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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28 염치(廉恥) 3
  2. 2010.11.23 한국문예연구소 새 책 5권 발간!!! 2
글 - 칼럼/단상2016. 12. 28. 13:36

 

 

역사상 우리의 중세를 지배한 사상은 유학이었고, 그 이데올로기는 통치의 이론적 근간이 되어 왔다. ‘염치란 현대의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들 가운데 하나인데, 그 역시 유교 이데올로기에서 나온 것임은 물론이다. 지금 대부분의 국어사전이나 한자사전들에는 남에게 신세(身世)를 지거나 폐를 끼칠 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상태(狀態)” 혹은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등으로 설명 되어 있으나, 한자를 그대로 풀면 부끄러움을 살핌부끄러움을 행동이나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마음이 바로 염치다. 그래서 염치는 예의(禮義)’라는 말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남들의 사회적 행동을 평가하거나 헤아릴 때 염치의 유무(有無)를 거론하는 것을 보면, 분명 인간관계에서 작동하는 가치기준이 바로 염치임에 틀림없다. 누구도 혼자 있는 상황에서 염치를 거론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처럼 염치를 중시하고, 염치 때문에 쭈뼛거리게 되는 집단정서를 갖고 있는 민족도 많지 않을 것이다. ‘찬물 마시고 이빨 쑤시면서도 배고픔의 기색을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자존심 강한 민족이었다. 그래서 염치는 집단적 수퍼에고(super ego)의 가장 확실한 발현태(發顯態)라 할 수 있다.

 

박인로(朴仁老)가 지은 <누항사(陋巷詞>의 한 부분.

 

가뭄이 몹시 심하여 농사철 다 늦은 때에

서쪽 두둑 높은 논에 잠깐 갠 지나가는 비에

길 위에 흐르는 물을 반쯤 대어 놓고는

소 한 번 빌려 주마 하고 엉성하게 하는 말을 듣고

친절하다고 여긴 집에

달 없는 저녁에 허위허위 달려가서

굳게 닫은 문 밖에 우두커니 혼자 서서

'에헴' 하는 인기척을 꽤 오래도록 한 후에

, 거기 누구신가?”<*농민의 물음>

염치없는 저올시다.”<*박인로의 대답>

초경(初更)도 거의 다 되었는데

무슨 일로 와 계신고?”<*농민의 물음>

해마다 이러하기 구차한 줄 알지마는

소 없는 궁가(窮家)에 근심 많아 왔삽노라.”<*박인로의 대답>

 

 

양반 박인로가 소 한 마리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부자 농민에게 쭈뼛거리며 찾아가 수모를 당하는 광경이다. 의 핵심은 염치. 염치가 중요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염치를 잠시 접어둔 정황이 드러난다. 생각해보라. 어엿한 양반으로서 임진왜란에 수군의 하급 장교로까지 참전해가면서 나라를 위해 헌신했고, 지도적 신분계층으로서의 자부심과 명예를 그토록 중시했으며, 같은 작품에서 일노장수(一奴長鬚: 노비의 길게 기른 수염)는 노주분(奴主分: 노비와 주인의 명분)을 잊었다고 변화된 세태를 탄식하기도 한 그였다. 그런 그가 자신과 가족들의 배고픔 때문에 염치 불고(不顧)하고 상민에게 찾아가 구차한 말을 건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보기 좋게 거절당한 그는 집에 돌아와 밤새 잠 못 이루며 번민하던 끝에 결국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이념적 허울 속으로 들어가 잠시 잃어버렸던 염치를 찾아내고 마는 것이다. 그게 바로 이 땅의 지도층이 추상같이 지키려던 염치였다. 구복(口腹)의 억압을 뛰어넘어 지키고자 했던 자존심의 문고리가 바로 염치였다.

 

중세시대 이래 우리는 늘 염치를 강조해왔다. 비록 쌀독이 비어도 염치를 잃어선 안 된다고 역설해온 것이 우리 민족이었다. 그 염치는 체면이고 자존심이다. 굶어죽을지언정 돼지우리 속의 밥알을 줍지는 않겠다는 오연한 패기가 바로 염치다. 허균(許筠)이 말한 도문대작(屠門大嚼)’ 즉 돈이 없어 푸줏간을 그냥 지나치면서도 크게 입 벌려 씹는 시늉을 하는 행위는 고기를 먹고픈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구차한 말을 건네지 않고 내면의 욕망을 억누르는 염치의 극적인 표출이었다.

 

그동안 세월은 참 많이도 변했다. 어느 사이 염치란 무능이나 무력함을 합리화하는 값싼 수단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다수가 되었다. 99원 갖고 있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1원을 빼앗아 더 부유하게 되는 사람을 치열한 승자로 선망하는 사회, 달랑 몇 푼 되는 재산이나마 덜어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을 비아냥 거리는 시대, 배고프지 않을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좀 더 가진 사람을 배 아파하며 욕심 부리는 시대가 되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명예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재물까지 탐하는 게 일상이 된 것이다. 반대로 재물을 가진 사람들은 그 재물을 이용하여 명예까지 확보하려 애쓴다.

