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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함께읽자] 재치·폭소 넘친 시(詩)와 퍼포먼스의 만남
숭실대 축제서 시 낭송 대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8일 오후 숭실대 벤처관에 설치된 무대 가운데에 선 문예창작과 김용섭 학생은 김춘수의 <꽃>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스스로 촬영한 비디오 대형화면이 비쳐졌다. 화면에서 목욕탕 한구석에 선 그는 '나는 꽃, 용화' 등의 내용이 적힌 종이들을 번갈아 들면서 김춘수의 시구(詩句)와 조응했다. 대형강의실을 메운 150여명의 관객은 연이어 폭소를 터뜨렸다.
숭실대 인문대는 가을축제 기간을 맞아 이날 '시(詩)와 퍼포먼스의 만남, 숭실 시 낭송 축제' 행사를 가졌다. 기성시인들의 시 작품을 암송하되 학생 스스로 창안한 퍼포먼스를 활용해 표현하게 함으로써 대학생다운 창의성을 마음껏 펼치게 한 장(場)이었다. 인문대 학장인 조규익 국문과 교수는 "문학의 해석이 연희(演��)적인 표현으로 전환되고, 문화 콘텐츠의 소비와 생산이 선순환 구조로 연결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총 23개 팀 가운데 본선에 오른 8개 팀이 이날 각자의 재기를 다양하게 펼쳤다. 학생들은 윤동주의 <서시>를 랩으로 부르고,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를 배경으로 그림자극을 보여줬으며, 백무산의 <까마귀>는 아예 록으로 바꿨다. 오규원의 <프란츠 카프카>는 실업자가 넘쳐나는 2009년 한국을 배경으로 한 단막극으로 극화되었다.
이들의 우열을 가린 심사위원들은 2부에서 자신들의 시를 낭송했다. 이번 가을 학기부터 문예창작과 교수로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는 최승호 시인은 "부패해가는 마음 안의 거대한 저수지를/ 나는 발효시키려 한다"는 <발효>를 낭독했다. 문정희 시인은 <나는 나쁜 시인>의 마지막 부분, "중세의 부패한 귀족이 남긴 유적에 숨이 막혔어/ 그 아름다움 속에 죽고 싶었어"를 읽으며 파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