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6.12.17 13:51

대통령의 콤플렉스

 

 

 

최근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사람들은 그를 비판하고 질타하느라 여념이 없다. 단군 이래 우리가 이렇게 하나로 단결된 적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면, 우스갯말로 못난 대통령이지만 국민들의 단결을 위해 큰 공을 세웠다고 말할만도 하다. 의정 단상에서 사자후를 토하는 선량(選良)들 가운데 몇이나 돌을 던질 만한자격을 갖추고 있을 것이며, 촛불을 들고 나선 나 같은 장삼이사(張三李四)들 가운데 몇이나 국민으로서의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어차피 물러날 대통령이긴 하지만, 이쯤 우리는 그를 거울로 삼는 게 옳다그를 거울로 삼기 위해서라도 우리 스스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질 필요는 있다.

 

비선(秘線)의 인물이나 조직이 국정을 농단케 한 일에 대해서는 입이 천 개라도 변명할 수 없다. 그와 함께 불통, 여염집 여인에 의한 연설문 수정(혹은 대필), 머리 손질과 피부미용에 대한 집착 등은 대통령의 큰 문제로 지적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콤플렉스. 인간의 현실적 행동 및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이나 감정의 복합체가 콤플렉스다. 콤플렉스는 열등의식을 비롯한 내면의 응어리 혹은 억압된 감정으로 구체화 되며, 이런 무의식은 대부분 개인차가 있지만, 간혹 집단적인 모습을 띠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콤플렉스는 무엇일까. 미안한 이야기지만, ‘공주로 자란 대통령이 타고난 책벌레는 아닌 듯 하고, 순발력 있는 두뇌의 소유자는 더더욱 아닌 듯하다. 성장기 내내 생존경쟁의 현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던 까닭일까. 앎에 대한 욕망과 투지에서 평균치 이하이고, 그러다 보니 모든 분야의 지적 수준이 평균 이하임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인사에 실패했다고 비판을 받긴 하지만, 대통령 주변의 인물들이 대체로 우수한 인재들인 것은 사실이다. 그들로부터 대면보고를 받으면서 자자구구(字字句句) 사전이나 인터넷을 들춰볼 수도 없고, 초등학생처럼 사사건건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존감을 손상받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모든 보고사항을 문서로 받아보고자 했을 것이다. 혼자 꼼꼼히 읽어가면서 자유롭게 사전이나 인터넷의 도움을 받고자 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충분치 못한 지적 용량을 부하직원들 앞에서 노출시키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으리라. 대면보고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었고, 그 점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불통이란 비판이 따라붙게 된 것이다. 대통령 자신의 자존심만 지킬 수 있다면, 불통에 대한 비판 쯤 감수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이와 관련되는, 대통령의 특징이 바로 눌변(訥辯)이다. 공자는 欲訥於言 而敏於行(말에 있어서는 어눌하게 하고 실행에 있어서는 민첩하게 하고자 한다)’이라 했다. 공자의 언급대로 심사숙고 끝에 내놓는 말을 어눌하다고 한다면, 그 어눌함이 생각 없이 내뱉는 達辯(달변)’보다 훨씬 낫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대통령  뺨칠 만한 눌변이다. 사실 세상엔 말 잘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그 말 잘 하는 사람들에게 도무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말 잘하는 사람을 만나면, 대부분 첫판에 , 사기꾼이다!’라는 느낌이 전기처럼 전해져온다. 내가 목격한 사기꾼들 치고 말 못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나의 눌변이 결코 부끄럽지 않고, 대통령의 눌변을 그리 큰 흠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2012년 대통령 선거 토론 때 야당 후보로 출마한 어떤 젊은 여자와 마주 앉은 모습을 TV로 지켜본 적이 있다. 그 젊은 여자는 참으로 말을 잘했다. 그러나 그 역시 내겐 입만 살아있는선동가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차라리 어눌한 대통령이 나았다. 그런데, 대통령은 자신의 어눌함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TV에 나와서 사자후를 토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모두 달변가들이다. 그러나 입으로 하는 말과 속셈이 대부분 다른 경우가 적지 않다. 따라서 잘 놀리는 혀가 그리 중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자신의 어눌함을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것 같다. 차라리 자신이 말로 뱉어낼 콘텐츠의 부족을 부끄러워해야 하는데, ‘말솜씨 없음만 부끄러워한다. 그게 바로 해결할 수 없는 그의 어리석음이다.

