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9. 8. 07:32

 

 

 

역사의 고비들을 지나며 많은 차별을 겪어 온 것이 우리 민족이다. 대외적으로는 중국, 일본, 서구세계 등이 차별을 자행했거나 하고 있고, 대내적으로는 왜곡된 권력의 지형에 의한 지역과 계층적 차별의 구도가 지속되고 있다. ‘식민 : 피 식민은 식민주의 시대의 도식화된 차별구도였고, 그로 인한 민족적 자존심의 끔찍한 손상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탈 식민의 조류가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지만, 차별구조는 보다 예리하게 내면화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다. 일본인들에게서, 백인들에게서, 그토록 차별과 멸시를 받고 살아 왔으면서도 일자리를 찾아 온 동남아 사람들과 흑인들을 잔인하게 차별하는 우리 아닌가. 오랜 기간의 학습을 통한 만큼 내면에 들어앉은 차별구조의 똬리를 집어던질 법도 하건만, 우리는 차별구조의 예각화라는 폐습의 대물림을 반복하고 있다.

 

엊그제, 어떤 신문에 서울대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의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스누라이프란 15만여 명의 서울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펴는 인터넷 사이트인데, 최근 다른 대학 학부 출신 서울대 대학원생들을 커뮤니티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이 사이트의 게시판에 빈번히 올라오고 있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 모양이다.

 

 


대학신문(大學新聞)(2010. 09. 05.) 기사에서

 

9만 평방킬로미터 남짓의 작은 나라에 올망졸망 200개가 넘는 4년제 대학들이 모여 서열화와 차별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그 중 서울대 사람들이 떠는 위세는 참으로 가관이다. 이른바 순혈주의로 미화되는 배제의 논리, 그 연원이야말로 지독하게도 식민주의적 차별의식으로부터 나온 것일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학자 하나, 사상가 하나, 정치인 하나, 기업인 하나 키워내지 못하면서, 이른바 최고 학문의 전당임을 자랑하는 모습에서 우리의 천박성은 극명하게 확인된다. 가까스로 식민주의의 터널을 빠져나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우리의 자화상이 바로 이 대학이고, 휘청대는 한국 지식사회의 민낯 또한 이 대학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우리가 이 대학만 나무란다면, 너무 불공평한 일일 것이다. 무소불위의 힘을 지닌 정권과 교육정책 당국, 아니 무엇보다 이 대학에 대하여 무조건적 신뢰를 보내는 국민 전체의 맹목을 질타해야 함에도 대학만 나무라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망각하는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맹목이 이 대학을 망치고, 지식사회를 망치며, 궁극적으로 나라까지 망치게 될 거라는 전망이 그리 어렵지 않음에도, 우리는 날만 새면 줄 세우기와 차별의 무익한 수작으로 날밤을 지새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누라이프에 횡행한다는서울대생들의 언동은 새삼 근원을 찾아 뿌리를 뽑을 여유가 없을 정도로 다급한 발등의 불이다.

 

어찌 학생들만 나무랄 일인가.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고, 학생은 선생의 거울이다. 부모의 입장에서, 선생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잘 하는가 못하는가를 알려면 자식이나 학생을 보면 안다. 순혈주의란 지금의 학생들이 만들어낸 문화가 아니다. 식민 시대부터 서울대에 온존해 있던 독점적 배타주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대학 특히 서울대학의 교수자리는 으레 서울대 출신이 맡아야 하는 것이 상식으로 통용되어온 그간의 세월이었다. 아무리 학문적으로 특출한 업적들을 갖고 있어도, ‘서울대학도 못 나온 주제에 서울대생들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느냐는 논리가 바탕에 깔려 있는 한, 순혈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 대학 경쟁력으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미국의 대학들에 가보라. 자교 출신들은 아예 그 학교에 서류를 낼 엄두도 못 내도록 되어 있다. 기껏 5% 내외의 자교 출신 교수진을 갖고 있는 것이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다. 어느 대학을 나왔든 해당 분야에서 이룩해온 업적이나 앞으로의 가능성이 인재를 뽑는 기준일 뿐, ‘서울대를 나온 사람만 서울대 교수가 될 수 있다는 서울대 식(혹은 한국식)의 배타적 기준은 그들 마음속에 아예 없다. 여기서 생겨나는 대학의 경쟁력은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서울대나 그 언저리 대학들이 형성하는 공고한 카르텔에 지체되는 것은 나라와 민족의 발전이다. 열린 마음으로 모든 이들을 포용하고 경쟁해야 할 새싹들이 배타적 순혈주의로 무장하게 된 것도 이들 폐쇄된 공간에서 대물림해온 못난 카르텔의 논리탓이다.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한 입시제도와 그 제도에 의한 순간적 간택(揀擇)’을 일생 지속되는 배타적 권리의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것을 이제 막 대학에 들어온 젊은이들의 행동지표로 삼게 해서도 안 된다. 학생들로 하여금 겸허한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업적을 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는 인물이 되도록 인도하는 것이 그나마 지금의 서울대가 국가와 민족에게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런 생각만이 서울대 스스로의 경쟁력을 갖추게 하고, 지식사회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나라를 건전하게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누라이프 게시판 논란은 서울대 혹은 한국 대학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일 뿐이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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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 주관적인 생각이 많이 담겨있는 댓글입니다.


