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비금시'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8.01.17 작비금시(昨非今是)의 깨달음
  2. 2017.01.03 새해를 맞으며
  3. 2012.01.01 보내는 신묘년, 맞이하는 임진년
  4. 2011.02.02 세밑에 홀로 앉아
글 - 칼럼/단상2018.01.17 12:47

작비금시(昨非今是)의 깨달음

 

 

4년 전(2013. 9.~2014. 2.) 미국에 다녀와서 책(<<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 푸른사상, 2014. 11.)을 한 권 낸 바 있다.(백규서옥 블로그 No.119 참조) 당시 그 책을 교수들에게 증정하면서 나름대로의 소회를 적은 서한도 책갈피에 끼워 보냈는데, 책을 받았다는 반응은 10% 정도였고 그 서한에 대한 반응은 거의 zero에 가까웠다.

 

객쩍은 짓을 했나?’라고 자책하며 한동안 겸연쩍은 시간을 보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지난해 숭실 근속 30을 맞게 되었다. 나름대로 어떻게 기념을 할까 생각하다가 부랴부랴 새 책(<<<거창가> 제대로 읽기>>, 학고방, 2017. 10. 23.)을 내고, 교수들에게 돌렸다.(백규서옥 블로그 No.3 참조) 학자가 시간의 마디마디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수단으론 책을 능가할 게 없다는 것이 내 철학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의 응답률은 대략 20%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표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겠지만, ‘당신과 같은 직장에서 한 솥밥을 먹으며 30년을 근속하고 있노라는 인사는 전해지지 않았을까.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허전한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논문을 쓰다가 책 한 권이 필요하여 책장을 뒤지던 중, 책들 속에 끼여 질식하기 직전의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를 발견했다. 책을 펼치자 이쁘게편집출력된 서한이 접힌 채로 툭 떨어졌다. , 바로 내가 정성스레 작성하여 교수들에게 보낸그 편지였다. 읽어보니, 숫자(3336/3033)만 바꾸면 현재의 내 상황을 정확히 드러낼 만한 내용이었다. 교수직이 얼마나 따분한생활인지, 이 글을 읽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편지를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숫자만 바꿔 이곳에 올리고, 그 때 그 편지와, 그 글에서 숫자만 바꾼 숭실 근속 30년의 인사장을 늦었지만 이곳에 올린다.

 

                                                       ******

 

        님께

 

 

안녕하신지요?

인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조규익입니다.

 

엊그제 여름이었는데, 벌써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늘 그래 왔습니다만, 최근 들어 시간의 덧없음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저는 해군사관학교의 전임을 시작한 스물넷부터 36년째, 경남대학교의 전임을 시작한 스물일곱부터 33년째 상아탑을 지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저보다 앞서 이 길을 걸어가신 선배님들을 뵈며 참으로 끈기 있게 한 길을 걸어오셨구나!’라고 경이로운 눈길을 보내곤 했는데, 저도 이미 그 반열에 들어서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간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 그저 잠시 졸다 깨어보니 한낮이 기울어 버린그런 느낌입니다. 이제 비로소 흘려보낸 시간의 덧없음과 함께 맞이하는 시간의 질과 양이 나날이 달라짐을 절감합니다. 명문 <귀거래사(歸去來辭)>를 통해 마음이 육신의 노예가 되어(心爲形役)’ 동분서주하던 과거의 시간대에서 전원으로 돌아온 뒤 어제가 그릇되었고 지금이 옳다(昨非而今是)’고 선언한 도연명(陶淵明)을 떠올립니다. 저도 무명(無明)의 어제에서 깨달음의 오늘로 돌아 왔다고 한다면, 좀 주제넘은 말일까요? 시간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좀 더 본질에 충실한 생활로 돌아간() 것을 도연명이 말한 작비금시(昨非今是)’의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지요?

