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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2.25 이선애의 <<강마을 편지>>를 받아들고
  2. 2015.01.30 장하다, 네티즌 수사대여!
글 - 칼럼/단상2015. 2. 25. 11:40

이선애의 <<강마을 편지>>를 받아들고

 

 

 

 

 

 

 

 

 

해군사관학교에서 전역한 뒤 자리 잡은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당시 그곳엔 국어 선생님의 꿈을 갖고 몰려 든 지역의 인재들로 그들먹했다. 마산은 이은상, 이원수, 김수돈, 조향 등 별처럼 많은 문인들이 거쳐 간 문향이었다. 해동 최고의 문장가로 꼽힌 최치원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월영동 캠퍼스, 그 발아래 펼쳐진 합포만, 그리고 합포만 건너편에 앉아있던 돝섬 등이 캔버스처럼 한 세트로 엮여 있었다. 가끔씩 길 잃은 갈매기들이 연구실 창문으로 날아와 기웃거리며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들여다보던, 기가 막힌 에코 유토피아이기도 했다.

 

월영동을 떠난 뒤 십년쯤 되었으리라. 내 고향 태안으로 시집 와 멋지게 살고 있는 제자 김난주 시인을 통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한 이선애였다. 월영동에서 만난, ‘작고 말 없던 문학소녀이선애. 가끔씩 내 홈피의 게시판에 강마을 편지를 올렸고, 경남 의령의 시골마을에 피어나던 풀꽃들을 말려서 보내주기도 했다. 그가 꽃 소식을 보내올 때마다 그 향내 속에서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향수를 달랠 수 있었다. 월영동의 연구실에 앉아 녹차를 마시며 합포만을 내려다 볼 때의 내 마음처럼, 처음 그의 글은 담담하고 잔잔하기만 했다. 횟수를 더해갈수록 담담함과 잔잔함옷소매를 당기는 매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간결하면서도 깔끔한 문장은 더더욱 좋았다. 그래서 한동안 강마을 편지가 배달되어 오지 않으면 은근히 궁금해지고,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혹시 이선애가 강마을에서 북적대는 도시로 옮겨간 것은 아닐까’, ‘요즘 중고등학교 교단이 만만치 않다던데 글쓰기를 그만 둔 거나 아닐까’ ‘혹시 몸이 아픈 건 아닐까등등. 별별 요사스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긴 세월. 목소리 한 번 들려주지 않은 그였다. 의령의 남강에서 길어 올린 청수 같은 글 몇 단락으로 할 말을 대신하던 그였다. 이역만리 해외에서도 버튼만 누르면 이웃집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는 요즈음이다. 맑은 글로, 말린 들꽃으로 수다를 대신할 수 있다니! 정녕 이건 시대를 거스르는 기적이다. 진정으로 아껴야 할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이라면, 그들 사이에 무슨 말이 필요할까. 석가모니가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연꽃을 들어보이자, 그 가운데 가섭만이 홀로 빙그레 웃었다지 않는가. 그래서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란 말이 나왔고. 원래 그는 나의 제자였으나, 의령 남강 가에서 이십년 가까이 수도했으니, 그와 내가 자리바꿈할 때도 되었으리라. 그래서 그가 자신의 마음을 담아 들어 보이는 말린 들꽃에 내 미소로 답하노라. 부처의 연꽃에 미소로 답한 그 옛날의 가섭처럼.<2005. 2. 24.>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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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5. 1. 30. 07:49

장하다, 네티즌 수사대여!

 

 

드디어 크림빵 뺑소니 범인을 잡았다.

밤늦게 일을 마친 젊은 남편. 만삭의 아내가 좋아하는 크림빵을 사서 길을 건너다 차에 치여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는, 슬픈 소식을 접한 것이 며칠 전이었다.

 

인적도 드문, 휑하게 넓은 거리. 누가 그 현장을 보았으랴? 절망감이 나를 엄습했다. 며칠 전 우연히 TV에서 산 속 농장의 염소를 모조리 물어 죽인 사건을 보았다. 피해자가 CCTV 영상을 갖다 들이대도 나 몰라라하던 경찰들. 그런 경찰들이 우글거리는 곳이 우리나라다. CCTV가 있다 한들 제대로 사진이 찍히지 않았다면, 어떻게 범인을 찾아낸단 말인가. 그러니 뺑소니 범은 안심하고 있었겠지.

 

슬픔과 절망을 느낀 게 나 뿐만은 아니었던가. 드디어 앞장 선 네티즌 수사대. 국민적 공분(公憤)이 네티즌 수사대를 움직였던 것이다. 그러니 뒤에 서서 구경만 하던 경찰도 어쩔 수 없었던 걸까. 네티즌 수사대와 경찰이 전 방위로 움직였고, 드디어 뺑소니 범은 자수하고 말았다.

 

당나라 때 황소의 난이 발발했다. 당시 토벌대 대장 고변의 종사관이었던 최치원 선생은 명문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당시 사람들과 반란군의 수괴 황소의 마음을 움직였다. 특히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대표적이다.

 

온 천하 사람들이 너를 드러내놓고 죽이려 할 뿐 아니라, 지하의 귀신들까지 너를 죽이려 이미 의논했을 것이다.()나는 한 장의 글을 남겨 너의 거꾸로 매달린 위급함을 풀어주고자 하는 것이니, 너는 미련한 짓을 하지 말고 일찍 기회를 보아 좋은 방책을 세워 잘못을 고치도록 하라.”

 

이 격문을 본 황소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했다. 그만큼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전의를 상실했고, 결국 반란은 제압되고 말았다. ‘황소를 격퇴한 것은 칼이 아니라 최치원의 글이었다는 것이 당대의 중론이었다고 한다.

 

네티즌 수사대!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앞에 자주 등장하여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민중의 숨은 파수꾼들이다. 이번만 해도 네티즌 수사대가 나서지 않았다면, 어찌 경찰들이 나섰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번 일이야말로 황소의 난을 해결한 최치원 선생의 격문에서 언급한 그 민심의 아우성과 힘을 네티즌 수사대가 보여준 경우라 생각한다.

 

장하다, 네티즌 수사대여!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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