    작성자님이 좀 편견에 사로잡혀있는거 같네요.
    스누라이프라는 사이트는 디씨인사이드나 오유같은 개방적 공개적 커뮤니티가 아니라 애초부터 그 구성원들이 배타적으로 이용할수 있게 만든 커뮤니티에요.
    저들이 주장하는 순혈주의는 서울대보다 이른바 서열이 낮은 대학교 출신이랑은 같이 안놀겠다, 우리만 엘리트다 뭐 이런 취지의 것이 아닙니다.

    사회에서는 서울대생이 자신의 학벌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면 재수없다고 몰매를 맞기 일쑤이고 당연히 남들도 다 비슷한 배경지식을 가지고있을거라고 판단하여 내뱉은 말이 똑똑한 척으로 오해받을 때도 많죠.
    스누라이프는 그런 서울대생들끼리 눈치 안보고 얘기할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트의 운영취디는 그러한 자유의 보장이라고 보고요.
    순혈주의 논쟁이 나온것은 스랖의 게시물이 외부로 자주 유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타대생들의 폐쇄적 커뮤니티로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스랖에서는 서울대생들끼리 솔직하게 하는 얘기가 주로 올라오는데 그걸 타대 커뮤니티에 퍼나르고, 그걸보면서 역시 서울대새끼들은 이기적이라는 둥 재수없다는 둥 사회성 부족하다는 둥 뭐 이런 얘기를 들으니깐 타대학부출신은 스랖에서 배제시키자는 얘기가 나오는 겁니다.
    뭐 그 주장이 좀 부적절한 면이 있긴 합니다만 작성자님이 보는대로 서울대생들이 지만 잘났다고 비서울대생을 배제하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자기들한테 돌아오는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거죠.
    작성자님은 서울대생이 서울대생이라는 것에 대하여 자부심을 느끼는 것마저 삐딱하게 보는거 같기도 한데, 최고 수준의 기업인? 최고 수준의 학자? 이런거 배출 못하면 자부심도 못 가져야하는지는 의문이네요ㅎㅎ
    여튼 서울대생은 국민이 투표로 뽑은것도 아니고 그냥 한국청년중 공부 꽤나 잘하는 애들로, 특별한 책임감을 가질 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뭐 어차피 최고의 학문의 전당도 아니라면서요. 그니까 서울대 애들도 충분히 자기 이익을 주장할수 있는 것이지, 서울대씩이나 돼서 차별을 하면 되겠어? 떽!
    이런식의 태도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2015.10.05 00:41 [ ADDR : EDIT/ DEL : REPLY ]
    • 백규

