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춘계학술발표대회
안녕하십니까?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에서는 2017년 2월 20(월) 숭실대학교에서 춘계 학술발표회를 갖습니다. 이번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 많은 학자들을 모시고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발표를 진행하고자 하오니,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드림
* 일시 : 2017년 2월 20일(월) 오후 1시 - 6시
* 장소 : 숭실대학교 벤처관 311호
순서
13:00-13:30 등록 및 개회사 / 조규익(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소장) 사회 : 양훈식
13:30-13:55 박효은(홍익대) 시간의 틈새 : 16-18세기 雪景의 주제적 단층과 王維
/ 토론 : 류승민(문화재청)
13:55-14:20 이상주(중원대) 默齋 李文楗의 繪畵 趣向과 「畵竹十詠」에 대한 考察
/ 토론 : 김지현(한중연)
14:20-14:45 김연갑((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일제저항기 한 지식인의 아리랑 인식
/ 토론 : 조용호(숭실대)
14:45-15:00 중간 휴식
15:00-15:25 김용기(중앙대) <옥황기>에 나타난 천명과 권선징악의 관계
/ 토론 : 하경숙(선문대)
15:25-15:50 유육례(조선대) 김삼의당의 연정시 연구
/ 토론 : 김성훈(숭실대)
15:50-16:15 김영덕(숭실대) 장진주사 미학의 변이와 지속 연구
/ 토론 : 정영문(숭실대)
16:15-16:30 중간 휴식
16:30-18:00 종합 토론 / 좌장 : 조규익(숭실대)
연락처
정영문 (숭실대학교 베어드대학 교수/한국문예연구소 연구원)
숭실대학교 글로벌브레인홀 109호
02-828-7220 / 010-6799-4670
'양훈식'에 해당되는 글 8건
- 2017.02.19 2017년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춘계학술발표대회에 여러분을 모십니다!
- 2016.06.18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6년도 제2회 전국학술대회- 한국문예에 관여한 <<시경>>의 텍스트와 콘텍스트 -
- 2016.04.23 고서(古書)의 마력(魔力), 인산(印山) 박순호 선생의 힘! 1
- 2016.02.19 사랑하는 국문과 졸업생 여러분!
- 2015.03.06 <<21세기 교양인을 위한 漢字와 漢文>>이 출간되었습니다. 1
- 2015.02.03 한국문예연구소 2015년도 상반기 전국학술발표대회 안내
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2016년도 제2회 전국학술대회
- 한국문예에 관여한 <<시경>>의 텍스트와 콘텍스트 -
주제: 한국문예에 관여한 <<시경>>의 텍스트와 콘텍스트
일시: 2016년 6월 18일(토) 13:00~18:00
장소: 숭실대학교 벤처중소기업센터 311호
사회: 정영문(숭실대)
13:00~13:20 개회사: 조규익(숭실대학교 한국문학과예술연구소 소장)
13:20~13:50 송지원(서울대) 조선조 음악의 <<시경>> 수용 양상
토론 김수연(한중연)
13:50~14:20 양훈식(숭실대) <<시경>>에 나타난 민중의식의 본질
토론 최연(중국 노동대)
14:20~14:30 휴식
14:30~15:00 홍유빈(고려대) 다산의 시경학을 통해 본 조선조 후기 <<시경>> 인식의
양상
토론 윤세형(숭실대)
15:00~15:30 김수경(계명대) 한국 한문학에서의 <<시경>> 표현 운용 양상에 대한 유
형적 접근
토론 김성훈(숭실대)
15:50 ~16:20 정상홍(동양대) <<시경>>을 통해 본 '상고시가'의 발생적 기반
토론 조규백(한국외대)
16:20~16:50 조규익(숭실대) 조선조 원구악장의 텍스트 양상과 의미
토론 구사회(선문대)
16:50~17:00 휴식 및 정리
17:00~18:00 종합토론 좌장: 김종성(숭실대)
고서(古書)의 마력(魔力), 인산(印山) 박순호 선생의 힘!
