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5.04.14 성완종 사건을 보며 2
  2. 2012.06.10 아무리 정치판이 난장판이라지만...
  3. 2012.03.27 힘 내라, 손수조!!!
  4. 2012.03.10 못난 놈들
글 - 칼럼/단상2015. 4. 14. 14:49

성완종 사건을 보며

 

 

 

참 가관이다.

산다는 게 무언지, 우리가 뭘 위해 사는지 참으로 많이 헛갈리는 나날이다.

돈 썩는 냄새가 천지에 진동할수록 국가를 경영하는 인간들이 죄를 짓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가소롭고 딱하다. 매에 쫓긴 꿩이 머리를 논바닥에 쳐 박고 몸부림치는 모습 같아 애잔하기까지 한 요즈음이다. 사방팔방 돈을 퍼주다가 법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게 되자, 동네사람들에게 일러바치고 목숨을 끊은 그 또한 가소로운 건 마찬가지다.

 

돈을 아끼고 불려가며 기업이나 잘 운영할 것이지. 정치에 뛰어들어 기업을 망치고 자신마저 비명에 간 일을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까. 물론 정치인이 처음부터 정치인으로 태어나는 건 아닐 테고, 기업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정치에 한 발을 들여 놓아야 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정치판과 거리를 두고도 세계적인 기업을 이룩한 주변의 인물들이 어디 한 둘인가. 모름지기 기업을 운영하는 자라면, 기업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그 기업을 성실하게 키워가야 하는 것이 본연의 의무일 터. 만에 하나 정치 모리배들에게 돈을 퍼부어야 겨우 기업을 운영할 수 있다면, 만사 밀어두고 그 문제부터 고발하거나 바로잡았어야 옳다. 그런 일이 불가능하여 자살이란 극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러지 않고 그럴 듯한 감투 하나를 얻기 위해 온 나라를 휘저어 놓은 것이라면, 죽음으로도 그 죄과를 씻을 순 없다.

 

나이 먹을수록 먹는 양이 줄어든다. 잘 차린 밥상을 보면 회가 동하기 전에 걱정부터 앞선다. ‘저걸 다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반도 못 먹고 남기면 그냥 쓰레기로 버려질 텐데...’, ‘엊그제 보도에 한 두 끼로 하루를 지내는 아이들을 보았는데...’ 등등  ‘먹는 것’의 육체적 부담과 사회적 함축의 복잡성 때문에 편치 않은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사실 고량진미의 확보에서 삶의 행복을 느끼는 단계를 넘어서야 비로소 사회적 자아가 제대로 작동되는 법이다. 열심히 먹어도 1년 동안 쌀 한 가마를 못 먹는 게 인간이다. 정치하는 게 ‘돈 쓰는 일’이라면, 돈 없는 자는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 돈 받은 사람들이 모두 ‘꿀꺽했다’고 돈 준 사람은 항변했다. 정당한 정치자금으로 처리하지 않고, 사복(私腹)을 채우더라는 것이다. 참, 그 큰 뱃구레들이 부럽고, 그악스런 욕심보가 놀랍다. 하나같이 돈 받은 일 없다고 발뺌들을 한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논바닥에 주둥이를 쳐 박은 꿩’의 형상이다. 애시당초 달라고 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돈 주어놓곤 어려울 때 도와주지 않는다고 앙앙불락하며 '다 까버리는' 행위도 시쳇말로 '껄쩍지근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라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돈 받지 않은 놈 없는 정치판'은 ‘개판’으로 전락했다. 정신 제대로 박힌 인재들은 산야로 숨고, 사기꾼들만 ‘살판났다’ 활개 치는 세상이다. 정신 나간 기업인은 제가 먹여 살려야 할 종업원과 그 가족들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다. 월급날이 오기만 고대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종업원 아내들의 표정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월급날 아빠가 통닭이라도 몇 마리 사오기를 기다리는 종업원 자식들의 눈빛을 단 한 번이라도 떠올렸다면, 성완종 씨는 ‘천금 같은’ 기업을 그런 식으로 ‘아작 내지는’ 않았으리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과연 그 죄가 사해질 것 같은가.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6. 10. 16:43

아무리 정치판이 난장판이라지만...

