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11. 5. 07:08

세인트루이스(St. Louis)에서의 56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세인트루이스 공항 인근

 

 

 


발표문 ppt 일부

 

 

 


발표문 ppt 일부

 

 

 


워싱턴대학교 댄포스 캠퍼스 남쪽 입구

 

 

 


브루킹스홀 쪽의 게이트

 

 

 


캠퍼스 일부

 

 

 

 

작년에 신청했어야 하는데, 게으름을 부린 탓에 그만 올해 아시아학회(AAS: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 참여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올해 초반 부랴부랴 찾아낸 학술발표회가 바로 AAS의 중서부 지역 분회에서 열리는 MCAA(Midwest Conference on Asian Affairs). ‘미국 중부의 하버드라 불리는 워싱턴대학교에서 열린다 하여 더 매력적이었다. 발표 및 참가 신청, 발표문 송부 및 심사, 숙소 및 항공편 예약 등 자잘한 절차들이 자못 번거로웠으나, 서양의 학자들을 만나 의견을 나누면서 새로운 기운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나를 움직인 것이 사실이었다. 그 과정에서 큰 학술발표회를 조직하고 움직이는 그들의 메커니즘을 배울 수도 있었고,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그들의 내면 또한 살짝 훔쳐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아직 가보지 못한 세인트루이스와 워싱턴대학교였다.

 

멀었다. 비행기가 태평양 상공에 도달할 즈음에야 모니터에 뜨는 항로를 보며 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약간의 후회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었다. 시카고의 오헤어(O’hare) 공항까지 꼬박 12시간, 오헤어에서 기다린 3시간, 오헤어에서 세인트루이스 공항까지 1시간 20, 공항에서 호텔까지 30분 등 무려 17시간이나 걸렸으니!

 

시차 부적응으로 피곤한 몸을 끌고 다음 날의 발표(*발표문은 백규서옥http://kicho.pe.kr 연구업적>논문>No.221’ 참조)를 포함, 꼬박 사흘간의 학술발표회 일정을 소화하게 되었다. 61개의 패널, 패널 당 4명의 발표였으니, 발표자만 해도 240명이 넘었다. 토론자, 진행자, 참관자까지 합치면 1,000명이 넘는 규모였다. 발표도, 발표에 대한 반응도 비교적 만족스러웠기 때문일까. 몸과 마음 상태는 크게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워싱턴 대학의 이지은 교수와 전임강사로 있는 고인성 박사, 울산과기원의 이재연 교수 등을 만난 것은 피로를 가시게 한 청량제였다. 이지은 교수, 이재연 교수 등과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대화는 무엇보다 유익했다. 발표장을 메운 외국의 학자들에게 조선의 건국서사시(foundational epic of Joseon Dynasty)를 소개하고, 그 밑바탕으로 작용한 유토피아 찾기로서의 풍수론을 전통 생태 담론적 차원에서 설명한 것은 아주 짜릿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학회 종료 후 하루 반 동안의 여유가 있었다. 워싱턴대학교 댄포스(Danforth) 캠퍼스의 구석구석, 밀드레드레인켐퍼 미술박물관(Midred Lane Kemper Art Museum), 미주리 역사박물관(Jefferson Memorial Missouri History Museum), 게이트웨이 아치(Gateway Arch) 등을 포함, 다운타운 몇 곳들을 도는 데 그쳤지만, 그간 서구 여러 나라의 도시들을 돌아보며 익힌 노하우(?) 덕분일까. 세인트루이스와 워싱턴대학교의 장점들을 순식간에 체감할 수 있었다.

 

1853년 윌리엄 그린리프 엘리엇(Willam Greenleaf Eliot)이 주도하여 엘리엇 세미너리(Eliot Seminary)를 세웠는데, 이 학교가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로, 다시 워싱턴대학교로 확대발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전역에 워싱턴의 이름을 딴 대학들이 늘어나자 다시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in St. Louis)’로 교명을 환원했다 한다. 댄포스 캠퍼스는 빅벤 대로(Big Bend Boulevard), 퐈리스트 팍 파크웨이(Forest Park Parkway), 스킹커 대로(Skinker Boulevard), 와이다운 대로(Wydown Boulevard) 등으로 둘러싸인 변형된 직사각형 모양으로 되어 있었는데, 중앙에서 동서로 가로지르는 포시쓰 대로(Forsyth Boulevard)가 캠퍼스를 남북으로 가르는 형국이었다.