선생 댁 거실에서
선생댁 거실에서
선생댁 거실에서 양훈식, 선생, 백규
인터넷 서핑 중 소설가 김주영 선생의 글(<훔친 책 몰래 보관하기>)을 접했다. 책배 곯으며 고생해온 그분의 어린 시절이 어쩜 그리도 나와 똑 같을까? 놀라운 일이었다. 고희를 훨씬 넘기신 그 분과 나의 시차를 생각하며, 내가 겪은 ‘책 굶주림’이야말로 세대를 초월하는 비극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게는 그 분이 고백한 ‘책 도둑’의 과거는 없으니, 책에 관한 절실함에서 내가 몇 수 정도 뒤진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 때문인가. 나는 지금도 책에 관해서라면 사족을 못 쓴다. 아직도 ‘책배 곯던 시절의 궁핍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책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귀가 쫑긋해지고, 지방에 가서도 그곳 대학 도서관의 장서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고서점의 서가가 무척 궁금해진다. 해외에 나가서도 서점들이나 대학 도서관에서 눈에 번쩍 불이 나는 경험을 하는 건 마찬가지다. 늘 지방의 고서점과 고서 탐색 대열에서 만난 몇몇 동지들이 눈에 어른거리기도 하고, 그런 이유로 훌쩍 지방행에 나서는 경우도 더러 있다. 가끔은 꼭꼭 숨겨놓은 ‘몇 권의 고서들’을 어루만지면서 한 자 한 자 써나간 책 주인의 정성을 느껴보기도 한다.
사실 고서이든 신간이든 내겐 모두 보물이다. 잘 만들어진 신간은 독서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월이 흐르면 고서가 될 것이고, 후손들도 나처럼 그 책들을 어루만지며 깊은 상념에 빠져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지은 책들은 아낌없이 나눠주지만, 내가 마음먹고 사 모은 남의 책들은 선뜻 주지 못한다. 그런 마음과 자세로 40여년의 세월을 버텨오는 중이다. 그러다가 뵙게 된 분이 원광대 명예교수이신 인산(印山) 박순호 선생이다.
대학원 재학 시절, 거질(巨帙)로 영인 출간된 <<한글 필사본 고소설 자료총서>>를 보며 인산 선생의 자료실이 궁금했고, 후학들에 대한 칭찬에 엄격하시던 나손 선생조차 인산 선생에 대해서만큼은 찬사를 아끼지 않으시는 이유 또한 늘 궁금했다.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안고 부초처럼 강호를 떠돌다가 21세기에 들어서고 나서야 선생을 면전에서 뵙게 된 것이다. <거창가>에 빠져 지내던 무렵 당신이 소장하고 계시던 이본들을 수차에 걸쳐 보내주셨고, 그 덕에 저서 <<봉건시대 민중의 저항과 고발문학 거창가>>는 크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후로도 가끔씩 몸소 전화를 주시며 새로운 자료에 갈급하던 내게 중요한 귀띔과 격려를 건네곤 하셨다. 직접 찾아뵙고 자료를 받겠노라는 내 간청을 ‘바쁜 데 그럴 필요 없다’고 번번이 단칼에 자르시며 우편이나 인편을 통해 보내주시는 것이었다. 그저 감사의 편지나 전화로, 출간된 책이나 논문으로, 송구스런 마음을 표할 뿐이었다.
언젠가 인편에 보내주신 <궁즁도회가>를 분석하여 <<국어국문학>>(157호)에 발표했는데, 그것을 보시고 매우 기뻐하시며 전화를 주신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보내주신 10여 종의 <한양가> 이본들을 나와 내 문하생 5명이 함께 달려들어 분석ㆍ연구하여 공저 <<박순호 소장본 한양가 연구>>(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43/조규익ㆍ정영문ㆍ김성훈ㆍ서지원ㆍ윤세형ㆍ양훈식/학고방)를 출간했다. 그 직전에는 연구소 주최로 “한국문예에 반영된 서울의 형상”이란 주제의 전국 학술발표대회를 갖고, 그 자리에 인산 선생을 모셔 “고문헌 탐색의 길에 만난 <한양가>”라는 발제 강연을 부탁드리기도 했다. 극도로 가난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시면서 울컥 눈물을 삼키시던 선생의 당시 모습이 내 마음에도 충격으로 다가와 눈시울이 뜨거워진 것은 선생의 가난과 내 가난이 순간적으로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최근 많은 자료들을 한글박물관을 비롯한 공공기관에 넘기심으로써, 좀 더 많은 학자들이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평소의 도타운 뜻을 실현하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엄청난 자료들이 서고에 그득하시니, 그 점이야말로 민속학자와 서지학자로서 학계에 기여해 오신 선생의 생애가 남들이 추종하기 어려운 넓이와 깊이를 갖추고 계시다는 방증이 아닌가.
