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2.16 대학은 아직도 지성의 유토피아인가?
  2. 2012.10.01 안철수가 걸린 또 하나의 덫
글 - 칼럼/단상2016. 2. 16. 17:28

    


원서 표지

 

 

 


번역서 표지

 

 

 

저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클로디아 드라이퍼스

 

 

         대학은 아직도 지성의 유토피아인가?

-앤드류 해커클로디아 드라이퍼스의 <<비싼 대학>>을 읽고-

 

 

대학은 제한 없는 학문 탐구와 자유로운 지성 발현의 전당이어야 함을 믿는 사람들이 많고, 한동안 그 표본을 수백 년 역사의 유럽 대학들에서 찾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유럽 명문 대학들의 고색창연함보다 시대정신을 창도(唱導)한다는 점에서 미국의 유수 대학들이 훨씬 매력적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고, 내 입장도 그렇다. 나는 꽤 오래 전부터 기회가 생길 때마다 미국의 대학들을 돌아보며 그들이 누리는 풍요와 자유, 고품격의 시스템을 선망해오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공개하기는 좀 쑥스럽지만, 최근 큰 아이가 컴퓨터학 교수로 자리를 잡은 뉴욕대학의 면면을 훔쳐보면서 그런 인식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런 인식이야말로 바야흐로 붕괴되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들의 현실을 망연자실 바라볼 수밖에 없는 내 입장에서는 쉽사리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퇴출대상 1호로 지목되고 있는 후진국 대학의 인문학자. 우리나라의 대학을 되살리기 위해 선진국의 대학들을 열심히 벤치마킹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한 채의 집을 놓고 생각해보자. 근자 리모델링이란 기법이 유행하고 있는데, 리모델링을 잘만 해놓으면 그럴 듯하게 탈바꿈하는 경우들은 드물지 않다. 그러나 리모델링이란 것도 원본이 그럴 듯해야 가능한 공법이다. 여기를 손대면 저기가 무너지고 지붕을 고치면 구들이 내려앉는 등의 경우에야 그냥 무자비하게부숴버린 다음 새로 짓는 편이 오히려 낭비를 줄이는 일일 것이다. 뜻 있는 사람들이 한국의 대학들이 어서 빨리 망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도 그라운드 제로위에 새로운 대학들을 건설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 때문이리라.

 

최근 충격적인 책 하나를 읽었다. 그렇게도 선망해오던 미국 대학들의 속살을 사정없이 헤집으며 매섭게 질타한 저자들의 혜안과 용기가 놀라웠다. 원제는 Higher Education?: How Colleges Are Wasting Our Money and Falling Our Kids-And What We Can Do About It 이었으나, 번역자들(김은하박수련)“<<비싼 대학: 미국 명문대는 등록금을 어떻게 탕진하는가>>/강의는 뒷전인 교수, 돈만 삼키는 연구소, 대출에 허덕이는 학생교육을 우롱하는 대학!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제목을 더욱 구체화시켰다. 번역서 표지의 굵은 글자들에 이 책의 내용은 고스란히 요약되어 있었다. 아마도 번역자들은 한국의 대학들에게 경종을 울리려 했을 것이다. 간혹 귀 있는 자라면, 그들의 말을  들을 수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번역자들은 이 책의 내용이 미국 대학들의 문제점일 뿐 우리나라 대학들과 무관하다는 식의 태평함에 젖어 있을 우리나라 대학인들에게 무지막지한 비판을 가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옛날식으로 그럭저럭살아가다가 함께 벼랑에 떨어져 죽은들 어떠냐는 식의 무사안일과 기득권 의식에 매몰된 이 시대 한국의 대학인들. 선뜻 나서서 자기 혁신의 짐을 지려는 사람은 없고, 그동안 맛보던 자잘한 열매의 달콤함에만 취해 있는 이 시대 한국의 대학인들. 명목 상 지식사회의 주류를 형성하는 대학인들에게 속된 말로 몽둥이찜이라도 안겨주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의 통찰을 얻게 되었다. ‘과연 일생 밥을 먹여주고 바람막이가 되어 준 대학을 환자로 삼아 냉혹한 외과적 수술을 가하는 주체가 될 수 있는가라는 원론적 질문이 그 하나이고, 세계 대학들의 롤모델이자 무흠한 상아탑으로 생각되어온 미국 대학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 결함이나 비도덕적 기득권 주의, 혹은 대책 없는 비현실성을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이 다른 하나이다.

