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9. 2. 12. 19:45

압존법(壓尊法)혼란 시대

 

 

 

                                                                                                 조규익

 

 

 

우리 과의 어느 학생.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예쁜 여학생이다.

그가 내게 전화를 걸었다. 학교 전체 졸업식이 끝난 뒤 있게 될 학과 졸업식 관련 연락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참 듣다가 나도 모르게 꾸지람을 내뱉고 말았다. 압존법이 심히 부정확했다. 사실 이 학생만 압존법을 모르는 건 아니고, 또 대학생들만 그런 게 아니다. 일선 관청을 방문할 때도, 집안의 조카나 며느리들과 대화를 할 때도 늘 그놈의 압존법때문에 당황하기 일쑤다. 심지어는 TV 토론을 진행하는 앵커의 말에서도 흐트러진 압존법을 발견하게 된다! 대학에서 평생을 지내온 나는 대학생들과 대화하면서 가장 참기 어려운 문제가 바로 압존법의 혼란이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압존법을 모르거나 무시한다. 아무나 무조건 높이는 게 장땡인 줄 안다.

 

발언자 말 속의 주체가 발언자보다는 높지만, 듣는 사람보다는 낮을 때, 말 속의 주체를 높이지 않는 어법이 압존법이다. 전화 속의 그와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학생: 학과 졸업식에 참석하실 수 있으세요?

: 학과 졸업식에 누구누구 참석하나?

학생: 졸업생, 학생회 집행부 임원들 합쳐 40여분이 참석하세요.

: 그 밖엔?

학생: 2학년 학생분들 가운데 시간 나시는 분들도 참석하실 거예요. 그런데 아직 방학 중이시라서 몇 분이나 나오실 수 있으실지 알 수 없어요.

: 혹시 1학년생들은 참석 안하나?

학생: , 1학년 분들은 아직 등록을 안 하신 상태이셔서 참석 못하실 거에요.

: , 너 압존법을 배웠니? 못 배웠니? 네가 나한테 얘기하면서 꼬박꼬박 학생들을 높이면 나는 도대체 뭐니? 누구보다도 국문과 학생이라면 정확한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데, 지금 네가 하는 말이 압존법에 맞는다고 생각하니?

학생

 

그 학생이 무슨 죄이랴? 잘 가르치지 못한 내가 잘못이지. 학창시절 나는 압존법이란 말 자체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지금 대학생들을 포함하여 젊은 세대는 말하여 무엇 하겠는가? 웅변학원에 보내어 사자후를 토하는 방법만 가르쳤고, 데모의 현장에서 격한 어조로 선동하는 방법만 배웠을 뿐, 제대로 된 대화법을 가르치거나 배운 적이 없다. 선생님들도 모르는 압존법을 어찌 학생들이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도대체 요즘 젊은이들이 어떻게 압존법을 사용하는가를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보았다. ‘국립국어원홈페이지에 사례로 게재된 문답은 다음과 같았다. 

 

[질문]

직장 상사를 그보다 높은 윗사람에게 말할 때는 높여 말합니까, 높이지 않습니까?

[답변]

부장에게 과장에 대하여 말할 때 "과장님 외출하셨습니다." 하는 것이 옳은지, "과장님 외출했습니다." 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부장을 화나게 할 수도 있고, 또 과장을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평사원들이 이 문제 때문에 고민하다가 "외출하......" 하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윗사람에 관해서 말할 때는 듣는 사람이 누구이든지 상관하지 말고 '--'를 넣어 말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즉 평사원이 과장을 사장에게 말할 때라도 "사장님, 김 과장님 거래처에 가셨습니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윗사람에 대하여 말할 때 '--'를 넣어 말하는 것은 회사 안에서만이 아닙니다. 다른 회사 사람에게 말할 때도 상대방의 직급에 관계없이 '--'를 넣어 말합니다. 즉 평사원이 자기 회사 과장을 다른 회사 부장에게 말할 때도 "김 과장님 은행에 가셔서 안 계십니다."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윗사람에 대한 경어법에 '--'만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존칭조사 '께서'를 사용해야 하는지 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장에게 과장을 말할 때 "과장님께서 외출하셨습니다."라고 해야 할지 "과장님이 외출하셨습니다."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그러나 구어체에서 존칭조사 '께서'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과장님께서'보다는 '과장님이'이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장님, 과장님이 외출하셨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혼란의 근원은 국립국어원에 있었다! 평사원이 과장을 사장에게 말할 때 사장님, 김 과장은 거래처에 갔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옳다. ‘사장님, 김 과장님 거래처에 가셨습니다.’라는 말과 1학년 분들은 아직 등록을 안 하신 상태이셔서 참석 못하실 거에요.’라는 2학년 여학생의 말은 압존법이 엉망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압존법을 인정하면서 압존법을 솔선하여 깨고 있는 국립국어원의 판단은 매우 사려 깊지 못하다.

