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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12.31 ‘백두산’
  2. 2016.04.15 내부자들의 파티 2
카테고리 없음2019. 12. 31. 23:32

     

 

                                                                                                                            

                                                                                                                                                                                                                                                                           백규

 

2019년 마지막 일요일. 극장을 찾았다. 영화예술인들의 상상력을 통해 오래 전부터 갖고 있던 내 우려의 무게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근자 영화 ‘백두산’[감독 이해준]의 계속되는 인기는 어쩌면 나처럼 한국인들 모두가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런 집단적 불안의 표출 양상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세 번 백두산을 찾았다. 모두 중국을 통해서였다. 두 번은 연변대학에서의 학술회의에 참여했을 때, 한 번은 학교의 공식적인 답사일정으로 연변과기대학을 방문했을 때였다. 갈 때마다 날씨가 좋아 백두산의 산세와 천지의 물빛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나를 소름끼치게 한 것은 백두산 어귀에서 만난 뜨거운 물과 흙 속의 ‘이글거리는 불’이었다. 흡사 장작불에 얇은 흙으로 만든 겉옷을 입혀 놓아 당장이라도 터져 나오려는 듯, 그 불은 살아 있었다. 내 인문학적 상상력의 측면에서는 그 불덩이가 이글거리는 눈초리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리라. 기분 나쁘게 굴면 표토(表土)를 부수고 뛰쳐나가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이었다. 백두산을 대충 훑어보고 돌아서는데, 오금이 마구 저려왔다. 그 사정권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불안감이 내면을 어지럽혔다. 첫 번째 방문에서 갖게 된 불안감은 두 번, 세 번을 거치면서 증폭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자 언론매체들은 ‘백두산 화산 활동 가능성’의 문제들을 거론하기 시작하였다. 전공학자들의 연구가 소개되고, 그들이 직접 매체에 나와 설명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세계 각처에서 화산 활동 재개의 소식이 보도될 때마다 백두산 화산 관련 내용이 언급되곤 하였다. 백두산이 불을 내뿜으면 중국의 동북삼성 지역과 핵을 갖고 미쳐 날뛰는 북한은 망할 것이고, 남한도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는 것이 공통된 내용이었다.

 

포스터에 암시된 바와 같이 결국 ‘백두산’의 중심서사는 핵무기를 매개로 ‘남한-북한-미국’이 삼각 축으로 연결된 그것이었다. 여기에 문제의 해결사로 사지(死地)에 파견되는 남쪽의 조인창[하정우 분]과 수용소에 갇혀있던 북측의 이중첩자 리준평[이병헌 분]이 벌이는 극단적 갈등과 화해, 7번 갱도에 핵을 터뜨려 마그마를 분출시킴으로써 마지막 대폭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사건의 단초를 마련한 강봉래[마동석 분]의 열연 등이 그 서사의 줄기를 이루고 있었으며, 조인창과 그의 임신한 부인 사이에 일어나는 이별과 만남, 헤어지고 나서 어렵사리 만난 어린 딸을 조인창에게 부탁한 뒤 장렬하게 폭사하는 리준평 등 휴먼 드라마의 양념들이 겉절이에 고춧가루 뿌려 버무려진 상태인 듯 풋풋한 풍미를 발하고 있었다.

 

영화를 잘 아는 동료교수 한 사람은 ‘몇몇 배우들의 명품 연기를 빼면 영화의 서사 자체가 졸렬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라고 혹평을 했지만, 나로서는 그렇게만 볼 수 없었다. 백두산이 폭발함으로써 북한이 초토화되었다는 점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백두산으로 상징되는 북한 수뇌부의 존립근거[이른바 ‘백두혈통’]가 저절로 파괴되는 역사의 순리를 이 영화는 암시하고 있으며, ‘남한에 대한 최후의 공격수단이자 방어수단으로 생각해오던 핵폭탄을 남한의 군인이 탈취하고 북한의 군인이 비장하게 죽어가며 폭파시킴으로써 한반도를 구한다’는 설정이야말로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영화적 상상력의 압권 아닌가. 비록 군데군데 어설픈 점들이 없지는 않지만, 이 정도면 백두산의 폭발 가능성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을 잘 대변했다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백두산 폭발과 함께 꺾이어 나뒹구는 김씨 부자의 동상이 암시하는 통일한국의 비전을 슬쩍 보여줌으로써 한국인 모두에게 카타르시스를 선물한 점도 간과할 수 없으리라.