어두운 면이 정확히 오버랩된다는 점에서 미국대학들을 벤치마킹하다가 지쳐 널브러진 한국 대학들의 현재는 암울하고, 그 현재를 바탕으로 만들어가야 할 미래는 이미 잿빛으로 변해버린 채 신기루가 사라진 사막의 생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책은 미국 대학들의 잿빛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그 중심에 교수 집단의 그악스런 이기주의가 자리 잡고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저자들은 대학의 많은 불편한 사실들을 이 책의 도처에서 고발하고 있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결국 학생학부모에 대한 착취와 대학교수집단의 부도덕한 기득권으로 요약된다. 이 책의 특이한 장점은 뒷부분에 추가한 우리의 제안에 있다. 본문 속에 늘어놓은 장황한 고발들을 결국 이러한 제안으로 요약하여 독자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고자 했으니, 저자들이야말로 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전달의 메커니즘을 꿰고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그들의 제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대학의 존립 이유는 교육이다.

2. 대학의 등록금을 내기 위해 대출에 의존하는 삶을 그만 두어야 한다.: 대학의 각종 활동, 직원, 교수 때문에 생기는 비용 문제로 치솟는 등록금, 은행 빚을 얻어 등록금을 충당하는 관행은 이제 청산해야 한다.

3. 학생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보편적 대학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교수들은 자신이 썼거나 쓰고 있거나 쓸 예정인 논문들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서는 안 된다.

4. 대학은 직업훈련소가 아니다.: 학부생 때는 흥미를 돋울만한 지적인 사람들을 많이 접해야 한다. 그래야 이전에는 해보지 못한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절반이 넘는 64%의 학생들이 직업훈련을 전공으로 삼고 있다. 비실용적인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대학에서 더 현명하게 시간을 보내는 길이며, 궁극적으로는 더 유용한 투자가 된다. 철학, 문학, 역사 또는 물리학 대신 대다수 학생들은 말() 관리학, 용접술, 패션 마케팅 같은 분야를 선택하는데. 모두 명문대에 개설된 전공들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학부 시절에 수익을 계산하지 않고 걱정 없이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지성을 마음껏 뻗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5. 종신교수제를 폐지해야 한다.: 아무런 명분도 없는 종신교수제를 폐지하고, 다년 계약제로 대체해야 한다.

6. 유급 안식년 제도를 없애야 한다.: 학자들은 7년마다 정신적으로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쓸모없는 연구를 제한해야 한다.

7. 시간강사들의 노동 착취는 그만 해야 한다.: 안정된 직장에 정착한 교수들과 똑같이 수업하는 사람에게 교수의 6분지 1의 연봉만 주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부적절한 짓이다.

8. 특급 명문대학들의 가치를 제대로 따져 보아야 한다.: 자녀들이 명문대에 진학하기를 바라는 부모는 자식을 걱정해서라기보다 부모 자신의 출세 지향주의를 자식에게 투영했기 때문이다. 대학의 간판 너머를 보아야 한다.

9. 총장은 공공의 종복(從僕)이다.: 이사회에서 연봉 100만 달러 혹은 그와 비슷한 수준을 주겠다고 하면 총장은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말해야 윤리적이다.

10. 의대와 연구소를 대학에서 분리해야 한다.: 대학은 캠퍼스 내 연구소나 산하기관 뿐 아니라, 의과대학과의 고리도 끊어야 한다.

11. 테크노 티칭, 첨단 기기를 활용한 강의에 주목해야 한다.

12. 기부가 필요한 곳에 기부해야 한다.: 재정 여건이 훌륭한 대학들에만 기부가 편중되는 것은 옳지 않다. 기부금이 많은 대학의 동문들과 여타 기부자들은 진정으로 기부금이 필요한 다른 대학을 골라 기부하는 것이 좋다.

 

책을 마치면서 이 책의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두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은 글을 쓰는 교수였고, 한 사람은 기자이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런 우리에게 오늘날 이 나라의 대학을 지켜보는 일은 마치 공사판에서 그 어떤 목표나 목적도 없이 제멋대로 바닥을 깔아뭉개며 달리기만 하는 증기 롤러를 보는 듯 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침통한 마음을 가누며 이 책을 썼다.() 특히 고집 센 교수 집단이 모인 대학이란 곳에서, 교수들과 직원들은 자신에게 익숙한 관행을 지키려고 완강히 버텼다. 이 책의 출간을 열렬히 환영해 준 대학 밖 사람들과는 정반대의 반응이었다. 대학에 몸 담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현재 학생들이 학비를 낸 대가로 얻는 것이 별로 없고, 이 문제의 책임은 캠퍼스에서 개인의 실적을 쌓는 데만 여념이 없는 어른들(즉 교수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316쪽)

 

그렇다. 대학을 바꾸기 위해 최대의 기득권 집단인 교수들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은 미국의 대학들이나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다르지 않다. 대학의 개혁! 벌써 서산에 해는 지는데, 할 일은 많고 갈 길도 멀다.

