기도 했다. 그 덕에 이 지역은 주변의 도시들에 면화, 농산물, 가축 등을 공급하는 농업의 중심지로 부상했고, 1920년대 후반에 66번 도로가 Round Barn의 바로 옆을 지나게 됨으로써 결국 이 건축물은 66번 도로 상의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주인이 바뀌고, 여러 번 수정을 가하면서 애당초의 완벽한 구조는 손상을 입게 되었으며, 그 원인으로 라운드 반은 아카디아 마을과 함께 몰락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몇 십년 후인 1988년에 지름 60피트의 지붕이 무너졌고, 평가된 보수 비용만 165,000달러가 넘었다.

 

현직에서 은퇴한 건물 거래업자인 루터 로비슨과 ‘The Over the Hill Gang’이란 이름의 은퇴자 그룹이 돈과 시간, 기술을 도네이션하여 복원에 매달렸다. 그 뿐 아니라 많은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거나 기념 벽돌들을 판매하기도 하고, 길 옆에 자선함을 놓아두는 한편 많은 사람들로부터 설비 혹은 노동을 도네이션 받음으로써 결국 이 거대한 건축물은 복원된 것이다.

 

***

 

짧은 역사의 미국이지만, 이런 건축물에 숨은 정신은 각별했다. 자연 재해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치밀하게 실행하는 모습은 오늘날의 미국을 이룬 중요한 자산일 것이다. 더구나 지금을 살고 있는 후손들이 옛 것을 아무런 생각 없이 부수지 않고 유지하려는 노력 끝에 되살린 이 건축물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우리의 삶 속에서 부단히 이어진다는 점을 깨닫고 있다는 국민적 지혜의 증거물이었다. 길 가다가 뜻하지 않게 얻은 소득이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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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원정

    광주리 같이 생긴 천정이네요 ㅋㅋ

    2013.09.23 07:33 [ ADDR : EDIT/ DEL : REPLY ]
  2. 엄마

    아주 멋지더라고, 이층에서 천정을 쳐다보곤 입이 떡 벌어지더구나.
    큰 광주리를 엎어 놓은거 같아.
    그런 건물을 만들 생각을 한 주인이 진짜 특이 하지 않니?
    역시 기발한 사람들이 있어!!!

    2013.09.23 10:53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13.09.08 07:40

 

 


OSU의 백규 연구실에서. 왼쪽이 수잔, 오른쪽이 다이아나

 

둘쨋날 부재중에  다이아나가 써놓고 간 메모

 

 

학과 비서들과의 만남

 

 

Fulbright Scholar로 선정되었음을 통보 받은 뒤 미국 내의 연구기관을 정하고 그 책임자로부터 초청장을 받는 일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었다. 간간이 들려오는 토네이도 소식이 좀 걸리긴 했으나, 학교의 자매대학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 아니라 한적한 중남부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 연구와 힐링을 겸할 수 있다고 본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은 망설일 필요가 없는 적지(適地)였다.

 

우리의 인문대학에 해당하는 OSU‘College of Arts and Sciences’의 대닐로위츠[Bret Danilowicz] 학장에게 이메일을 보내자 하루 만에 쾌락의 응답이 왔고, 그로부터 일주일 만에 역사학과 학과장 로간[Michael F. Logan] 교수로부터 초청장이 도착했다. 그런데 그 초청장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내용은 선생님께서 이곳에 머무시는 동안 우리는 선생님께 연구실, 비서의 지원, 컴퓨터와 인터넷 서비스 등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During your stay here, we will be able to provide you with and office space, secretarial support and computer and internet access]라는 요지의 약속이었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비서의 지원(secretarial support)’.