최근 찾아뵙기를 간청하여 처음으로 허락을 받았고, 차를 몰고 내려 가 뵌 것이 지난 주말이다. 도착해보니, 놀랍도록 해박하시며 열정적인 ‘신선’ 한 분이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책들의 숲에 조용히 앉아 계셨다! 선생의 장서들 가운데 가장 애착을 갖고 계신 고려조의 불서(佛書) 세 권을 황감한 마음으로 친견했고, 보물급의 회화작품들로 오랜만에 안구(眼球)를 세정(洗淨)할 수 있었으며, 각종 필사본들과 두루마리 가사들에 손때를 묻혀보는 호사도 누렸다. 그보다 감격스러운 사실은 선생께서 몸소 귀한 자료들을 한 보따리나 챙겨 주신 점이다. 물론 그거야말로 내 둔한 머리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이자 마음의 짐이지만, 어쩌랴. 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다니면서 달라붙어 씨름해야 할 ‘화두(話頭)’ 한 자락 없다면, 그 또한 한심한 일 아닌가.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을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실 나로서는 선생의 깊은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과연 나라면 고색창연한 옛 문헌들을 자식에겐들 선뜻 맡길 수 있을까. 일생 손때 묻혀가며 애장해오시던 필사본들을 연구 자료로 기꺼이 내어주시는 선생의 깊은 뜻은 무엇이며, 나는 그 뜻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텍스트로부터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작업 못지않게 난해한 또 다른 과제까지 안게 된 것이다. 그 옛날 누군가가 힘들여 써놓은 것들이 수백 년 풍우(風雨)와 수화(水火)의 고비들을 넘은 뒤 불쏘시개나 벽지, 아니면 종이공예의 재료로 망가지지 않은 채 학자들의 손에 오롯이 들어오게 된 것은 과연 누구의 공인가. 선생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석ㆍ박사논문과 저서를 쓴 수십 명의 학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영인으로 발간된 자료들로부터 혜택을 받은 수백, 수천 명의 학인들을 생각하면, 선생이야말로 우리나라 국문학계를 실질적으로 견인해 오신 주인공 아닌가.
아직도 유년 시절의 ‘책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한 내 입장에서 스러지지 않는 ‘책 욕심’은 ‘땅보다 두껍다’. 게다가 그 ‘외경(畏敬)’^^의 영역인 고서에까지 욕심을 내게 되었으니, 욕망의 끝을 헤아리기 어려운 게 사실인 모양이다. 누구는 ‘최신판으로 활자화된 자료를 갖고 논문 쓰는 학자들이 대부분인 우리 학계가 한심할 정도로 천박하다’고 개탄한다. 원본의 글자를 잘못 읽어 오류를 범한 책들이 부지기수임을 감안하면, 그런 비판도 아주 근거 없는 건 아니다. 사실 원본을 최신 활자로 정확하게 옮겨주기라도 한다면, 비록 소수만이 원본을 접할지언정 그나마 학계의 장래를 위해 다행한 일 아닌가. 이처럼 국문학계를 천박성의 나락에서 건져 주신 셈이니, 선생의 걸어오신 생애와 이루신 업적이 더욱 빛나고 그 빛은 앞으로도 영속되리라 느껴지는 순간이다.
<<구운몽>>
두루마리 규방가사들
두루마리를 펼친 가사작품
한국에서 가장 오래 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서
규방가사 <부여행신젼>
<궁즁도회가> 연구논문
박순호 본 <거창가> 소개부분
<<거창가>>
<<한양가 연구>>
사랑하는 국문과 졸업생 여러분!