 

 

 


 Holyoke Center에서 바라본 하바드 캠퍼스(Harvard Yard) 

 

 

 


예일대학교 올드 캠퍼스(Yale Old Campus)의 이른 봄 풍경

 

 

 


UCLA의 로이스 홀(Royce Hall)

 

 

 

뉴욕대학교 건물들 한 복판에 있는 Washington Square Park의 아치

 

 

 

교토대학 정문

 

 

 


연세대학교의 언더우드 홀(Underwood Hall)

 

 

 


숭실대학교 정문

 

 

 


서울대학교 정문의 학교 마크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브루킹스 홀(Brookings Hall Quad)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 10. 1. 16:21

안철수가 걸린 또 하나의 덫

                                                                                                        백규

나는 평소 안철수 선생에 대하여 호감을 가져 왔고, 그 마음을 작은 글로 이곳에 올린 적도 있다.[백규서옥 블로그 http://kicho.tistory.com 참조] 따라서 이 글 역시 그런 호감과 걱정의 연장선에서 쓰게 되었을 뿐, 특정 진영이나 인물에 대한 '호(好)/불호(不好)'의 차원에서 쓰는 것이 아님을 밝힌다.

***

최근 대통령 예비후보 안철수 선생에게 닥친 악재(惡材)는 서너 가지다. 그 가운데 부동산 ‘다운 계약서’는 목하 거론 중이고, 연구업적 문제는 조금씩 거론되기 시작했으며, 나머지 문제들도 곧 입줄에 오르내릴 전망이다.

오늘 인터넷 서핑을 하던 중 한겨레신문[http://hani.co.kr]의 1면 톱기사가 눈에 띄었다. 그의 연구업적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세대학 강모 교수의 뛰어난 작문실력에 놀랐고, 아무리 뛰어난 작문실력으로도 그의 치부가 가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장문의 글을 소상히 기억할 수는 없으나,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다고 표절이라니…어이쿠!”라는 매우 선정적인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제목은 강 교수의 의도가 너무 빤하게 읽혀져서 오히려 애처로웠다.

지금 안철수의 연구업적에 대하여 벌이는 논란의 핵심은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한 것이 표절인가 아닌가’에 있지 않다. 지금 세상에 학위논문을 학술지에 게재하거나 책으로 출판하는 것을 표절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강 교수는 흡사 세상 사람들이 ‘안철수가 자신의 석사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했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가 표절했다고 비난한다’라는 엉뚱한 논지의 제목을 붙이고 말았다. 따라서 ‘표절’이란 잣대를 끌어대어 ‘안철수 논문 논란’이 어불성설임을 강변함으로써 그에 대한 도덕성을 따지려는 세상의 비난을 잠재우거나 물타기하려는 강 교수의 논의야말로 어처구니없는 궤변일 수밖에 없다.

안철수 논란의 골자는 이렇다. ‘세 사람이 공저로 되어 있는 영문 논문 한 편이 서울대학 발간의 모 학술지에 실렸는데, 안철수도 저자의 한 사람[제2저자]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원래 제1저자의 석사학위논문을 영문으로 번역한 논문이라는 것. 그런데 안철수가  그 논문에 대하여 기여한 내용이 모호하다는 것[그 논문을 지도했거나, 그 논문의 어느 부분을 작성했거나, 실험을 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이름을 붙일만한) 기여를 했다면, 그의 이름이 저자의 한 사람으로 끼어 들어간 것이 이공계의 관행으로  미루어 얼마간 양해가 될 수는 있을 텐데, 그것을 도통 알 수 없다는 것] 등이다. 그런데, 더욱 해괴한 것은 그 논문에 대한 기여도를 안철수 스스로도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에 알려진 바로는 지금까지 그의 연구업적은 석⋅박사논문 두 편과 세 편의 학술지 논문을 합쳐 총 다섯 편이란다. 그 세 편 가운데 바로 이 논문이 핵심연구업적으로 서울대학 당국에 제시된 모양이다. 자신의 핵심 연구업적으로 제출된 논문이 어떤 경로로 타인의 석사논문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자신이 그에 대하여 무슨 기여를 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다면, 누가 그 연구의 진실성을 의심치 않겠는가. 만에 하나 그 논문의 발행일자가 그야말로 수십 년 전이라면 혹시 기억을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들은 대개 5년 이내의 업적물 만을 임용심사 자료로 요구하고, 그 가운데 임용 신청자가 지적한 핵심 업적에 대해서만 실제 심사에 붙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대체로 5년 이내[아니 좀 더 여유를 두어 10년이라 해도 좋다!]의 연구물에 대한 기억조차 없다면, 우리는 학자로서 안철수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나의 논문을 집필하기 위해 1년, 2년 혹은 수년의 실험과 검증을 거친다고 볼 때, 어떤 과정을 거쳐 그 논문이 완성되었는지 모른다면, 애당초 연구자의 자격이 없었거나, 남의 논문에 이름만 올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약간 과장할 경우 최근 자신이 써낸 논문의 토씨 하나까지도 기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학자들의 기본 생리이자 의무임을 상기하면, 더욱 그렇다.

