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천리포의 일몰-2011. 7. 20.>
아래 <동해의 일출-양양 솔비치 앞바다, 2010. 1. 18.>
몇 시간만 지나면 또 한 해를 맞는다. 누군들 예외일 수 있겠는가만, 신묘년이 한 뼘 가량 남은 지금 심사가 적잖이 복잡하다. 대충 계산해 보아도 지난 한 해 개운치 않은 일들이 많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잘한 일과 잘못한 일들을 저울에 달 경우 약간 뒤쪽으로 기운다면 일단 후회가 많은 한 해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 옛날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작비금시(昨非今是)’의 감회를 노래했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그에게 ‘벼슬에 앉아 있던 시간대와 벼슬에서 벗어나 고향에 돌아온 시간대’는 같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벼슬살이가 잘못된 일이었고, 벼슬을 던지고 고향에 돌아온 것이 옳은 일이었다는 깨달음을 그 시에서 강조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지난 시간대의 어리석음과 잘못을 뉘우친다. 어리석음과 잘못을 1년 단위로 뉘우쳐서 지난해의 그것들이 무(無)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스타트 라인에 다시 올라서서 가벼운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은 ‘포맷이 불가능한 컴퓨터’다.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모두 안고 가야하며 그에 따르는 부담을 함께 져야 하는 운명적 존재다. 잘한 일이 많으면 밝은 인생을 살 수 있고, 잘못한 일이 많으면 어두운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어제의 잘못을 깨끗이 반성하고 ‘새 출발’을 한다고들 말하지만, 그 기억과 상흔이 컴퓨터 포맷하듯 어찌 말끔하게 지워질 수 있으랴. 그래서 사람들은 번뇌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가슴을 치기도 하고 발등을 찍기도 하며, 스스로를 호명하며 저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후회가 나 같은 필부(匹夫)들만의 일은 아니다. 임기 말의 레임덕에 사로잡힌 대통령도 지금쯤 아마 그런 심정일 것이다. 취임 초부터 지금까지 능력 있고 청렴한 사람을 쓰지 못한 채 한사코 주변의 사람들, 인연을 맺은 사람들만 쓰는 대통령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에 널린 필부들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 준 사례가 바로 대통령의 인사였다. 인사청문회에 서는 후보들마다 어쩌면 그리도 오점들로 가득하단 말인가? 모래알처럼 많은 인물들 가운데 어찌 하여 그런 인사들만을 골랐을까? 대통령과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람만을 골랐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내 집 안방의 구들장을 놓을 때도 능력 있는 기술자를 골라야 하거늘, 황차 국가대사를 맡기는 장관을 고르는 일이야 더 말하여 무엇 하리오? ‘까짓것 어떠랴? 일만 잘 하면 그만이지!’라고 밀어붙였으리라. 그런 일들이 누적되다 보니 임기 말에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아마 대통령도 지금쯤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사사건건 사람을 천거하며 압력을 넣던 ‘형님’이나 측근 몇몇에게 가혹하게 대하지 못한 것도 후회일 것이다. 그러나 일을 그르치고 나서 후회한들 무엇하랴! 최상급의 지도자는 처음부터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이고, 그 다음 등급은 한 번 실수 이후에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며, 최하급은 같은 실수를 연달아 저지르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대통령을 최하급이라 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사실 그렇다.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사람을 잘 못 보는 일’이다. 사람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는 일만큼 뼈아픈 일도 없다. 국가나 공동체의 공직에 부적합한 사람을 선택하여 후회하는 일은 지금 눈 아프게 목도(目睹)하고 있으므로 논외로 하자. 개인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서로를 잘못 판단한 남녀 간의 사랑은 씁쓸한 비극의 단초다. 만나자마자 헤어지는 요즘 청춘남녀들의 애정 사고는 공부의 당연한 과정이라고 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포함하여 각종 인간관계에서 교언영색(巧言令色)에 속아 가까이 한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사례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속을 끓이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하여 부지기수일 것이다. 사람들을 잘 못 보고 믿다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낀 것은 올 한 해의 쓰라린 후회들 가운데 하나다. 그 기억을 지울 수 있으면 좋겠으나, 간단히 포맷할 수 없으니 어쩌랴! 그 영향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니 그 또한 근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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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밝아 올 임진년엔 형형(炯炯)한 용의 눈과 과감한 용의 심성을 닮고자 한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수직으로 치솟는 용의 기상을 배우고자 한다. 급격히 흐릿해져 가는 육안(肉眼) 대신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심안(心眼)을 갖추는 일에 매진하고자 한다. 일에 직면하여 이리저리 재며 소리(小利)를 탐하기보다 대의(大義)를 향하여 맹진(猛進)할 것이다. 더불어 공자가 안연(顔淵)에게 전하신 사물잠(四勿箴)[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을 ‘똑 소리 나게’ 한 번 지켜보고자 한다. 나이 먹을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고 지혜가 고갈되어 주변 소인배들의 교언영색에 스스로 무너지는 나 자신이 가련하니, 이제부터라도 더 이상 ‘발등 찍는 일’은 반복하지 않을 일이다. 입에 칼을 물고라도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을 사전에서 도려낼 일이다.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시점에
백규, 재계(齋戒)하고 다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