 

영화가 단순한 ‘오락예술’일 수 없음은 그것이  인간 행위의 현실적 표본 역할을 수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영화 ‘백두산’을 곰곰 되씹어 보며 작품 속에 숨겨 놓은 다양한 코드들을 세심하게 찾아내야 할 것이다. 좋은 영화를 만든 감독과 배우들에게 갈채를 보낸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 4. 15. 14:21

 

 


영화 <내부자들>의 포스터

 

 

 


논설주간 이강희

 

 

 

내부자들의 파티

 

 

 

모처럼 한 건 올렸다. 은근히 보고팠던 영화 <내부자들>친견한 것이다. 비록 답답한 아파트 거실에서이지만, 모처럼 엔딩 타이틀이 뜰 때까지 졸지 않았다. 배우들의 미친 연기, 충격적인 장면들이 내내 나를 쫄게했다. , 언제부터 우리가 이런 배우들을 갖고 있었던가? 도끼로 찍히고 톱에 썰려 나뒹구는 손목, 튀는 피, 빙빙 돌려 뽑은 의수(義手)로 상대의 눈앞에 종주먹을 들이대는 안상구(이병헌 분) 눈동자의 살기, 뜨거운 피를 얼려버리는 저음의 협박, 갈가리 찢기는 영혼...상대 심장의 생명 에너지를 느글느글 뽑아가는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는 아예 사이킥 뱀파이어(Psychic Vampire)’였다!

 

그러나 스토리는 뻔했다. 재벌정치인법조인언론인정치깡패 등등, 참으로 휘황찬란하지만 식상한 스타일의 내부자들이었다. 은밀하게 우리나라를 휘어잡고 있는 그들.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이는 배신과 복수극이 기똥차게리얼해서 오히려 미학적었다. 사실 미학이 아름다움의 원리만은 아니다. 아름다움을 뒤틀면 추함이 된다. ‘추한 아름다움추미(醜美)’가 엄연한 미적 범주의 하나로 정착된 건 꽤 오래 전의 일이다.

 

부와 권력으로 옹골차게 짜인 최상층부 리그의 행태가 늘 궁금했다. 세계는 세계 나름대로, 나라는 나라 나름대로, 대학은 대학 나름대로 내부자들의 리그가 움직여 나가는 건 아닐까? 궁금증은 상상의 원동력. 상상력은 그럴 듯한 가설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늘 그러리란 가설을 내가 만들어 갖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법과 정의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것이고, 세상을 돌리는 힘은 으레 내부자들의 스크럼에서 나오는 법. 제법 멋진 가설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연구실에 처박혀 읽히지 않는 논문이나 줄창써온 내겐 식은 죽 먹기라고나 할까.

 

그럴 듯한 글줄로 장삼이사들의 여론을 움직이고 뒷거래의 판을 짜는 논설주간, 뒷거래의 주역인 유력 대통령 후보와 재벌 회장. 이들이 만든 리그에 참여하려 애쓰다 버려지는 정치깡패와 족보 없는검사의 복수극. 이 영화를 보고나서야 내 가설이 그럴 듯했음을 알았다. 물론 내가 논설주간이나 유력 대통령 후보, 혹은 재벌회장 중의 하나가 되거나, 하다못해 족보 없는 검사 우장훈 아니면 정치깡패 안상구라도 되어야 내 논문의 그 가설은 완벽한 결론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 텐데. 멋진 원작, 멋진 각색, 멋진 캐스팅, 멋진 연기... 이제 바야흐로 더러운 세상비판도 예술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

 

덤으로, 우스갯소리 하나.