 

영어에는 압존법이 없다. 물론 어조(語調)에서 높이고 낮춤을 분간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말은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우리는 말 속에 많은 장치들을 두고 있지만, 의미와 감정의 전달에서 매우 합리적이다. “사장님, 김 과장은 거래처에 갔습니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대화의 상대인 사장을 높이는 효과, 군더더기 존칭소를 생략함으로써 전달내용의 명료화를 기하는 효과 등이 어느 외국 말보다 우수하지 않은가. 어려서부터 압존법을 제대로만 가르치면 단순명료하면서도 품위 있는 국어생활을 할 수 있는데, 생활언어의 교육을 소홀히 함으로써 우리는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왔다. '커피 나오셨습니다. 만원 되시겠습니다' 같은 엉뚱한 말, '다른틀린으로 틀리게 말하기 일쑤인 무감각, 범죄자들에게까지 깍듯한 존칭을 일삼는 TV방송 앵커들의 몰상식이 횡행하는 사례들 모두 생활언어 교육의 부재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제라도 교육현장에서 제대로 된 생활언어를 가르쳐야 한다. 자격 없는 앵커들과 교사들을 재교육시켜야 한다.

 

이건 틀딱의 고집스럽고 시대착오적인 투정이 결코 아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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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격하게 공감.합니다. 요세 우리말은 저도 그중에 하나이지만 정말 이상 합니다. 계산 도와 드리겠습니다....전 이말도 제일 싫고요 교회에서 하나님 아버지 하고 기도 하시는 장로님들 대부분이 우리 목사님....기도중에 이렇게....교회에ㅡ나이.지긋하신 장로님들 조차 압존법을 못배우신건지....하나님하고 당회장 목사나 위임목사나 동급으로 생각을 하는건지....이제는 애들한테 참 챙피하다는 생각 많이 합니다.

    2019.02.14 07:1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차포 선생님,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어가 혼란스러우면 생각도 혼란스럽고, 생각이 혼란스러우면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는 법인데요. 바로 지금이 그런 상황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조언 주시기 바랍니다. 거듭 고맙습니다.

      2019.02.14 11:03 신고 [ ADDR : EDIT/ DEL ]
    • .

      압존법을 듣고 거슬리시다니...‘요새’라는 단어를 어찌 ‘요세’라고 칭할 수 있으신지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참...

      2019.02.15 17:45 [ ADDR : EDIT/ DEL ]
  2. 최윤석

    관리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댓글입니다

    2019.12.14 14:58 [ ADDR : EDIT/ DEL : REPLY ]

글 - 칼럼/단상2016. 2. 19. 16:10

사랑하는 국문과 졸업생 여러분!

 

 

 

 