 

멋진 캠퍼스였다. 어떤 건축양식을 본떴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평탄한 대지에 늘어선 단정한 베이지색 톤의 건물들은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따스해보였으며, 안으로 들어가니 철저히 인체공학에 맞추어 지은 듯 이동하기에 편했다. 거의 반반인 대학원과 학부 합쳐 14천의 학생들과 3000여명이 넘는 교수진이 댄포스 캠퍼스(206,885), 메디컬 캠퍼스웨스트캠퍼스노스캠퍼스(165.263) 등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이들 캠퍼스에 산재해 있는 14개의 도서관들엔 총 420만권의 도서가 소장되어 있었으며, 이 대학의 자랑인 밀드레드레인켐퍼 미술박물관도 미시시피강 서부 연안 최고(最古)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교수진에 22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10명에 가까운 퓰리처 수상자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 미국 대학평가에서 늘 10위권(12~14)을 유지하고 있는 최고 명문이라는 점도 놀라웠다.

 

학회 덕에 이 대학에서 종신 교수직을 받고 한국문학을 강의하고 있는 이지은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연세대학교에서 노문학을 전공하고 하바드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 교수는 이 대학교 인문대학(Arts & Sciences) 동아시아 언어문화학부(East Asian Languages and Cultures) 한국학과의 학과장이었다. 이 교수는 저서 <<Women Pre-Scripted: Forging Modern Roles through Korean Print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5)>>를 비롯하여 많은 논문들을 발표했으며, ‘한국문명론(Korean Civilization)근현대 한국문학(Literature of Modern and Contemporary Korea)한국문학과 문화의 주제들: 젠더 구축하기(Topics in Korean Literature & Culture: Constructing Gender)현대 한국인의 자아: 한국문학과 문화의 주제들(Contemporary Korean I: Topics in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한국문학과 문화의 주제들(Topics in Korean Literature and Culture)’ 등의 강의를 통해 미국 학생들과 만나고 있었다. 이 교수와의 대화를 통해 미국 인문학계의 자세한 모습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함께 발표에 참여한 울산 과기원의 이재연 교수 또한 하바드와 시카고대학에서 공부한 한국문학 세계화의 주역이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비롯한 한국문학 전공자들이 앞으로 무엇에 주력해야 할지를 깨닫게 되었다. 아젠다(agenda)의 쉼 없는 발굴과 논리 구축을 통해 세계 학자들과 소통하는 일만이 우리의 낙후성을 탈피하는 유일한 출구임을 알게 된 것이다.

 

***

 

귀국 날까지 짬을 내서 찾은 워싱턴대학교의 밀드레드레인켐퍼 미술박물관은 건물도 훌륭했지만, 마침 세계적 거장들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내 가슴을 뛰게 했다. 하루를 쉰 다음 찾은 미주리주 역사박물관과 게이트웨이아치는 미주리 주와 세인트루이스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명소들이었다. 미주리 역사박물관은 제퍼슨(Thomas Jefferson) 대통령을 기념하는 의미도 갖고 있었다. 사실 제퍼슨 대통령이 프랑스로부터 미시시피강에서 로키산맥에 이르는 80만 평방 마일의 광대한 땅을 사들임으로써 미주리 주는 비로소 미국 땅이 되었고, 본격적인 번영이 시작된 것이다. 세인트루이스의 역사가 독립선언을 기점으로 시작된 미국의 역사보다 100년 이상이나 긴 것도 그 때문이다. 1673년 이 지역에 도착한 프랑스 탐험가들은 원주민이 살고 있던 이 땅을 접수하여 프랑스령으로 만들었고, 자신들의 왕 루이 14세의 이름을 따서 루이지애나(Louisiana)로 명명한 것. 3대 대통령 제퍼슨이 1803년 나폴레옹으로부터 이 땅을 매입하여 1804310일 미합중국의 한 부분으로 공식화한 다음 1808년에 시의원단을 선출했고, 1809년에 정식 시로 등록한 것이다. 1904년의 국제무역박람회, 커피산업, 도시 확장 및 정비 등이 박물관 소장품의 대표적 컨셉들이었다. 사실 1904년의 국제무역박람회와 하계올림픽은 1896년에 세인트루이스를 덮친 허리케인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 시도였는데, 역대 최악이었던 올림픽과 달리 박람회는 성공적이었다. 그 내용들이 박물관 중심의 전시물들을 통해 설명되고 있었다.