      lee 님!
      제 홈피를 방문해주시고, 좋은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자세한 상황을 알아보지 않고, 신문보도만을 근거로 제 설익은 생각을 펼쳐놓은 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 사회의 비판이 이번 일에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이번 일이 어쩌면 잠재되어 있던 우리 사회의'서울대 불신'을 터뜨린 뇌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의 사건이나 사례를 일반화시켜 서울대인들을 폄하하는 것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지요. 그러나 백보를 양보하여 님의 말씀이 맞다해도, '비밀자료'를 '서울대인들' 사이에서만 공유하기위해 그런 사이트를 만든 것도 사려깊은 일은 아닙니다. 수만 명의 회원들이 있을텐데 어떻게 인터넷 공간의 비밀을 유지하며 공유할 수 있단 말입니까. 철통보안을 지향하는 원자력발전소나 군대의 비밀자료들도 수시로 탈취되는 세상인데요. 더구나 서울대인들끼리만 독점해야 할 비밀이 있겠어요?
      물론 남들의 사이트를 몰래 들어가서 그 사이트의 회원 행세를 한 것까지 옹호할 마음은 없습니다. 들어오지 말라는데 굳이 들어가서 가족행세를 한 것은 일종의 범죄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진짜로 비밀을 유지하고 싶었다면 다른 방법을 택했어야지요. 수만 혹은 수십만(?)의 서울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런 목적의 사이트가 그렇게 허술해서야 쓰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여러분이 말씀하시는, '순수하지 못한 혈통의 서울대인'을 차별하는 일입니다. 예컨대, 다른 대학을 나온 뒤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하여 '관악인으로서의 긍지'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학부때부터 서울대인'과 구별 혹은 차별되어야 하는지, 저같은 바보는 이해할 수 없네요. 진짜 서울대인이라면 이들을 좀더 적극적으로 포용하고 '내 사람'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학부때부터 서울대인들'은 '대학원때부터 서울대인'들이 알아서는 안될 무슨 엄청난 비밀을 갖고 있다는 것인지요?
      이제 대한민국의 실상을 깨달아 주실 때가 되었어요. 면적으로, 미국 한 개 주의 반이나 칠팔분의 일 정도의 크기에 지나지 않는 우리나라입니다. 거기에 5천만이 바글바글 모여 살고 있지요. 이런 때 서로 몸 당겨 앉아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가며 단결해도 모자랄 판에 뭐 서로를 가르고 차별할 필요까지야 있겠어요? 그거야 말로 '자신 없음'의 표현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행태이지요. 그런 점을 지적한 것이지요. '서울대인들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것이 뭐가 있느냐?' 식의 비판이 핵심은 아닙니다.
      그러지 않아도 기득권층으로 오해받고 있는 서울대인들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좀 더 넓고 미래지향적인 금도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 온국민의 희망인데, 이번 사건은 그 반대였다는 점에서 실망스러웠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여러분의 '자유와 권리'를 내세우며 반발하기 이전에, 서울대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희망이 큰 데서 나온 일이었음을 인식하고 앞으로는 좀 더 넓은 가슴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그게 진정한 리더의 자질이자 의무임도 부디 잊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댓글 달아주신 일에 거듭 감사드리고, 그에 대한 제 생각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2015.10.14 05:32 [ ADDR : EDIT/ DEL ]
  2. 한국은

    헬조선.

    2015.10.05 18:47 [ ADDR : EDIT/ DEL : REPLY ]
  3. 백규

    아니올시다. 한국만큼 역동적인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그러니 좀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노력해 보십시다.

    2015.11.09 21:59 [ ADDR : EDIT/ DEL : REPLY ]
  4. ㅇㅇ

    대부분의 대학들은 학내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세대에 경우 학부출신들만 이용가능하며, 이화여대에 경우 학부출신들만 이용가능한 것을 넘어서 특정 과정을 거친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도 따로 존재합니다. 서울대 커뮤니티에서도 싸이트를 서울대학부출신들만 이용하자라기보다는 학부출신들만 이용할 수 있는 게시판을 만들자라는 의견에서 시작되었던 겁니다. 이화여대, 연세대는 괜찮지만 서울대는 이런 의견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기사화 되고 욕을 먹어야하는 건지 의문이 드네요.

