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7.03.24 12:27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님께

 

 

 

 

탄핵 소추가 의결되면서부터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정상적인 국정수행에 대해서도 비판과 비난이 난무하고, 일부 정치세력들의 무리한 딴죽걸기 또한 없지 않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나날이시겠지요. 그러나 비록 한시적인 대행이라 할지라도, 국가원수로서 하셔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봅니다

 

어제 미국의 매티스 국방장관은 상원 세출위원회 국방소위 청문회에서 중국이 주변 국가를 조공국가 대하듯이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두 가지 상념이 떠올랐습니다. 미국의 집권세력이 비로소 동북아의 정치외교적 상황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갖기 시작했다는 점, 상대적으로 역사와 현실의 상관관계에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우리의 현주소를 내 스스로 아프게 파악했다는 점 등입니다 

 

우리는 왜 중국의 시대착오적 패권주의의 악행(惡行)’을 두 눈 멀뚱멀뚱 뜨고 바라보기만 해야 할까요?패권국가란 쉽게 말하여 깡패국가란 뜻일텐데요. 한낮의 대로 위에서 깡패에게 얻어맞으며 똑 같이 깡패처럼 대응할 필요는 없다 해도, 논리 정연한 꾸지람 한 번 건네지 못하는 현실이 통분하여 일개 민초인 저로서는 편안히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세계를 향해서 입을 열 때마다 화평(和平)’을 말하고, 미국의 보호무역을 비판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거짓구호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그 반대의 뻘짓들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흡사 범죄자들이 문서의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귓속말로 속닥거리듯, 자국의 모든 분야 일꾼들에게 한국을 응징하라는 구두지령을 내린 바 있고, 일당독재의 나라답게 그 명령을 받아 기계처럼 움직이는 중국 사람들입니다 

 

공자와 맹자를 낳은 나라라고 믿어오던 중국과 전쟁 없이 살기 위해굴욕에 가까운 저자세 외교로 중세 이래 근대까지 정체성을 근근히 유지해 온 우리민족입니다. 그로부터 무려 2세기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그런 불평등의 관계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오랜 역사의 관성(慣性) 때문일까요? 아니면 힘의 불균형을 바탕으로 한 현실의 부조리때문일까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중국의 패권주의적 행동(깡패 짓’)을 놓고 볼 때, 시진핑이 말한 화평굴기(和平崛起)’란 '근대 이전 중화제국의 재건 혹은 회복을 염원하는 몽상(夢想)이라 할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이 부조리한 현실의 본질을 저 같이 하찮은 민초도 잘 알고 있는데, 하물며 국가원수이신 황 대행님께서야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미국의 국방장관이 먼저 이런 문제를 아프게 지적하고 말았습니다. 그 지적을 시대와 역사에 둔감한 중국의 지도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는 없지만, 저는 한편으로 사이다처럼통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그 말은 먼저 우리 국가원수의 입에서 점잖으면서도 조리있게 표출되었어야 합니다. 혹시 그 언급이 음으로 양으로 매티스 장관과의 교감 하에 생긴 일인가요? 그렇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의도치 않게 <<삼국지>>에서 왕윤이 여포를 시켜 동탁을 죽인 것같은, 일종의 차도살인(借刀殺人)’의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더더욱 떳떳치 못한 일입니다

 

, 이쯤 해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중국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우리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발뺌해도, 사태는 백일하에 드러났을 뿐 아니라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까지 나아갔습니다. 어쩌면 지금 양국 정부가 출구를 찾기 위한 물밑 교섭을 진행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분노와 무력감에 빠져있는 국민들을 위하고 비정상적인 중국 지도층의 사고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국가원수인 대행께서 즉시 나서셔야 합니다. 약간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중국의 지도부와 우리 국민들을 상대로 담화문이라도 발표하셔야 합니다. 매티스 장관이 말한 중국의 '패권국가적 태도'는 대행께서 지적하셔야 할 내용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이젠 당신들의 조공국이 아니라는 것, 이제부터는 화평과 선린우호의 태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조속히 정상국가로 돌아오길 기다린다는 것' 등을 조용하지만 엄숙한 어조로 중국에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의 비이성적 태도로 상처를 입은 우리 국민들에게는 '순리로 그들을 설득하는 동안 국가의 힘을 동원하여 민생을 안정시킬 것이니, 잠시 정부를 믿고 인내해 달라' 당부를 건네는 것이 옳습니다. 대외적인 식견이나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대선 후보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현실이 무엇보다 답답한 요즈음입니다. 그러니 중국이 좋아할 '우물 안 개구리'가 새 대통령으로 등장하기 전에 저들을 향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 두셔야 합니다.      

