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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22 문자를 통해 발효되는 인류의 지혜
  2. 2016.08.02 책 도둑
카테고리 없음2020. 11. 22. 21:16

흥미로운 문자들과 고서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

 

 

 

                                                                                    조규익(숭실대 교수)

 

  한・중 수교 직후 중국의 한 소도시에 갔었다. 중국어를 한 마디도 말하거나 알아듣지 못하던 나였고, 곳곳에서 만나는 중국인들 또한 성조(聲調)에 맞지 않는 ‘얼치기 중국어’에 대해서 못 들은 척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말과 달리 글자를 활용한 필담(筆談)은 가능했다. 간체자(簡體字)만 쓰는 중국인들이었지만, 학교 물을 먹은 사람들일 경우 번체자(繁體字)도 대충 통했다. 그렇게 간신히 며칠을 버틸 수 있었다.

 

  담헌 홍대용(洪大容)을 비롯한 연행사들도 연경의 많은 문사들과 필담으로 창화(唱和)했고, 조선의 통신사들도 일본의 문사들과 그렇게 소통했다. 이처럼 예로부터 ‘기호로서의 문자’는 나라와 말이 달라도 누구든 익혀 사용할 수 있었고, 문자에 담겨 있는 다른 나라의 문화나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제국주의 언어’로 군림해온 중국어와 영어는 한자와 알파벳을 통해 이른바 지구촌의 보편문화나 보편정신을 주도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만 7천여 년 전인 BC 15,000 년 경,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라스코 동굴에서 벽화들이 발견되었다. 말・사슴・들소 등 대략 100점 내외의 동물상들에 성공적인 수렵과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가 들어 있다.

  스페인 북부 알타미라 동굴에서 발견된 구석기 후기의 들소・사슴・멧돼지 등 야생동물 벽화들에도 사냥의 성공과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도가 들어 있음은 마찬가지다. 신을 비롯한 초자연적 존재에 자신들의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 주술의 주요 목적임을 생각하면, 그 그림들도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여 신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문자들임은 분명하다.

  그로부터 상형문자와 설형(楔形)문자의 단계들을 거쳐 기원전 14세기 경 한자가 성립되었다고 본다. 한자의 발전으로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이 형성되었고, 이 지역의 중세정신을 견인했으며, 역으로 각 민족단위의 독자적 문자생활을 촉발시킨 점 또한 사실이다.

  일찍이 일본 한문학의 석학 시라카와 시즈카(白川 靜)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는 <<신약성경>> 「요한복음」 모두(冒頭)의 문장을 “(말씀에)이어서 문자가 계시니라. 이 문자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문자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패러디하여 문자의 중요성을 설파한 바 있다.

 

말과 문자가 함께 가는 것은 아주 행복한 경우다.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그대로 적을 수 있는 문자가 문자로서는 최고라는 뜻이다. 우리는 15세기에 이르러서야 독자적 문자인 훈민정음을 갖게 되었고, 그것마저 민중이 보편적으로 사용하기까지는 몇 세기의 세월이 더 필요했다. 훈민정음이 나오기까지 향찰(鄕札)같은 차자(借字) 방식의 대체표기, 구결(口訣)・이두(吏讀) 등의 보조표기 문자들이 사용되었으나, 모두 독자적인 문자 체계 출현을 위한 준비단계에 불과했다. 말 나오는 대로 적는 문자가 어디 쉬운 일이랴.

 

  예컨대, 작자 미상의 1700년대 <<한글 시조집>>을 보자. 한글 시조 160수가 실려 있는 이 책은 17세기의 어떤 가객이나 애호가가 만들어 지녔던 문헌일 것이다. 시조의 본질은 노래이고, 노래는 노랫말과 악곡이 결합된 구조다. 물론 악곡이나 창조(唱調)는 대중의 기억에 각인되어 그럭저럭 얼마간 전승될 수는 있었으리라. 그러나 가창의 현장에서 무릎을 탁 칠만큼 정곡을 찌르는 노랫말의 경우 허무한 1회성 발화(發話)일 뿐이니, 짧은 기억으로 어찌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말로 된 가사를 적을 만한 문자가 없거나 음을 기록할만한 악곡체계가 없는 경우,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시면서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로 적으면 서로 맞지 아니하니, 이런 이유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한다. 내 이를 불쌍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노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매일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고 말씀하신 것도 사실은 한자 전성시대인 중세의 한복판에서 ‘우리의 독자적인 문자 체계’가 절실함을 깨달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우리의 독자적인 문자체계로부터 큰 혜택을 받은 결과가 바로 ‘우리말 노래’인 시조와 가사의 기록이요, ‘우리 이야기 문학’인 고대소설의 창작인 것이다.