대학에 대한 기대와 젊음의 열정으로 반짝거리던 여러분의 새내기 시절이 엊그제인데, 벌써 사회로 나가는 문지방에 서 있음을 보고, 시간이 덧없다는 생각을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서 졸업 축하의 말씀을 전하는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도 교수님들 가운데 내가 맨 먼저 시간의 무상함을 절감하는 계절에 들어섰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을 보며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를 생각합니다우중충한 유신 말기의 냉기가 대지를 덮고 있던 때였습니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내가 대학을 졸업한 뒤 어떻게 입신할 것인가 고민에 싸여 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수렵 채취 시대-농경 시대-산업화 시대-정보화 시대-고도 지식정보화 시대를 두루 거쳐 왔음을 우스갯소리로 내세우곤 합니다만, 사실 내가 당시 농경시대에서 산업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존재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세계사를 관찰할 때 내 세대 즉 한국의 베이비부머들만큼 다이내믹하고 극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도 없는 것 같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로서 고도 경제성장과 1997년 외환위기, 그리고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두루 경험한 세대이지요. 우리 세대 구성원들 사이엔 간혹 금수저도 있었지만,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은 나와 같은 흙수저들 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아 차라리 과감하게 베팅해볼 수 있는나 자신이고 우리였습니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대책 없는' 계획을 세운 뒤 한눈팔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다시 올 수 없다는 절박감이야말로 '몸뚱이' 하나로 '도박판같은 세상'에 나서게 한 동력이었습니다. 어느 시대의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부모 형제가 뒷배를 보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략 20년 전쯤인가요. 차를 몰고 미국 모하비 사막( Mojave Desert)과 그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데쓰밸리(Death Valley)에서 아무도 없는 가운데 황혼을 만났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그 때 느낀 막막함이야말로 나를 위해 책임 져 줄 아무도 없다는 실존적 자아인식으로 이어지는 두려움과 절망감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공자는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겼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는 말이 <<맹자>>에 나옵니다. 공자 역시 어떤 계기를 만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 처한 자아를 인식했고, 그 진실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말이겠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모하비 사막과 데쓰밸리에서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꼈고, 그런 두려움과 외로움은 내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으로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기댈 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인식 위에서 강한 투지가 생겨났고, 그로부터 종이 위에 어설프지만 미래의 시간계획표를 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신입생들을 만날 때마다 시간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그런 권유를 했으리라 믿습니다. ‘하루, 한 달, 한 학기, 일 년, 십 년, 일생단위의 시간계획을 짤 수 있어야 그나마 '모험 투성이'인 인생에서 패착의 가능성을 줄여준다는 사실을 모하비 사막 한 가운데서 깨쳤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암울하고 막막했던 내 젊은 시절, 흐릿하나마 어떤 가능성을 부여잡고 용기를 낸 덕분에 지금 여러분 같이 별처럼 빛나는 젊음들 앞에서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의 경험이나마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점을 고맙게 여길 뿐입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총아(寵兒)들인 여러분의 손에도 어떤 정해진 형태의 성공이 주어진 건 아닙니다. 안정된 직장이나 소시민적 행복이 지금 당장 가시화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나침반을 들고 광야에서 길을 찾는 개척자의 자세로 용감하게 저 문을 나서야 합니다. 지금까지 시간 계획을 하지 않았다면, 바로 지금부터 그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눈앞에서 반짝이는 무궁한 가능성들을 촘촘하게 계획된 시간의 그물로 그들먹하게 건져 올려야 합니다.

 

외로움과 막막함의 한복판에 서 있는 여러분이 자신감만 갖는다면, 최후의 승리는 바로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되리라 믿습니다. 모하비 사막을 돌아 수백 마리의 소떼들을 거느리고 돌아오는 여러분을 10년 혹은 20년 후에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하며,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고맙습니다.

 

 

 

2016. 1. 19.

 

 

 

국어국문학과 조규익 교수

 


졸업식을 마치고

 

 

 

졸업식 후 연구실로 찾아온 양훈식 박사 가족과 함께

 

 

 


졸업식 후 연구실로 찾아 온 임민주, 국미진

 

 

 


졸업식 후 연구실로 찾아온 고조, 국미진, 임민주

 

 

 


졸업식 후 연구실에서 고조와 함께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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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2014. 11. 5. 13:59

 

 

 

 

 

저는 2013년 2학기 풀브라이트 방문학자(Visiting Fulbright Scholar)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 역사학과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현지를 틈틈이 답사하고 체험한 기록들을 정리하여, 최근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푸른사상)라는 제목의 문화 답사기를 펴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토네이도의 본고장으로만 알려졌을 뿐인 오클라호마를 보물찾기라는 테마를 통해 새롭게 읽어내고자 했지요. 책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물 1: 스틸워터와 OSU, 그 안식과 탐구의 낙원

평온과 정밀(靜謐)의 오클라호마에 안착

역사학과를 찾아

학과 비서들과의 만남

카우보이 풍의 노신사, 학과장 로간 교수와의 만남

브렛 학장과의 만남

평원 속 지성의 오아시스, OSU에서

역사학과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마치고: 한국의 이미지를 새것으로!

