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9. 2. 9. 01:52
 

스페인 기행 5-3 : 깔끔한 백색과 지중해의 만남, 그 청아한 미학 - 말라가, 미하스, 론다의 정열과 신선함


미하스에서 두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인구 3만여명의 아담한 도시 론다(Ronda). 투우와 협곡의 도시였다. 버스에서 내려 잠시 공원을 가로지르니 절벽이 나타나고, 절벽 아래로 한 줄기 강이 흐른다. 과달레빈강(Rio Guadalevin)은 협곡 타호(Tajo)를 만들었고, 론다는 협곡 사이의 바위산에 위치해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절경이었다. 협곡을 사이에 두고 시가지는 둘로 나뉘어 있었다. 구시가와 신시가를 연결하는 것은 뿌엔떼 누에보(Puente Nuevo), 즉 새 다리였다. 과연 장관이었다. 1793년에 만들어진 다리의 높이는 90~100m에 달하고, 교각에는 감옥으로 쓰인 공간들도 보였다. 내려다보기에도 아찔한 이런 규모의 다리를 18세기에 건설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다리 앞의 스페인 광장에는 레스토랑과 까페 등이 있어 협곡을 감상할 만한 곳들이 즐비했다. 다리를 건너 헤밍웨이가 잠시 거처하던 집을 구경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천년의 고독>의 작가 마르께스의 생가를 만나기도 했다. 가는 곳마다 문화와 역사가 서려 향기를 내뿜는 곳이 론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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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론다 구 시가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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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론다에서 내려다 본 협곡 아랫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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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론다의 신 구시가지를 이어주는 푸엔테 누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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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께스 생가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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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밍웨이가 잠시 머물던 집>

 다리를 건너 구시가인 시우다드(La Ciudad)로 오니 15세기 후반까지 이어진 이슬람 왕조 지배의 흔적이 도처에 남아 있었다. 마르께스 살바티에라 궁전, 이슬람 목욕탕인 바뇨스 아라베스 등이 있고, 산타 마리아 라 마요르 성당도 보였으며, 옛날 성벽도 일부나마 남아 있었다. 협곡 아래에 남아 있는 로마시대의 유적들도 우리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인상적인 사실은 론다가 투우의 본산지라는 것.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 된 바로크 양식의 투우장과 투우박물관이 있었다. 이곳이 바로 근대 투우의 발상지였다. 동상으로 세워져 지금도 추앙을 받고 있는 로메로와 그 일가를 비롯한 많은 투우사들이 이곳 출신이었다. 투우박물관에는 스페인의 걸출한 화가 고야(Goya)가 그린 투우그림도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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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우장 앞 황소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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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우장 내부>

 협곡 사이 바위산에 세워진 작은 도시 론다. 그러나 그 도시는 아름다웠고 역사와 전통의 숨결 또한 단순치 않았다. 옛날 것들은 그것들대로, 지금의 것들은 그것들대로 존재의 의미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는 도시가 바로 론다였다. 역사의 갈피마다 사소한 것들도 그냥 흘려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가꾸는 도시가 바로 론다였다. 시간의 흐름에 등떠밀려 떠나야 하는 우리의 마음에 론다가 강렬하게 각인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이제 우리는 또 다른 문화와 역사의 도시 세비야로 간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9. 2. 9. 01:28
 

스페인 기행 5-2 : 깔끔한 백색과 지중해의 만남, 그 청아한 미학 : 말라가, 미하스, 론다의 정열과 신선함


말라가로부터 고지대를 향해 30분쯤 달렸을까. 온통 하얀색의 마을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쩌자고 이 마을 사람들은 이리도 벽마다 순백의 붓질을 해댄 것일까. 거리는 좁좁 했으나 아기자기 예뻤다. 각종 선물가게, 성당, 레스토랑들 사이 골목길로 오가는 사람들도 관광객을 빼곤 대본에 따라 움직이는 배역들처럼 이채로웠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엔 바위를 뚫고 만든 성당 혹은 신전이 있었다. 비르헨 데 라 페냐(Virgen de la Pena)란 이름의 성당으로, 이 마을의 수호 성녀인 긴 머리의 여성상이 모셔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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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하스 주택들의 순백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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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하스의 비르헨 데 라 페냐>
 
사각형 모양의 앙증스런 투우장도, 미니어처 박물관도 있었고, 말과 나귀들은 정류장에 우두커니 서서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하스의 순백과 지중해의 에메랄드 빛은 햇빛과 어울려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토로스 광장, 라 꼰스티누씨온 광장, 비르헨 데 라 뻬냐 광장, 라 인마꿀라다 가톨릭 용품점, 아마폴라 기념품점, 에네 기념품점, 초 세라믹 상점, 엘 빠드라스트로 레스토랑, 뽀라스 커피숍, 미하스 호텔, 미하스 박물관, 산 세바스티안 교회, 깔바리오 교회 등등 작은 마을엔 두루 꼽기에도 숨찰 만큼의 멋진 건물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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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하스 산 세바스티안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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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하스 투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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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하스 선물가게 바깥 벽>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9. 2. 9. 01:02
 스페인 기행 5-1 : 깔끔한 백색과 지중해의 만남, 그 청아한 미학 - 말라가, 미하스, 론다의 정열과 신선함