 

                                                                                                                                                          백규

 

 인터넷을 뒤지다가 참으로 보지 말았어야 할 꼴을 보게 되었다. 여당의 이른바 잘 나가는 세 사내[김문수-이재오-정몽준]가 담합하여 대권후보 경선을 보이콧하겠다는 것. 그동안 이들을 그런대로 괜찮게 보아오던 터인지라, 바쁘다고 그냥 모른 체 지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껏 50남짓 살아오면서 별의별 인간들을 다 보아 왔지만, 참 ‘해도 너무하는 인간들’을 드디어 목격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다 큰 세 사내들’이 ‘어영차 달려들어 패대기치려는’ 대상인 박근혜의 지지자도 아니고, 그 아니면 대통령 감 없다고 생각하는 답답이도 아니다. 또한 현실정치에 별 흥미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저 상식선에서 이건 아니다 싶어 한 마디 하려는 것뿐이다.

 

 흔히 속 좁은 인간들을 두고 ‘밴댕이 소갈머리’라고 한다. 그러나 밴댕이를 함부로 욕하지들 마시라. 세상에 오뉴월 밴댕이처럼 달착지근하고 구시월 밴댕이 젓갈처럼 깊은 맛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 귀하신 밴댕이를 이런 인간들에게 갖다 댈 수는 없다. 밴댕이에 대한 모욕을 서해안 촌놈 출신인 나는 참을 수 없다. 세 살 먹은 애기들도 아니고 이들이 지금 그렇게 한가한 투정을 부릴 때인가. 다 망해버린 당을 맡기며 살려 놓아달라고 박근혜 치맛자락 부여잡고 애걸복걸하던 것이 바로 몇 달 전이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악수를 하다가 손이 부어 붕대를 감고 다니며, 열이 오른 몸으로 한반도를 누비며 당을 살려 낸 그녀였다. 그런 보도를 접하며 그녀가 보기 드문 여장부라고 생각한 것이 모두의 느낌이었다. 술주정뱅이 도박꾼 아버지가 거덜 낸 집안에서 홀어머니가 동분서주하며 올망졸망 새끼들을 건사할 오두막 하나 겨우 장만해 놓은 꼴 아닌가. 밖에서 겉돌며 가끔 욕설이나 한 마디씩 내 던지던 큰 자식들이 다 늦게 들어와 그걸 차지하겠다는 꼴이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잘은 모르지만, 경선 규칙이란 것이 이미 2007년에도 적용되었다니, 박근혜가 비대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꼼수로 개정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걸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물고 늘어진다면, 이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흔히 ‘못난 놈들’이 쪽박을 깨는 법이다. 어려울 땐 ‘닥치고 단결하여’ 도와야 한다. 지금 ‘벌건 바닷물’이 삼킬 듯 파도치는 난바다 위의 쪽배 형국이다. 함께 도와 안전한 곳으로 배를 저어가는 게 도리다. 그런 도리를 도외시하고 서로 사공의 자리를 빼앗겠다고 아우성치는 꼴이란! 설사 그런 사람들이 나타난다 해도 먼저 나서서 이들을 설득하며 함께 이길 묘책을 궁리하는 게 이 세 사람의 의무다. 그간 살아온 과정이나 관록으로 미루어 그들은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힘들여 안전한 육지로 저어가려는 쪽배를 한사코 파도 속에 뒤집어 넣지 못해 안달인 그들이다.