대학에 대한 기대와 젊음의 열정으로 반짝거리던 여러분의 새내기 시절이 엊그제인데, 벌써 사회로 나가는 문지방에 서 있음을 보고, 시간이 덧없다는 생각을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서 졸업 축하의 말씀을 전하는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도 교수님들 가운데 내가 맨 먼저 ‘시간의 무상함’을 절감하는 계절에 들어섰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을 보며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를 생각합니다. 우중충한 유신 말기의 냉기가 대지를 덮고 있던 때였습니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내가 대학을 졸업한 뒤 어떻게 입신할 것인가 고민에 싸여 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수렵 채취 시대-농경 시대-산업화 시대-정보화 시대-고도 지식정보화 시대’를 두루 거쳐 왔음을 우스갯소리로 내세우곤 합니다만, 사실 내가 당시 농경시대에서 산업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존재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세계사를 관찰할 때 내 세대 즉 한국의 베이비부머들만큼 다이내믹하고 극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도 없는 것 같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로서 고도 경제성장과 1997년 외환위기, 그리고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두루 경험한 세대이지요. 우리 세대 구성원들 사이엔 간혹 ‘금수저’도 있었지만,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은 나와 같은 ‘흙수저’들 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아 차라리 과감하게 ‘베팅해볼 수 있는’ 나 자신이고 우리였습니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대책 없는' 계획을 세운 뒤 한눈팔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다시 올 수 없다는 절박감이야말로 '몸뚱이' 하나로 '도박판같은 세상'에 나서게 한 동력이었습니다. 어느 시대의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부모 형제가 뒷배를 보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략 20년 전쯤인가요. 차를 몰고 미국 모하비 사막( Mojave Desert)과 그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데쓰밸리(Death Valley)에서 아무도 없는 가운데 황혼을 만났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그 때 느낀 막막함이야말로 ‘나를 위해 책임 져 줄 아무도 없다’는 실존적 자아인식으로 이어지는 두려움과 절망감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공자는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겼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는 말이 <<맹자>>에 나옵니다. 공자 역시 어떤 계기를 만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 처한 자아를 인식했고, 그 진실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말이겠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모하비 사막과 데쓰밸리에서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꼈고, 그런 두려움과 외로움은 내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으로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기댈 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인식 위에서 강한 투지가 생겨났고, 그로부터 종이 위에 어설프지만 미래의 시간계획표를 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신입생들을 만날 때마다 시간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그런 권유를 했으리라 믿습니다. ‘하루, 한 달, 한 학기, 일 년, 십 년, 일생’ 단위의 시간계획을 짤 수 있어야 그나마 '모험 투성이'인 인생에서 패착의 가능성을 줄여준다는 사실을 모하비 사막 한 가운데서 깨쳤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암울하고 막막했던 내 젊은 시절, 흐릿하나마 어떤 가능성을 부여잡고 용기를 낸 덕분에 지금 여러분 같이 별처럼 빛나는 젊음들 앞에서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의 경험이나마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점을 고맙게 여길 뿐입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총아(寵兒)들인 여러분의 손에도 어떤 정해진 형태의 성공이 주어진 건 아닙니다. 안정된 직장이나 소시민적 행복이 지금 당장 가시화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나침반을 들고 광야에서 길을 찾는 개척자의 자세로 용감하게 저 문을 나서야 합니다. 지금까지 시간 계획을 하지 않았다면, 바로 지금부터 그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눈앞에서 반짝이는 무궁한 가능성들을 촘촘하게 계획된 시간의 그물로 그들먹하게 건져 올려야 합니다.
외로움과 막막함의 한복판에 서 있는 여러분이 자신감만 갖는다면, 최후의 승리는 바로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되리라 믿습니다. 모하비 사막을 돌아 수백 마리의 소떼들을 거느리고 돌아오는 여러분을 10년 혹은 20년 후에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하며,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고맙습니다.
2016. 1. 19.
국어국문학과 조규익 교수
졸업식을 마치고
졸업식 후 연구실로 찾아온 양훈식 박사 가족과 함께
졸업식 후 연구실로 찾아 온 임민주, 국미진
졸업식 후 연구실로 찾아온 고조, 국미진, 임민주
졸업식 후 연구실에서 고조와 함께
대학생들에게 한자와 한문을 가르칠 목적으로 <<21세기 교양인을 위한 한자와 한문>>이란 책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글자<단어<문장'으로의 단계별 교육내용을 담았고, 실습을 통해 매 단계의 배움을 체화(體化)시켜 나가려는 의도를 담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풍부한 부록[간지/병첩한자/24절기/연령 한자어/세시풍속/차례상 진설용어/궁궐/사대문/전국행정구역/숫자/영수증과 차용증서/대한민국 성씨/기후/신체부위 명칭/구용 구사/호칭에 관한 한자/한중일 한자(3500자) 훈음(訓音)]을 붙여 일반인들도 생활 속의 참고서로 활용할 수 있게 꾸며보았습니다. 학교의 교육현장이나 일상생활에서 많이 활용될 수 있길 바랍니다.
