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언론과 저질 정치인들의 비극적 코메디
이른 아침. 책상에 앉아 밀린 교정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까톡!’ 소리가 나를 부른다. 급한 연락인가 열어보니, 친구 재영이가 한 번 읽어보라며 보내 준 저잣거리의 우스개였다. 참으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예지가 번뜩이는 구구절절이었다. 급한 교정은 밀어두고 한 마디 소감을 보태지 않을 수 없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수 : "죄없는 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언론 : "잔인한 예수, 연약한 여인에게 돌 던지라고 사주"
예수 : 위선적 바리새인들에게 분개해 "독사의 자식들아!"
언론 : "예수, 국민들에게 새끼 막말 파문"
석가 : 구도의 길 떠나...
언론 : "국민의 고통 외면, 제 혼자만 살 길 찾아나서"
석가 : "천상천하 유아독존"
언론 : "오만과 독선의 극치, 국민이 끝장내야"
소크라테스 : "악법도 법이다"
언론 : "소크라테스, 악법 옹호 파장"
시이저 : "주사위는 던져졌다"
언론 : "시이저, 평소 주사위 도박광으로 밝혀져"
이순신 : "내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언론 : "이순신, 부하에게 거짓말 하도록 지시, 도덕성 논란 일파만파"
김구 : "나의 소원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통일입니다"
언론 : "김구, 통일에 눈 멀어 민생과 경제 내팽개쳐"
소크라테스 : "너 자신을 알라"
언론 : "소크라테스, 국민을 바보 취급하며 반말 파문"
클라크 : "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언론 : "클라크, 소년들에게만 야망가지라고 심각한 성차별 발언하며 대놓고 쿠데타 사주"
스피노자 :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
언론 : "스피노자, 지구멸망 악담, 전세계가 경악 분노"
최영 :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언론 : "최영, 돌을 황금으로 속여 팔아 거액 챙긴 의혹 "
전두환 : "전재산 29만원"
언론 : "현정권 국가원로 홀대 극치, 코드인사 보훈처장 경질해야"~
링컨 : "국민의, 국민에, 국민을 위한..."
언론 : "국민을 빌미로 하는 국가 정책에 국민은 피곤"
니체 : "신은 죽었다."
언론 : "현정권, 신이 죽도록 뭐 했나?
얼마나 도를 닦고, 공부를 얼마나 해야 이 정도의 순발력이 길러질 수 있을까? 수십 년 동안 문학을 공부한답시고 강호의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강설을 듣고 서재에 앉아 고금의 서적들을 뒤져왔건만, 이제 겨우 고리타분한 논문 몇 편 끄적거리는 방법이나 간신히 터득했을 뿐이다. 그런데 대체 누가 얼마나 도를 닦았기에 이리도 오묘한 논설을 베풀어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총리후보 문창극 선생의 등장과 퇴장 사이에 이 땅의 저질 언론들과 저질 정치인들이 벌이는 코메디를 보며 자못 분개한 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기록하여 후대에 전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해온 것이 사실이다. 처음 언론에 뜬 동영상을 들어본 뒤 문 선생이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바탕으로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젊은 시절 감명 깊게 읽은 함석헌 선생의 말을 뒤집어 저질 언론들에 한 펀치 던져주려고 마음 먹었을 때, 내 생각을 미리 짚어낸 듯한 <동아일보> 송평인 논설위원의 글을 접하게 되어, 그마저도 포기하고 앙앙불락(怏怏不樂)하던 차 이 ‘경구(警句)’를 접하게 된 것이었다.
편 갈라 싸우는 이 땅의 저질 언론들과 저질 정치인들의 ‘꼼수’, 그 얕디얕은 근저를 어쩌면 이렇게도 명쾌하게 파헤칠 수 있을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각종 꼼수들과 부조리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장강대하의 언설이나 논문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배가 맞아 돌아가는 언론과 정치인들. 그들이 함께 몸을 담그고 있는 ‘저질성’의 근원이라야 한 치 깊이도 안 되는 것을. 그걸 분석하기 위해 무슨 정치학이나 인문학의 심오한 이론이 필요할 것이냐!
저질 언론들의 숲속에서 한 치도 안 되는 필봉을 ‘조자룡의 헌 칼 쓰듯’ 휘두르는, 이른바 논객들은 부끄러움을 알고 조용히 붓을 거두는 것이 옳다. 이 경구를 음미하면서 당신들이 농하는 ‘현학의 허세’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심기만 불편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강호에 숨어 빙긋이 웃으며 넌지시 던지는 현자의 발언에 더 이상 토를 다는 일이야말로 대단히 ‘옳지 못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