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7. 4. 21. 08:44
*이 글은 조선일보(2007. 4. 21.) 시론으로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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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학교육은 상품이 아닙니다”


‘대학교육은 상품이 아닙니다!’ ‘등록금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어느 대학을 가 봐도 쉽게 볼 수 있는 현수막의 문구다. 대학 교육이 결코 ‘시장에서 이익을 전제로 교환되는 유형·무형의 재화’가 아니라는 교육 소비자들의 절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대학만큼 철저한 시장 논리에 의해서 움직이는 곳도 없다. 그 원조(元祖)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있다지만 그들을 따라가는 국내 대학들의 행태가 심히 걱정스러울 정도다.최근 교육계에 불어닥친 신자유주의는 대학의 공익적 성격을 상당 부분 훼손시키고 있다. 이윤 창출에 초점을 맞추는 ‘기업 마인드’로 대학을 운영한다든가 필사적으로 기업에서 기부금을 받아내려고 하는 풍조가 일반화되고 있다. 지금 대학은 기업의 지배,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돈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더구나 부익부 빈익빈으로 대학을 양극화시키고 있는 국가의 지원금이나 기업의 기부금은 대학의 부정적 현실을 오히려 심화시킨다. 비용의 상승을 등록금에 즉각 반영할 수밖에 없는 대부분 대학들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일부 합리주의자들은 ‘등록금이 인상되는 만큼 서비스의 질 향상을 요구하라’는 말로 투쟁에 나선 학생들을 꾸짖는다. 그러나 그런 합리주의자들에게 ‘어떻게, 어떤 규모로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으며, 우리 대학들에 그런 일을 수행할 만한 철학은 갖추어져 있는지’를 물으면 침묵하기 일쑤다. 사실 우리의 교육 당국이나 대학 경영진에 시대의 흐름이나 현실을 읽어 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주문일 수 있다. 미래의 대학 교육이 시행착오의 외길을 걸어온 현재와 다를 바 없을 거라고 비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비관은 나라의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대학들, 입학생들은 줄어드는데 자꾸만 늘어나는 해외 유학생들, 교육의 질에 대한 국민들의 팽창하는 욕구, 상대적으로 줄어드는 재원, 학교 규모를 줄인다거나 통·폐합 등에 과감히 착수하지 못하는 학교 이기주의, 교육을 통제하려는 중앙 정부의 욕구 등 현실적인 문제들과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이것들 모두 우리의 대학을 압박하는 부정적 요인들이다. 이 와중에서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 배워 온 것이 마케팅 기법이다. 몇몇 뛰어난 교수들을 고액 연봉을 내세워 영입하거나 소수의 우수 학생들이나 출세한 동문들을 활용해 학교 이름을 드날려 보려는 이른바 ‘스타 마케팅’이 점점 기세를 올리고 있다. 양질의 교육으로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하기보다는 점수가 뛰어난 학생들을 데려다가 고만고만한 재목으로 만든다는 비난을 들어도 대학인들은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일부 스타들이 만들어낼 환상이 이런 비난을 중화시켜 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부정적인 점에서 우리나라 대학들은 일류나 이류를 막론하고 ‘표준화’가 되어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부류는 ‘묵묵히 진실된’ 연구를 하는 교수들과 대다수의 성실한 학생들이다. 이들이 내는 등록금의 상당 부분이 이른바 ‘스타 마케팅’에 쓰이는 데도 의도에 비해 결과가 시원치 않다면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인가. 이제 문제는 본질에 대한 성찰이다. 케케묵은 말 같지만 하루 빨리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루아침의 ‘반짝 쇼’로 달라질 수 있는 것이 교육은 아니다. 대학 교육이 20년 만에 때려 부수고 재건축을 해대는 아파트만도 못하다면 이제 우리는 대학의 간판을 내려야 할 것이다.

[조규익 숭실대 국문과 교수]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