 

덩치만 크고 속이 좁은이웃을 달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점은 역사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당당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은 자손만대 저 나라와 이웃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숙이고 들어가는 것은 하지하책(下之下策)’도 되지 못하는 어리석음입니다그들이 말도 안 되는 행패를 부리고 있는 점에 대하여 지금 온 국민이 공분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보다 더 중한 국사가 어디에 있을 것이며, 이 문제의 해결보다 더 큰 국가원수의 책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소수의 정파나 인사들을 제외한 모든 국민이 뒤에서 응원을 보내고 있으니, 대행께서는 부디 힘과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02.19 16:10

사랑하는 국문과 졸업생 여러분!

 

 

 

 

대학에 대한 기대와 젊음의 열정으로 반짝거리던 여러분의 새내기 시절이 엊그제인데, 벌써 사회로 나가는 문지방에 서 있음을 보고, 시간이 덧없다는 생각을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서 졸업 축하의 말씀을 전하는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도 교수님들 가운데 내가 맨 먼저 시간의 무상함을 절감하는 계절에 들어섰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을 보며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를 생각합니다우중충한 유신 말기의 냉기가 대지를 덮고 있던 때였습니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내가 대학을 졸업한 뒤 어떻게 입신할 것인가 고민에 싸여 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수렵 채취 시대-농경 시대-산업화 시대-정보화 시대-고도 지식정보화 시대를 두루 거쳐 왔음을 우스갯소리로 내세우곤 합니다만, 사실 내가 당시 농경시대에서 산업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존재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세계사를 관찰할 때 내 세대 즉 한국의 베이비부머들만큼 다이내믹하고 극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도 없는 것 같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로서 고도 경제성장과 1997년 외환위기, 그리고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두루 경험한 세대이지요. 우리 세대 구성원들 사이엔 간혹 금수저도 있었지만,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은 나와 같은 흙수저들 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아 차라리 과감하게 베팅해볼 수 있는나 자신이고 우리였습니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대책 없는' 계획을 세운 뒤 한눈팔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다시 올 수 없다는 절박감이야말로 '몸뚱이' 하나로 '도박판같은 세상'에 나서게 한 동력이었습니다. 어느 시대의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부모 형제가 뒷배를 보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략 20년 전쯤인가요. 차를 몰고 미국 모하비 사막( Mojave Desert)과 그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데쓰밸리(Death Valley)에서 아무도 없는 가운데 황혼을 만났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그 때 느낀 막막함이야말로 나를 위해 책임 져 줄 아무도 없다는 실존적 자아인식으로 이어지는 두려움과 절망감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공자는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겼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는 말이 <<맹자>>에 나옵니다. 공자 역시 어떤 계기를 만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 처한 자아를 인식했고, 그 진실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말이겠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모하비 사막과 데쓰밸리에서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꼈고, 그런 두려움과 외로움은 내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으로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기댈 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인식 위에서 강한 투지가 생겨났고, 그로부터 종이 위에 어설프지만 미래의 시간계획표를 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신입생들을 만날 때마다 시간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그런 권유를 했으리라 믿습니다. ‘하루, 한 달, 한 학기, 일 년, 십 년, 일생단위의 시간계획을 짤 수 있어야 그나마 '모험 투성이'인 인생에서 패착의 가능성을 줄여준다는 사실을 모하비 사막 한 가운데서 깨쳤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암울하고 막막했던 내 젊은 시절, 흐릿하나마 어떤 가능성을 부여잡고 용기를 낸 덕분에 지금 여러분 같이 별처럼 빛나는 젊음들 앞에서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의 경험이나마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점을 고맙게 여길 뿐입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총아(寵兒)들인 여러분의 손에도 어떤 정해진 형태의 성공이 주어진 건 아닙니다. 안정된 직장이나 소시민적 행복이 지금 당장 가시화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나침반을 들고 광야에서 길을 찾는 개척자의 자세로 용감하게 저 문을 나서야 합니다. 지금까지 시간 계획을 하지 않았다면, 바로 지금부터 그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눈앞에서 반짝이는 무궁한 가능성들을 촘촘하게 계획된 시간의 그물로 그들먹하게 건져 올려야 합니다.