    2015.12.07 12:03 [ ADDR : EDIT/ DEL : REPLY ]
  5. 작성자님, 뭔가 오해하고 계시는거 같은데 스누라이프는 우리만 자료를 공유하고자 만든 비밀공간이 아닙니다. 그런 의도보다는 오히려 윗분이 말씀하신대로 그저 같은 학교의 동문들끼리 추억이나 감정을 공유하는 의미가 크지요. 연세대, 고러대, 부산대 기타 등등 대부분의 대학들이 자신들만의 공간을 가지고있는데 왜 서울대생들은 그런 공간마저 보장받지 못해야합니까? 정보 공유의 비밀성이나 결집력 같은 면에서는 연세대 고려대 등 기타 상위권 대학들이 더 강한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서울대 커뮤니티는, 단점이라고도 할수있겠는게 그런 정보 공유가 강한 편이 아니에요. 개인이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더 많기 때문이지요.. 서울대는 국립이라는 이유로 도서관 등에도 구성원 이외의 사람을 많이 받아주고있고, 그때문에 자교를 이용해야할 구성원들이 오히려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습니다.
    타대생 대학원생들을 내쫓자는 이야기는, 무작정 그들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들이 서울대 커뮤니티에서 서울대생들에 대해 비난하거나, 혹은 자료를 유출하는 등의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죠. "순혈주의"가 아니라 서울대생들의 커뮤니티에서 서울대생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 때문에 그런겁니다. 오히려 서울대 내에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타대 대학원생들에게 따뜻한 호의로 받아주는 사람들도 많아요.

    2015.12.10 23:00 [ ADDR : EDIT/ DEL : REPLY ]
  6. 백규

    사실이 그렇다면, 저를 비롯한 일부 사회인들이 오해를 한 모양입니다. 처음 의도가 그렇지 않았다 해도, 맥락과 상황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오해될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인 듯 합니다. 혹시 본의 아니게 경솔한 판단을 내렸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부정적 행태에 대한 '노파심'으로 이해될 수 있다면, 이곳에서의 논란도 그리 무익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조만간 이 문제에 대한 제 견해를 좀 더 신중하게 이곳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2016.01.02 22:02 [ ADDR : EDIT/ DEL : REPLY ]
  7. ㅠㅠ

    솔찍히 우리사회가 서울대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사실이지요. 이런거 보면 서울대생들도 좀 불쌍해요.

    2016.01.05 07:09 [ ADDR : EDIT/ DEL : REPLY ]
  8. 백규

    엄격한 잣대를 서울대에게만 들이댔을 수도 있지만, '경쟁과 평가의 공정함'이나 '앞서 가는 자들의 여유있는 아량' 등의 관점에서 혹시 소홀한 점은 없었는지, 함께 반성해볼 필요는 있을 겁니다.

    2016.01.09 15:56 [ ADDR : EDIT/ DEL : REPLY ]
  9. 스누라이프가 애초에 서울대생 중에서 일부만 사용하는 사이트고,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인데 서울대생 전체를 싸잡아서 매도하는건 옳은 건가요? 남 욕하기 전에 본인의 모습을 먼저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2016.03.24 20:50 [ ADDR : EDIT/ DEL : REPLY ]
    • 맞는 말씀이오. 싸잡아 매도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그렇게 읽혔다면 어설픈 글 솜씨 때문일 겁니다. 본의 아니게 미안하군요.

      2016.09.15 23:46 신고 [ ADDR : EDIT/ DEL ]
  10. visitor

    헤헤.. 서울대 14학번 재학생입니다.
    동기들 사이에서는 스누라이프에 대한 평이 매우 안좋아요.. 극단적으로는 서울대X베 라는 표현까지도 쓰이고.. 분명 이용하는 동기가 있는거 같지만 대놓고 사용한다라고는 못하는 분위기?
    그나마 스누라이프가 가끔 언급되는 것은 얼마전 서울대학교 강의평가 사이트가 파피루스라는 곳에 강제적으로 이동하면서, 거부감을 느낀 학생들이 스누라이프쪽으로 강의평가를 옮김에 따라서 강의평가 확인, 또는 강의실 족보 확인 용도로 스누라이프를 사용하는 학생들이 좀 있기는 하지만.. 스누라이프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학생들은 서울대에서도 소수이고, 그마저도 마이너한 집단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2016.09.02 01:32 [ ADDR : EDIT/ DEL : REPLY ]
    • 그렇군요. 좋은 정보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디에나 그런 친구들은 있지요. 그들의 목소리가 담장 밖으로 나가면 가족들이 부끄러워지고요. 앞으론 좀 더 살펴보고 글을 써야겠네요. 거듭 고맙습니다.

