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14. 11. 5. 13:59

 

 

 

 

 

저는 2013년 2학기 풀브라이트 방문학자(Visiting Fulbright Scholar)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 역사학과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현지를 틈틈이 답사하고 체험한 기록들을 정리하여, 최근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푸른사상)라는 제목의 문화 답사기를 펴냈습니다. 한국인들에게는 토네이도의 본고장으로만 알려졌을 뿐인 오클라호마를 보물찾기라는 테마를 통해 새롭게 읽어내고자 했지요. 책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보물 1: 스틸워터와 OSU, 그 안식과 탐구의 낙원

평온과 정밀(靜謐)의 오클라호마에 안착

역사학과를 찾아

학과 비서들과의 만남

카우보이 풍의 노신사, 학과장 로간 교수와의 만남

브렛 학장과의 만남

평원 속 지성의 오아시스, OSU에서

역사학과 학생들을 위한 특강을 마치고: 한국의 이미지를 새것으로!

카우보이들, 풋볼의 진수를 보여주다!

미국 대학의 졸업식과 감동: 왜 우리는 이렇게 하지 못하는가?

안식과 힐링의 낙원 스틸워터에서

 

보물 2: 인디언, 인디언 역사, 인디언 문화

오클라호마와 인디언 부족들

대초원에서 만난 오세이지 인디언들

체로키 후예의 집을 찾아 패러다임 전환의 증거를 찾다

오클라호마 동쪽에서 체로키 인디언들을 만나다!

체로키어오시요(Osiyo)’와 우리말‘ (어서) 오세요!’의 정서적 거리

스틸워터의 이웃동네에서 만난 판카 인디언들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아이오와 인디언 족

지혜로운 치카샤 족, 인디언 사회의 자존심

촉토 족의 뿌리와 투쟁, 그리고 예술

촉토 족의 탁월한 교육열, 풍부한 역사 자취

놀라운 세미놀 인디언들의 역사와 문화의식

카이오와, 아파치, 코만치, 그리고 대평원의 서사시

카이오와 족의 삶과 예술

무서운 코만치에서 상식의 미국인으로!

크릭 족의 꿈과 현실을 찾아

오클라호마 밖의 인디언: 뉴멕시코의 앨버커키와 스카이 시티, 그리고 푸에블로족

암굴 속에 서린 생존 의지‘, 반델리어 국립 유적지와 푸에블로 족의 말 없는

외침

부드러운 어도비, 완강한타오 푸에블로인디언들

 

보물 3: 미국의 길, 66번 도로(Route 66)의 낭만

미국에서 길을 찾으며: 우리도 스토리가 있는 길을 한 번 만들어 봅시다!

작은 일탈을 꿈꾸는 66번 도로, 그 낭만과 허구

엘크 시티와 국립 66번 도로 박물관 단지

클린턴 시티와 ‘66번 도로 박물관

엘 르노 시티와 캐나디언 카운티 뮤지엄

66번 도로에 살아 있는 역사의 공간, 유콘 시티

누구 혹시 이 소녀를 아시나요?: 유콘에서 만난 우리들의 누이

한국전 참전용사의 아들 리차드 카치니와 유콘 참전용사 박물관

오클라호마의 숨은 별: 거쓰리 시티/ 66번 길의 경이로운 옛 건축물: 아카디아 라운드

 

 

 

 

 

 

보물 4: 박물관과 미국 역사

서부 개척시대 미국의 소리: 국립 카우보이와 서부유산 박물관

예술로서의 역사, 역사로서의 예술: 털사의 길크리스 박물관에서 길을 잃다!