참으로 면구스런 가설이지만, 연구업적이 모자라는 안철수를 동정하여 누군가가[석사논문 작성자 자신 혹은 그의 지도교수?]‘앞으로 별 문제될 일이 없을 것으로 보이는’ 어떤 논문의 공동저자로 안철수를 끼어 넣어주었을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그는 ‘힘 하나 안 들이고’ 흡사 ‘이미 차려진 밥상 위에 수저를 올리듯’ 남의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림으로써 손  쉽게 연구업적을 부풀린 것 아닌가. 좀 더 적극적으로 안철수 스스로가 부탁하여 그렇게 되었을 가능성은 없는가. 이것들이 바로 항간의 식자층에서 갖고 있는 의혹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데 한겨레신문에 올라온 해당 글의 필자 강 교수는 흡사 세상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안철수가 표절을 행했다!’고 공격하는 것처럼 호도하여 세상사람들이 몰상식하고 무지몽매하다는 투로 ‘적반하장(賊反荷杖) 식’의 언설을 농(弄)한 것이다. 이른바 ‘교묘한 물 타기’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따라서 안철수 교수가 스스로 각종 콘서트나 예능프로그램, 저서 등에서 밝힌 바 있듯이, ‘연구진실성’의 문제는 한 인간인 연구자의 도덕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잣대로 활용될 수 있고, 또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과연 그는 이 논문의 한 부분이라도 실제로 쓴 것일까. 원래의 석사논문과 영문번역 후의 학술지 논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에 대하여 안철수는 몇 %나 기여했는가 등은 시급히 밝혀져야 할 문제다. 사실 '논문 진실성‘의 문제는 지금 거론되고 있는 ‘다운 계약서’문제보다 오히려 크고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그 쪽 캠프 인사들의 인식대로 ‘다운 계약서’는 과거에 흔하게 자행되던 관행의 문제로 칠 수 있다 해도, 활자로 찍혀 후세에 두고두고 학문발전에 기여해야 하는 논문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고 파급력이 큰 양심과 양식의 소산(所産)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궁한 논리로 그를 변호하고자 하는 인사들이 모두 서울대학이나 연세대학이라는 국내 굴지의 대학에서 밥을 먹고 있는 교수들이라는 사실이다. 흡사 ‘서울대학이나 연세대학 같이 훌륭한 대학의 교수들이 별 일 없다고 말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왜 왈가왈부하느냐?’ 라고 질타하는 듯한 논조다. 실제로 강 교수의 논리 가운데는 ‘학문에 무지한 세상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은 말도 안 될 뿐 아니라, 불순하기까지 하다’는 투의 ‘진짜로 무례하고 몰상식한’ 사고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제1저자와 제3저자가 침묵을 지키고 있으니 세상 사람들은 그의 연구진실성 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거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비교의 대상으로 끌어와 안철수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는 강 교수가 참으로 가엾기까지 하다.

과연 우리는 자기편에 대해서는 한 없이 너그럽고, 상대편에 대해서는 한 없이 엄정한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자들의 자가당착적 잣대나 비윤리적이기까지 한 현실인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강 교수가 결론이랍시고 자못 ‘사자후라도 토하듯’ 자신의 글 말미에 달아놓은 언설을 참고자료1로, 황우석의 연구비리를 밝혀냈고 현재 안철수의 연구진실성 문제에 대하여 뜨거운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이트 BRIC(http://bric.postech.ac.kr)
의 토론글 한 편을 참고자료2로 아래에 적어 두노니, 강호의 제현들은 몸소 읽고 판단해 보시라. 존경하는 안철수 선생은 더 이상 함량 미달의 지식인들 을 보호막으로 삼지 말고, 대중 앞에 직접 나서서 자신의 연구진실성, 아니 윤리와 도덕의 바탕인 양심의 문제를 속 시원히 해명하기 바란다. 만약 답변이 궁하다면, ‘미안하다. 다음부턴 안 그러겠으니 이번만은 너그럽게 봐주라’는 식으로라도 사과하기 바란다. 그런 다음 국민들에게 표를 요구하기 바란다.<2012. 9. 29.>
  