태학사, 2015. 2. 26. 값 13,000원
참고로 아래쪽에 이 책의 의미를 압축하고 있는 머리말을 들어 놓겠습니다.
머리말
지식과 정보의 양이 매순간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그 소멸 속도 역시 따라잡기 어려운, 이른바 ‘지식기반 정보화 사회’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왜 우리는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지는 한자나 한문을 배워야 하는 것일까?
한자나 한문이 지닌 ‘지식 생산과 저장의 기능’은 놀랍다. 한자나 한문은 우리네 사유의 기반으로 수천 년간 지속되면서 지혜의 두께와 폭을 늘여왔다. 아무리 첨단의 지식과 정보가 넘쳐도 한자나 한문을 모르고서는 인간의 내면과 세상 변화의 이치를 깨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자와 한문은 우리 민족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해온 표기체계다. 그러나 지배계층의 독점욕과 교육기회의 불평등으로 대다수 민중은 상당기간 한자와 한문으로부터 먼 거리에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한자와 한문이 조성한 사유체계로부터 한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식기반 정보화 사회의 선두에 서려면 한자와 한문이 지닌 ‘지식 생산과 저장의 원리’를 체득해야 한다. ‘중국의 한자나 한문’을 배우고 가르치려는 게 아니다. 수천 년간 우리 민족이 써왔고, 동아시아인들이 써온 표기체계의 한 축을 익히려는 것이다. 그걸 가르치는 것은 ‘지식정보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젊은 세대에게 고성능 엔진을 하나 더 달아주는 일이다.
다년간 강단에서 한자와 한문을 지도해온 젊은 학인들[정영문 박사‧서지원 박사‧김성훈 박사‧ 윤세형 선생‧양훈식 선생]이 함께 엮어서 더 의미가 크다. 가르치는 자의 욕심을 적절히 깎아내고 배우는 자의 고단함을 헤아려, 아담하게 만들어낸 책이 더욱 아름답다.
을미년 새봄
조규익
한국문예연구소 2015년도 상반기 전국학술발표대회 안내
안녕하신지요?
을미년도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저희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는 작년 여러 권의 학술총서들을 발간했고, 논문집 <<한국문학과 예술>>이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후보)지로 승격되었으며, 연구소의 과제[「용비어천가와 악무 <봉래의>의 복원과 문화코드 탐색」]가 2014년 한국연구재단 기초연구지원사업 '인문사회 우수성과'로 선발돼 표창을 받은바 있습니다. 연구소의 발전을 위해 힘써 주시고 성원해주신 모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은 다음과 같이 17세기 연행록을 중심으로 2015년도 상반기 전국학술발표대회를 갖고자 합니다. 많이들 참석하시어 경청해 주시고, 고견을 들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추운 겨울, 특별히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한국문예연구소 드림
학술대회 안내
일시 : 2015년 2월 6일 금요일 오후 1시~오후 5시 30분
장소 : 숭실대학교 벤처관 311호
주최 :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사회 : 허명숙(숭실대)
○ 13:10~13:50 17세기 사행록의 연구현황과 전망
발표 : 정영문(숭실대)
토론 : 박성순(동국대)
○ 13:50~14:30 17세기 초 사행록 서술의 양상
발표 : 김지현(한중연)
토론 : 김동석(성균관대)
○ 14:30~15:10 17세기 초 사행록에 나타난 조선 지식인의 대외인식
- 정두원의 [조천기지도]를 중심으로
발표 : 서지원(숭실대)
토론 : 신춘호(방송통신대학 TV)
○ 15:10~15:20 중간휴식
○ 15:20~16:00 17세기 명청교체와 대중국사행의 변화
발표 : 김경록(전쟁기념관)
토론 : 황민호(숭실대)
○ 16:00~16:40 17세기 초 사행록에 나타난 중화질서의 혼란양상
발표 : 윤세형(서일대)
토론 : 양훈식(숭실대)
○ 16:40~16:20 휴식 및 회의장 정리
○ 16:20~17:30 종합토론
좌장 : 조규익(숭실대)
오시는 길
○ 용산역 택시 : 15분
버스 : 신용산역 이동(4분 소요) 후에 501, 506, 750A, 750B, 751 승차, 26분
○ 노들 역 택시 : 8분
버스 : 노들역에서 501, 752, 5517, 751, 501 승차, 2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