1월 26일. 말라가(Malaga)의 엘 삐나르(El Pinar)호텔에서 1박을 하고 난 우리는 아침 일찍 지중해의 물 내음을 맡기 위해 해변으로 달렸다. 말라가는 꼬스타 델 솔(Costa del sol) 즉 태양의 해변으로 가는 관문. 시간에 쫓기는 나그네들이라 태양의 해변에서 지중해의 맛을 음미한다거나 피카소의 고향인 이곳에서 그의 붓놀림을 상상하고 있을 여유 또한 없었지만, 허파 가득 바닷바람이라도 담아가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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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쪽에서 바라본 말라가 주택가>

 지중해가 요동치던 시절부터 푀니키아, 로마, 이슬람의 지배를 받은 말라가. 1487년 기독교 왕국이 이슬람의 그라나다 왕국으로부터 지배권을 회복함으로써 이 도시에 굴곡진 역사의 나이테를 더하게 된 것이다. 대성당이나 성터 등 시내 요소요소에 남아있는 역사 유적들은 변화무상하게 진행되어온 이 지역 역사의 살아있는 증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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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쪽에서 바라본 말라가의 원경>
 
무엇보다 이곳이 피카소의 고향으로서 그의 생가가 남아있고, 피카소 미술관도 있다는데, 가이드의 재촉으로 점만 찍은 다음 우리는 새로운 여정을 향해 사정없이 달려야 했다. 그래도 어찌 지중해의 바닷물과 피카소의 흔적을 모른 척 할 수 있단 말인가. 1881년 10월 25일 이곳 말라가에서 태어난 피카소는 미술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붓을 잡았으며, 천재성 또한 발휘했다. 그는 프랑코 독재체제를 벗어나 프랑스로 망명했고, 대부분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는 미술을 통해 시국의 부조리에 저항했다. 공화국 정부에 대항하던 프랑코를 지원하던 나치 독일이 작은 마을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하여 무수한 양민을 죽인 사건에 분노하여 그려낸 <게르니카>는 그 대표적인 예다. 망명한 후 공식적으로 그가 고향을 다니러 온 적은 없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1년에 한 차례씩 몰래몰래 고향을 다녀가곤 했다는 것이다. 독재정권의 정보력이 어찌 그 점을 몰랐겠는가. 알면서도 모른 척 한 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 화가를 건드려서 득 될 것 없다는 현실적 판단과 동족으로서 피카소에 대하여 갖고 있던 자부심 때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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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가의 텅 빈 백사장>
 
2005년도 파리의 피카소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해변을 달리는 여인들(Women Running on the Beach)’이란 제목의 유화를 본 기억이 생생했다. 분명 지중해 어느 해변을 배경으로 한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혹 여기서 그런 여인들을 만날 순 없을까. 망상에 가까운 상상을 하는 가운데 버스는 도로공사 중인 해변 가 로터리에 우리를 풀어 놓았다. 창밖을 내다보던 나는 순간 경악했다. 로터리 한 복판에 젖통과 허벅지를 드러낸 두 여인이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힘껏 달려가는 동상이 그곳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아, 그렇군. 파리의 피카소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던 그 유화가 이곳에는 동상으로 바뀐 채 싱싱하게 살아 숨 쉬고 있었던 것이다. 시퍼런 지중해의 물속으로 막 뛰어들려는 포즈였다. 파리 피카소 박물관의 그 그림에는 ‘<푸른 기차> 발레 막의 디자인’이란 설명이 붙어 있었다. 한때 무대 미술가로 활약했던 피카소였으므로, <푸른 기차>란 제목의 발레에 맞는 이미지를 여인들의 육감적인 몸매로 표현해내려 했을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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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가 해변에 서 있는 동상-해변을 달리는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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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피카소 박물관에 소장된 해변을 달리는 여인들, 유화, 1922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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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가 해변의 해변을 달리는 여인들과 시가지>

 지중해변 말라가의 해변에서 피카소의 ‘해변을 달리는 여인들’을 친견한 이상, 이 도시에서 더 무엇을 볼 필요가 있을까. 동상의 앞 뒤 양 옆을 돌면서 십 수 컷의 사진을 박은 다음 버스로 돌아왔다. 여름철 내내 이 해변에 가득했을 풍만한 비키니 여인들을 생각하며...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