   참고자료 1

“또 하나의 논쟁거리는 발표된 학술지 논문에 누구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안철수 후보의 경우 이 문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봐야 한다. 즉 이번 논문의 제1 저자인 석사학위 논문 제출자, 그리고 지도교수로 추정되는 제3 저자 이외에 안철수 후보가 이 논문의 작성에 기여를 했는지 여부이다. 그랬다면 제2의 공저자로 참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안 후보가 한 일도 없이 ‘숟가락 하나 얻은 격’으로 학자들 사이에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제1, 제3 저자 그 누구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논문 분석 결과도 안 후보의 기여가 있다고 평가했다. 더욱이 이러한 저자권(authorship)의 문제는 제3자가 평가하기 쉽지 않은 문제이고,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이는 학자들 사이의 논란 거리지 학자의 정치력을 평가하는 문제가 될 수 없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에서 유재석의 오스틴파워 풍 댄스나 노홍철의 저질 댄스가 싸이의 미국 진출에 기여한 여부를 정치부 기자가 예단해서 말할 능력이 있는가와 비슷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논문의 저자에 누가 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학계의 주장은 상당히 다양하지만 현대 과학이 진행되는 일반적인 절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기여가 필요하다. 연구 아이디어를 내고 제안하는 단계, 실제 연구와 실험을 수행하는 단계,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고 토의하는 단계, 그리고 최종적으로 논문을 작성하고 투고하여 심사를 받는 단계 등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국제 학계에서는 이러한 기여 중 3가지 이상에 참여하면 저자의 자격이 있다고 인정하고, 따라서 제자의 학위 논문이라도 그 학위 논문이 작성되는 과정에 위와 같은 기여가 있었다면 지도교수나 관련된 다른 사람이 학술지 논문에 공동으로 저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한국의 관례가 아니라 국제 학계의 윤리이다.

정치인의 개인적인 도덕성과 윤리성에 대해 꼬치꼬치 캐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또 이로 인해 우리 공직자의 윤리 수준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 관계나 정확한 판단에 근거하지 않은 정쟁적 비난은 정치를 혼란하게 만들 뿐이다. 또 더 나아가 학자들의 연구 활동이 위축되거나 우수한 인재가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다.   

모두 도로교통법 위반이긴 하지만 음주운전을 해서 인사 사고를 낸 운전자와 새벽 4시에 아무도 없는 횡단보도에서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슬금슬금 지나간 운전자 모두를 다 똑같은 놈이라 비난하고 같은 정도로 처벌하는 것도 공정치 못하다.

제발, 주요 일간지 정치부 기자들은 어줍잖은 술자리 얘기들로 아까운 지면을 소비하지 말고, 대선 후보자들의 정책에 대한 정확한 분석, 비판, 실현성 여부 그리고 대안 제시로 내용을 채워주길 간절히 기대한다. 정치인도 바뀌겠다고 난리인데, 이젠 언론도 바뀔 때가 되지 않았는가?“ <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이상의 자료문은 <http://hani.co.kr>에서 퍼옴>

 

 

참고자료 2

안철수 팀 논문(1993년)의 표절에 관하여
빈쿨룸
(2012-10-03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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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팀 논문(1993년)의 표절에 관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안철수 팀의 논문 표절에 관한 글을 올린다. 표절 대상으로 의심되는 논문은 1992년, 안철수 팀의 논문은 1993년에 발표되었다. 전자는 국문이고 후자는 영문이다. 그러나 학계(인문, 사회, 이공, 의학 모두)에서는 국문 논문이라도 영문이나 기타 외국어 초록(요약문)을 싣게 되어 있다. 필자는 인문계통 전공자인 관계로 두 논문의 본문은 비교 분석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 두 논문의 영문 초록을 비교해보았다.

1. 제목

1992년 논문 - 토끼 단일 심실근 세포에서 Cyclic GMP의 Ca2+ 전류 조절기전에 관한 연구/ Modulation of Calcium Current by Cyclic GMP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s of the Rabbit.

1993년 논문 - Effect of Cyclic GMP on the Calcium Current in the Ventricular Myocytes of the Rabbit.

안철수팀의 영문 논문을 국역하자면 <토끼 심실근 세포에서 Ca2+ 전류에 대한 Cyclic GMP의 영향(효과)> 정도가 되겠다. 논문 제목만으로도 두 논문의 주제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록에서 드러나지만 안철수팀의 논문에서도 “단일” 심실근 세포를 분석한다. 두 논문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Cyclic GMP에 의한 변화과정이다. 1992년 논문은 그 변화과정을 “조절기전”(Modulation)으로 표현하고 1993년 논문은 “영향/효과”(effect)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 논문의 주제가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1993년의 논문이 동일한 분석대상을 통해 1992년 논문과 다른 분석결과를 제시한다면, 안철수팀의 논문은 독창적인 연구가 될 것이고 표절에 관한 모든 논란은 무지한 자들의 헛짓거리가 된다. 이 부분은 의학계 전문가들이 밝혀낼 필요성이 있다.