카우보이들, 풋볼의 진수를 보여주다!

미국 대학의 졸업식과 감동: 왜 우리는 이렇게 하지 못하는가?

안식과 힐링의 낙원 스틸워터에서

 

보물 2: 인디언, 인디언 역사, 인디언 문화

오클라호마와 인디언 부족들

대초원에서 만난 오세이지 인디언들

체로키 후예의 집을 찾아 패러다임 전환의 증거를 찾다

오클라호마 동쪽에서 체로키 인디언들을 만나다!

체로키어오시요(Osiyo)’와 우리말‘ (어서) 오세요!’의 정서적 거리

스틸워터의 이웃동네에서 만난 판카 인디언들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아이오와 인디언 족

지혜로운 치카샤 족, 인디언 사회의 자존심

촉토 족의 뿌리와 투쟁, 그리고 예술

촉토 족의 탁월한 교육열, 풍부한 역사 자취

놀라운 세미놀 인디언들의 역사와 문화의식

카이오와, 아파치, 코만치, 그리고 대평원의 서사시

카이오와 족의 삶과 예술

무서운 코만치에서 상식의 미국인으로!

크릭 족의 꿈과 현실을 찾아

오클라호마 밖의 인디언: 뉴멕시코의 앨버커키와 스카이 시티, 그리고 푸에블로족

암굴 속에 서린 생존 의지‘, 반델리어 국립 유적지와 푸에블로 족의 말 없는

외침

부드러운 어도비, 완강한타오 푸에블로인디언들

 

보물 3: 미국의 길, 66번 도로(Route 66)의 낭만

미국에서 길을 찾으며: 우리도 스토리가 있는 길을 한 번 만들어 봅시다!

작은 일탈을 꿈꾸는 66번 도로, 그 낭만과 허구

엘크 시티와 국립 66번 도로 박물관 단지

클린턴 시티와 ‘66번 도로 박물관

엘 르노 시티와 캐나디언 카운티 뮤지엄

66번 도로에 살아 있는 역사의 공간, 유콘 시티

누구 혹시 이 소녀를 아시나요?: 유콘에서 만난 우리들의 누이

한국전 참전용사의 아들 리차드 카치니와 유콘 참전용사 박물관

오클라호마의 숨은 별: 거쓰리 시티/ 66번 길의 경이로운 옛 건축물: 아카디아 라운드

 

 

 

 

 

 

보물 4: 박물관과 미국 역사

서부 개척시대 미국의 소리: 국립 카우보이와 서부유산 박물관

예술로서의 역사, 역사로서의 예술: 털사의 길크리스 박물관에서 길을 잃다!

인간의 악마성을 깨우쳐 준 공간: 오클라호마 시 메모리얼 뮤지엄
오클라호마 밖의 박물관: 예술과 역사의 도시 산타페와 박물관들

 

보물 5: 열정과 도전의 대학인들

미국의 중남부에서 아시아 역사를 가르치는 젊은 학자: 용타오 두 교수

학자와 목자의 삶: 한인 교수 장영배 박사

빛나는 한국학생 브라이언

한반도에 관심이 큰 소련 역사 전문가 림멜 교수

탁월한 젊은 영어 교육자 제이슨 컬프

역사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온 프레너 교수

 

보물 6: 아름다운 자연, 안식의 낙원

부머 호수에서 찾은 마음의 고요

리틀 사하라에서 되찾은 고향의 꿈

대초원에서 멋진울음 터를 발견하고

낙원 속의 산책로: OSU 크로스 컨트리 코스의 안식과 힐링

 

 

 

 

 