 

 설사 지금의 경선 규칙으로 승산이 없다고 치자. 그래도 눈 질끈 감고 함께 가야 한다. 이들이라면 그렇게 하는 게 금도(襟度)이자 의무다. 단어를 따지고 문장을 따지며 ‘앙앙불락(怏怏不樂)’할수록 자신들의 근수(斤數)만 떨어지는 것을 정말로 모른다면, 그간 우리는 이들로부터 되게 사기를 당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들이 부활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다. 눈 질끈 감고 그나마 승산이 있는 후보에게 힘을 몰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일단 정권을 잡은 다음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설사 규칙이 불리하다해도 당을 위해 참여하여 멋진 모습으로 져주는 것. 쉽진 않겠지만, 그것만이 이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유일한 티켓이다.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는 왜군과 일전을 겨루던 충무공에게만 해당되는 진리는 아니다. 세 사람이 진짜로 살려면 우선 자신을 죽일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든 꼼수를 부려서라도 ‘여자 하나’ 이겨보겠다는 것이 사나이의 기개는 아니다. 자신을 죽여서 공동체를 살리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자고로 ‘남자 노릇 하기 어렵다’고들 하는 것이다.

 

  부디 세 분에게 고하노니, 자잘한 꼼수나 자잘한 논리들을 이 순간부터 싹 버리고, 군말 없이 경선에 참여하시라. 그리고 그 싸움판에서 장렬히 전사함으로써 당신들이 속해있는 공동체를 살려 보시라! <2012. 6. 10.>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3. 27. 18:56

힘 내라, 손수조!!!


‘아기장수’의 전설이 전국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겨드랑이에 날개나 비늘을 달고 태어난 영웅, 힘이 센 아기장수의 비극적 종말에 관한 이야기다. 아이가 나중에 역적으로 몰려 멸문(滅門)될 것을 우려한 부모가 그를 맷돌로 눌러 죽이자 건너편 산 밑에서 용마가 구슬피 울며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우리나라의 이곳저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중세 권력의 횡포로 뜻을 펴 보지 못한 채 무수히 죽어간 영웅들. 이 땅에서 어렵사리 삶을 이어가던 중세의 민초들은 영웅을 대망하면서도 지배계층의 논리에 가담하여 ‘어린 영웅 죽이기’에 나서는 모순을 자행한 것이다.

4⋅11 총선이 다가오면서 백주 대낮에 ‘어린 영웅 죽이기’가 어른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딱한 광경을 목도한다. 스물일곱의 손수조 후보. 그가 후보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나 혼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 양심도 패기도 다 썩고 허우대만 남은 어른들이 활개치던 정치판에 이제 새 바람이 불겠구나. 패해도 좋으니 신나게 한 번 싸워 보거라. 불순한 암수로 민심을 호리는 정치인들을 그대의 풋풋함으로 제압해 보거라. 그러나 그에 대한 기대와 함께 증폭되는 불안감을 금할 수 없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사바나에 내던져진 한 마리 양같은 그가 안쓰러웠다. 스물일곱의 북한 김정은이 정권을 잡은 일에 대해서는 입도 달싹 못하던 인사들이 그녀의 말 한마디에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물어뜯는 일을 목격하며 내 불안은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잘은 모르지만, 그녀는 처음에 ‘3000만원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당찬 말을 했다가 도저히 안 되자, 그 약속을 포기하겠다고 한 모양이다. 또 한 건은 그 돈 3000만원의 출처. 그는 원래 이 돈이 전세방을 뺀 것이라 했는데, 나중에 보니 전세방은 아직 그대로 있다는 사실을 할 일 없는 누군가 확인하곤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원래 전세방을 빼서 쓰려고 했는데, 요즘 전세방이 잘 안나가 할 수 없이 어머니에게 꾸었노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손수조는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이 일기 시작했다.

언론에 보도된 것들만 대충 추리면 다음과 같다. 조모 서울대 교수는 트위터에 "'형사 책임'은 아니더라도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라 몰아댔고, "서울 남영동에 18평 원룸으로 전세 3000만원짜리가 있다고? 증여세 공제한도액이 3000만원인 바 탈세 목적으로 이중계약서가 작성된 것이 아닌지 확인해보아야 한다"는 법률적 멘트까지 날렸다. 공모 소설가는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해야 할 일이라 했고, 진모 교수 역시 ‘면책특권’을 들먹거리며 그를 비난하고 나섰다. 그 뿐인가. 어떤 당의 대변인이란 사람도 이런저런 말로 손 후보와 그 당을 비아냥거렸다.