 

다양한 전시물들을 통해 커피 산업이 미주리의 중심에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준 부분이나 도시의 형성, 발전, 팽창을 보여주는 대형 사진들과 각종 생활사 자료들은 박물관을 매우 인상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놓고 있었다. 그것들은 여타 국가나 지역의 박물관들과 비교하여 특별한 의미와 함께 차별성 또한 보여주고 있었다. 그곳을 찾은 모든 이들에게 우리도 이런 역사박물관 하나쯤은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드는 공간이었다.

 

박물관을 나와 들른 곳은 이 도시의 어느 곳에서도 보이는 게이트웨이 아치(Gateway Arch). 국립 제퍼슨 국토 확장 기념관(Jefferson National Expansion Memorial)을 장식하는 조형물이자 '게이트웨이 시티(Gateway City)'라는 세인트루이스의 별칭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랜드마크였다. 서부개척 시대, 서부로 넘어가는 관문이 바로 세인트루이스였고, 그 개척의 상징물이 바로 이것이었다. 1947년 핀란드 계 미국 건축가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과 건축기사 한스카를 반델(Hannskarl Bandel)의 설계를 채택, 1963212일 착공, 19651028일 완공, 1967724일 일반에 개방되었으니, 설계로부터 무려 20년이나 걸린 큰 공사였다. 전체 높이 192m의 무지개 형상 스테인리스강 구조물로서 남쪽과 북쪽 두 방향에서 엘리베이터 격인 트램(tram)을 타고 아치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꼭대기의 좁고 긴 방에서 창문을 통해 미시시피강과 일리노이 평원, 세인트루이스 시내를 조망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아치 밑으로는 웨스트워드 익스팬션 박물관(Museum of Westward Expansion)이 연결되었다.

 

 

세인트루이스는 도착부터 떠나는 날까지 평화와 안온함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조용한 가운데 안으로는 바글바글 끓어 넘치는 용광로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국의 여느 도시들처럼, 짧지만 화려한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아이디어와 활력이 맥박치고 있었다. 그 한 복판에서 세계의 인재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 바로 워싱턴대학교였다. 그러나, 어쩌랴! 56일 간의 짧은 일정 속에 바늘구멍으로 들여다 본 풍경. 그게 세인트루이스의 허상일까, 아니면 실상일까.

 

 


Thinker on rock-Barry Flangan 작, 1997. 워싱턴대학교 교정

 

 

 


John M. Olin Library

 

 

 


 Carl Neureuther에 대한 감사 동판

 

 

 


도서관 서가

 

 

 


도서관 서가

 

 

 


동아시아 도서관

 

 

 


인문대학 동아시아 언어문화학과 이지은 교수 연구실

 

 

 


이 교수 연구실의 서가

 

 

 


MCAA 첫날 연회

 

 

 


학술발표회에서. 린덴우드 대학교 중국어학과 Brian Arendt 교수와 함께

 

 

 


동아시아학과의 Rebecca Copeland 교수(일본문학교수/동아시아학부 학부장), 

Holden Thorp 박사(교무처장/학사부총장/리타 레비-몬탈시니 석좌교수)와 함께

 

 

 


이지은 교수와

 

 

 


연회장에서 이지은 교수, 이재연 교수, 고인성 교수 등과 함께

 

 

 


저녁식사 자리에서 함께 한 한국학자들

 

 

 


밀드레드레인켐퍼 미술박물관

 

 

 


미술박물관에서 만난 시팅불(Sitting Bull)[Andy Warhol 작]

 

 

 


피카소의 <알제리의 여인들(Women of Algiers)>

 

 

 


Max Beckmann의 <Artists with vegetable>

 

 

 


미주리 역사박물관

 

 

 


미주리 역사박물관 소장 '세계무역박람회장 가는 길'

 

 

 


역사박물관 전시품

 

 

 


역사박물관 소장 포스터

 

 

 


역사박물관 소장 '수레'

 

 

 


커피산업에 대한 세인트 루이스의 자부심 "시애틀은 비켜 서세요!"

