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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교수 영입의 전제
새 학기부터 20여명의 외국인 교수에게 강의를 맡기고, 2010년까지 그 수를 100명으로 늘이겠다는 최근 모 대학의 방침은 매우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이념과 종족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류적 가치나 이상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 학문임을 감안하면 그런 단안이 뒤늦은 감도 없지 않다. 상당수의 다른 대학들도 마음은 있으되 돈과 여건이 허락지 않아서 망설이고들 있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대학들이 수월성을 높이기 위한 방향만큼은 제대로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우수한 교수가 우수한 대학을 만들며, 교수의 개혁이야말로 대학의 개혁임을 알게 된 일이야말로 한국의 대학들이 그간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게 된 의미 있는 수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에 하나 외국으로부터 뛰어난 교수들을 영입하고자 하는 최근의 움직임들이 ‘스타 마케팅’의 일환이거나 세계적인 석학들을 불러와 그간의 ‘뒤쳐짐’을 일거에 만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복권심리’ 혹은 ‘영웅 대망심리’의 발현이라면, 그것은 우리의 학계를 위해 매우 우려스런 시도일 수 있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표면상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교수 채용 시 아직도 학자의 능력이나 업적보다는 학맥과 같은 비본질적 조건이 암암리에 큰 힘을 발휘하는 현실은 엄청난 재원을 투입하여 외국인 교수들을 영입하려는 대학들의 노력과 명분을 무색하게 한다. 교수채용 때마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학연에 의한 밀어주기나 세칭 낮은 서열 출신이라는 이유로 유능한 학자들을 외면하는 폐쇄성 등은 우리 지식사회의 선순환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이다.
사실 외국의 석학들은 우리 학생들에게 큰 가르침과 자긍심을 줄 수 있고, 그들 스스로도 이곳에서 큰 연구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수의 실력과 함께 교육적 열성, 학습자들의 동기가 겸비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그런 바탕이 마련된 후에야 교육의 효과는 확실해진다.
외국인 교수들의 영입이 성공하려면 우리 자체 내에 온존하고 있는 각종 심리적 장벽의 철폐가 우선되어야 한다. 우리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선진국의 대학들은 이미 오래 전에 이런 장벽들을 없애는데 성공했다. 자국 내의 인재들을 능력 위주로 끌어 써왔으며, 그런 바탕 위에서 세계 각처의 인재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상당수의 우리 ‘토종학자’들이 그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스카웃 제의를 받는 것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일이다.
대학사회가 우리 스스로에게 마음을 열고, 선의의 경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렇게 되기 위한 첫 단추는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말이지만, 무엇보다 인재 발탁의 1차적인 조건을 능력과 업적에 두어야 한다. 그것만이 교수시장의 경직성을 해소시키는 관건이다. 교수시장의 경직성이 해소되어야 능력 있는 인재들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대학 간 교수 간 경쟁의 분위기가 살아나며, 외국 석학들의 영입이나 우리 인재들의 외국 진출 또한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효과들을 얻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대학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인다면서 3년 혹은 5년의 프로젝트를 내세우는 일이야말로 대부분 공수표일 가능성이 크다. 학계나 대학의 발전은 한 순간의 쇼가 아니라 장기간 노력의 축적을 바탕으로 할 때에만 겨우 이루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태만해왔던 부분을 한꺼번에 메우려는 다급함으로 외국의 석학들을 대거 초빙하는 일이 자칫 ‘우물에서 숭늉 찾기’나 ‘꾀 벗고 장도칼 차는’ 격이 되지 않으려면,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우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는 편견과 장벽을 먼저 없애야 할 것이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