 

대통령이 눌변과 함께 부끄러워하는 것이 바로 렬한 글 솜씨인 것 같다. 연설문 담당관에게 연설문을 받고서도 다시 최순실의 수정을 받은 이유는 뭘까. 최순실의 어투나 문장이 편했을 것이다. 잘 나고 뛰어난 사람들이 현학적으로 작성한 글보다는 통일은 대박식의 단문이 수준에 맞아 훨씬 맘이 편했을 것이다. 누구나 한 번 두 번 글 도움을 받다 보면, 스스로 글 쓰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글은 습관이다. 한 번 최순실에게 맡겨 본 대통령으로서는 어느 순간부터 대필자 혹은 검토자를 다른 누구로도 바꿀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내 맘을 콕 짚어낼 수 있을까?’라는 찬탄을 보내며, 대부분의 연설문을 그녀에게 맡기는 동안, 대통령 자신의 글 솜씨는 점점 퇴보하고 말았으리라. 아니, 단 한 줄의 글도 제 손으로 써내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말이 어눌하고 글이 졸렬하니, 내로라하는 참모들을 대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말이 어눌하고 글이 졸렬하면, 책이라도 열심히 읽고 짧은 글이라도 열심히 써야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정도 자신감을 회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완벽한 모습만 보여주고자 하는 대통령으로서는 단 한 번도 국민들 앞에서 어눌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으며, 참모들 앞에서 단 한 점의 무식한 모습도 보여줄 수 없었다.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것이 대통령 권위의 전부라 생각하여 아예 취임 첫날부터 대면보고를 받지 못했던 것일까. 처음부터 그런 콤플렉스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오늘과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다음이 머리 손질과 피부미용이다. 대통령만큼 나이에 맞지 않는 외모와 고운 피부를 갖고 있는 여성도 드물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그는 늘 자신의 얼굴과 피부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역시 여성인지라 아름다움에 관한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일 것이다.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여인들의 욕망은 끝이 없다. 그 덕에 우리나라의 화장품 산업이 이토록 발전했겠지만, 대통령까지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각종 주사까지 맞아가며 피부나 머리 관리를 해야 했는지, 생각할수록 한심하다. 화장품 광고마다 화이트닝(whitening)’을 강조하고, 각종 주사제를 선전하며 어린애 같은 피부를 내거는 광고에 한국 여성들이 거금을 아까워하지 않는 건 일견 당연하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나랏돈으로 각종 주사제까지 사들이고, 마구잡이로 비선의 의사들을 불러댈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런 와중에 불거진 사건이 세월호 7시간이다. 남자고 여자고 간에 60 넘어 귀한 것은 내면의 덕이 내뿜는 광채다. 쓸데없이 이것저것 덕지덕지 바르고, 주사바늘로 밀어 넣어 팽팽해진들 그게 얼마나 지속되겠는가. 대부분 돈과 시간의 낭비요,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우스워지는 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런 부질없는 일로 국민의 기대와 공적 임무를 저버리는 것은 왜일까.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콤플렉스 탓이다. 그리고 그 콤플렉스는 그간의 삶이 정상적이지 못했거나 불건전했음을 드러내는 증거일 뿐이다.

 

처음부터 대통령에게 이런 콤플렉스가 없었다면, 비선을 가까이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고, 비선이 없었다면, 국정농단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콤플렉스는 물론 죄가 아니다. 자신의 의지나 의도와 무관하게 생겨난 내면의 암 덩이일 뿐이다. 형사법으로 다스릴 죄이기 이전에, 용한 의사들이 달려들어 정확히 진단을 내린 다음 뿌리를 뽑아야 할 병일뿐이다. 지금 우리는 불쌍한 환자 하나를 거리로 내쫓은 뒤 괜한 마음고생으로 뒤척이고 있는지 모른다대통령은 다중(多重) 콤플렉스 환자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그에겐 추상같은 법의 단죄와 함께 치료의 손길을 건네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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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6.11.30 20:42

블로그의 빗장을 다시 열며

 

 

 

연구실의 오후. 나른함을 느끼는 찰나, 옛 제자로부터 까톡!’이 왔다. ‘이제 블로그에 글을 안 올리시느냐는 항의성 채근이었다. ,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도 있었구나!