 

 

 


그 당시 커피 브랜드의 하나

 

 

 


세계 각국에서 수입되는 커피 원두들

 

 

 


어렵던 시절의 미주리주 주민들

 

 

 


당시 야구경기 모습.

 

 

 


게이트웨이 아치

 

 

 


게이트웨이 아치

 

 

 


Forest Park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멋진 개인주택

 

 

 


Forest Park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멋진 개인주택

 

 

 


세인트루이스 다운타운의 한가로운 모습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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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2007. 6. 24. 19:36
 퍼옴)국어국문학회 대표이사 선출장면을 보며...


                                                                      김사량(가명)


 집안의 일을 밖에 밖에 나와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고금동서의 양식(良識)에 속하는 일이긴 하지만, 공동체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한 마디 안할 수 없다.

                    ***

 어떤 분들이 찍어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우편투표에 의해 지역이사에 선임되었다는 통보와 함께 전공이사 12명을 대상으로 평의원들과 이사들의 합동회의에서 대표이사를 선출하니 ‘뜻 있는 이들’은 ‘학회 운영 소견문’(이른바 출마의 뜻)을 학회에 보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시점부터 나는 누가 출마하는가, 누가 대표이사에 선임되는가를 예의주시해왔다.


 회원 수 2,000명이 넘는 거대학회 국어국문학회. 그러나 총회 등의 행사에는 고작 20명 남짓의 회원만 참석할 뿐이다. 지금껏 특정대학 출신들이 모든 직책을 도맡다시피 해왔고, 누구 말대로 ‘무슨 수’를 부렸는지는 모르지만 이사들의 대다수를 그 쪽 동네에서 독점하다시피 해온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걱정되는 건 학회의 존망이었다. 특정 동네에 독점된 ‘학문권력’. ‘학자로서의 걱정과 자존심’이 뜻 있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는 요즈음이다. 합동회의 한 주일 전 당도한 공문을 보니 조 아무개 교수 혼자 출마한 게 아닌가. 혹시 ‘저들에게 무슨 꼼수가 있나?’ 좀 의아스러웠다. 출마하겠다고 소문이 돌고 있던 ‘그 쪽 동네의 어떤 분’은 왜 안 나온 것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그 쪽 동네 사람’이 아닌 조 아무개 교수가 출마한 일은 잘 된 일로 보였다. 그가 보내온 공약 사항들이 이행하기 쉽지 않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무언가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조짐으로 생각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이사회 날. 현장에 가보니 과연 ‘그 쪽 동네 사람들’이 방 안 그득 포진하고 있었다. 평의원회 의장이 일어서더니 2명 이상 출마해야 출마자를 대상으로 투표를 하는데, 1명만 출마했으므로 모든 전공이사를 대상으로 투표한다고 했다. 더구나 그 자리 참석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전공이사들은 피선거권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참으로 해괴한 규정이었다. 투표함의 뚜껑이 열린 다음, 정작 ‘학회운영 소견문’을 제출하고 출마를 천명한 조 아무개 교수를 제치고 출마의 소문만 나돌던 사람이 몇 표 차이로 당선된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쪽 동네 사람들’의 전략(?)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조 아무개 교수가 출마한 사실을 안 다음 아예 출마를 하지 않음으로써 그를 아예 ‘나가리’시켜 버렸고, 합동회의의 현장에서 표로 승부를 가려버린 것이었다. 정작 당선자는 현장에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이다. 당선자가 현장에 나오지 않은 것도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과를 미리 예측한 그들이 ‘당당하게 출마한’ 조 아무개 교수와 마주치지 않게 하려고 배려한 결과였을까. ‘악법도 법’이니 따라야 한다지만, 상식과는 거리가 먼 일이었다. 이사들은 학회 운영에 관한 그의 소견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심지어 그의 얼굴을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표를 던져 그를 대표로 뽑은 셈이었다. 이른바 한국의 '국어국문학'을 대표한다는 분들의 의식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결과를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오히려 나는 버거운 공약을 수행하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조 아무개 교수의 마음이 어쩌면 홀가분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구나 누가 대표이사가 되던 학회는 ‘이렇게 변신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조 아무개 교수는 제시한 셈이니, 그 일만으로도 그의 임무는 다 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깨달은, 가장 중요한 점 하나는 조 아무개 교수가 ‘당당하게 졌다’는 사실이다. 비록 소수파에서 필마단기(?)로 전장에 나섰지만, ‘그 쪽 동네 사람들’ 가운데 단 몇 분이라도 그에게 표를 던져주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했다. 투표의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그 쪽 동네’의 한 원로학자는 ‘짰구먼!’이라고 탄식의 말씀을 내뱉으셨다. 그의 ‘떳떳함’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

