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4.02 한국대학들의 '냄비근성'
  2. 2009.03.29 워낭소리, 본향의 소리
  3. 2008.06.11 역사의 진화(進化)는 완성되었는가?
글 - 칼럼/단상2010. 4. 2. 11:27

한국 대학들의 ‘냄비근성’

 

 

최근 교육부는 업적평가에서 논문의 수보다 질을 중시하고 융복합 연구에 가산점을 주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얼마 전에는 ‘강의 잘 하는 대학들’에 많은 돈을 지원하겠다는 정책도 내놓았다. 그에 따라 대학들은 학생들의 교수평가 점수를 공개한다거나 좋은 점수를 받은 교수들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기도 한다. 이제 대학도 ‘논문보다는 강의’를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다. ‘강의 잘 하기 경쟁’을 통해 교수들에게 돈을 지급하겠다는 것인데, 얼핏 그럴 듯해 보이지만 곰곰 따지고 보면 대학에 대한 곱지 않은 편견이 그 속에는 들어있다.

  인센티브를 주건 안 주건 대학의 목표는 ‘잘 가르치는 일’이었고, 그 점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더구나 대학 존립근거의 두 축은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어느 한 쪽을 헐어서 다른 한 쪽을 보충할 수 있는 행위들도 결코 아니다. ‘교수의 연구업적과 강의평가점수가 반비례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아닌데, 연구에 들이는 품을 강의준비에 돌리는 게 좋다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열심히 하는 연구가 좋은 강의로 연결된다’는 사고에 익숙한 교수들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다.

  최근 대학사회를 둘러싼 움직임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학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가고 있다. 대학의 개혁이 교수개혁이며, 교수개혁을 위해서는 교수들을 엄정한 잣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은 지당한 논리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들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기결정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점은 비극이다. 정치적 자유가 크게 신장되었다고 하는 참여정부를 거쳐 현 정부에 접어들었어도 대학들은 타율과 통제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교육열 등 사회적 현실을 이유로 대학들을 타율의 터널에 가두어두고자 하면서도 대학정신의 발현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 사회다. 학문의 균형 발전을 고창(高唱)하다가 새삼 ‘경쟁’을 들고 나선 일, 논문쓰기 경쟁을 시키다가 교육부가 돈을 제시하자 ‘논문보다는 강의’라는 팻말을 들고 나선 일, 논문의 수를 중시하다가 제대로 계량할 잣대의 마련도 없이 질을 중시하겠다고 나선 일 등은 외부적 여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우리 대학사회의 ‘냄비근성’일 뿐이다.

  독일의 철학자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가 대학의 원리로 제시한 ‘자유와 고독’을 우리도 한때는 신봉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대학을 ‘실용적인 목적을 초월한 자기 도야의 공간’이라거나 ‘자유로운 학문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지는 이상 공간’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이제 대학 안에도 없다. 시장주의나 효율성이 만능의 잣대로 활용되는 현실이 신자유주의라는 탈을 쓰고 대학의 공간을 장악하게 된 오늘날이다.

  그러나 시장이란 늘 바뀌는 곳이다. 같은 물건이라도 어제의 값과 오늘의 값이 다르고, 사람들의 이목은 보다 높은 값의 물건에 쏠릴 수밖에 없다. 사실 경조부박(輕佻浮薄)한 세상의 논리일 뿐, 더 이상 사람들이 믿고 따를 만한 이정표가 될 수 없는 것이 시장의 논리다. 이에 비해 인간의 삶터는 잠시 흔들림이 있다 해도 변함없이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는 공간이다. 세상의 일부인 시장의 원리를 흡사 삶의 원리인 듯 내세운다면, 사람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공동체는 표류하게 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대학의 줏대만큼은 바꾸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조규익(숭실대 교수/인문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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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9. 3. 29. 07:42
워낭소리, 본향의 소리


고정관념을 뛰어 넘은 영화 <워낭소리>가 우리사회 중장년층의 누선(淚腺)을 자극하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전통정서에 쉽사리 호응할 것 같지 않은 2, 30대 청년들의 마음까지 움직이고 있다. 중장년층이야 어린 시절 향촌에서 워낭소리를 듣고 자란 세대라서 그럴 수 있다지만, 의외로 청년들이 이 영화에서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다소간 의외라 할 수 있다.

날마다 새벽같이 워낭소리에 잠을 깨던 꼬마들이 50대 장년으로 성장한 지금, 어린 시절의 추억이 화면으로 재생되어 나타난 것이다. 시절은 마구 변하여 산업화와 정보화를 지나 고도 지식정보화의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우리의 정신적 촉수는 아직 산업화 이전의 농경사회에 머물러 있음을 영화는 역으로 보여준다.

그렇다면 누렁소와의 추억을 공통으로 갖고 있는 우리는 왜 영화 속의 장면들을 보며 눈물을 떨구는가. 화면을 점령하고 있는 ‘느림, 늙음, 낙후’가 빚어 만드는 그 시절 삶의 진실이 ‘아직도 그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산업의 패턴이 변화하는 와중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우리가 먼빛으로나마 다시 제 길로 접어들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제 길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무익한 ‘원점 회귀’로 평가절하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의 원점 회귀는 잃어버린 본향의 회복일 뿐 낙후한 상태로의 후퇴는 아니다. 물질적 개념 아닌 정신적 공간이 바로 본향이다.