***

일반적으로 미국은 역사가 짧고, 넓은 땅에 비해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역사 문화유적의 답사라는 여행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공간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백인들의 이주 후 200여년, 인디언으로부터 따지면 그보다 훨씬 더 긴 역사가 이어져 온 땅이고, 그에 따르는 문화유산들이 적지 않은 곳입니다. 더구나 경쟁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의 대학들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문화를 생각하면, 미국은 유럽과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을 지닌 지역입니다. 무엇보다 39개에 달하는 인디언 부족의 보호구역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오클라호마는 대초원(Tall Grass Prairie)과 대평원(The Great Plains)등 풍부한 목초지와 함께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원유 등으로 오랜 동안 풍요를 구가해온 지역이기도 합니다. 풀브라이트(Fulbright)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곳의 대표적인 교육기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에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만. 이곳에 오자마자 연구 과제 외에 이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의미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가 관심을 가졌던 대상은 인디언의 역사와 문화였습니다. 저는 사람, 자연, 도시, 제도, 역사, 문화 등 감고 있던 마음의 눈을 뜨게 한 모든 것들이 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간 모르고 지내온 것들이 그의 편견을 바로잡아 주었기에 보배로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디언들과의 만남은 무엇보다 소중했습니다. 인종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백인들에 의해 고통을 받아온 인디언이야말로 역사의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보물이었던 것입니다. 서부영화나 백인들에 의해 저술된 책들을 통해 제 마음에 뿌리 내린 왜곡된 인디언의 이미지가 비로소 바로잡혀지게 된 점을 가장 곰지게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배자들이 펼쳐 온 자기 합리화의 억설(臆說)에 의해 일그러진 인디언들의 실체를 삶의 현장에서 바로잡음으로써 내면에 고착된 편견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 인디언에 대한 발견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을 통해 미국 대학들의 경쟁력이 바로 미국의 경쟁력임을 깨닫게 된 점입니다. 대학의 역사와 현실을 통해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체력을 단련하며 단합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운영되는 미국 대학의 장점을 읽어낸 것은 제 글 내용의 핵심적인 축입니다.

인디언이나 대학의 힘에 대한 발견과 함께 오클라호마나 스틸워터의 깨끗한 자연으로부터 얻게 된 힐링의 감동은 이 책 내용의 또 다른 축입니다. 부머 호수, 리틀 사하라, 산책로로 쓰이고 있는 크로스 컨트리 코스 등 잘 보존된 자연이 인간의 내면적 평정이나 행복을 위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체험적으로 진술하고자 했습니다. 제 글의 에필로그 가운데 마무리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풀브라이트 학자로서의 가볍지 않은 사명을 짊어지고 오긴 했지만, 연구 외

에 이곳에서 발견한 또 다른 것들이 나를 달뜨게 했다. 오클라호마 사람들과의

만남, 인디언의 역사나 문화와의 만남, (특히 Route 66)과의 만남,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과의 만남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했던 스틸워터는 문만 닫으

면 절간처럼 조용해지는 공간이었다. 맑은 공기 속에 한 발만 나서면 온갖 새

와 나무들이 그들먹한 낙원이었다. 그래서 기대 이상의 힐링을 체험하며 마음

속의 온갖 찌꺼기들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물론 이곳이라고 어찌 사람들 사

이의 갈등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불행들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러나 유목민들이

아름다운 꽃향기와 산토끼의 해맑은 눈빛, 그 지순(至純)한 추억으로 광풍 몰

아 치던 수많은 밤들의 괴로움을 지우듯,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걸러내는 능력

이야말로 지혜로운 인간의 전유물 아닌가. 사실 짧지 않은 6개월 동안 걸러내

야 할 단 하나의씁쓸함도 만나지 못한 나였다.

                                                          ***

스틸워터에서 화려한 행복보다는 작고 따스하며 담백한 즐거움 속에 거의

완벽한 힐링의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으니, 이제 맛있고 영양가 풍부한 풀들이

많이 자라 있기를 기대하며 다시 옛 고향으로 노마드의 소떼를 몰고 재입사(

入社)하기로 한다.”

 

그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책을 펼치기만 하면 오클라호마와 스틸워터의 감동과 아름다움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지리라 생각합니다. 강호제현의 질정(叱正)을 고대합니다.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 푸른사상,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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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3. 12. 15. 11:15

 

 

 

왜 우리는 이렇게 하지 못하는가?