2. 첫 문장

1992년 논문 -

In order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intracellular cyclic GMP on the calcium channel, whole cell patch clamp technique with internal perfusion method was used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 of the rabbit.

1993년 논문 -

In order to investigate the effect of intracellular cyclic GMP on calcium current, the whole-cell patch clamp technique with internal perfusion method was used in isolated ventricular myocyte of the rabbit.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싱크로율 98% 이상의 동일한 문장이다. 정확히 3군데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다:

1) on the calcium channel - on calcium current

안철수팀의 초록에서는 the를 빼고 channel 대신에 current를 넣었다. 두 단어는 다른 뜻인가? 거의 동일한 뜻이다. 사실 두 논문이 공통으로 다루는 주제가 어떤 “관”에 일어나는 변화이다. channel도 current도 모두 “경로”, “전류”, “통로”, “관” 등으로 유사어라 할 수 있다. 혹시 표절을 피하기 위해 the를 의도적으로 뺐다면 꽤 꼼꼼한 처사라 하겠다.

2) whole cell - the whole-cell

이 부분은 별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역시 the와 - 으로 차이를 둔 것뿐이다.

3)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 - in isolated ventricular myocyte

외국어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부분은 참으로 간교한 작업으로 보인다. isolated는 무슨 뜻인가? 격리되거나 분리된 것이라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따로 떼어놓고 그것 하나만 본다는, 즉 “single”을 관찰한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오히려 the를 뺌으로써 변화를 주었다. 1992년 논문의 영문 제목 끝부분이 “in the single ventricular myocyte of the rabbit”이었음을 상기하자.

3. 두 번째 문장

1992년 논문 -

Cyclic GMP, cGMP analogues, cAMP, isopernaline and forskolin were perfused into cells and their effects on the calcium current were analysed by applying depolarizing step pulese of 10mV in amplitude for 200msec from holding potential of -40mV. (원본)

1993년 논문 -

Cyclic GMP, 8-bromo-cyclic GMP, cyclic AMP, were perfused into cells and their effects on the calcium current were analysed by applying depolarizing step pulse of 10mV in amplitude for 300msec from holding potential of -40mV.

역시 98% 싱크로율인데, 좀더 교활해보인다. 또 세 군데에서 미세한 차이가 있다.

1). Cyclic GMP, cGMP analogues, cAMP, isopernaline and forskolin - Cyclic GMP, 8-bromo-cyclic GMP, cyclic AMP

1992년 논문은 더 추상적인 동시에 더 구체적인 주체를 제시한다. 더 추상적이라 함은 “cGMP analogues”, 즉 “cGMP과 유사한 것들” 혹은 “cGMP 류의 것들”로 표현하기 때문이면, 더 구체적이라 함은 “isopernaline and forskolin”을 첨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팀에서는 1993년의 추상적 표현 대신에, “cGMP”는 “Cyclic GMP”로 풀어서 표현하고 구체적으로 “8-bromo-cyclic GMP”를 덧붙였다. 그리고 1992년 논문의 “cAMP”는 “cyclic AMP”로 풀어서 표현했다.

달리 말하면, 표현들이 조금씩 다를 뿐 분석 내용은 같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2) pulese - pulse

1992년 논문의 철자 오류 pulese를 안철수팀이 pulse로 바로잡았다.

3) 200msec - 300msec

실험 수치가 바뀌었다. 그러나 다른 수치는 동일하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부디 실험 결과가 온전하게 나왔기를 바란다. 전문가들이 해결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cf. 중간에 두 논문 모두 수치를 통한 분석을 제시하는데, 이 부분이 두 논문 초록에서 차이가 나는 유일한 부분이다. 그러나 "In the presence of..." 문장이 두 초록 모두에서 발견되는데, 꽤 다른 듯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마지막 문장

1992년 논문 -

From the above results it could be concluded that cGMP increases the calcium current not through cAMP dependent protein kinase nor cAMP dependent phosphodiesterase pathway, but through independent phosphorylation pathway, possibly cGMP dependent protein kinase pathway.

1993년 논문 -

From the above results it could be concluded that intracellular perfusion with cyclic GMP increases the basal calcium current via a mechanism involving a cyclic GMP dependent protein kinase.

언뜻 보면 두 문장이 꽤 달라 보이지만, 사실 거의 흡사하다. 역시 3부분으로 나눠서 고찰해보자.

