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정치판이 난장판이라지만...
백규
인터넷을 뒤지다가 참으로 보지 말았어야 할 꼴을 보게 되었다. 여당의 이른바 잘 나가는 세 사내[김문수-이재오-정몽준]가 담합하여 대권후보 경선을 보이콧하겠다는 것. 그동안 이들을 그런대로 괜찮게 보아오던 터인지라, 바쁘다고 그냥 모른 체 지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껏 50남짓 살아오면서 별의별 인간들을 다 보아 왔지만, 참 ‘해도 너무하는 인간들’을 드디어 목격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다 큰 세 사내들’이 ‘어영차 달려들어 패대기치려는’ 대상인 박근혜의 지지자도 아니고, 그 아니면 대통령 감 없다고 생각하는 답답이도 아니다. 또한 현실정치에 별 흥미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저 상식선에서 이건 아니다 싶어 한 마디 하려는 것뿐이다.
흔히 속 좁은 인간들을 두고 ‘밴댕이 소갈머리’라고 한다. 그러나 밴댕이를 함부로 욕하지들 마시라. 세상에 오뉴월 밴댕이처럼 달착지근하고 구시월 밴댕이 젓갈처럼 깊은 맛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 귀하신 밴댕이를 이런 인간들에게 갖다 댈 수는 없다. 밴댕이에 대한 모욕을 서해안 촌놈 출신인 나는 참을 수 없다. 세 살 먹은 애기들도 아니고 이들이 지금 그렇게 한가한 투정을 부릴 때인가. 다 망해버린 당을 맡기며 살려 놓아달라고 박근혜 치맛자락 부여잡고 애걸복걸하던 것이 바로 몇 달 전이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악수를 하다가 손이 부어 붕대를 감고 다니며, 열이 오른 몸으로 한반도를 누비며 당을 살려 낸 그녀였다. 그런 보도를 접하며 그녀가 보기 드문 여장부라고 생각한 것이 모두의 느낌이었다. 술주정뱅이 도박꾼 아버지가 거덜 낸 집안에서 홀어머니가 동분서주하며 올망졸망 새끼들을 건사할 오두막 하나 겨우 장만해 놓은 꼴 아닌가. 밖에서 겉돌며 가끔 욕설이나 한 마디씩 내 던지던 큰 자식들이 다 늦게 들어와 그걸 차지하겠다는 꼴이니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잘은 모르지만, 경선 규칙이란 것이 이미 2007년에도 적용되었다니, 박근혜가 비대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꼼수로 개정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걸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물고 늘어진다면, 이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흔히 ‘못난 놈들’이 쪽박을 깨는 법이다. 어려울 땐 ‘닥치고 단결하여’ 도와야 한다. 지금 ‘벌건 바닷물’이 삼킬 듯 파도치는 난바다 위의 쪽배 형국이다. 함께 도와 안전한 곳으로 배를 저어가는 게 도리다. 그런 도리를 도외시하고 서로 사공의 자리를 빼앗겠다고 아우성치는 꼴이란! 설사 그런 사람들이 나타난다 해도 먼저 나서서 이들을 설득하며 함께 이길 묘책을 궁리하는 게 이 세 사람의 의무다. 그간 살아온 과정이나 관록으로 미루어 그들은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힘들여 안전한 육지로 저어가려는 쪽배를 한사코 파도 속에 뒤집어 넣지 못해 안달인 그들이다.
설사 지금의 경선 규칙으로 승산이 없다고 치자. 그래도 눈 질끈 감고 함께 가야 한다. 이들이라면 그렇게 하는 게 금도(襟度)이자 의무다. 단어를 따지고 문장을 따지며 ‘앙앙불락(怏怏不樂)’할수록 자신들의 근수(斤數)만 떨어지는 것을 정말로 모른다면, 그간 우리는 이들로부터 되게 사기를 당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들이 부활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다. 눈 질끈 감고 그나마 승산이 있는 후보에게 힘을 몰아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일단 정권을 잡은 다음 각자의 길을 가야 한다. 설사 규칙이 불리하다해도 당을 위해 참여하여 멋진 모습으로 져주는 것. 쉽진 않겠지만, 그것만이 이들의 미래를 보장하는 유일한 티켓이다.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는 왜군과 일전을 겨루던 충무공에게만 해당되는 진리는 아니다. 세 사람이 진짜로 살려면 우선 자신을 죽일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든 꼼수를 부려서라도 ‘여자 하나’ 이겨보겠다는 것이 사나이의 기개는 아니다. 자신을 죽여서 공동체를 살리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서 자고로 ‘남자 노릇 하기 어렵다’고들 하는 것이다.
부디 세 분에게 고하노니, 자잘한 꼼수나 자잘한 논리들을 이 순간부터 싹 버리고, 군말 없이 경선에 참여하시라. 그리고 그 싸움판에서 장렬히 전사함으로써 당신들이 속해있는 공동체를 살려 보시라! <2012.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