 

한동안 의욕상실증에 걸려 있었다. 대통령의 어이없는 비정(秕政)이 만인의 공분(公憤)을 불러왔고, 촛불의 행렬이 거리를 메우는 나날이다. 촛불을 들고 나가든, 촛불 대신 글을 적든, 무언가를 하는 게 옳았으리라. 그러나 저 휩쓸리는 인파 속에서 내 몸을 곧추세울 자신이 없고, 가슴 속 밑바닥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토해내려 책상에 앉아본들, 큰창자 저 밑에 똬리 튼 토사물을 끌어올릴 자신이 없는 게 요즈음이다.

 

미개구착(未開口錯)!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해봐야 부질없음만 절감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이니, 얼마나 지났을까. 제법 큰 신문들을 통해 어쭙잖은 글 나부랭이들을 써내곤 하던 시절이었다. 사실 나 같은 흙수저에겐 그의 등장 자체가 희망이었다. 그가 기득권층을 다독이며 이 땅 흙수저들의 입지를 다져 나가길 맘속으로 기원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지나치게 말을 잘했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가끔은 할 말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거나 조용히 다른 쪽의 진영을 미소로만 대했어도, 그런 일은 피해갈 수 있었으리라. 아쉬웠다. 그러나 더 후회스러운 것은 나였다. 좀 더 진득하게 애정을 갖고 지둘려야했었다. 깊은 뜻을 헤아리기도 전에 할 말 못할 말을 쏟아내며,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대는 데 일조를 보태고 만 나였다.

 

허탈함이 컸다. 말의 부질없음에서 오는 회한일 것이다. 적어도 밖을 향해서는 한동안 묵언(默言)으로 일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이었다. 성격은 다르지만, 최근 한두 달 사이의 일도 내겐 그와 같은 의미의 사건일 뿐이다. ‘말을 매우 잘함말을 되게 못함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두 사람. 그러나 두 경우 모두 구설(口舌)은 화환지문(禍患之門)’이라는 옛말을 입증하는 사례들일 뿐이다. 노 대통령은 말을 너무 잘해서, 박 대통령은 말을 너무 못해서 모두 화를 자초했다고 한다면, 현상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일까. 내 느낌에 노 대통령은 어느 경우에도 막힘이 없었다. 독서량도 많았다지만, 구변이 청산유수였다. 만약 그 구변의 70%만 발휘했다면, 어땠을까. 반면에 박 대통령은 참 눌변(訥辯)이다. 오죽하면 별로 호감이 안가는 언론인 출신의 전직 국회의원으로부터 베이비토크(baby talk)’란 비아냥조의 놀림마저 받았겠는가. 세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펑퍼짐한 강남아줌마를 비선(秘線)의 스피치라이터로 쓰고 있던 일만 보아도 말을 못하는 데서 오는 콤플렉스가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촛불의 망망대해에 내던져진 대통령이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그 결과 또한 스스로 감당해야 할 터. 애시당초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올라, 자신을 망치고 국민을 힘들게 하며 나라를 휘청거리게 만들었으니, 모두를 기만한 그 죄가 매우 크고 무겁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구약성서󰡕 잠언2813)는 성서의 구절. 그가 향해야 할 회개의 광야가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는가. 둔사(遁辭)와 은폐의 덫에 스스로를 가둠으로써, 더 이상 만인을 부끄럽고 참담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내가 닫아걸었던 블로그의 빗장을 열고, 세상과 소통을 재개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두 버리고자 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는, 자명한 진리를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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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5.01.23 12:30