1) cGMP - intracellular perfusion with cyclic GMP

1993년 논문은 cGMP를 cyclic GMP로 표현하고 “intracellular perfusion”를 첨가함으로써 주어가 바뀐 듯한 문장을 만들었으나, 사실 연구 내용상 “intracellular perfusion”은 덧붙여도 삭제해도 마찬가지 의미의 문장이 될 것이다.

2) the calcium current - the basal calcium current

1993년 논문은 “basal”(기본적인)을 첨가했는데, 당연히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는 문장이다.

3) not through .... but through - via a mechanism

이런 부분을 보면 필자 또한 학자로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외국어에 다소 무지한 이들을 완전히 무시하려는 의도가 보이기 때문이다. 1992년 논문에서는 친절하게 “... 이러한 점을 통해서 ..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저러한 점을 통해서 증가한다”라고 설명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1993년 논문은 증가의 이유가 아닌 부분은 필요 없어 보였는지, “via a mechanism”, 즉 “~ 저러한 과정(기제)을 통해”서 증가한다고 표현한다. 물론 두 논문은 증가의 이유가 동일하다고 결론 내린다. 단지 1992년 논문이 “cGMP dependent protein kinase pathway”라고 표현한 것을 1993년 논문은 “a cyclic GMP dependent protein kinase”라고 표현했을 뿐이다. 섬세하게 a를 첨가했고, 역시 “cGMP”는 “cyclic GMP”로 풀어서 표기했으며, 굳이 넣지 않아도 되는 “pathway”(통로)는 단호하게 삭제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했다.

4. 결론

두 논문의 영문 초록만을 보았을 때 1993년 논문이 1992년 논문을 표절한 것은 거의 확실하다. 다만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혹시나 1993년 논문이 다른 분석 결과를 내놓기 위해 동일한 분석 대상을 연구했다면 모르겠으나, 초록의 마지막 문장의 의미를 고려해볼 때 그 가능성은 없다. 본문의 표절 여부는 의학계의 전문가들이 판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 < BRIC(http://bric.postech.ac.kr)>

참고자료 3

표절과 무임승차, 그리고 학자로서의 양식의 문제.
[일반인] 금빛노을
(2012-10-06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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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후보의 박사학위논문의 표절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다. 이 사안이 MBC에서 보도된 뒤, 서울대의 조국교수는 “(학계 규칙을) 모르고 안철수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무식한 것이고, 알고도 했다면 악의적인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안철수후보 역시 2008년 8월 한 인터넷 매체 인터뷰에서 “표절에 대한 관대한 문화 역시 걸림돌이다. 학생들조차 표절에 대한 죄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화 속에서 지식 산업이 성장하기는 쉽지 않다”고 발언한 바 있다. 따라서 안철수후보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조국교수처럼 표절시비에 대해 ‘무식’하고 ‘악의적’이라는 식으로 세치혀의 칼날을 휘두르기보다는 냉정하게 표절논란의 옳고그름을 가리는 것이 필요하다.

총선을 전후해서 문대성의원의 논문표절이 문제되었을 때, 조국교수는 <'참고문헌 빼고 72쪽 논문 중 9쪽(전체의 12%)을 따옴표 없이 출처도 명기하지 않은 ‘오타’까지 베꼈다>고 비판한 적이 있었다. MBC에서 지적한 것도 <따옴표 없이 출처도 명기하지 않고’ ‘오타’까지 베꼈다>는 것 아닌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문대성의원을 대상으로 지적하면 정의롭고 안철수후보를 대상으로 지적하면 무식하고 악의적이 되는가? 필요에 따라 임의로 잣대를 들이대거나 들이댄 잣대를 빼앗는 것은 결코 정의가 아니다.