 

외로움과 막막함의 한복판에 서 있는 여러분이 자신감만 갖는다면, 최후의 승리는 바로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되리라 믿습니다. 모하비 사막을 돌아 수백 마리의 소떼들을 거느리고 돌아오는 여러분을 10년 혹은 20년 후에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하며,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고맙습니다.

 

 

 

2016. 1. 19.

 

 

 

국어국문학과 조규익 교수

 


졸업식을 마치고

 

 

 

졸업식 후 연구실로 찾아온 양훈식 박사 가족과 함께

 

 

 


졸업식 후 연구실로 찾아 온 임민주, 국미진

 

 

 


졸업식 후 연구실로 찾아온 고조, 국미진, 임민주

 

 

 


졸업식 후 연구실에서 고조와 함께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01.03 07:45

악마들과의 동거

 

 

어린이집 아가 폭행사건을 보며 악마의 이미지를 떠올린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작은 천사들이 모여 꼬물대는 어린이집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었다. 악마의 손에 나가떨어지는 아가를 보며, 지옥의 악마 하나가 운 좋게 사다리를 타고 천국에 올라가 악마 본연의 모습을 과시하는 광경을 상상했다.

 

얼마 전에 만난 ‘11세 소녀 감금학대 사건은 새삼 우리의 눈을 의심케 했다. 아버지가 방어능력 없는 어린 딸에게 가했다는 폭행과 학대는 엽기적이었다.

 

노인 학대와 살해의 주범은 자식들, 그것도 재산을 받을 만큼 받은 자식들이라는 것은 이미 천하공지의 사실이다. 죽인 애인의 시신을 토막 내어 호수에 버린 악마도, 남편을 플라스틱 통에 집어넣어 집안에 처박아 둔 악마도, 학생의 탈을 쓰고 떼로 몰려나가 교탁의 선생을 폭행하는 악마들도 보게 되었다.

언론의 눈에 잡힌 몇몇 사건들이 세상을 흔들어놓고 있던 와중에도 폭행과 살인을 일삼는 악마들은 곳곳에 넘쳐나고 있었다.

 

악마 바이러스는 이미 세상에 퍼져 쉼 없이 자기 복제를 반복하고 있다. 갈수록 수법과 결과가 참혹하고 참담하다. 악마 바이러스들 가운데 돌연변이의 사이클로 들어가 변종 악마들로 재생되는 비중이 상당하다. 준동하는 악마들의 행태들. 그 모습들을 그려내기에 우리는 상상력의 빈곤을 절감한다.

 

세상 법의 한계 때문일까. 아니면 법을 집행한다는 사람들의 자질 부족 때문일까. 사람을 죽이고도 3~5년 징역형을 받았는데, 언론에선 중형이라 떠든다. ‘5년 동안 공짜로 주는 밥 얻어먹어가며 조용히 살다 나오는 것살인의 죗값으로 충분하다는 걸까. 같은 시공간에 살면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법조인들의 저울추와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상식이 그토록 다를 수 있을까. 사람의 목숨 값을 이토록 헐하게 만든 것은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

 

기원전 4~3세기에 측은지심(惻隱之心)과 불인지심(不仁之心)을 말한 맹자(孟子)가 오히려 측은하게 생각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는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어짊의 극치라 했고, ‘차마 끔찍하게 할 수 없는마음 때문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착한 존재라 했다. 그가 살던 시절에도 악마가 들끓었음은 그의 말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찌 그 때라고 지금과 달랐으랴. ‘차마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인간들도 넘쳐 났으리라. 공자와 맹자가 인류의 도덕선생으로 좌정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 이미 악마들이 준동하고 있었음을 웅변으로 증명하는 일이다.