 

주고받는 비자금을 매개로 권력을 설계하며 검은 거래의 현장에 모인 그들은 늘 애국과 정의를 농하곤 했다. 죽이거나 병신을 만들어버리는 복수극 또한 또 다른 정의를 그들 식으로 패러프레이즈(paraphrase)한 데 지나지 않았다. 검은 거래에 복수가 따르는 것은 희랍 시대 이래 연극의 정석 아닌가. 그러니 그런 것들 쯤이야 내 논문 속에서는 스테레오 타입(stereo type)에 불과할 뿐이다.

 

그보다 내 눈을 비비게 한 건 그들의 파티 현장이었다. 술상 뒤편으로 발가벗고 늘어선 팔등신 미녀들. 마찬가지로 벌거벗은 채 그녀들을 골라 앉힌 뒤 곧추세운 거시기로 폭탄주를 제조하며 미쳐가는 그들. , 두어 해 전 법무부 고위관리 아무개로 인해 세상에 까발려진 성 접대의 현장이 바로 그거였다! 벌거벗은 그들 사이사이에 발가벗은 여인들을 하나씩 끼워 앉히고 술을 마시며 고담준론(?)을 토해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문득 옛날 책에 나오는 좌우보처(左右補處)’를 떠올렸으니, 나도 참 못 말리는 거시기임에 틀림없으리라.

 

성종 때 대학자 성현(成俔)<<용재총화(慵齋叢話)>>에 나오는 일화다. 새로 과거에 급제하여 삼관(三館)에 들어가는 자가 고참 관리들을 위해 열곤 했던 신고식이 허참면신지례(許參免新之禮)’였다. 그 중 신참에 대한 행패로 치면 예문관(藝文館)의 파티가 가장 심했다. 처음으로 직위를 받고 베푸는 연석을 허참(許參), 50일이 지나 베푸는 연석을 면신(免新), 그 중간에 베푸는 연석을 중일연(中日宴)이라 했다. 춘추관과 여러 겸관(兼官)들을 청해 연석을 즐기고 한밤중에 파한 뒤 손님들이 돌아가면 그 때서야 본 공연(?)은 시작되었다. ‘선생들을 맞아 베푸는 연석인즉 상관장(上官長)이 곡좌(曲坐)하고 봉교(奉敎) 이하 모든 관리들은 각각 기생 하나씩 끼고 앉는데, 그걸 좌우보처라 한다는 것. 원래 사찰의 극락전에 봉안된 아미타 삼존도에서 아미타불의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배치되는 그것이 좌우보처였다. 그들만의 파티에서 좌우보처가 이루어지고 난 뒤 아래로부터 위로 술을 부어 돌리고 차례로 일어나 춤추되, 혼자 추면 벌주를 먹였던 모양이다. 새벽이 되어 상관장이 주석에서 일어나면 모든 사람은 박수하며 흔들고 춤추며 <한림별곡>을 부르는데, 매미 울음소리 같이 맑은 노래 사이에 개구리 들끓는 듯한 소리를 섞어 시끄럽게 놀다가 날이 새면 헤어진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술에 취한 뒤 무슨 난장판이 벌어졌을지는 독자 여러분이 상상하실 일이다. 묘하게도 그 좌우보처의 광경이 영화 속 파티와 오버랩되었으니, ‘내부자들의 파티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그들만의 일상아닐까.

 

 


대통령 후보 장필우

 

 

 

검사 우장훈과 정치깡패 안상구

 

 

 


안상구

 

*이 글은 <<인문시보>> 12호(숭실대학교 인문대학/2016. 4. 15.)에 실려 있습니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