박근혜 대통령을 보며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나 행동은 민첩하게 한다’[子曰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論語>> <里仁>]는 공자의 말이 있다. 군자라면 ‘말수가 적고 좀 느려도 행동만큼은 민첩하게 해야 한다는 것’. 달리 말하면 ‘쉽게 말하지 말아야 하고 일단 말했으면, 반드시 재빨리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을 것이다. 번지르르한 말들을 속사포처럼 내 쏘면서 하나도 실천에 옮기지 않는 달변가들을 꾸짖은 말씀이었을 텐데, 공자 시대의 그런 사정이 오히려 심화 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박 대통령은 누가 보아도 달변가는 아니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늘 조마조마한 것이 사실이다. 한 마디 내뱉는 데도 그렇게 힘이 든다면, 도대체 무슨 수로 ‘만기친람(萬機親覽)’을 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어쩌면 대통령이 소통을 싫어하는 이면에는 말에 대한 콤플렉스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변가인 참모들과 정치인들, 기자들을 대하는 일이 끔찍하게 생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나이 또래의 우리나라 아줌마들을 한번 생각해 보라. '석학 할아비'라 한들 말로 해서야 누가 그들을 이길 수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박 대통령의 언변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 말 실력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대단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바로 그것이 ‘대선 승리의 한 요인’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 속담에 ‘말 못하는 사기꾼 없다’는 말이 있다. 대개 앞에 인용한 공자의 말을 보거나 ‘말과 실천’을 결부시켜 온 동양적 사고를 생각해 보아도 ‘말 잘하는 것’이 늘 장점만은 아니었다. ‘깡촌’의 흙 속에서 꼬물거리던 내 코흘리개 시절, 그 때까지 본 적 없는 ‘말끔한 양복’을 갖춰 입고 우리 마을에 내려와  ‘말끔한 달변의 서울말’로 사기 치던 토지 브로커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사기꾼에게 넘어가 몇 십 년을 고생하시던 농사꾼 내 부모의 한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대부분 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는 내 친구들의 마음속엔 다른 세대가 쉽게 이해 못하는 그런 공감영역이 있다.

 

자라면서 ‘말만 말끔하게 잘 하는 인간들’을 자주 만났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기꾼들이었음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판들을 여러 번 접해오는 중이다. 참, 말 잘하는 사기꾼들이 많았다. 최근 10년 이내 두 번의 선거판을 말로만 본다면 ‘눌변 : 달변’으로 요약된다. 지금의 50대들이 누구인가? 대부분 어려움 속에서 근근이 살아남아 이제 은퇴기에 도달한 연령대다. 전통 교육 속에서 자라나 ‘농경사회→산업화사회→정보화사회→지식기반 고도정보화사회’의 고비들을 용케도 탈 없이 거쳐 온 사람들이다. 어쩜 비슷하게 고단한 환경과 의식 속에 성장했다는 ‘연대감’으로 뭉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국회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달변가도 보았다. 당시 나는 그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는데, 과연 그는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 달변이 이른바 ‘종북’이나 ‘극좌’와 합쳐지면 나라로서는 재앙이라는 판단이 들었는데, 나 말고도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일까. 그는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라를 위해서 천행이었다.

***

지금 50대의 민심이 대통령으로부터 이반(離反)되고 있다고 북악산 언저리에 수심이 가득하다. 50대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리던 그 50대가 민심이반을 추동(推動)하고 있으니, 당하는 심정으로선 적잖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오늘 아침 인적 쇄신책이라고 내 놓았으나, 그 역시 ‘격화소양[隔靴搔癢: 신발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의 미봉책일 뿐이다. 참, 답답하다.

 

대통령이 자신의 신조나 철학으로 주변의 개인들을 신뢰하거나 믿음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갖는 신뢰와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신뢰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대통령은 만인을 상대로 하는 공인이지 개인은 아니다. 두 사람 이상을 상대로 할 때 작동하는 것이 ‘정치 논리’다. 하물며 5천만의 생령(生靈)들을 상대로 하면서 정치논리를 도외시하고, 어찌 개인의 소신이나 철학을 판단의 잣대로 들이댄단 말인가?