 

과연 맹자는 인간에 대하여 푸진 꿈을 갖고 있던이상주의자라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 그 시절 그나마 그런 희망이라도 갖고 있지 않았다면 악마들과 함께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못 견뎌 했을 현실주의자였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본래 착한 존재임을 강조하여 천하가 예()로 돌아가기를 염원한 일이야말로 지나치게 순진한 발상이었다고 생각하는 나야말로 극도의 비관주의자, 혹은 염세주의자인가.

너도 나도 어느 순간 악마로 돌변할 수 있는 인자(因子)들을 본성으로 지니고 있는, ‘잠재적 악마가 바로 인간임을 인정하고 스스로 경계하도록 하는 게 차라리 현명한 방도가 아니겠는가.

 

 

 

 


<<맹자>>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01.23 12:30

박근혜 대통령을 보며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나 행동은 민첩하게 한다’[子曰 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論語>> <里仁>]는 공자의 말이 있다. 군자라면 ‘말수가 적고 좀 느려도 행동만큼은 민첩하게 해야 한다는 것’. 달리 말하면 ‘쉽게 말하지 말아야 하고 일단 말했으면, 반드시 재빨리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을 것이다. 번지르르한 말들을 속사포처럼 내 쏘면서 하나도 실천에 옮기지 않는 달변가들을 꾸짖은 말씀이었을 텐데, 공자 시대의 그런 사정이 오히려 심화 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박 대통령은 누가 보아도 달변가는 아니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늘 조마조마한 것이 사실이다. 한 마디 내뱉는 데도 그렇게 힘이 든다면, 도대체 무슨 수로 ‘만기친람(萬機親覽)’을 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어쩌면 대통령이 소통을 싫어하는 이면에는 말에 대한 콤플렉스가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달변가인 참모들과 정치인들, 기자들을 대하는 일이 끔찍하게 생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나이 또래의 우리나라 아줌마들을 한번 생각해 보라. '석학 할아비'라 한들 말로 해서야 누가 그들을 이길 수 있을까? 그런 걸 생각하면 박 대통령의 언변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 말 실력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니, 대단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바로 그것이 ‘대선 승리의 한 요인’이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 속담에 ‘말 못하는 사기꾼 없다’는 말이 있다. 대개 앞에 인용한 공자의 말을 보거나 ‘말과 실천’을 결부시켜 온 동양적 사고를 생각해 보아도 ‘말 잘하는 것’이 늘 장점만은 아니었다. ‘깡촌’의 흙 속에서 꼬물거리던 내 코흘리개 시절, 그 때까지 본 적 없는 ‘말끔한 양복’을 갖춰 입고 우리 마을에 내려와  ‘말끔한 달변의 서울말’로 사기 치던 토지 브로커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사기꾼에게 넘어가 몇 십 년을 고생하시던 농사꾼 내 부모의 한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대부분 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는 내 친구들의 마음속엔 다른 세대가 쉽게 이해 못하는 그런 공감영역이 있다.

 

자라면서 ‘말만 말끔하게 잘 하는 인간들’을 자주 만났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기꾼들이었음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판들을 여러 번 접해오는 중이다. 참, 말 잘하는 사기꾼들이 많았다. 최근 10년 이내 두 번의 선거판을 말로만 본다면 ‘눌변 : 달변’으로 요약된다. 지금의 50대들이 누구인가? 대부분 어려움 속에서 근근이 살아남아 이제 은퇴기에 도달한 연령대다. 전통 교육 속에서 자라나 ‘농경사회→산업화사회→정보화사회→지식기반 고도정보화사회’의 고비들을 용케도 탈 없이 거쳐 온 사람들이다. 어쩜 비슷하게 고단한 환경과 의식 속에 성장했다는 ‘연대감’으로 뭉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국회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달변가도 보았다. 당시 나는 그가 대통령이 되면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는데, 과연 그는 떨어지고 말았다. 그런 달변이 이른바 ‘종북’이나 ‘극좌’와 합쳐지면 나라로서는 재앙이라는 판단이 들었는데, 나 말고도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일까. 그는 결국 떨어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나라를 위해서 천행이었다.