      2016.09.15 23:47 신고 [ ADDR : EDIT/ DEL ]
  11. ㅇㅇㅇㅇ

    솔직히 우습다. 그래 "서울대생들"만 모여있다니깐 그걸 '배타적'인 집단으로 깎아내리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누라이프가 거대한 권력집단도 아니고 그저 재학생들끼리 모여서 자기 생각을 얘기하고 나누는 그런 커뮤니티이다. 그리고 그런 커뮤니티는 어느 대학이나 소유하고 있다. 즉 만들어진 목적 자체가 그 대학교 학생들끼리 자기들의 얘기를 나누는 곳으로 출발했다는 얘기다. 다른 대학들도 모두 소유하고 있을진데 왜 서울대생들만 이를 오픈해야 하는가? 그 안에서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거대한 음모가 공유되는 것도 아니건만... 그저 열등감일 뿐이다. 그 울타리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특별한 일이 벌어지는 것도 아니건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서 이래저래 가십거리를 뽑아내고자 하는 관음증이며 열등감일 뿐이다.

    2016.09.17 17:07 [ ADDR : EDIT/ DEL : REPLY ]
  12. 말리부

    줄세우기에 따른 상대적 자리매김에 익숙한 대한민국 학생의 공통현상이라 생각함ㆍ학부출신 기준뿐 아니라 다시 입시전형유형별로 쪼개서 따지고 전공따지고. . .결국 배타적 동류를 세분화해서내가 얼마나 상대적으로 잘났는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심리ㆍ
    고3년 동안 줄세우기 보상틀에 길들여진 휴유증이죠ㆍ고등학교 졸업했으면 이젠 그 유치한 강박관념 벗어나야겠죠?

    2016.10.08 21:45 [ ADDR : EDIT/ DEL : REPLY ]
  13. ㅇㅇ

    작성자님이야 말로 줄세우기 엘리트의식 등과 같은 문제에 매몰돼 있는게 아닌지? 정작 서울대 스누라이프는 그런 생각도 안 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혼자만의 착각이 아닌지? 개방된 커뮤니티가 돼 버리면 외부인들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비서울대인들이 커뮤니티 글들을 보고 스누라이프 내에 있는 글들을 제 입맛대로 해석할 여지가 있거든요. 서울대생인데 이런 생각을 하네? 서울대생인데 이런 의견을 내네? 제 3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제 3의 공간으로 퍼졌을 때 받는 피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굳이 커뮤니티가 아니어도 서울대생 이라는 타이틀로 행동에 제약을 받고 사는 서울대사람들일텐데, 커뮤니티에서만이라도 자유로운 생각과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보장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2017.09.03 12:51 [ ADDR : EDIT/ DEL : REPLY ]

카테고리 없음2008. 12. 26. 15:34

우리 지식사회의 천박성
 
                                                  조규익(숭실대 교수)

                                                                                            