인간의 악마성을 깨우쳐 준 공간: 오클라호마 시 메모리얼 뮤지엄
오클라호마 밖의 박물관: 예술과 역사의 도시 산타페와 박물관들

 

보물 5: 열정과 도전의 대학인들

미국의 중남부에서 아시아 역사를 가르치는 젊은 학자: 용타오 두 교수

학자와 목자의 삶: 한인 교수 장영배 박사

빛나는 한국학생 브라이언

한반도에 관심이 큰 소련 역사 전문가 림멜 교수

탁월한 젊은 영어 교육자 제이슨 컬프

역사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온 프레너 교수

 

보물 6: 아름다운 자연, 안식의 낙원

부머 호수에서 찾은 마음의 고요

리틀 사하라에서 되찾은 고향의 꿈

대초원에서 멋진울음 터를 발견하고

낙원 속의 산책로: OSU 크로스 컨트리 코스의 안식과 힐링

 

 

 

 

 

***

일반적으로 미국은 역사가 짧고, 넓은 땅에 비해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역사 문화유적의 답사라는 여행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공간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백인들의 이주 후 200여년, 인디언으로부터 따지면 그보다 훨씬 더 긴 역사가 이어져 온 땅이고, 그에 따르는 문화유산들이 적지 않은 곳입니다. 더구나 경쟁력으로 세계에서 가장 우위를 점하고 있는 미국의 대학들이나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문화를 생각하면, 미국은 유럽과 또 다른 차원의 매력을 지닌 지역입니다. 무엇보다 39개에 달하는 인디언 부족의 보호구역들이 도처에 널려 있는 오클라호마는 대초원(Tall Grass Prairie)과 대평원(The Great Plains)등 풍부한 목초지와 함께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원유 등으로 오랜 동안 풍요를 구가해온 지역이기도 합니다. 풀브라이트(Fulbright)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곳의 대표적인 교육기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Oklahoma State University)’에서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만. 이곳에 오자마자 연구 과제 외에 이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의미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가 관심을 가졌던 대상은 인디언의 역사와 문화였습니다. 저는 사람, 자연, 도시, 제도, 역사, 문화 등 감고 있던 마음의 눈을 뜨게 한 모든 것들이 보물로 생각되었습니다. 그간 모르고 지내온 것들이 그의 편견을 바로잡아 주었기에 보배로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인디언들과의 만남은 무엇보다 소중했습니다. 인종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체험이었습니다. 백인들에 의해 고통을 받아온 인디언이야말로 역사의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이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보물이었던 것입니다. 서부영화나 백인들에 의해 저술된 책들을 통해 제 마음에 뿌리 내린 왜곡된 인디언의 이미지가 비로소 바로잡혀지게 된 점을 가장 곰지게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지배자들이 펼쳐 온 자기 합리화의 억설(臆說)에 의해 일그러진 인디언들의 실체를 삶의 현장에서 바로잡음으로써 내면에 고착된 편견을 해소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 입장에서 인디언에 대한 발견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오클라호마 주립대학을 통해 미국 대학들의 경쟁력이 바로 미국의 경쟁력임을 깨닫게 된 점입니다. 대학의 역사와 현실을 통해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고 체력을 단련하며 단합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운영되는 미국 대학의 장점을 읽어낸 것은 제 글 내용의 핵심적인 축입니다.

인디언이나 대학의 힘에 대한 발견과 함께 오클라호마나 스틸워터의 깨끗한 자연으로부터 얻게 된 힐링의 감동은 이 책 내용의 또 다른 축입니다. 부머 호수, 리틀 사하라, 산책로로 쓰이고 있는 크로스 컨트리 코스 등 잘 보존된 자연이 인간의 내면적 평정이나 행복을 위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체험적으로 진술하고자 했습니다. 제 글의 에필로그 가운데 마무리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풀브라이트 학자로서의 가볍지 않은 사명을 짊어지고 오긴 했지만, 연구 외

에 이곳에서 발견한 또 다른 것들이 나를 달뜨게 했다. 오클라호마 사람들과의

만남, 인디언의 역사나 문화와의 만남, (특히 Route 66)과의 만남, 아름답고

깨끗한 환경과의 만남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했던 스틸워터는 문만 닫으

면 절간처럼 조용해지는 공간이었다. 맑은 공기 속에 한 발만 나서면 온갖 새

와 나무들이 그들먹한 낙원이었다. 그래서 기대 이상의 힐링을 체험하며 마음

속의 온갖 찌꺼기들을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물론 이곳이라고 어찌 사람들 사

이의 갈등과, 그로부터 일어나는 불행들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러나 유목민들이

아름다운 꽃향기와 산토끼의 해맑은 눈빛, 그 지순(至純)한 추억으로 광풍 몰

아 치던 수많은 밤들의 괴로움을 지우듯,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걸러내는 능력

이야말로 지혜로운 인간의 전유물 아닌가. 사실 짧지 않은 6개월 동안 걸러내

야 할 단 하나의씁쓸함도 만나지 못한 나였다.