***

지금 50대의 민심이 대통령으로부터 이반(離反)되고 있다고 북악산 언저리에 수심이 가득하다. 50대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불리던 그 50대가 민심이반을 추동(推動)하고 있으니, 당하는 심정으로선 적잖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오늘 아침 인적 쇄신책이라고 내 놓았으나, 그 역시 ‘격화소양[隔靴搔癢: 신발을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의 미봉책일 뿐이다. 참, 답답하다.

 

대통령이 자신의 신조나 철학으로 주변의 개인들을 신뢰하거나 믿음을 가질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는 게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 갖는 신뢰와 대통령으로서 가져야 할 신뢰는 다르고, 또 달라야 한다. 대통령은 만인을 상대로 하는 공인이지 개인은 아니다. 두 사람 이상을 상대로 할 때 작동하는 것이 ‘정치 논리’다. 하물며 5천만의 생령(生靈)들을 상대로 하면서 정치논리를 도외시하고, 어찌 개인의 소신이나 철학을 판단의 잣대로 들이댄단 말인가?

 

인사를 말끔히 쇄신하라는 국민의 명령이 있다면, 그간 쓰고 있던 개인의 안경을 국민의 안경으로 즉각 바꿔 써야 한다. 박 대통령이 아직도 개인의 안경을 쓰고 있다면, 그건 공자가 말한 군자의 ‘눌변’ 차원이 아니라 김 모 전 대통령이 언급했다던 ‘칠푼이’의 수준에 머무는 일이다. 누가 보아도, 비서실장이나 ‘문고리 3인방’은 깨끗이 물러나야 한다. 누가 쫓아내기 전에 스스로 물러서는 게 맞다. 누구 말대로 ‘인간적 신뢰를 지킨답시고’ 그들을 껴안고 간다면, 그런 상태에서 아무리 강호의 현사들을 등용한다 한들 그게 어찌 ‘쇄신’이란 말인가? 그래서 국민들, 특히 50대들은 대통령이 답답하다는 말이다. 그의 입을 쳐다보기에도 지쳐 있는데, 행동마저 이리 굼뜨다면 참으로 절망이다.

 

지금 대한민국 호는 ‘북핵, 경제, 안전’의 불안이란 삼각파도에 휩싸여 있다. 판단력이 흐리고 굼뜬 조타수에게 어찌 대한민국 호의 순항을 맡길 수 있겠는가. 즉각 비서실장과 3인방을 내치시라. 팔팔하고 번뜩이는 감각의 30~50대 초반의 명망가들이 강호에는 넘치고 넘친다. ‘삼고초려’라도 해서 그들을 모신 뒤, 만기친람하려 들지 마시고 그들에게 국정을 맡기시라.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지금 그 시대정신을 거스른다면 대통령 스스로를 파괴할 뿐 아니라 이 민족에게 재앙을 안겨 주게 된다는 사실을 부디 명심하시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5.01.14 16:07

 

 

 

어제 오늘, ‘차마 보지 못할 것을 보고야 말았다. 인천 연수구의 한 어린이집에서 33세의 보육교사가 우악스런 손으로 네 살짜리 여자아기의 얼굴을 쳐서 쓰러뜨리는 광경. TV는 나를 고문하듯 그 잔인한 광경을 반복해서 보여주었다. 이제 11개월 된 내 손녀, 겨우 엄마 아빠소리를 되 뇌이며 세상을 익혀가는 내 손녀의 얼굴이 그 아이에게 오버랩 되며 마음 속에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TV 화면을 시커멓게 꽉 채운 그 '악녀'의 뒷모습을 향해 무언가 집어던지고픈 충동을 가까스로 참으며, 하는 수없이 TV를 끄고 말았다. 그 아기가 김치를 남겼다든가? 도대체 김치가 뭐 길래?

