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8. 6. 11. 12:07
 

*이 글은 『어문생활』 127호(한국어문회, 2008. 6.)의 ‘나를 움직인 한 권의 책’에 실려 있습니다.



   역사의 진화(進化)는 완성되었는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을 읽고-


                                          조규익(숭실대 교수/한국어문교육연구회 이사)


 엄혹(嚴酷)한 냉전체제 속에서 내 삶은 시작되었고, 30대 중·후반이 되어서야 공산진영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배고프고 암울하던 어린 시절. 등굣길에 나서는 아침마다 북으로부터 날아온 삐라를 줍는 게 일이었다. 동네 어귀까지 바닷물 들어찬 어느 보름사리 한밤중엔 간첩선이 들어와 사람을 죽인 일도 있었다. ‘야수 같은’ 공산당을 저주하며 우리는 온몸에 소름 돋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틈날 때마다 너덜거리는 세계지도를 보며 빨갛게 칠해진 공산주의 국가들이 왜 그리도 넓고 위압적인지, 걱정하느라 잠을 설치기도 했다. 실체를 보지 못한 공산당이 내 실존을 위협하는 불안과 초조의 근원이었다. 라디오에서는 툭하면 간첩단 사건이 보도되고, 툭하면 ‘북괴타도 궐기대회’가 열리곤 했다. 거동이 수상한 사람들을 지체 없이 신고해야 했고, 여차하면 얇은 고무신 벗어들고 달아날 태세를 갖춘 채 산길을 가야 했다.

 그렇게 유년기와 소년기를 보내면서 산업화 사회로 진입했고, 갖은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도 치러냈다. 그 무렵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이 소련의 손아귀로부터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공산주의 몰락의 대서사시가 전 세계에 거짓말처럼 펼쳐졌다. 장년을 눈앞에 둔 내 정신세계에도 드라마틱한 파도가 일었다. 그 때 이미 우리는 정보화 사회를 거쳐 고도 정보화 사회에 진입하려던 차였다.

 그 무렵 우리는 어린 시절의 굶주림을 거의 완벽하게 잊어버린 상태였다. 자본주의의 폐단을 역설하며 좌익사상에 빠져든 친구들도 배고픔을 참으려 하지는 않았다. 눈앞에서 공산주의의 몰락을 보면서도 그들은 스스로 누리는 자본주의의 풍요를 저주하는 모순을 범하곤 했다.

 그렇게 ‘도둑처럼’ 찾아온 세계의 변화를 설명해줄만한 선생님이 내겐 없었다. 그 때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한 권의 책을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역사의 종언(終焉)과 최후(最後)의 인간’이란 충격적인 제목이었다. 헤겔이 신봉한 자유민주주의 체제야말로 후쿠야마가 명쾌하게 설명한 바로 그 ‘역사의 종말’이었다.

 5공, 6공,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권력자 못지않게 우리 스스로도 존엄한 존재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처럼 인류평등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한 ‘멋진 사건’을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얻은 행복이었다. 흡사 길바닥에서 말라가던 물고기가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연못으로 던져진 격이었다. 연못 안에는 뱀도 있고, 생활쓰레기도 있으리라. 그런 것들을 몰아내고 치워가면서라도 살아야지, 이곳을 떠나면 갈 곳 없는 우리들이다.

 보라, 우리의 반쪽은 아직도 진화의 물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 유년시절의 굶주림과 절망이 그들의 산하를 덮고 있는데, 그들 스스로 ‘노동자 농민의 천국’임을 강변하고 있다. ‘이밥에 고깃국’ 타령을 얼마나 더 읊어야 그들이 소원(所願)하는 ‘역사의 종말’은 올 것인가.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