 

권력을 지닌 자는 권력을 이용하여 돈을 앗아내려 하니, 공동체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일로 이보다 더 악독한 게 어디 있으랴! 그런 비정(秕政)들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음에도 구차한 자기변명으로 일관하며 오욕(汚辱)의 삶을 부지하고자 하니, 이런 통치자의 몰염치한 사례가 과거 역사의 어느 부분에 기록되어 있단 말인가. 탄핵이네 특검이네 복잡한 악다구니 속에서 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한동안 잃어버리고 있던 염치만 되찾는다면, 벌써 해결되었을 사건이 아닌가. 염치 앞에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던 조상들의 오연한 기개만 떠올려도 지금 이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럽지는 않을 것 아닌가. 눈꼽만큼의 의혹에도 내려와야 할 자리이거늘, 이미 벌여놓은 천하공지(天下共知)의 사건들 앞에 자기변호의 둔사(遁辭)나 농하고 있는 몰염치는 과연 무어란 말인가.

Posted by kicho
알림2010. 11. 23. 13:41

한국문예연구소 새 책 5권 발간!!!

 

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소장 조규익 교수)는 최근 학술총서 3권과 문예총서 2권을 펴냈다.

『섬사람들의 음식연구』(문순덕 지음, 학고방)를 학술총서 21로, 『한국희곡의 형식미학과 작가의식』(백로라 지음, 학고방)을 학술총서 22로, 『아리랑 연구총서 1』(조규익⋅조용호 엮음, 학고방)을 학술총서 23으로 펴냈으며, 『21세기 한국 공연계의 풍경』(백로라 지음, 인터북스)을 문예총서 8로, 『유두고도 이래서 졸았다-설교문 작성법과 말하기』(이민호⋅방민화 공저, 인터북스)를 문예총서 9로 각각 발간했다.

『섬 사람들의 음식연구』는 총론 격인 ‘제주 전통음식의 의미, 제주 전통음식의 역사’와 각론인 ‘마라도 사람들의 음식, 비양도 사람들의 음식, 가파도 사람들의 음식, 우도 사람들의 음식, 추자도 사람들의 음식, 오사카 재일동포들의 음식’, 제주 전통음식의 전승 양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제강점기 1910년부터 광복이후 최근 2000년대까지의 제주음식 문화를 조사하기 위해 저자 문순덕 제주발전연구원 책임연구원은 1930~40년대 출생자 4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 및 면접 조사를 펼쳤다. 특히 문 연구원이 주목한 점은 전통음식과 함께 살아남은 제주어다. 그는 “제주의 전통음식이 살아 남는다면 이를 부르는 음식용어 역시 살아남을 것”이라며 “조리법을 전수하면서 용어도 전승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희곡의 형식미학과 작가의식』은 1부[질곡의 역사와 부조리한 세계에 대응하는 미적 구조], 2부[재일동포 한국어 극문학의 양식적 특성과 작가 이데올로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송영, 오영진, 오태석, 박조열 등 탁월한 극작가들의 작품을 다루었고, 2부에서는 재일동포들의 가극, 시극, 극소품 등의 연극성⋅혁명성⋅대중성과 민족 이데올로기, 정체성 등 핵심적인 논점들을 분석했다.

『아리랑 연구총서 1』은 80년 아리랑 연구사를 정리하기 위한 작업의 첫 번째 결실이다. 총 10권으로 발간될 예정인 이 총서의 첫 책에는 이광수⋅김지연⋅고권삼⋅이병도⋅양주동⋅심재덕⋅정익섭⋅임동권⋅최재억⋅원훈의 등 아리랑 연구 첫 세대의 대표적인 글들이 실려 있다.

‘감각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실험적인 무대/사실주의 연극의 다양화 혹은 심화/독창적인 연극 미학적 세계의 추구/번역극 및 해외 초청 연극/뮤지컬⋅마당극⋅탈장르적 공연예술’ 등 5부로 이루어진『21세기 한국 공연계의 풍경』에서는 ‘바로 지금’ 대중들을 상대로 공연되는 연극들을 생생한 필치로 설명함으로써 비전문가들이 연극을 가까이 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유두고도 이래서 졸았다』라는 이색적인 제목의 이 책은 목회자들을 위한 설교문 작성의 길잡이다. 2천년 전 바울의 설교를 듣던 청년 유두고가 졸음을 참지 못하고 창틀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과 바울의 연민으로 유두고는 재생했다고 한다. “이 책 한 권이 오늘날 교회에서 졸고 있는 수많은 유두고를 깨우는 기적이 되었으면 한다.”고 밝힌 저자들의 말처럼, 이 책은 신도들이 졸지 않도록 목회자들로 하여금 좋은 설교문을 쓸 수 있게 도와 줄 것이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