 

 

 

어렵던 시절, 궁색한 현실에 비해 가당찮게 큰 욕구를 가졌었기 때문일까. 졸업식에 관한 내 추억은 온통 잿빛 일색이다. 1978년도 내 대학 졸업식은 참으로 우중충했고, 1981년도 석사학위 수여식과 1986년도 박사학위 수여식은 번잡하고 무성의하여 도무지 아무 감흥도 느낄 수 없었던, 그야말로 서운한행사들이었다그 후 대학인들의 타성이 고착되면서 졸업식에 관한한 행사를 위한 행사를 반복해왔고, 오늘날에 이르러 대학 졸업식은 지리멸렬그 자체로 전락해 버렸다.

 

독자 여러분 가운데 최근의 대학 졸업식에 가본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졸업생들은 식이 시작되어도 식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흡사 사진 찍는 일이 졸업식의 전부인양 카메라를 껴안은 채 식장 바깥에서만 어슬렁거린다. 모처럼 자식의 학교를 찾은 학부모들도 식장 안에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들어가 봐야 재미 없고 지루하기만 할 것이며, 무엇보다 당사자인 자식이 들어가지 않는 곳에 기를 쓰고 들어가 앉아 있을 부모는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바깥은 인파로 북적대는데, 그 넓은 식장 안의 좌석들에는 석박사학위 받는 몇 사람과 수상자 몇 명만 듬성듬성 앉아있을 뿐이다.

 

왜 그럴까. 간단히 말하면, 졸업식을 주관하는 대학 측의 철학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졸업식은 학교당국과 교수들이 그 행사의 핵심인 졸업생을 위해 가족을 초청하여 갖는 학교 최대의 행사인데, 졸업생들이 철저히 소외 되고 있는 것이 한국 대학 졸업식의 현주소다. 

 

근래 어느 대학의 졸업식에 참석해 보았다. 그 넓은 단상에는 내빈들과 동문회 인사 등 외부 초청 인사들이 그득하고, 그 한 가운데 지역구 국회의원이 총장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총장의 연설이라는 게 왜 그리 장황하고 요령부득인지 참으로 한심했다. 하기야 우리나라 주요 일간신문들은 스피치 라이터가 써주는 큰 대학 총장들의 축사 전문을 경쟁적으로 싣던 때도 있었으니,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있을 수 없었다. 각 대학 스피치 라이터들의 글 솜씨나 한 번 맛보라는 이야기였을까. 내빈축사는 왜 그리 많으며, 내용 또한 중언부언(重言復言) 지루하단 말인가. 그 많은 졸업장과 상장들은 왜 하필 졸업식장에서 일일이 수여해야 하는가. ‘이하 동문(以下 同文)’을 일일이 외쳐대면서도 서너 시간을 끌어가니, 그나마 상장이라도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앉아 있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런 고문을 당하고 나면 자신의 졸업이 어찌 영광스러울 것이며, 어찌 모교에 대한 사랑인들 생길 것인가.

 

***

 

그간 가까이 지내던 브라이언 군이 이 대학에서 2년을 단축하여 조기 졸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그 졸업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전기에 속하는 본 졸업식은 이미 5월에 있었고, 이번은 후기에 속하는 이른바 '코스모스 졸업'이었다. 규모가 작아 대충대충 진행되리라는 우려가 있었을 뿐 아니라, 대학 졸업식에 대한 기대를 접은 지도 오래 된 터여서 별 감흥은 없었지만, 정리로 보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졸업생들의 가족과 친지들은 물 밀 듯이 밀려들었으나, 모두 정시에 입장을 끝내고 경사 진 3면의 관객석에 안전하게 좌정했다. 식장인 실내 농구장의 바닥에는 졸업생들이 앉을 의자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고, 정면의 단상에도 그리 많지 않은 좌석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예정된 시각에 총장이 단상으로 나오더니 놀랍게도 그 스스로 식을 주재하기 시작했다. 총장의 말에 따라 이 대학 파이프 밴드가 행진곡을 연주한 뒤, 브라스 밴드의 연주에 맞추어 졸업생들이 두 줄로 들어와 마련된 의자에 착석하기 시작했다. 졸업생들의 착석이 끝나자 스코틀랜드 전통복장을 한 파이프 밴드의 연주와 선도로 단상에 앉을 인물들이 질서정연하게 입장했다. 그 다음 장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미국 국가[The Star Spangled Banner]우렁찬 목소리로 제창했다. 이어 오클라호마 주의 노래인 'Oklahoma'를 부른 다음 본격적인 졸업식이 진행되었다.