 다음은 조 아무개 교수가 제시한 공약 전문이다. 학회에서 이메일로 전송해준 내용이다. 학회원 모두 함께 새겨들어야 할 내용인 듯 하여 이곳에 붙인다.



학회의 운영에 관한 소견

                                                                         

 존경하는 평의원님들과 이사 및 감사님들께 학회의 운영에 관한 소견 몇 가지를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간 평의원님들과 역대 집행부의 노력으로 학회의 규모가 현재와 같이 커졌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 대부분의 회원들은 학회를 외면하고 있으며, 그 결과 학회는 적막강산으로 변했습니다. 급격히 바뀌어가는 시절 탓만을 하고 있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절박합니다. 발 빠르게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 이런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민첩하게 대응해야 학회는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합의와 단결을 바탕으로 학회의 발전적 미래를 가꾸어 나가는 것이 새 대표의 사명이라고 봅니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방안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것을 ‘국어국문학회 중흥 프로젝트’로 부르고자 합니다.  


 첫째, 학회의 재무구조를 건실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자세한 것은 셋째 항 참조) 회원들의 참여 부진과 회비 미납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문제로서 학회의 존립에 큰 장애요인입니다. 또한 이사(혹은 대표이사) 선출 방식과 연계시켜 생각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 학술진흥재단 등재(후보) 논문집들이 많이 늘어난 지금 굳이 <<국어국문학>>에 ‘힘들여’ 논문을 실어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우선 <<국어국문학>>의 위상을 높여서 회원들이 ‘가중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게재 논문이 가중점수만 받게 된다면, 학회 및 학회지에 관한 회원들의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지리라 봅니다.(자세한 것은 둘째 항 참조) 그와 함께 홈페이지를 대대적으로 개편·보수해야 합니다. 일단 모든 회원들을 등록하게 하고 기존의 서비스 외에 ‘논문 투고, 심사업무, 이사선출’ 등을 홈페이지에서 일괄 처리할 수 있도록 그 기능을 대폭 확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비 납부를 홈페이지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고치는 것도 적극 고려되어야 할 사항입니다. 평생회비를 약간 낮추어서라도 많은 회원들을 평생회원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아울러 총회에 참석한 모든 회원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 대표이사가 선출되는 방향으로 평의원회 및 이사회와 긴밀히 협의해 나가겠습니다. 대표이사 선출에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여 총회를 대통합의 ‘잔치판’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회비 미납의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되리라 보기 때문입니다.