최근 고려대 경영대의 이미지광고로 이른바 ‘도토리 키 재기 담론’이 촉발되었고, 광고에서 상대로 지목된 서울대나 아예 거론도 되지 않은 연세대의 당사자들이 소극적으로나마 반응하면서 우리 지식사회의 천박성은 표면화 되고 있다.
 왜 이 시기에 이런 문제가 거론되었을까. 그리고 그것은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의식과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을까.
 생물이 존재하는 곳에서 경쟁은 생존의 필수적인 방식이고, 경쟁이 배제된 집단이나 경쟁에서 밀려난 집단은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인간사회의 어느 분야보다 심한 경쟁의 복판에 놓여있는 것이 대학사회다.
 인간이나 동물은 생존에 충분한 자원이 확보된 공간에서만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충분한 자원이 확보된 경우에는 경쟁보다 공존의 원리가 더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자원이 고갈되어 같은 것을 추구하는 무리들이 공존할 수 없을 경우 경쟁이 심화되고, 결국 힘이 약한 존재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인구 증가의 둔화로 취학아동들이 줄어들고, 그에 따라 대학 진학인구 또한 급감하고 있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대학 진학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 집단 속의 우수자원도 같은 비례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하고, 지금까지 우수자원들을 독점 혹은 균점해오던 세칭 일류대학들은 ‘피나는’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경쟁이 심화될 경우 페어플레이보다는 좀 더 자극적인 방법이 동원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기성의 사회 통념을 넘어서는 데서 그 자극성이 기능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번의 고려대 경영대 광고는 ‘점잖음’을 바탕으로 하던 기존 지식사회의 통념을 깼다고 할 수 있는데, ‘자원고갈’의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어있는 생존방식의 새로운 단초쯤으로 보아야 한다. 먹이가 줄어들면서 이빨을 드러내고 싸움을 벌이는 사바나의 동물세계나 경기후퇴로 시장이 줄어들면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시장의 영역과는 달라야 하는 것이 지식사회다.
 지식의 생산과 응용에 종사하는 지식노동자가 권력을 갖게 되는 것이 지식사회라면, 거기에 속한 구성원들은 지식의 세련성에 상응하는 도덕성과 질서의식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고등교육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지식인들이고, 인성의 도야는 고등교육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주장한 바와 같이, 지배계급에 의해 주어진 자본으로서의 지식을 민중문화의 고양에 사용할 것, 지식인 고유의 목적인 보편성이나 사상의 자유와 진리 등으로 인간의 미래를 전망할 것, 모든 권력에 대항하여 대중이 추구하는 역사적 목표의 수호자가 될 것 등은 이 시대 지식인들의 책무다.
 좋은 지식의 교육을 통해 인간사회에 기여할만한 인재를 키워내는 일이야말로 지식사회를 대표하는 대학들의 사명이다. 지식의 보편성 및 사상적 자유와 진리는 지식인 최고의 무기이고, 그것만이 인간의 긍정적인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을 압살하는, 잘못된 권력에 대항하여 인간사회를 수호할 수 있는 것도 지식의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느냐에 대한 평가는 제3자가 하는 것이고, 그 평가에 따라 인재들이 모여드는 집단이 제대로 된 대학이다.
 ‘고만고만한’ 집단들 속에서 ‘너보다 내가 잘 났다’는 광고문구 하나로 인재들의 눈과 귀를 호릴 작정이었다면, 그 주체들은 이미 지식사회의 일원이길 포기해야 한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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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10. 12. 17:46

교수개혁이 대학의 개혁이다

개교 110주년. 개교 이래 한 세기를 넘기고 10년이란 세월이 더 흐른 시점이다. 어느 공동체이든 한 세기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대략 ‘조(祖)-부(父)-손(孫)’ 3대의 계보가 완성되는 기간이며, 처음에 표방한 이념을 완성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하다. 거기에 ‘강산도 바뀔 만한’ 10년이 더 흘렀다.

제대로라면 새 세기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방향 지표에 구성원들의 총의가 결집되어 벌써 출발선으로부터 훨씬 멀리 떠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숭실의 구성원들은 그런 지향점을 공유하고 있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KAIST와 서울대 등 앞서 가는 몇몇 대학들은 교수들에 대한 평가를 엄정하게 함으로써 대학의 분위기를 일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학문과 지식사회를 선도하는 이들 몇몇 대학들은 대학의 수월성을 교수집단에 대한 엄격한 관리에서 추구하려고 한 것 같다. 만시지탄의 느낌은 없지 않으나, 맞는 방향이다.

사실 대학은 개혁되어야 하고, 대학개혁의 핵심은 교수개혁이다. 교육의 핵심은 교수에 달려 있고, 교수는 엄격한 평가에 의해 관리되어야 한다.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기백명의 학생들, 적게는 10명 이내에서 많게는 십 수 명의 교수가 모여 이루어진 것이 대학의 학과들이다. 매년 많은 수의 학생들이 사회로 배출되고, 그들은 각계로 흩어져 대학에서 자신들이 배운 대로 행동할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사회의 핵심적 위치에 서게 되고 그가 이끄는 공동체 역시 그들의 생각대로 굴러가게 된다.

교수들이 잘못 된 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경우 학생과 학교, 사회와 국가의 피해가 말할 수 없이 크리라는 점은 묻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다. 그간 온정주의나 연공서열 중시의 분위기에서 ‘편안하게 지내온’ 일부 교수들이 만에 하나 동료나 후배교수들을 ‘패거리’로 묶어 지배하려고까지 한다면, 학문은 실종되고 술수나 음모가 판치는 ‘조폭사회’로 변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것도 바로 교수사회다.