 

인사를 말끔히 쇄신하라는 국민의 명령이 있다면, 그간 쓰고 있던 개인의 안경을 국민의 안경으로 즉각 바꿔 써야 한다. 박 대통령이 아직도 개인의 안경을 쓰고 있다면, 그건 공자가 말한 군자의 ‘눌변’ 차원이 아니라 김 모 전 대통령이 언급했다던 ‘칠푼이’의 수준에 머무는 일이다. 누가 보아도, 비서실장이나 ‘문고리 3인방’은 깨끗이 물러나야 한다. 누가 쫓아내기 전에 스스로 물러서는 게 맞다. 누구 말대로 ‘인간적 신뢰를 지킨답시고’ 그들을 껴안고 간다면, 그런 상태에서 아무리 강호의 현사들을 등용한다 한들 그게 어찌 ‘쇄신’이란 말인가? 그래서 국민들, 특히 50대들은 대통령이 답답하다는 말이다. 그의 입을 쳐다보기에도 지쳐 있는데, 행동마저 이리 굼뜨다면 참으로 절망이다.

 

지금 대한민국 호는 ‘북핵, 경제, 안전’의 불안이란 삼각파도에 휩싸여 있다. 판단력이 흐리고 굼뜬 조타수에게 어찌 대한민국 호의 순항을 맡길 수 있겠는가. 즉각 비서실장과 3인방을 내치시라. 팔팔하고 번뜩이는 감각의 30~50대 초반의 명망가들이 강호에는 넘치고 넘친다. ‘삼고초려’라도 해서 그들을 모신 뒤, 만기친람하려 들지 마시고 그들에게 국정을 맡기시라.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지금 그 시대정신을 거스른다면 대통령 스스로를 파괴할 뿐 아니라 이 민족에게 재앙을 안겨 주게 된다는 사실을 부디 명심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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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2013.08.02 16:05

 


책 표지


1980년대의 한진


                                                        1988년에 펴낸 <<한진 희곡집>>


1965년작 <의부어머니>


1991년 작 <나무를 흔들지 마라>


최근 고려극장에서 상연된 <량반전>의 한 장면


최근 고려극장에서 상연된 <량반전>의 한 장면


최근 고려극장에서 상연된 <량반전>의 한 장면


2011년 8월 백규 연구실에 만난 한진 선생의 손녀 율리아(한양대 박사과정 재학)와 저자들

 

 