 

꽤 오래 전에 귀한 자료(<거창가>)를 입수한 뒤 책 한 권과 논문 여러 편을 낸 바 있으나, 다른 데 신경을 쓰다가 그 귀한 것을 그만 10년 넘게 망각의 늪에 빠뜨려 놓고 있었습니다. 최근 새로 쓴 글들을 하나로 엮고, 오독(誤讀)오역(誤譯)을 바로잡아 새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던가요? 책이 나온 뒤 가족들과 지인들을 불러다가 소중한 약속을 나누다가, 오랜 세월 한솥밥을 먹어 온 벗님들을 문득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욕심은 후회를 남기고, 반성 없는 후회는 파멸을 부른다는 금언을 되새기며, 이 공동체에서 더 머물게 될 몇 년 간 좋은 추억들만쌓고 싶은 소망으로 파편화된 제 학문적 견해들이나마 엮어 올리오니, 부디 소납(笑納)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7. 12. 31.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규익 드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7.01.03 01:33

새해를 맞으며

 

 

 

2016년 12월 31일 득량만에서의 해넘이

 

 

2017년 1월 1일 득량만에서의 해맞이

 

 

                                                  2017년 1월 1일 득량만에서 만난, 추억의 아침 연기

 

 

1990년대 초쯤일까요. 복거일의 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를 읽고 나서, 한동안 타임머신을 저 자신의 화두(話頭)로 틀어쥐고 지낸 적이 있습니다. 불혹에 접어들면서 시간의 위력을 깨닫게 되었고, 시간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이 제 내면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이었지요. 그로부터 참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 욕망이 망상(妄想)의 근원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역사 속의 모든 호걸들도 그저 ‘(역사를) 앞사람으로부터 받아서 뒷사람에게 이어주는고리에 불과하다는 진리. 바로 그 진리란 특별한 공부 아닌 나이가 알려주는 자연법칙이라는 점을 절감하게 된 것이지요. 비로소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작비금시(昨非今是)'! 요즘 연말연시만 되면 누구나 한 번씩 인용하곤 하는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명구이지요. 고백하건대, 길을 잃고 헤맸으나 아직 멀어지진 않았으니/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잘못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는 도연명의 깨달음에 힘입어, 나와 조상의 지난날들을 찾아 헤매다가 많은 시간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옛날의 어떤 점들이 잘못 되었고, 지금은 어떤 점이 옳거나 나아졌는지, 참으로 궁금하지만 시간은 아무것도 해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저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감수(甘受)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손쉬운 타성에 푹 젖어들고 말았습니다.

 

작년에는 참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소천을 통해 죽음의 의미와 가족관계의 허망함을 깨달았고, 가까운 사람들의 아픔을 통해 치열한 삶과 성취보다 건강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라는 예수의 말씀(마태복음 1626)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입니다.

 

가치와 중요성은 객관성을 바탕으로 하는 개념들일까요? 아니면 지극히 주관적인 개념들일까요? 가치가 있어서 중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중요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참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모두에게 가치 있는, 아니 모두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서로 물고 뜯으며 적개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지내온 지난해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미움이 더욱더 크게 증폭될 올해를 걱정합니다. 이제 좀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싶은데, 다시 어느 편에 서서 불편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게 될 것이 뻔한 2017년이 두렵습니다.

 

반복하건대, 손에 잡히지 않는 타임머신을 타고서라도 과거로 돌아가서, 그 당시 정의와 최선을 행했다고 자부하는 호걸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왜 우리는 새해만 되면 지난 시간대의 자신을 후회스런 눈빛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그들의 말을 듣고 판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 저는 그저 크게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 살아가렵니다. 좀 더 따스한 눈빛으로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다독일 수 있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하지도 못할 일들을 하겠노라 떠벌이게 될 정치인들을 미움 아닌 연민으로 바라볼 여유와 폭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해 여러분들에게 신의 가호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새해 벽두에

 

백규 드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01.01 00:30

 