 

대학에서 비서는 으레 총장실에나 앉아 있는 묘령의 여직원으로 알고 있던 내 상식으로 비서의 지원을 제공하겠다는 로간 교수의 말은 묘한 감동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30년 가까이 한국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제자 대학원생들이 대부분인 조교들로부터 강의와 연구에 도움을 받아오던 나로서는 학과 비서의 존재나 성격에 대하여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하바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란 제목의 책과 드라마로 번역소개된 ‘The Paper Chase’가 한동안 대중의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 킹스필드(Kingsfield) 교수에게 비서 노팅엄(Mrs. Nottingham)이 있었다. 외부인들 특히 학생들에게 타협을 모르던 고집스런 캐릭터였지만, 교수에겐 매우 충직한 비서였다. 이처럼 명비서 노팅엄[배우는 베티 하포드(Betty Harford)]의 존재 같은 간접자료를 통해 나는 겨우 미국 대학 학과들의 비서 상을 어렴풋이나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 역사학과의 비서는 수잔[Susan Oliver]과 다이아나[Diana Fury]인데, 한국에 있을 때 나는 주로 수잔과 메일을 주고받았다. 이메일을 보내자마자 간결하면서도 자상하게 답신을 보내주던 그녀 덕분에 나는 준비과정에서 많은 수고를 줄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킹스필드 교수의 노팅엄을 잠시 잊은 채, 한결같이 이쁘고붙임성 좋은 한국의 비서들만 상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곳으로 떠나오기 전 부친 짐의 배달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끙끙대다가 아무래도 학과 비서를 통해 알아보아야겠다는 계산으로 시차 적응도 안 된 사흘 만에 학과 사무실로 나가 수잔과 다이아나를 만났다. 중년 혹은 중년에 가까운 두 여성이 나를 맞았고, 그 가운데 약간 젊은 수잔이 매우 사무적으로 나를 배정된 연구실로 안내하면서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것 아닌가. 그 때서야 이곳이 미국이고, 미국 대학의 학과들에는 노팅엄만 있을 뿐, 한국의 비서들은 없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내가 미국 우체국으로부터 받은 전화번호와 연락처를 주며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자 ‘Yes!’하며 나가더니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하는 수 없이 학과 사무실에 가서 다이아나에게 수잔의 행방을 물은 즉 짐을 찾으러 우체국에 나갔다는 것이다.

 

 아뿔싸, 엄청난 무게의 박스 두 개를 연약한 여성이 어찌 다룰 수 있단 말인가. 이곳 스틸워터(Stillwater)의 지리에 어두웠던 나는 다만 내 짐이 어느 우체국에 보관되어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찾아야 하는지만 알고자 했으나, 그녀는 내 말을 듣자마자 해당 우체국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조교에게 우체국 편지 심부름조차 시키길 꺼려하던 나인지라, 그 소식에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다. 40 만 원 이상의 탁송료가 들었던 박스 두 개의 중량이 미안함으로 내 마음을 짓눌렀다. 아무리 비서라지만, 첫 대면에 짐꾼 노릇을 명()한 셈이니,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남아 있던 다이아나에게 사실 내 의도는 그게 아니었노라고 구구하게 해명했지만, 그녀의 말은 간단했다. ‘It’s our duty!’란다. 결국 수잔을 만나지 못한 채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고, 하루 뒤 다시 들른 내 연구실에는 태평양을 건너 온 박스 두 개가 오롯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수잔, 박스에 대한 언급은 입도 뻥긋 아니 한 채 우리를 맞아 주는 게 아닌가.

 

그 해프닝을 통해 제 할 일에만 충실한미국인들의 업무 철학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연구실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교수들의 일을 충실하게 거들고 해결해주는 것이 학과 비서들의 업무이고,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자신들의 본업임을 그들은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혹 생색이라도 내면 어쩌나?’하고 걱정하던 내게, 그녀는 사무실의 꽃이 아닌 충직한 전문가로서의 존재의미를 120% 보여주고 말았다. 미국 도착 이후 내 인식의 한계가 심각하게 도전을 받은 첫 사례였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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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양훈식

    비서들과 비서님들의 차이와 전문성과 꽃의 의미를 실감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교수님의 감정이 잘 나타난 글입니다. 묘한 감동에서 호기심, 불안감에서 당혹감을 넘어 안도감, 그후 편안함과 신뢰감으로의 이행까지 미묘한 감정도 살짝 읽고 갑니다.