석사학위논문을 수정하고 다듬어서 관련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분명 학계의 관행이다. 하지만 관행도 관행나름이다. 석사학위논문을 다듬어서 관련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대개 연구쪽으로 진로를 정한 사람이 박사과정 진학을 전후해서 하는 것이지, 문제가 된 논문의 제1저자인 김규현처럼 박사과정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이 그것도 석사학위논문을 제출한 지 5년이 지나서 영역한 것 외에는 거의 수정없이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김규현과 안철수후보는 1988년에 서울의대 생리학교실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안철수후보는 석사를 받은 직후 박사과정에 진학해서 단국대 의대교수로 채용이 되었으니 당연히 석사학위논문을 다듬어서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이 조국교수가 말한 ‘학계의 관행’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자신의 석사논문을 학술지에 싣지 않아도 무방했을 김규현은 석사학위 취득 후 5년이 지난 1993년에 학술지에 학위논문을 재수록하였고, 서울의대에서 조교도 지내고 단국대 의대 교수로서 학과장까지 했으니 마땅히 ‘학계의 규칙’을 따랐어야 할 안철수후보는 자신의 석사학위논문을 학술지에 싣는 대신 석사동기의 재수록논문에 제2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안철수후보가 석사동기의 논문에 제2저자로 슬쩍 이름을 올린 이 논문을 학회지에 게재된 지 18년이나 지난 2011년에, 그것도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임용서류에 주요연구업적으로 실었는가 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교수를 공채할 때에는 응당 제출된 논문의 전공일치 여부를 심사한다. 그리고 연구업적은 대개의 경우, 석박사학위와 최근 5년간의 논문실적을 서류에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안철수후보는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임용서류에 5편의 주요연구업적을 기재했는데, 석박사논문을 제외한 나머지 3편이 모두 1993년에 작성된 논문이었고 문제가 된 김규현의 논문은 이 3편의 논문 가운데 한편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은 안철수후보가 제3저자로 된 논문인데, 이 논문은 부산의 모 의대교수가 자신이 1993년 2월에 쓴 석사학위논문을 가필하고 안철수후보를 포함한 총 7명을 공저자로 하여 대한생리학회에 실은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한 편이 역시 1993년에 대한의학협회지에 <의료인의 컴퓨터 활용범위>라는 제목으로 쓴 안철수 자신의 논문이다. 이들 논문은 모두 안철수후보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으로 임용되기 위해 제출한 서류에 주요연구업적으로 기재되었고,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임용에 영향을 미쳤으므로 이들 논문에 대한 검증은 대한민국 대통령후보로서의 안철수에 대한 후보검증 이전에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대학교의 교수공채시스템에 대한 공정성과 절차적 적법성을 가리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기도 하다.

안철수후보는 2011년에 서울대학교에 제출하는 서류에 왜 하필이면 1993년에 작성된 논문들을 주요연구업적으로 기재했던 것일까? 그리고 안철수후보는 왜 1993년에 동기와 후배의 논문에 제2저자, 제3저자로 이름을 올린 것일까? 1993년 이후에 전문학술지에 실은 논문이 없어서라면 ‘석좌교수’나 ‘대학원장’으로 불리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1993년에 작성된 3편의 논문이 해당 학과나 해당 대학원과 무관한 논문이라면 굳이 이를 서류에 올릴 필요도 없는 것이고, 서류에 이를 올리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 논문에 대한 논란은 안철수후보 자신이 자초한 것이므로, 이들 논문에 대해 논란을 ‘무식’이니 ‘악의적’이니 하고 비난하는 조국교수의 발언이 오히려 무식하고 악의적인 것이다.

안철수후보가 자신의 이름을 동료와 후배의 논문에 제2저자, 제3저자로 끼워넣은 1993년 당시는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의 표현에 따르면 ‘커다란 공백기’였고 ‘의학연구를 할 수 없는’ ‘엄청난 고문’같은 시절인 군의관 복무시절이었다. 안철수후보는 39개월의 군복무기간을 ‘공백기’라고 하였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1993년부터 2년동안은 서울의 연구소에 배치되어 집에서 출퇴근했다고 한다. 그의 말과 달리, 어느 정도는 공부할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었을 법하다. 그런데 안철수후보는 의학공부 대신 컴퓨터바이러스백신 개발에 몰두해 있었다. 그 연구소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지만, 컴퓨터바이러스백신 개발에 몰두했던 그가 그래도 제2저자, 제3저자로 의학학술논문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보아 생리학관련 연구소에 근무했었을 듯하다. 그래서 팀원의 일원으로 이름이 올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전역 이후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연구실적이 필요해서 동료와 후배의 논문에 슬쩍 이름을 끼워넣었을 수도 있을 듯하다.

어쨌든 이들 논문에 대한 심사를 거쳐 바로 1년전인 2011년에 안철수후보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되었고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란 직함이 그가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데 있어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한 사실이므로, 학위논문을 포함하여 5편의 논문에 대해 표절이든 무임승차든 논란이 생긴 부분에 대해 검증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동안 교수출신의 유명인들이 장관등의 고위직 후보로 내정되어 인사청문회를 할 때마다 ‘자기표절’이니 ‘이중게재’니 하고 온갖 독설을 퍼붓던 바로 그 사람들이 자신들과 정치적 성향과 이해관계가 엇갈린다고 해서 안철수후보의 석박사 학위논문과 여타 학술논문에 대한 표절시비와 무임승차논란이 확산된다고 해서 이를 ‘정치적 의도’라는 말로 차단막을 치고 ‘무식’이니 ‘악의적’이니 하는 막말로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도 ‘정치적’이다.

정치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모든 칭찬과 비판은 당연히 정치적이다. 그리고 그 정치적인 논란을 학문적으로 밝히는 것이 바로 이곳 브릭에서 할 일이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