 


OSU 농구 경기장에 꾸민 졸업식장

 


졸업식장 전경(좌, 우, 뒷면 등 3면에 가족과 친지들이 앉아 있다)

 


가족과 친지들이 일어선 가운데 졸업생들이 줄지어 입장하고 있다.

 

총장은 우선 특별한 몇몇 손님들을 소개했고, 그 가운데 세 사람[주 교육위원회 의장, 교수협의회 의장, 오클라호마 주 하원의장]이 각각 1~2분 정도의 아주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한 졸업축하 인사를 했으며, 이어 학위증 수여가 있었다졸업생들은 호명되는 대로 단상에 올라 총장, 학장, 학과장 등과 악수하고 사진 찍기 위한 포즈를 취한 다음 자기 자리로 내려가는데, 좌석 부근엔 해당 학과 교수들이 함께 모여 기다리다가 자리로 돌아오는 졸업생들에게 축하인사를 건넸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졸업생들이 호명되어 단상으로 올라갈 때마다 관객석의 가족이나 친지들은 괴성에 가까울 정도의 함성을 질러대는 장면들이었다. 졸업식의 즐거움을 그들은 그렇게 표현했고, 당사자들 또한 단상으로 나가면서 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졸업생 모두를 단상으로 불러 올려 격려함으로써 그들에게 자부심을 불어넣어 주려는 배려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입장한 졸업생들과 객석의 가족 및 친지들이 일어서서
단상에 앉을 인사들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단상에 앉을 인사들이 입장하고 있다.

 


졸업생들에게 학위증을 수여하고 있다. 졸업생 좌석의 교차로에서
교수들이 축하인사를 건네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졸업장 수여가 끝나자 졸업생들도 단상의 인사들도 관객석의 가족이나 친지들도 함께 모교의 노래[OSU Alma Mater]’를 부르는데, 내 주변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얼마나 큰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모교의 노래'가 끝나고 단상의 인사들이 줄 지어 퇴장한 뒤 졸업생들도 들어올 때의 역순으로 퇴장함으로써 졸업식은 끝이 났다.

 

***

 

그 흔한 꽃다발도 없었다. 식장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졸업생도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시간이 되자 악대의 선도를 받아 질서정연하게 들어왔고, 정확하게 준비된 의자를 모두 채워 앉았다어쩌면 이렇게 개인주의의 천국인 미국에서 마치 훈련이라도 받은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단 말인가. 식 초반에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와 주가(州歌) 함께 소리 높여 부르며 단합정신[team spirit]을 확인하는 듯 했다어느 순서 하나 필요 이상으로 늘어지는 게 없었다. 모두가 졸업생들로 하여금 자신에 대한 영예와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갖도록 치밀하게 조직된 극본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모든 참석자들이 기립하여 국가와 주가 등을 제창하고 있다.

 


가족 및 친지들의 모습

 

사실 대학 졸업식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나였다. 그러나 식이 시작되면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일순 나를 긴장시켰다. 식순이 하나하나 진행되면서 서서히 감동이 일기 시작했다. 장황하거나 지루하지 않아 초점을 살리면서도 모두를 배려하는 세리머니는 예술 자체였다. 스피치에 참여한 모든 인사들도 하나같이 사전에 입을 맞춘 듯짤막한 멘트 속에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교훈을 담으려 노력한 것 같았다.  