현실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나그네 혹은 이방인으로 보는 것이 특정 종교의 전유물은 아니다. 누렁소와 말없이 교감하며, 소 때문에 농약을 뿌리지 않고 기계영농마저 거부하는 노인이야말로 생명을 중시하던 우리의 전통적 인간상이거나 그동안 잊고 지내던 우리의 원래 모습이다. 사실 본향 속에서만 그런 인간상은 존재할 수 있고, 체현될 수 있다.

매일 바꾸어야 할 만큼 우리들의 삶이 가벼운 건 결코 아니다.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한 주변의 하찮은 물건 하나도 그냥 버릴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생명은 바로 존재의 이유다. 비록 한 마리의 소일지라도 생명이 있는 한 인간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은 그것이 존재해야 할 소중한 이유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의 디지털 기술로 번쩍이는 오디오, 비디오 기기가 넘쳐나지만 두 노인은 아직도 아날로그 시대의 고물 라디오에 기대고 산다. 비록 낡았으나, 아직도 흘러간 그 시절의 노래들을 잘도 들려주는 그 자체가 그 라디오의 존재 이유다. 라디오처럼 늙은 노부부의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은 시절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의 삶이 바뀌지 않음을 보여주는 기호다. 시절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을 추구해 가는 삶의 진실은 주름이라는 기호의 심층구조다.

따라서 이 영화를 관통하는 정신은 ‘변하지 않음’ 혹은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는 지속 그 자체다. 우리는 살면서 수시로 단절을 경험한다. 어제와 오늘, 작년과 올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등 늘 단절을 통해 변하는 것이 세상인 것처럼 인식한다. 그러나 우리네 삶의 이면은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

영화는 변화에 대한 거부나 비판을 바탕에 깐 채 ‘불변, 느림, 지속’의 철학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수시로 경험하는 변화나 발전은 허상일 뿐이고, 그 이면에 지속되고 있는 농경사회의 정서가 우리의 본향임을 이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우리의 마음에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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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8. 6. 11. 12:07
 

*이 글은 『어문생활』 127호(한국어문회, 2008. 6.)의 ‘나를 움직인 한 권의 책’에 실려 있습니다.



   역사의 진화(進化)는 완성되었는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을 읽고-


                                          조규익(숭실대 교수/한국어문교육연구회 이사)


 엄혹(嚴酷)한 냉전체제 속에서 내 삶은 시작되었고, 3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공산진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배고프고 암울하던 어린 시절. 등굣길에 나서는 아침마다 북으로부터 날아온 삐라를 줍는 게 일이었다. 동네 어귀까지 바닷물 들어찬 어느 보름사리 한밤중엔 간첩선이 들어와 사람을 죽인 일도 있었다. ‘야수 같은’ 공산당을 저주하며 우리는 온몸에 소름 돋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틈날 때마다 너덜거리는 세계지도를 보며 빨갛게 칠해진 공산주의 국가들이 왜 그리도 넓고 위압적인지, 걱정하느라 잠을 설치기도 했다. 실체를 보지 못한 공산당이 내 실존을 위협하는 불안과 초조의 근원이었다. 라디오에서는 툭하면 간첩단 사건이 보도되고, 툭하면 ‘북괴타도 궐기대회’가 열리곤 했다. 거동이 수상한 사람들을 지체 없이 신고해야 했고, 여차하면 얇은 고무신 벗어들고 달아날 태세를 갖춘 채 산길을 가야 했다.

 그렇게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내면서 산업화 사회로 진입했고, 갖은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도 치러냈다. 그 무렵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이 소련의 손아귀로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몰락의 대서사시가 전 세계에 거짓말처럼 펼쳐졌다. 장년을 눈앞에 둔 내 정신세계에도 드라마틱한 파도가 일었다. 그 때 이미 우리는 정보화 사회를 거쳐 고도 정보화 사회에 진입하려던 차였다.

 그 무렵 우리는 어린 시절의 굶주림을 거의 완벽하게 잊어버린 상태였다. 자본주의의 폐단을 역설하며 좌익사상에 빠져든 친구들도 배고픔을 참으려 하지는 않았다. 눈앞에서 공산주의의 몰락을 보면서도 그들은 스스로 누리는 자본주의의 풍요를 저주하는 모순을 범하곤 했다.

 그렇게 ‘도둑처럼’ 찾아온 세계의 변화를 설명해줄만한 선생님이 내겐 없었다. 그 때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한 권의 책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역사의 종언(終焉)과 최후(最後)의 인간’이란 충격적인 제목이었다. 헤겔이 신봉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야말로 후쿠야마가 명쾌하게 설명한 바로 그 ‘역사의 종말’이었다.

 5공, 6공,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권력자 못지않게 우리 스스로도 존엄한 존재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처럼 인류평등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 ‘멋진 사건’을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얻은 행복이었다. 흡사 길바닥에서 말라가던 물고기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연못으로 던져진 격이었다. 연못 안에는 뱀도 있고, 생활쓰레기도 있으리라. 그런 것들을 몰아내고 치워가면서라도 살아야지, 이곳을 떠나면 갈 곳 없는 우리들이다.

 보라, 우리의 반쪽은 아직도 진화의 물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유년시절의 굶주림과 절망이 그들의 산하를 덮고 있는데, 그들 스스로 ‘노동자 농민의 천국’임을 강변하고 있다. ‘이밥에 고깃국’ 타령을 얼마나 더 읊어야 그들이 소원(所願)하는 ‘역사의 종말’은 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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