 둘째, <<국어국문학>>은 ‘세계 최고·최대’의 한국어문학 종합 학술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이것을 세계 학술 시장에 상장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예컨대 ‘朝鮮學會’나 그 학술지인 <<朝鮮學報>>, 혹은 ‘Association For Asian Studies(AAS ; 아시아 학회)’나 그 학술지인 ‘The Journal of Asian Studies(JAS)’ 등을 국제학회 혹은 국제학술지로 선정하여 높은 가중 점수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질적인 면에서 이들보다 못할 이유가 결코 없음에도, <<국어국문학>>은 아직 한국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번에 국제학회의 반열로 올라서기가 어렵다면 이런 학회들과의 제휴를 통해서라도 국어국문학회를 국제 학문시장에 상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안을 실천해야 한다고 봅니다. 첫째는 이들 학회와 연합하여 국제학술대회를 여는 일이고, 두 번째는 단계적으로 <<국어국문학>>을 국문학술지와 영문학술지로 이원화 하여 발행하고[예컨대 1년에 한 번은 국문, 한 번은 영문 식으로], 해외의 저명 한국어문학자들을 편집위원으로 영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국제화 시키는 방법입니다. 특히 후자가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기존의 ‘국어국문학회’를 가칭 ‘국제한국어문학회(Association For Korean Language & Literature ; AKLL)’로 확대·전환하고, 그 안에서 국내 파트(국문 학술지)와 국제 파트(영어 학술지)로 병행·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국제학회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충실한 영어학술지를 만드는 일, 기존의 국제학회들과 제휴하는 일 등이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빠른 길입니다. 과도기적인 조치로 ‘한국AAS'와 협력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한국을 잘 아는 로버트 버스웰(R. E. Buswell) UCLA 교수가 올해 AAS의 회장으로 추대된 만큼 국어국문학의 국제화에 호기를 맞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은 새 대표의 임기 안에 충분히 성사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셋째, 평의원회 및 이사회와의 협의를 거쳐 현재 임의단체인 국어국문학회를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만드는 일에 착수하겠습니다. 저는 이미 온지학회를 사단법인으로 만든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사단법인으로 만들어야 학회 자체의 사업을 벌일 수 있고, 회원들 또한 주인의식을 갖고 갖가지 사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회원 혹은 외부인사들 가운데 매년 일정한 돈을 출연할 수 있는 분들을 위촉하여 별도의 재정지원이사회를 결성하는 한편, 학회 차원에서 인재들을 결집·배분·지원하여 각종 학술 진흥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도록 주선·관리하겠습니다. 사단법인으로 만들어야 정부에 기탁되는 기업체들의 후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고, 각종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100% 회비만으로 운영되는 학회의 재정에 결정적인 전기가 마련되리라 봅니다. 학회를 사단법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한 넓이의 공간이 필요한데, 현재 비어있는 학회의 사무실 정도면 충분합니다. 저는 그곳을 회원들을 위한 ‘국어국문학자료센터’로 가꾸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넷째, 지방화 시대가 뿌리를 내리고 있음에도 학회는 오히려 서울이나 일부 대학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문제를 고쳐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지방이나 여타 대학의 학자들이 학회에 참여하지 않는 것도 상당 부분 학회가 안고 있는 시대 역행의 폐쇄성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런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이사를 임명할 때 학교와 지역이 골고루 안배되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상당수의 회원들이 갖고 있는 소외감과 냉소주의를 불식할 수만 있다면, 회원들의 참여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리라 봅니다.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지역별 분회를 두고자 합니다. 지역단위로 실질적인 활동을 벌이게 하고, 중앙의 학회는 그런 활동들을 통합하는 체제로 개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영남지회, 호남지회, 기호지회 등으로 나누어 각 지회의 운영진(지회장·총무이사·연구이사·사업이사 등)이 거점 대학(들)을 중심으로 활동을 벌인 다음, 연 1회 정도 중앙에서 만나 전체 학회를 갖는 방식으로 운영상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잘만 하면 각 지역에 맞는 정서들이 지회에서 수렴될 수 있고, 그것들은 중앙의 총회에서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국어국문학회는 회원 수 2000명이 넘는 매머드 학회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학회 창립 이후 반세기가 넘어섰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회원들의 의식변화를 본격적으로 조사하여 학회 발전의 핵심 지표로 활용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만약 대표가 된다면, 새 집행부 주도로 치밀하고 유용한 설문조사와 분석을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국어국문학회 회원들의 의식변화와 학회발전방향’(가제)이란 조사 보고서를 작성, 6개월 이내에 학회지와 언론매체를 통해 발표하고 학회의 정책 수립에 반영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전국 순회에 나서서 회원들과 의견을 나누고, 그 결과를 3개월 이내에 평의원회와 이사회에 보고토록 하겠습니다.


 이상 말씀드린 몇 가지 사실들은 결코 간단한 문제들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미루어 둘 수 있는 일들도 아닙니다. 우리가 지혜와 힘만 모은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조속히 추진하여 국어국문학회를 새로운 궤도에 올려놓고 싶은 것이 제 포부입니다. 존경하는 평의원님들과 이사님들의 많은 지도와 편달을 부탁드리오며 현명하신 판단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2007. 6. 9.



                    국어국문학회  전공이사  조 아무개 드림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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