 

이 대학과 아무런 관련 없는 나도 식이 끝나면서 내심으로 작지 않은 변화를 느꼈다. 그건 또 다른 버전의 감동이었다. 개인주의를 넘어선 단합정신. 여기서 미국의 무서운 힘이 나온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하게 되었다. 미국에도 대학의 서열이 엄존한다. 그러나 그들은 무턱 댄 자기 비하자기 우월에 빠지지 않는다. 그 서열이란 모든 요소들을 반영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자기 대학의 장점을 찾아 열심히 노력하는 데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이들의 최대 장점이다. 추운 날 담요를 싸들고 경기장에 나가 모교 응원에 참여하는 이 대학의 졸업생들. 그들이 바로 초강대국 미국을 유지해가는 사람들이다. 허구 한 날 좁쌀들끼리 비교하며 경쟁심만 부추기고, 모든 사람들을 자기 비하에 빠지게 하는 우리나라 대학들의 행태는 이쯤에서 청산해야 한다. 헛된 자존심을 버리고, 배울 건 배워야 한다.

 


브라이언(왼쪽에서 세번째)과 친구들

 


브라이언 등과 함께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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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성원

    벌써 수 십년 동안 한 해에 두 번 씩은 보았을테니 무질서 할 듯한 자유분방 속의 질서를 보게 된 놀라움 이해가 가고 부럽기만 할 따름이지. 요즘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예행연습 무지 많이 했었는데... 그러한 행위들의 지속적인 퇴적물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지금이라도 바꾸어야 하는데... 바꿀 수 있겠지? 아떻게 해야 할까?
    "개인의 존엄성을 중시한 개인주의와 행동을 필요로 하는 목표가 아닌(변질된) 욕심을 중시하는 이기주의?의 차이에서 초래된 결과물이 아닐까 " 라고 추측해 본다.
    20세기 말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나에게는 스스로 지키려고 노력하는 운전 습관이 한 가지 생기게 되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보행자 우선"
    5년전 호주의 멜번에서 유럽에서 보았던 "보핸자 우선"의 원칙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젊은 훈전자들이었다.

    2013.12.16 23:12 [ ADDR : EDIT/ DEL : REPLY ]
  2. 백규

    성원, 참 좋은 말이네. 자네도 현지에서 그런 걸 느꼈구먼. 나는 미국사람들이 턱없이 자유롭고 무질서한 줄로만 알았거든. 천만에! 규정이나 법을 철저히 지키는 이들의 태도를 보면 참 존경스러워. 그 뿐인줄 아나? 어딜 가나 국기가 게양되어 있어. 심지어 교회나 성당에도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어. 얼마 전 우리나라 장학사라는 작자가 어떤 행사장에서 "귀찮으니 국민의례를 생략하자!"고 했다던가? 교육의 최일선에 서 있다는 자가 그런 정도니 우리가 얼마나 속속들이 썩었는지 알 수 있지 않겠나? 사실 미국인들이 개인주의에 철저하지만, 애국심으로 뭉칠 때 보면 너무 무서울 정도야. 그들이 졸업식장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목청껏 그들의 애국가를 부르는 걸 듣다 보니 우리의 처지가 한심해지더군. 우리의 공공 행사에서 애국가 제창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 모두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부르는지, 마는지...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말하겠지만, 최소한의 형식도 갖추지 못하면서 무슨 내용을 논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 반성해야지.

    2013.12.17 23:27 [ ADDR : EDIT/ DEL : REPLY ]
  3. 나그네

    그런데 후기졸업이라 하지만, OSU의 졸업생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요? 한국 대학의 졸업생도 이 정도 규모라면 이렇게 할 수 있으련만, 이토록 깔끔하게 하려면 수가 너무 많지 않을까요?

    2013.12.22 04:23 [ ADDR : EDIT/ DEL : REPLY ]
  4. 백규

    이 학교의 경우 후기졸업이라 해도 졸업생 수는 꽤 되지요. 그래서 졸업식을 세 번에 나누어 하네요. 이번의 경우를 보면, 12월 13일(금요일) 저녁에 대학원 졸업식을, 14일(토요일) 오전에는 'College of Human Sciences/College of Engineering, Architecture and Technology/Spears School of Business' 의 졸업식을, 오후에는 'College of Education/College of Agricultural Sciences and Natural Resources/College of Arts and Sciences' 등의 졸업식을 각각 갖더군요. 그러니 장소나 시간 등이 여유로울 수 있지요. 학부와 대학원 졸업을 한꺼번에 치루느라 졸업생, 학부모 등 수천 명이 북적대는 우리네 졸업식과는 상황이 다른 것 같습니다.

    2013.12.22 09:14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