학문적 담론의 질과 양, 강의를 비롯한 학생들에 대한 서비스의 질과 양으로 교수 자질의 적격 여부가 결정되어야 하고, 그것이 교수들에 대한 우대와 퇴출의 절대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교수들에 대한 평가가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논문 한 편 없어도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었고, 한 번 교수가 되면 ‘어영부영’ 정년보장이나 받는 교수들이 적지 않은 집단이라면, 대학의 간판을 내려야 할 것이다. (국문과 조규익 교수)

*이 글은 숭대시보 No.955, 2007년 10월 8일자 사설입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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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7. 14. 11:57
*신정아 사기사건을 보며 참담함을 금할 수 없군요. 제가 옛날에 쓴 칼럼이 있어서 다시 이곳에 올려 봅니다. 우리가 학벌의 환상을 좇는 한 우리 사회에 '가짜박사' 사건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함께 반성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이 글은 조선일보 2006. 3. 27. 시론입니다.


-원문보기 클릭-



[시론] '가짜박사' 부추기는 사회


허술한 검증에 간판 중시 ‘지식범죄의 온상’ 돼버려


▲ 조규익 숭실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최근 며칠째 가짜박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사건은 곪을 대로 곪은 우리 지식사회의 아름답지 못한 이면을 만천하에 노출시킨, 일종의 ‘테러’다. 피터 드러커의 설명처럼 지식 노동자가 권력을 갖는 사회가 지식사회라면 이 땅의 총체적 부패는 지식인들로부터 연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추악한 테러의 무대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넘어 러시아와 필리핀까지 번졌으니 다시 어느 나라가 이 행각의 새로운 현장으로 연루될지 자못 불안하기만 하다. 한국판 지식 범죄의 국제화라고나 할까. 얼마 전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던 우리 학자들의 표절사건, 온 국민을 망연자실하게 만든 ‘황우석 사건’ 등과 함께 이번의 가짜박사 사건으로 우리의 지식사회는 결정적인 카운터펀치를 맞은 셈이다. 우리나라의 국제 경쟁력이 하락 국면으로 접어든 것도 국가 발전을 선도해야 할 지식사회의 휘청거림과 무관치 않다.
지금 우리는 가짜박사 학위를 남발한 외국의 대학들을 나무랄 처지가 아니다. 그런 대학들에서 사온 가짜 학위로 학술진흥재단에 학위등록을 하고, 어엿한 대학의 교수직에까지 올랐으니 문제의 근원을 우리에게서 찾는 것이 옳다. 가짜박사를 교수로 채용할 정도로 진짜와 가짜도 걸러내지 못한 수준이 우리 대학들의 한심한 실태다. 이런 현상은 지식사회의 마비된 양식, 국가의 학문정책 부재, 대학개혁의 실패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지금 우리나라 대학들은 개혁의 열풍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하드웨어의 치장에만 주력할 뿐 정작 개혁해야 할 본질적 대상은 초점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개혁의 목적은 대학정신의 정립에 두어야 하고, 그에 걸맞은 제도의 신설이나 보완이 그 구체적인 방향이어야 한다.

세계에서 우리나라는 박사학위 보유자 비율로 선두권에 서 있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검증 시스템이 없거나 부실한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필연적으로 저질박사들의 온상 혹은 가짜박사들의 은신처가 되기에 딱 알맞은 곳임을 보여주는 점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손쉽게 입수할 수 있는 지식정보가 널려 있고 표절행위 또한 여전한데, 오히려 논문의 심사단계는 전보다 간소화되고 있다. 적으면 한두 번, 많아야 서너 번의 심사가 박사논문 검증의 전부다. 박사 학위의 양산체제에 온정주의까지 가세하여, 저질논문을 걸러내기란 더욱 어렵다.

지금 기업들은 대학의 박사학위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대학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관들은 반드시 박사학위를 요구한다. 아무리 실력이 출중하고 연구업적이 뛰어나도 박사학위가 없으면 아예 서류조차 낼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채용 과정에서는 가짜박사를 걸러내지 못한다.

구태의연한 검증 시스템과 지식사회의 낮은 윤리의식, 실력보다 학위를 중시하는 인력 수요자들의 무감각이 지속되는 한 가짜박사는 사라지지 않는다. 가짜박사들은 죽은 지식사회에 기생하기 마련이다. 지식사회의 핵심인 교수들에게 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의식과 성실한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발표된 서울대의 교수윤리헌장은 늦었지만 적절하다. 지식사회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진리다.


(조규익 숭실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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