                                                          ***

스틸워터에서 화려한 행복보다는 작고 따스하며 담백한 즐거움 속에 거의

완벽한 힐링의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으니, 이제 맛있고 영양가 풍부한 풀들이

많이 자라 있기를 기대하며 다시 옛 고향으로 노마드의 소떼를 몰고 재입사(

入社)하기로 한다.”

 

그곳에 가보지 않은 사람도 책을 펼치기만 하면 오클라호마와 스틸워터의 감동과 아름다움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느껴지리라 생각합니다. 강호제현의 질정(叱正)을 고대합니다.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 푸른사상, 2014.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10. 22. 07:51

 

 

리틀 사하라(Little Sahara)에서 되찾은 고향의 꿈

 

 

 

 

한정된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한 문화답사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특권이다. 그러나 그 일정들이 주로 박물관에 집중되다보니 답답함이 밀려드는 요즈음이다. 물론 도시와 도시, 박물관과 박물관을 옮겨 다니다 보면 주변에 펼쳐지는 자연이나 도시환경의 변화를 목격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오클라호마 서북부는 자연이나 도시환경만으로 보아도 특이한 지역이다. 모처럼 큰 아이가 합류한 며칠 사이에 좀 더 많은 걸 체험해야 한다는 Melani의 강력한 주장을 따르기로 하고, Waynoka로 향했다.

 

웨이노카로 가는 길은 멀고도 황량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평원의 연속이었다. 저 혼자 끄덕거리며 작업을 하고 있는 메뚜기 모양의 원유 채굴기나 느릿느릿 고개를 들어 낯선 이방인들을 쳐다보는 목장의 검정소들 외에 모든 것이 정지된 침묵의 공간이었다. 도중에 지나치거나 만난 대부분의 도시[도시랄 것도 없는 작은 부락 수준으로 우리로 치면 70년대 면 소재지 정도]들은 이미 많이 퇴락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도시로 떠나고 상가들은 텅텅 비어 있었다. 사람이 떠난 이후 기름기가 빠진 건물들은 초창기 서부영화에서 갱들과 레인저들 사이에 총격전이 벌어지곤 하던 주막집 세트와 흡사했다. 이곳에 그 유명한 사막이 있었다. 이름 하여 ‘Little Sahara’. 이 지형을 발견한 사람들은 사하라 사막을 떠올렸을 것이다. 미국 땅에도 사막은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본 대부분 사막들에 풀들은 자라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이곳 빼고 사하라 사막처럼 고운 모래밭이 넓게 펼쳐진 사막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유독 이곳에만 리틀 사하라란 이름을 붙였으니 말이다.

 


기름기 빠진 웨이노카 시내 상가의 모습(가구점과 전기기구상이 있던 흔적만 남아 있다)

 
웨이노카 상가들 가운데 살아있는 단 한 곳, 독일식당 '까페 반호프'

 

오클라호마 주 우드(Woods) 카운티에 속한 1,600 에이커[acres, 650ha] 넓이의 리틀 사하라[북위 363159/서경 985255]에 내가 호기심을 갖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그 옛날의 내 고향에도 리틀 사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 유년기의 꿈과 상처를 오롯이 받아들여준 그 모래언덕들은 인간들의 탐욕에 철저히 망가져 이젠 단 1%도 그 시절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다. 리틀 사하라는 과연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지탱할 수 있었으며, ‘잘 노는미국인들은 과연 어떻게 이 공간을 활용하고 있는지 아주 많이 궁금했다.