 

맹자가 말씀하시길 인간에게는 누구나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으로써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정치'를 편다면, 천하를 손바닥 안에서 다스릴 수 있다. 사람마다 누구나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지금 어떤 어린아이가 곧 우물로 빠져드는 모습을 갑자기 발견하게 되었다면, 누구나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는 안으로 그 어린아이 부모와 사귀고자 해서 그런 게 아니오, 마을의 친구들에게 칭찬을 듣고자 해서도 아니며, 구해내지 않았다는 오명(汚名)을 싫어해서도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요.()

 

<<맹자>>공손추 장구()에 나오는 인성론(人性論)이다. 어린 아이가 아장아장 샘으로 걸어 들어가는 걸 그냥 구경만 하고 있거나 옳지 잘한다!’고 손뼉 치는 인간은 없다는 것이다. 천하의 날강도라 해도 달려가 아이를 잡아 구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런 측은지심을 갖추지 못했다면 인간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 맹자의 말씀이다.

 

맹자의 말씀에 비춘다면, 그 어린이집의 악녀는 교사는 고사하고 이미 인간이길 포기한 존재다. 인간의 탈을 썼으되 인간이 아닌 존재. 단맛 나는 먹을 것들이 넘쳐나는 시절이다. 대부분의 네 살 짜리 어린아이라면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게 정상이다. 그래도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여 김치를 먹여야겠다면, 우선 김치의 상태와 어린아이의 마음부터 살폈어야 한다. ‘왜 이 아이는 김치를 싫어할까? 혹시 김치에 무슨 문제는 없는가? 이 아이에게 조금씩이라도 김치를 먹게 하려면 무슨 방법을 써야 할까?’ 등등. 교사라면 그런 것들부터 생각했어야 한다. 천사 같은 네 살 짜리 어린아이의 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방법들이야 도처에 널려 있지 않은가? 그녀도 그런 것들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귀찮았겠지. 내 아이도 아닌데. 우선 무엇 때문인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풀 생각부터 했을 것이고, 그 순간 불행하게도 그 어린아이가 희생물로 걸려들었을 것이다. 그 손찌검은 자식에게, 제자에게, 더더욱 네 살짜리 어린아이에게 건넬 수 있는 그것이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달려드는 적군의 숨통을 끊기 위해 내지르는 최후의 일격바로 그것이었다.

 

이런 일이 어찌 이 어린이집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며, 이 교사만의 일이겠는가. 문밖에만 나서면 강변의 모래알처럼 박혀 있는 어린이집들을 무슨 재주로 다 감시할 수 있단 말인가. 칭얼대는 아이를 간신히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하루 종일 직장에 갇혀 일에 시달리면서도 아이 걱정에 늘 마음이 편치 않을 이 땅의 젊은 부모들. 잠시라도 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정녕 없단 말인가. 인구 줄어드는 것만 걱정할 뿐, 최소한의 보육 대책조차 세워주지 않는 이 나라의 원시성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단 말인가. 여성 대통령을 뽑아 놓아도 이런 원시적인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는 것은 그녀가 아이를 낳고 키워 본 경험이 없어서인가?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에서, 중등 교단에서, 대학 강단에서 심심치 않게 만나는 악마들을 몰아내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교육의 현장에서 바야흐로 전 국민적인 '퇴마의식(退魔儀式)'이라도 한 판 벌어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Posted by kicho
출간소식2015.01.07 15:22

 

 

 

 

 

 

 

 

세종대왕이 만든 조선조 최고의 악무  봉래의를 복원ㆍ해석  

봉래의에 대한 음악ㆍ문학ㆍ무용의 융합 연구결과를

<<세종대왕의 봉래의, 그 복원과 해석>>으로 출간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저는 을미년 벽두에 문숙희 박사(전 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 연구원)손선숙 박사(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 연구원) 등과 함께 <<세종대왕의 봉래의(鳳來儀), 그 복원과 해석>>(민속원)숭실대 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47’로 출간했습니다.