   위 <천리포의 일몰-2011. 7. 20.>
   아래 <동해의 일출-양양 솔비치 앞바다, 2010. 1. 18.>

                                         
 몇 시간만 지나면 또 한 해를 맞는다. 누군들 예외일 수 있겠는가만, 신묘년이 한 뼘 가량 남은 지금 심사가 적잖이 복잡하다. 대충 계산해 보아도 지난 한 해 개운치 않은 일들이 많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잘한 일과 잘못한 일들을 저울에 달 경우 약간 뒤쪽으로 기운다면 일단 후회가 많은 한 해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 옛날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작비금시(昨非今是)’의 감회를 노래했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그에게 ‘벼슬에 앉아 있던 시간대와 벼슬에서 벗어나 고향에 돌아온 시간대’는 같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벼슬살이가 잘못된 일이었고, 벼슬을 던지고 고향에 돌아온 것이 옳은 일이었다는 깨달음을 그 시에서 강조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지난 시간대의 어리석음과 잘못을 뉘우친다. 어리석음과 잘못을 1년 단위로 뉘우쳐서 지난해의 그것들이 무(無)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스타트 라인에 다시 올라서서 가벼운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은 ‘포맷이 불가능한 컴퓨터’다.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모두 안고 가야하며 그에 따르는 부담을 함께 져야 하는 운명적 존재다. 잘한 일이 많으면 밝은 인생을 살 수 있고, 잘못한 일이 많으면 어두운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어제의 잘못을 깨끗이 반성하고 ‘새 출발’을 한다고들 말하지만, 그 기억과 상흔이 컴퓨터 포맷하듯 어찌 말끔하게 지워질 수 있으랴. 그래서 사람들은 번뇌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가슴을 치기도 하고 발등을 찍기도 하며, 스스로를 호명하며 저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후회가 나 같은 필부(匹夫)들만의 일은 아니다. 임기 말의 레임덕에 사로잡힌 대통령도 지금쯤 아마 그런 심정일 것이다. 취임 초부터 지금까지 능력 있고 청렴한 사람을 쓰지 못한 채 한사코 주변의 사람들, 인연을 맺은 사람들만 쓰는 대통령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에 널린 필부들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 준 사례가 바로 대통령의 인사였다. 인사청문회에 서는 후보들마다 어쩌면 그리도 오점들로 가득하단 말인가? 모래알처럼 많은 인물들 가운데 어찌 하여 그런 인사들만을 골랐을까? 대통령과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람만을 골랐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내 집 안방의 구들장을 놓을 때도 능력 있는 기술자를 골라야 하거늘, 황차 국가대사를 맡기는 장관을 고르는 일이야 더 말하여 무엇 하리오? ‘까짓것 어떠랴? 일만 잘 하면 그만이지!’라고 밀어붙였으리라. 그런 일들이 누적되다 보니 임기 말에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아마 대통령도 지금쯤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사사건건 사람을 천거하며 압력을 넣던 ‘형님’이나 측근 몇몇에게 가혹하게 대하지 못한 것도 후회일 것이다. 그러나 일을 그르치고 나서 후회한들 무엇하랴! 최상급의 지도자는 처음부터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이고, 그 다음 등급은 한 번 실수 이후에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며, 최하급은 같은 실수를 연달아 저지르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대통령을 최하급이라 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사실 그렇다.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사람을 잘 못 보는 일’이다. 사람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는 일만큼 뼈아픈 일도 없다. 국가나 공동체의 공직에 부적합한 사람을 선택하여 후회하는 일은 지금 눈 아프게 목도(目睹)하고 있으므로 논외로 하자. 개인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서로를 잘못 판단한 남녀 간의 사랑은 씁쓸한 비극의 단초다. 만나자마자 헤어지는 요즘 청춘남녀들의 애정 사고는 공부의 당연한 과정이라고 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포함하여 각종 인간관계에서 교언영색(巧言令色)에 속아 가까이 한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사례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속을 끓이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하여 부지기수일 것이다. 사람들을 잘 못 보고 믿다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낀 것은 올 한 해의 쓰라린 후회들 가운데 하나다. 그 기억을 지울 수 있으면 좋겠으나, 간단히 포맷할 수 없으니 어쩌랴! 그 영향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니 그 또한 근심이다.

***

 이제 밝아 올 임진년엔 형형(炯炯)한 용의 눈과 과감한 용의 심성을 닮고자 한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수직으로 치솟는 용의 기상을 배우고자 한다. 급격히 흐릿해져 가는 육안(肉眼) 대신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심안(心眼)을 갖추는 일에 매진하고자 한다. 일에 직면하여 이리저리 재며 소리(小利)를 탐하기보다 대의(大義)를 향하여 맹진(猛進)할 것이다. 더불어 공자가 안연(顔淵)에게 전하신 사물잠(四勿箴)[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을 ‘똑 소리 나게’ 한 번 지켜보고자 한다. 나이 먹을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고 지혜가 고갈되어 주변 소인배들의 교언영색에 스스로 무너지는 나 자신이 가련하니, 이제부터라도 더 이상 ‘발등 찍는 일’은 반복하지 않을 일이다. 입에 칼을 물고라도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을 사전에서 도려낼 일이다.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시점에
                                       