대단한 사건이다. 한 마디씩 내뱉은 인사들의 경륜으로 보나 나이로 보아 그들의 작은 딸 쯤 될 스물일곱 살짜리 손 후보의 말 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며 그가 북한의 김정은보다 어쩌면 훌륭한 ‘아기장수’의 영웅성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갖게 되었다. 왜 그들은 ‘와!’ 하고 달려들어 그의 작은 몸을 ‘맷돌로 눌러’ 죽이거나 물어뜯어 죽이려는 것일까. 그를 죽이지 않으면 그들이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아니면 ‘젊은이가 참하게 직장생활이나 해야 하는데...’라고 자못 다정한 멘트를 날린 모 정당 유모 대표의 말처럼 걱정스런 부모의 심정 때문일까?

참, ‘뭣 같은 정치판’이라지만, 대명천지 21세기의 대한민국이 아직도 ‘아기장수’ 하나 용납하지 못할 만큼 옹졸한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도 이젠 ‘아기장수’ 하나쯤 키워 우리 미래의 한 부분을 맡겨볼만한 때도  된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보다. 그러니 손 후보는 그들의 어투대로 ‘절대 쫄지 말고’ 당당하게 나아가야 한다. 말 많은 자는 말로 망하게 마련. 가급적 말수를 줄여 공격의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약한 모습 보이면 달려드는 게 하이에나들이다.

산전수전 다 겪었을 그 어른들이 어린 후보의 말꼬리나 잡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며 매우 부끄러워지는 어제 오늘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3. 10. 16:29
 

못난 놈들

 

                                                                                                                                                           백규

 

대학입학 후 소설가 정을병의 ‘개새끼들’이란 제목의 소설을 읽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경험을 했다. 그가 통타(痛打)한 것이 과연 ‘시대의 부조리’였는지, 아니면 우리 모두의 내면에 들어 있을 ‘악마적 근성’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맹수들이 날뛰는 사바나 속에서 작은 초식동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내 운명을 비로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에 나오는 부조리는 작가의 체험이었다. 작품을 탈고한 뒤 제목을 어떻게 달 것인가를 두고 그는 아마도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머리에 떠오르는 고상한 제목들이 좀 많았을까. 등짝을 서늘하게 하는, 그럴 듯한 제목들 또한 제법 있었으리라. 그러나 ‘간지 나는’ 제목들을 두고 밤을 새워가며 고심하다가 결국 ‘개새끼들’로 낙착을 본 것이나 아닐까.

 

***

 

또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오십 중반에 맞이하는 정치의 계절은 또 다른 차원에서 흥미롭다. 정치판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군상들을 보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다수다. 아, 그동안 나는 어떻게 지내 왔기에 ‘어리기만 하던 그들’이 경세제민(經世濟民)하겠다고 나설 때까지 그저 남들을 우러러 보는 낮은 자리에서 속 편하게 앉아만 있었을까. 속아만 살아왔던 지난 세월도 억울한데, 그 사기꾼들이 기른 ‘새끼 사기꾼들’을 새로운 상전으로 우러러 보아야만 하는 시간과 공간에 선뜻 들어와 버렸으니, 통탄할 노릇 아닌가.

 

***

 

시절은 참 많이도 변한 듯. 여성들이 공교롭게도 굵직한 정당들의 보스로 자리 잡고 나라의 미래를 요리하겠노라고 각자 칼들을 집어 들었다. 총선에 나설 각 당의 대표선수[후보]들을 골라 발표하는 행사가 연일 민초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탈락한 자들의 모습이다. 각 당은 ‘쇄신’이란 명분으로 기득권자들이라 할 수 있는 현역 의원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각 당은 지역구의 여론조사 등의 방법으로 우선 대상자들을 걸러낸 다음,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일은 없는가, 임기 동안 얼마나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는가, 지역민들로부터 얼마나 지지를 받고 있는가’ 등을 따져 감점하는 식으로 나머지 후보들을 떨어뜨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탈락한 사람들의 모습이 가관이다. 모두 예외 없이 길길이 반발하며 앙앙불락(怏怏不樂)하는 이들의 모습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집행부의 꼼수에 걸려 억울하게 낙마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경쟁자의 음해에 피해를 입은 경우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득이 되는지 심사숙고하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으니, 이들을 바라보며 나라가 잘 되기만을 기원해 온 내 지난 세월이 너무나 아깝고 통분한 것이다. 한사코 자신이 탈락한 것은 칼자루 쥔 자들의 ‘복수심’이나 ‘자파 세력의 부식을 위한 꼼수’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나 같은 필부의 입장에서도 ‘세상의 변화’를 절감하고 있는데, 내가 경외(敬畏)하여 마지않던 이른바 ‘선량(選良)’들이 그 정도의 상식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말일까.