 

  문자의 역사가 인류 지혜의 역사임을 보여주려는 것이 본 전시의 주제[‘문자의 바다-파피루스부터 타자기까지’]에 내재된 총괄기획자의 의도이다. 문자란 단순히 생각의 전달수단만은 아니다. 생각이 문자에 담겨 오랜 세월 전승되는 것은 의미의 발효와 숙성을 위한 필수 과정이다. 인간의 생각은 그 과정을 거쳐야 오래도록 의미의 창조를 거듭한다.

  발효와 숙성을 통하지 않은 인간의 생각은 후손들에게 그저 ‘그렇고 그런 골동품’으로나 인식될 뿐이다. 발효와 숙성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갖출 때 그 생각은 후손들에게 수용되어 그들의 현재와 미래의 지혜로 탈바꿈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듯이, 고금의 다양한 국가나 민족들의 이상과 꿈이 문자를 통해 전 인류가 공유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것이 문자를 통해 이루어지는 인문학의 본질이기도 하다.

  기원전의 암각문자와 상형문자, 그리이스 로마의 라피스 문자, 메소포타미아 대형 점토판의 설형문자,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의 콥트 문자, 각종 매체에 기록된 라틴어 문자・카탈루냐 문자・알파벳 문자・독일어 문자・프랑스어 문자 등 수많은 종류의 문자들, 중국과 조선의 학자와 문인들이 한문으로 작성한 각종 서책들, 서양의 선교사들이 한글로 적어놓은 조선말 교재나 한글로 번역한 성서들, 가객들이나 문인들이 한글로 적어놓은 시조와 가사 등...

 

  밤하늘에 뿌려진 별들처럼 다양한 언어권의 무수한 문자들과 그 문자들을 아로새긴 전적(典籍)들이 인류의 지혜를 담은 채 바로 지금 꺼지지 않는 빛을 발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그 빛이 새로운 불꽃으로 타올라 인류의 먼 앞길까지 환히 비추고 있지 않은가.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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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6. 8. 2. 16:54

책 도둑

 

 

 

 

 

 

최근 긴요한 책 한 권을 샀다. 한 달 평균 두어 번씩 여러 권의 책들을 사지만, 이처럼 긴요한 책은 모처럼이다. 고전 자료들을 읽다가 풍수지리학 용어만 나오면 그 난해함에 의욕이 다운되곤 하던 터. 먼 지방의 서점에서 그에 관한 사전을 팔고 있었다. 대금을 지불한지 하루 만에 책이 배달되어 왔다. 만져보고 넘겨보니 좋았다. 알아야 할 것들이 빠짐없어 좋았다. 늙은 아빠, 늦둥이 어루만지듯 그 무거운 걸 집으로 들고 가서도 사랑스러워했다.

 