조규익 교수(숭실대 국어국문학과)와 카자흐스탄에서 활동 중인 김병학 선생이 <<카자흐스탄 고려인 극작가 한진의 삶과 문학>>[글누림, 2013. 7.]을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42로 펴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매우 고통스런 삶을 살아왔지만 그 가운데서도 극작가 한진 선생만큼 복잡다단하고 극적인 삶을 살아온 이는 드물다. 그는 북한에서 인텔리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 단기간에 초⋅중등교육과정을 마치고 1948년에 북한 최고의 교육기관인 김일성종합대학 노문학부에 들어갔다. 공부에 취미가 남달랐던 그는 곧바로 학업성적에 두각을 나타내며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던 중 6⋅25동란이 일어나자 인민군으로 참전했고 전쟁의 와중에 국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 거기서도 변함없이 최우등의 학업성적을 보였다. 시쳇말로 그는 ‘최고의 스펙’을 쌓은 전도유망한 청년학도였다. 그의 앞에는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랬던 그가 안정과 명성이 보장된 미래를 던져버리고 돌연 디아스포라의 가시밭길을 택한 것은 김일성 개인숭배가 격화되면서 자유가 억압되고 문화예술은 이념의 시녀로 추락하고 있던 조국이 더 이상 기쁘게 돌아가 양심에 따라 글을 쓸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진의 작품들은 그의 의식이 성숙해가는 과정을 따라 네 단계로 나뉜다. 망명과 정착 과정에서 갖게 된 콤플렉스를 ‘원 모성으로부터의 절리(切離)와 새로운 모성의 발견 및 정착’으로 형상화시켰다고 보는데, 이것을 1단계의 이면적 주제의식[새로운 조국과 이념의 발견]이라 할 수 있고, <의부어머니>, <고용병의 운명> 등이 이에 속한다. 정착지에서 그를 끊임없이 괴롭힌 것은 지극한 사모(思母)의 정이었고, 어머니를 만날 수 없게 만든 조국 북조선의 현실이었다. 이것을 문학적으로 구현한 것이 2단계의 이면적 주제의식[모정에 대한 그리음과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이었고, <어머니의 머리는 왜 세였나>, <량반전>, <산부처> 등이 이에 속한다. 2-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르바초프에 의해 천명된 페레스트로이카나 글라스노스트 등은 소련의 분위기를 바뀌어 놓았고, 그에 따라 그로 하여금 다양한 주제의식과 미학을 추구할 수 있게 했다. 비록 풍자와 같은 간접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체제의 모순을 비판할 수도 있게 되었고, 보다 직접적인 어법으로 조국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드러낼 수도 있게 되었다. 3단계의 이면적 주제의식[주제의 다각화와 다양한 미학의 추구]이 가능했던 것도 그런 상황의 변화 덕분이었고, <토끼의 모험>, <나 먹고 너 먹고>, <폭발> 등이 이에 속한다. 4단계에 이르러 소련의 체제가 붕괴되고 새로운 민족주의가 대두됨으로써 조국의 미래에 대한 통찰 또한 새롭게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한진으로서는 이념이나 힘의 우위가 아니라 동질성에 입각한 ‘분열된 민족의 통합’만이 가장 바람직한 조국의 미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고, <나무를 흔들지 마라>를 통해 이 시기의 이면적 주제의식[민족통합의 당위성 추구]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그가 망명지에서 표면상 극작가 혹은 소설가로 살아갔지만, 이면적으로는 일관되게 민족정신이나 정서를 추구한 민족주의자로 살아갔다고 본다. 그 결과 그는 민족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제시할 수 있었고, 그에 따라 그의 극작품들은 독특한 미학을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밝혀진 것만 해도 12편의 희곡, 19편의 단편소설 및 소품, 5편의 단행본, 16편의 번역극, 수 미상의 평론 등 많은 작품들을 남겼으며, 창작 및 번역 희곡들 대부분은 최근까지 고려극장을 통해 상연되었다.

 

돌아갈 수 없는 조국과 영영 만날 수 없는 부모형제는 그가 일평생 벗어날 수 없는 트라우마의 근원이 되었지만, 그는 이 아픔을 자신이 창작한 희곡에 미학적으로 승화시켜 극장을 찾은 수많은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특히 그가 말년에 쓴 희곡 「나무를 흔들지 마라」는 오직 한진 자신만이 보여줄 수 있는 조국통일에 대한 독특하고도 통찰력 있는 비전을 담아낸 역작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마치 예언자처럼 하나가 되기를 갈망하는 남과 북의 우리가 궁극적으로 찾아내야 할 해답을 선취해서 보여주고 있다. 이는 동족상잔의 전쟁에 직접 발을 담갔던 한진이 소련에 유학하던 첫해부터 자신을 되돌아보며 평생을 붙들고 다듬어온 구상으로, 그는 이것을 우리에게 소중한 유산으로 남겼다.

이 책의 전반부에는 어릴 적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그와 관련된 사진 및 원고사진들을, 후반부에는 그의 삶과 문학에 대한 저자들의 분석과 연구를 각각 실음으로써, 우리 민족이 배출한 구소련의 뛰어난 극작가 한진의 전모를 보여주게 되었다고 본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차례

머리말

 

제1부 사진 및 기록자료

1장. 사진

1. 평양 시절

2. 소련 모스크바 유학 시절

3. 러시아 바르나울 시절

4.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 시절

5. 카자흐스탄 알마틔 시절(전반기)

6. 카자흐스탄 알마틔 시절(후반기)

2장. 편지

3장. 육필 원고

4장. 신문 게재 원고

5장. 책․잡지 게재 작품 및 글

6장. 기타 자료

7장. 작품 목록

1. 희곡

2. 단편소설․소품

3. 직접 편찬했거나 편찬을 주도한 단행본

4. 번역 작품

   

 

제2부 한진의 생애와 문학

1장. 한진의 생애와 작품 세계

2장. 한진 희곡의 미학과 문학 세계

3장. 한진 희곡의 고전수용 양상

4장. 한진의 연보

5장. 참고문헌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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