 

지난 3년간 3회에 걸쳐 봉래의 복원 공연을 국립국악원의 무대에 올렸고, 그 결과를 DVD로 담아 이 책에 붙여 놓기도 했습니다. 문학 분야인 악장의 연구를 제가 맡았고, 음악을 문숙희 박사가, 무용을 손선숙 박사가 각각 맡았습니다. 제 분야인 악장이야 그다지 보실 만한 건 없으나 음악이나 무용 분야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여 봉래의를 복원한 점은 무엇보다 내놓고 자랑할 만합니다. 이 책을 찬찬이 읽어 보시면 세종대왕이 그리던 새 왕조 조선의 미래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번 연구 작업을 통해 왕조의 미래에 대한 꿈을 엄청난 규모의 예술로 승화시켜 놓은 세종대왕의 능력과 통찰에 새삼 감동하게 되었습니다. 대강의 내용을 추려 아래에 붙여 놓습니다.

 

***

 

‘2014년 한국연구재단 우수 연구 성과로 선정된 바 있는 이 책은 문학음악무용 분야를 전공한 세 저자들이 융합적 시각에서 세종대왕이 지은 조선조 최대 악무(樂舞) 봉래의를 복원하고 해석한 결과물이다. 1443년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그 훈민정음으로 <용비어천가>를 제작하게 했으며, <용비어천가>를 노랫말로 올린 가악의 종합예술체인 봉래의를 몸소 만들었다. 1445(세종 27) 왕명으로 지어올린 <용비어천가>의 일부 가사를 악곡에 올리고 무악(舞樂)으로 구성하여 조선조 후기까지 연행(演行), 조선조 최대의 창작 악무가 바로 봉래의인 것이다.

 

봉래의는 여민락치화평취풍형으로 이루어진 최대 규모의 악무다. <<서경>> <익직(益稷)>으로부터 나온 봉래의란 말은 잘 다스려진 상황을 비유한 표현인데, 태평성대를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봉황래의(鳳凰來儀)’라는 명칭을 붙인 후대의 관습에서 유래되었다.

여민락(與民樂)’여민동락(與民同樂)’ 혹은 여민해락(與民偕樂)’과 같은 뜻으로 <<맹자>> <양혜왕 장구 하>에 등장하는 여민동락에서 나온 말이다. 임금이 덕을 지닌 경우 징발하지 않아도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임금을 위해 정원을 만들고 그 정원에서 임금이 즐기는 모습을 기뻐한다는 말인데, 그것이 바로 여민동락의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봉래의 악무의 첫 정재를 여민락으로 잡은 세종의 뜻은 하늘의 뜻으로 세운 왕조에서 태평성대를 만들 수 있는 첫 조건이 백성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는 일이라는 점에 있다. <용비어천가>1~4장과 졸장 등 다섯 개의 장을 뽑아서 구성해 놓은 것이 바로 여민락이다.

 

치화평(致和平)’<<주역>> <하경> ‘택산함괘에 대한 정자(程子)의 설명에 등장하는 말로서 천지와 인심의 감통(感通)에 바탕을 둔 조화가 천하태평의 요체임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정자의 설명 가운데 핵심은 천지가 서로 감응하여 만물을 화생하는 이치와 성인이 인심을 감동시켜 화평을 이루는 도를 관찰하면 천지만물의 정을 가히 볼 수 있다는 부분이다. ‘인심을 감동시켜 화평을 이루는 도그것이 바로 치화평이다. 치화평에서는 <용비어천가> 1~16장과 125장의 국한문 가사들을 악장으로 끌어다 사용했다.