 


오클라호마 지도에 붉은 점으로 표시된 리틀 사하라


리틀 사하라 표지판


리틀 사하라 전망대

 

서부 개척시대의 여관 풍으로 지어진 웨이노카 유일의 모텔에 짐을 풀고, 두어 개 있다는 식당 가운데 독일인이 운영한다는 곳으로 갔다. 시내의 상가들은 우리가 거쳐 온 여느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텅 비어 있었다. 식당 가득 독일 냄새가 풍겼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나서 주인 겸 셰프가 우리 식탁으로 찾아왔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특별한 관심을 보이며, 우리의 귀에 대고 신세한탄을 내뱉는다. 이곳에 건너 온지 17년 되었으며, 아직도 독일 국적을 갖고 있노라고, 이곳 사람들[어쩜 그는 미국 사람들 전체를 그렇게 싸잡아 보려는 것 같긴 했지만]바보 같다[idiot!]’, 귓속말로 속삭이며 답답함을 털어놨다.

 


까페 반호프의 간판


식사 후 독일식당 주인과 함께

 

그렇게 낡고 퇴락된 분위기의 웨이노카에서 하룻밤을 묵은 다음 아침 일찍 리틀 사하라 탐색에 나섰다. 사하라를 탐색할 수 있는 특수 차량을 대여해주는 곳은 단 한 집. 그 집에서 ATV[All-Terrain Vehicle]를 빌렸다. 아무리 험한 길도 거뜬히 갈 수 있고, 넘어지거나 바퀴가 파손될 위험이 전혀 없는, 배기량 700cc의 탱크 같은 4륜구동의 특수차량이었다. 엑셀러레이팅 노즐 스위치를 밀자마자 굉음을 내며 달리는 ATV에 몸을 싣고 우리는 리틀 사하라의 탐사에 나섰다. 미루나무[cotton wood]와 유카(yucca)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숲길을 뚫고 지나자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완벽한 사막이 펼쳐졌다. 모래밭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간 듯 ATV의 궤적들이 어지러이 그려져 있고, 모래 언덕을 오르내리며 묘기를 부리는 사람들도 멀리 보였다.

 


전망대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리틀 사하라


리틀 사하라의 곡선들


리틀 사하라의 한 복판


모래언덕을 유린하는 ATV들

 

모래 벌을 헤치며 달려 나가자 간간이 오아시스 형태의 웅덩이들이 형성되어 있고, 그 곁엔 이미 죽은 나무의 잔해와 죽어가는 나무 몇 그루가 애처롭게 서 있었다. 죽은 자를 바라보며 자신의 멀지 않은 운명을 절감하는 인간들처럼 그들 역시 순환하는 생명의 법칙을 깨닫고 있는 걸까. 대략 7 미터에서 20여 미터 높이에 달하는 모래 언덕들은 이제 생명 잉태의 가능성을 포기한 듯 ATV들의 딱딱한 바퀴들에 마구 유린되고 있었다. 수천 년 간 바람이 불어 올려 만들어 놓은 모래 언덕은 흡사 솜을 쌓아 놓은 듯 푹푹 빠져 들어갔다. 그 언덕을 오르내리며 이미 사라진 고향의 모래언덕들을 떠올렸음은 물론이다. 잘만 보존했다면 멋진 자연유산이 될 수 있었고, 천연 학습장이 될 수 있었을 텐데. 탐욕에 눈 먼 인간의 무지가 없애버리고 만 것이다. 내 고향의 사하라를 말이다.

 


리틀 사하라와 작은 오아시스


리틀 사하라의 곡선과 평면


또 다른 오아시스


또 다른 오아시스


또 다른 오아시스


나무가 자라는 오아시스


다 죽은 나무와 죽어가는 나무들

 

우리가 굉음을 울리며 오르내리는 이 모래 둔덕도 조만간 사라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이다. 사물의 근저까지 꿰뚫어야 만족하고 마는 너와 나의 호기심은 미래의 삶터로 남겨 둬야 할 자연의 조화까지 무너뜨리고 있는 것 아닌가. 인간의 오만과 이기심이 재앙일 수밖에 없는 것은 바야흐로 무너져 가는 자연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위대한 자연이 펼쳐진 이곳에서 새삼 옷깃을 여미고, 새삼 내 얕고 가벼운 욕망을 반성해 본다.

 


ATV 대여점에서 Melani


리틀 사하라 입구에서 Melani


리틀 사하라의 Kyung


Melani and Kyung in Little Sahara


Melani pausing on ATV


Baek-Kyu by ATV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