    2013.09.11 11:13 [ ADDR : EDIT/ DEL : REPLY ]
  2. 양 선생에게 내 속내를 읽혀버렸군요.^^물론 아이디어를 짜내고 글을 쓰는 작업이야 어디에서든 고역(苦役)이겠지만, 이곳 사람들은 비교적 '행복하게들'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부유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의 차이이겠지만. 비서의 역할이 큰 듯 합니다. '연약한 여성'이 아니라 '뚝심 있는 전문직으로서의 비서'가 바로 그들이었어요. 다른 행정 부서의 스탭들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을 통해 많은 협조를 얻어 교수들을 도와주는 모습이 이채롭군요.

    2013.09.11 20:30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원정

    Departmental cook-out에는 다녀 오셨나요? 다이아나 쪽지에서 배려가 묻어나네요. 사람들이 다 좋아보여서 참 다행입니다!

    2013.09.12 07:41 [ ADDR : EDIT/ DEL : REPLY ]
  4. 엄마

    원정아 그 전날 차를 사러 오클라호마 시티까지 갔다 오느라 너무 지쳐서 가지 못했단다.
    나이가 무척 많은 분인데 아직도 근무하는 것 보니 참 좋아보이더구나.

    2013.09.12 10:41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13.08.31 23:25

 


하늘에서 내려다 본 오클라호마시티 시가지


하늘에서 내려다 본 오클라호마 산하


한가한 오클라호마 공항에서


오클라호마 공항에서 확인한 자연의 위력


공항으로 픽업 나왔던 OSU의 Du 교수 내외와 스틸워터의 중국음식점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스틸워터(Stillwater), 그 평온과 정밀(靜謐)의 입체적 공간성

 

 

27일 오전 11[한국 시각] 인천공항을 출발, 큰 원을 그리며 태평양 상공을 건넌 OZ23627일 오전 950[미국 시각] 시카고의 오헤어 공항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내외국인들로 장사진을 친 가운데 두 시간이 넘는 검색과 입국 수속을 거친 오후 230. 드디어 오클라호마로 가는 작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로부터 두 시간 후 한적한 오클라호마 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오클라호마의 산하(山河)이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 뿐. 수없이 가로 세로 직선으로 그어진 도로망은 마치 신의 솜씨인 듯 망망한 평원을 바둑판처럼 분할하고 있었고, 그 위로 부드러운 구름뭉치들이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평화 그 자체의 정물화였다. 그 위에 어찌 토네이도의 폭력을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바닷가 모래사장에 한참동안 공들여 이쁜성채를 만들어 놓은 어린아이가 갑자기 생겨난 심술로 마구 휘저어 놓듯, 인간의 앞에서 조화를 부리고픈 신의 의지도 그렇게 작동되는 것일까. 한적하면서도 요새같이 든든하게만 보이는 공항의 화장실 팻말 위쪽의 토네이도 피난처[Tornado Shelter Area]’란 팻말을 보고서야 지난 5월의 악몽 같았을 토네이도의 현장이 바로 이 지역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

순식간에 짐을 찾은 뒤, 픽업 나온 OSU 역사과의 Du[Yongtao Du] 교수를 만난 것이 오후 5시 반. 한적한 길을 두 시간여 달려 드디어 스틸워터에 도착했다. 오클라호마가 카우보이의 본산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스틸워터는 소떼를 몰던 카우보이들이 소들과 함께 코를 박고 물을 마시며 갈증을 지웠을 만한, 조용한 평원이었다. 시차로 감기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Du 교수 부부를 따라간 곳은 자신들의 홈 푸드를 대접하겠다며 데려간 대형 중국음식점이었다. 그들의 호의와 성의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그곳 식당의 음식을 통해 강남의 유자를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속담을 새삼 확인한다. 잔디 곱게 깔린 구릉에는 나지막한 대학 아파트들이 널찍널찍 앉아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조용한 곳이 바로 우리가 들어갈 윌리엄스 아파트[101 N. University Place Apt #1]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기 무섭게 시차에 지친 아내는 곯아떨어지고, 나는 나답게불면의 새벽을 맞아야 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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