 

***

그래서 탈락한 사람들 끼리끼리 모여 새로이 ‘작당(作黨)’들을 한다고 한다. 어쩌면 새로 만드는 정당에서 여성이 보스로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붕당(朋黨)을 만들든 정당(政黨)을 만들든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사에 참여했던 인사들이라면 자중할 필요가 있다. 국가 대사에 남녀를 가를 필요는 없고, 여자가 보스라 하여 달리 볼 일도 아니지만, 시대의 변화를 잘 읽어보라. 세상의 ‘마초’들이여, 지금은 남자가 호령하던 시대에서 ‘한없이 너그럽고 따스한’ 어머니의 입장에서든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하는’ 원부(怨婦)의 입장에서든 이제 남자들은 당분간 물러나 앉아 보조역에 충실하거나 ‘때를 기다리며’ 은인자중해야 할 시기로 바뀌었다! 누구누구 손꼽히는 남자들, 그대들이 아무리 용을 써 보아도 국민들로부터 그녀들보다 나은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것이 그대들의 그릇이고 시운(時運)이다. 시운은 돌고돌아 인력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 언제일지 모르나 큰 변화의 주기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럴 경우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새로운 지도력에 승복하고 그 지도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큰 남자들의 금도(襟度)’다. 그들이 새 시대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는다면, 앙앙불락할 것이 아니라 냉철히 자신을 점검하고 수양하며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게 명철보신(明哲保身)의 길이다.

 

***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부왕의 상을 치른 뒤 은인자중하고 있다가 재야의 현자 열(說)을 발탁하여 선정을 베풀게 되었다. <<서경(書經)>>의 <열명편(說命篇)>에서는 그의 대인적 풍모를 ‘명철(明哲)’이라 기록했다. 즉 “천하의 사리에 통하고 뭇사람에 앞서 아는 것을 명철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만이 진실로 정치와 도덕의 법칙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시경>> <대아(大雅)> ‘증민(烝民)’의 다음과 같은 부분을 눈여겨보자.

 

“엄숙한 왕명을/중산보가 받들어 행하며/나라의 잘잘못을/중산보가 밝혔도다/밝고 현명하게 처신하여[旣明且哲]/그 몸을 보존하였도다[以保其身]…”

 

<<서경>>의 ‘명철’, <<시경>>의 ‘명철보신’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을 잘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비겁하게 숨으라는 말이 아니다. 나올 때와 들어가 있을 때를 분간하라는 말이다. 시운(時運)이 비색(否塞)하면 한사코 나오려 할 것이 아니고, 때가 이를 때까지 수양에 힘써야 한다. 여자가 주도하든 남자가 주도하든, 시대의 소명(召命)을 받은 주체가 거부함에도 한사코 앙앙불락하며 이 집 저 집 대문 앞을 기웃거리는 것은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선택을 받지 못했으면,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누구를 원망하며 동분서주하는 그들을 우리는 과연 무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

 

이 판국에 더 웃기는 자는 구멍 난 그물을 들고 돌아다니며, 쫓겨난 피라미들이나마 거두겠다고 설치는 인간이다. 그럴 듯한 교수자리 헌 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오두막이나마 ‘패자당(敗者黨) 하나 건사해보겠다고 나선 그를 우리는 과연 무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2012. 3. 10.>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