                                        백규, 재계(齋戒)하고 다짐함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1.02.02 17:03

세밑에 홀로 앉아

 

창밖의 나목(裸木)들에 모처럼 햇살 비치는 오늘, 섣달 그믐날이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홀로 창가에서 이 날을 지켰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넘어가는 시간의 질(質)에 변화가 없음을 느낀다. ‘그저께보다 나은 어제,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란 입에 발린 구호(口號)일 뿐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이제 발갛게 물들어오는 인생의 황혼을 향해 한 고비 넘고 있다는 뜻일까. 몸의 동력이 마음 같지 않은 나날이다. 당나라 때 천재시인 백거이(白居易)는 <세모(歲暮)>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已任時命去 이미 시운에 맡겨 따라가는 몸

亦從歲月除 그저 세월 가는대로 따라갈 뿐

中心一調服 속마음을 하나로 고르게 가져

外累盡空虛 세상사 얽힘 모두 비워버리네

名宦意已矣 명예로운 벼슬자리에 뜻 이미 버렸으니

林泉計何如 자연으로 돌아갈 계책은 어떠한가

擬近東林寺 동림사 가까운 곳 어디쯤

溪邊結一廬 개울가에 한 채 오두막이나 지어볼까나

 

이제 50중반. 세상사 마음먹는 대로 흐르지 않음을 비로소 깨닫는다. 사람도 물결 속의 작은 입자(粒子)일 뿐 흐르는 물의 방향을 돌리는 키나 노가 아님을 이제 겸허한 마음으로 수긍한다. 흐르는 물결은 더 큰 물결에 합쳐지고, 합쳐진 물은 더 큰 물에 합쳐져 강을 이루거나 호수를 이룰 뿐, 입자가 마음먹는 대로 모습을 바꿀 수 없음을 아프게 깨닫는다. 애면글면 도모한다 하여 세상의 명리(名利)가 손 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며, 간절히 바란다 하여 애욕(愛慾) 또한 성취할 수 없음을 터득하곤, 이제 옛 어른들이 말씀한 ‘작비금시(昨非今是)’의 탄식을 금치 못한다.

중병에 신음하다 북망산으로 실려 가는 이웃들을 보며, 탐욕의 끄나풀을 한사코 놓지 않으려다 정년(停年)으로 쫓겨 가며 앙앙불락(怏怏不樂)하는 주변의 존재들을 보며, 이제 하산(下山)의 신들메를 고쳐 맬 때임을 깨닫는다. 그렇다. 만각(晩覺), 아니 지각(遲覺)이다. 왜 나는 늘 남들보다 한 발 늦게 깨닫는 것일까. ‘깨달은 그 순간이 가장 이르다’는 억설(臆說)을 늘어놓는 사람도 있지만, 그저 위안을 주려는 것일 뿐 사실은 아니지 않은가. 어차피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 세상일진대, 세상의 가치관이란 대부분 개개인들을 비교하여 도출해내는 ‘상대적인 개념’ 아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주변의 왕따에 죽음으로 항변하는 후배를 보며, 대학이나 교수집단이라는 지식사회도 시궁창 그 자체임을 진저리치도록 절감한다. 그러니 남은 시간에 무얼 더 도모하고 바라겠는가. 백거이의 말처럼 물 좋고 산 좋은 곳을 골라 오척단구(五尺短軀) 누일만한 누옥(陋屋) 하나 얽어놓으면, 그것으로 만족한 것 아니겠는가.

***

조선조 후기의 천재 시인 신위(申緯)는 “佳人莫問郞年幾(아가씨, 이 사람의 나이 묻지 마오)/五十年前二十三(오십년전엔 스물셋이었다오)”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신위만한 그릇으로도 ‘칠십이 되어서야 마음먹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그러지지 않은’ 공자 나이에 이르러서야 겨우 나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위의 그릇을 훔쳐 볼 수조차 없는 국량이면서도 그보다 이십여 년 앞서 나이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나는 망발지한(妄發之漢)쯤 된다고 할 수 있으리라.

어쨌든 매미 껍질 벗듯 차분한 마음으로 욕망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내일 아침 새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리라.

 

경인년 묵은 해를 보내며

고요한 숭실동산에서 백규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