 

취풍형은 <<시경>> <주송> ‘집경13구인 기취기포(旣醉旣飽)’<<주역>> <하경> ‘뇌화풍(雷火豐)’괘에서 따온 개념이다. 취풍형이란 말 속에는 군신이 배불리 취해도 예에 어그러짐이 없음/풍형에도 절제가 있어야 함이란 두 가지의 뜻이 들어 있다. 즉 군신이 태평세월을 구가하고 즐기면서도 예에 어그러지지 않는 절도를 지켜야 하며, 아무리 풍요로워도 그에 지나치게 도취하여 절제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용비어천가> 1~9장 및 125장의 국한문 가사를 악장으로 끌어다 쓴 것이 취풍형의 악장이다.

 

이처럼 봉래의 악무에 들어 있는 세 정재[여민락, 취화평, 취풍형]들은 서로 독자적이면서도 <용비어천가>의 주제로 제시된 경천근민[敬天勤民: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들을 위해 부지런해야 함]’의 행동강령을 공유한다. 말하자면 백성들과 함께 하거나 신하들과 함께 하며, 백성신하와 함께 해도 공통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후왕들이 경천근민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처럼 여민락치화평취풍형을 종합한 봉래의 악무에는 신하들과 백성들을 상대로 조선왕조 건국의 의의와 육조(六祖)의 시련을 깨우쳐 주고, 후왕들이 나라를 잘 보수(保守)함으로써 왕조가 영속될 수 있도록 하라는 세종의 뜻이 주제의식으로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봉래의 다섯 곡은 전인자 3소박 8박자여민락 2소박 8박자치화평 3소박 4박자취풍형 323 혼소박 6박자후인자 3소박 8박자의 리듬으로 진행된다. 음악의 템포는 노래와 무용 모두를 좌우하기 때문에 가악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궁중 정재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또 가사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는 템포가 타당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봉래의를 구성하는 여민락치화평취풍형의 본체는 만()()()으로 구분되었고, 여민락과 치화평의 템포는 메트로놈 상으로 유사했고, 취풍형은 이 둘보다 훨씬 빠른 템포로 나타났다. 여민락은 2소박이고 치화평은 3소박이기 때문에 여민락이 치화평보다 조금 더 느리다고 할 수 있다. 여민락치화평취풍형은 각각 길고 복잡한 장단으로 되어 있으나, 이번 복원 공연에서는 긴 장단 속에 세분되어 있는 리듬 단위로 장단을 짧게 단순화하여 연주했다. 그 결과 장고가 음악과 무용을 이끌기에 용이했고 또 액센트가 짧은 주기로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에 음악과 무용에 생동감을 주었다.

 

무용의 경우 확실한 기록이 부족하다는 난점이 있었다. 즉 문헌에는 무기(舞妓)들의 대형 형태, 이동과정, 춤사위 등만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 어느 시점에 어떤 발로 어떤 속도로 어떤 방향으로 돌아 어느 위치로 이동해야 하는지 등 실연(實演)에 필요한 내용들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봉래의의 무용을 복원함에 있어서 이런 부분들은 <<악학궤범>>에 수록된 여러 정재들과 정재의 무도(舞圖)들을 통합비교하여 음악과 노래, 무기들의 위치 및 이동 공간 등의 상호 관계를 통해 찾아냈다. 문헌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춤사위는 봉래의 춤 전체의 진행 구조를 통해 찾아냄으로써 봉래의 춤에 통일성을 부여했다. 음악이나 무용도 악장 내용의 전개와 함께 함을 확인했는데, 이렇게 가악으로 임금에게 교훈적인 말을 전달하고자 한 제작 의도는 가악의 융합정신이 봉래의라는 종합예술 속에서 충분히 구현되었음을 보여주는 실례였다.

 

이상과 같이 세 연구자는 음악이 기보되어 있는 <<세종실록악보>>, 춤 순서 및 노래 가사가 기록되어 있는 <<악학궤범>>을 통해 봉래의를 융합적으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악에 관련된 여러 전제조건들을 바탕으로 텍스트를 분석하고 해석하여 봉래의의 종합예술체적 성격을 완벽에 가깝도록 복원한 점이 이 책의 최대 장점이고, 그것은 세 차례의 공연을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공연 팸플릿

 

 


세종실록

 

 


세종대왕

 

 


공연에서 세종으로 분장한 배우 정훈씨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봉래의 공연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