집에서 다시 학교로 옮겨 놓은 지 이틀. 그만 책이 사라졌다. 누군가 집어간 것이다. 가슴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 삼엄한 경비 시스템! 엘리베이터 앞엔 카메라, 문에는 세콤이란 게 걸려 있는데... 누구였을까. 내가 방심한 채 문을 열어놓는 순간들을 되짚어 보았다. 가끔 화장실에 다녀오는 5, 세면실에 가서 설거지하는 5~10분이 전부인데. 그렇다면 그는 그 틈을 노린 것일까. 출입문 바로 앞의 티테이블에 그 책은 놓여 있었다. 사실 가끔씩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가 이 책을 사랑하면 남들도 사랑할 수 있을 텐데, 괜찮을까? 그 걱정이 현실화된 것이었다. 열린 문으로 한 발짝만 들여놓으면 책을 안을 수 있었다. 그러니 누굴 원망하랴? 내가 바보였다.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나만큼 누군가도 그 책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는 점에 안도하기로 했다. 그저 정가보다 몇 푼 낮춰 팔아버릴 책장사만 아니라면 다행이리라. 불현 듯 책 도둑(The Book Thief)’이란 소설이 생각났다. 영화로도 나왔으니, 책은 꽤 많이 팔렸을 것이다. 마커스 주삭(Markus Zusak)의 작품. 2005년에 첫 출간되었고, 브라이언 퍼시벌(Brian Percival) 감독의 영화는 2013년에 나왔다. 세상에! 도둑을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낸 예술이 있을까. 나찌 치하 독일에서 남동생과 함께 입양된 소녀 리젤의 이야기다. 동생은 죽고, 숨어 지내던 유대인 청년 맥스와 교감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고립된 맥스에게 책을 구해다 주고 세상일을 들려주는 리젤. 그러니 그 책 도둑은 더 이상 도둑이 아니다. 책은 영혼이고 도둑은 영혼의 소유자 혹은 매개자일 뿐. ‘훔친 책을 읽는 책 도둑은 아름다운 연금술사다. 도둑질을 통해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그들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꿔놓지 않는가. 내 책을 가져간 이가 눈꼽 만큼이라도 책 도둑’만 같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책이 짐이어서 아무도 책을 원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책을 내도 가까운 사람들에게 쉽사리 증정 못하는 이유다. 그래서 주기 전에 조심스레묻곤 한다. “책 한 권을 냈는데, 혹시 한 부 증정해도 될까요?”라고. 혹시 고맙지만, 필요 없어요!”란 대답이 나올까 두려워 조심스레묻곤 한다. 매몰찬 거절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표정에서 나는 상대방의 마음들을 읽는다. “, 또 귀찮은 짐이 하나 생겼구나!”라는 '말 없는 말'을. 그래서 그간 연구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지냈는지 모른다. ‘그냥 집어가라 한들 누가 집어갈 것이냐, 이 무거운 짐들을이란 심정으로...

 

두어 해 전 어떤 교수가 전화를 걸어왔다. “연구실을 정리하는데, 조 교수님의 책이 하나 나왔어요. 그냥 버릴까 하다가, 돌려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전화 드리는 겁니다.” 무언가가 뒷머리를 땅 치고 갔다. “그럼 학과 사무실로 보내주세요.” 간신히 대답한 뒤 한 시간 가량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처음의 야속했던 마음은 고마움으로 변했다. 내게 연락도 없이 폐기처분했다면, 쓰레기장에서 중고서적상으로 넘어가 뭇 사람들의 손때나 묻히는 광경이 우연히 내 눈에 뜨였다면... 아찔해지는 순간이었다.

 

아픈 추억 하나 더. 지난봄의 일이다. 완주군청에서 특강을 하게 되었다. 완주군과 합작으로 삼례에 책 마을을 꾸미고 있던 호산방 박대헌 사장의 부탁이었다. 책들의 계곡에서 그와 환담을 나누는데, 작업 중이던 직원 한 사람이 눈에 익은 책 한 권을 골라 내 눈 앞에 디밀었다. “교수님이 사인하신 책이네요!” 내 첫 수필집(<<꽁보리밥 만세>>)이었다. 그는 호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눈을 가리고 말았다. 숭실에서의 병아리 교수 시절. 눈에 뜨이는 몇몇 학생들이 있었다. 증정 대상은 그 가운데 한 녀석이었다. “책이란 원래 그런 거예요!” 내 표정을 살피던 박 사장의 위로 멘트였다. “그렇겠지요!” 나도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가슴은 내내 아려왔다. 어쭙잖은 책들의 저자가 받을만한 마음의 상처였다.

 

***

 

방금, 내 연락을 받은 서점에서 다시 보낸 그 사전을 받았다. “누군가 집어갔어요!”라고, 어제 그 서점 주인에게 전화하자, 그 책 좋은 줄 아는 사람이군요. 재고는 있어요!” 라고 껄껄 웃으며 대꾸하고는 득달같이 보낸 것이다. 다시 받은 책은 누군가 집어간 그 책보다 가벼웠다. 몇 줌의 영혼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리라. 그래도 텅 빈 가슴의 한 구석이나마 채울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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