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8.01.17 12:47

작비금시(昨非今是)의 깨달음

 

 

4년 전(2013. 9.~2014. 2.) 미국에 다녀와서 책(<<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 푸른사상, 2014. 11.)을 한 권 낸 바 있다.(백규서옥 블로그 No.119 참조) 당시 그 책을 교수들에게 증정하면서 나름대로의 소회를 적은 서한도 책갈피에 끼워 보냈는데, 책을 받았다는 반응은 10% 정도였고 그 서한에 대한 반응은 거의 zero에 가까웠다.

 

객쩍은 짓을 했나?’라고 자책하며 한동안 겸연쩍은 시간을 보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지난해 숭실 근속 30을 맞게 되었다. 나름대로 어떻게 기념을 할까 생각하다가 부랴부랴 새 책(<<<거창가> 제대로 읽기>>, 학고방, 2017. 10. 23.)을 내고, 교수들에게 돌렸다.(백규서옥 블로그 No.3 참조) 학자가 시간의 마디마디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수단으론 책을 능가할 게 없다는 것이 내 철학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의 응답률은 대략 20%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표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겠지만, ‘당신과 같은 직장에서 한 솥밥을 먹으며 30년을 근속하고 있노라는 인사는 전해지지 않았을까.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허전한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논문을 쓰다가 책 한 권이 필요하여 책장을 뒤지던 중, 책들 속에 끼여 질식하기 직전의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를 발견했다. 책을 펼치자 이쁘게편집출력된 서한이 접힌 채로 툭 떨어졌다. , 바로 내가 정성스레 작성하여 교수들에게 보낸그 편지였다. 읽어보니, 숫자(3336/3033)만 바꾸면 현재의 내 상황을 정확히 드러낼 만한 내용이었다. 교수직이 얼마나 따분한생활인지, 이 글을 읽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편지를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숫자만 바꿔 이곳에 올리고, 그 때 그 편지와, 그 글에서 숫자만 바꾼 숭실 근속 30년의 인사장을 늦었지만 이곳에 올린다.

 

                                                       ******

 

        님께

 

 

안녕하신지요?

인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조규익입니다.

 

엊그제 여름이었는데, 벌써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늘 그래 왔습니다만, 최근 들어 시간의 덧없음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저는 해군사관학교의 전임을 시작한 스물넷부터 36년째, 경남대학교의 전임을 시작한 스물일곱부터 33년째 상아탑을 지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저보다 앞서 이 길을 걸어가신 선배님들을 뵈며 참으로 끈기 있게 한 길을 걸어오셨구나!’라고 경이로운 눈길을 보내곤 했는데, 저도 이미 그 반열에 들어서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간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 그저 잠시 졸다 깨어보니 한낮이 기울어 버린그런 느낌입니다. 이제 비로소 흘려보낸 시간의 덧없음과 함께 맞이하는 시간의 질과 양이 나날이 달라짐을 절감합니다. 명문 <귀거래사(歸去來辭)>를 통해 마음이 육신의 노예가 되어(心爲形役)’ 동분서주하던 과거의 시간대에서 전원으로 돌아온 뒤 어제가 그릇되었고 지금이 옳다(昨非而今是)’고 선언한 도연명(陶淵明)을 떠올립니다. 저도 무명(無明)의 어제에서 깨달음의 오늘로 돌아 왔다고 한다면, 좀 주제넘은 말일까요? 시간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좀 더 본질에 충실한 생활로 돌아간() 것을 도연명이 말한 작비금시(昨非今是)’의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지요?

 

꽤 오래 전에 귀한 자료(<거창가>)를 입수한 뒤 책 한 권과 논문 여러 편을 낸 바 있으나, 다른 데 신경을 쓰다가 그 귀한 것을 그만 10년 넘게 망각의 늪에 빠뜨려 놓고 있었습니다. 최근 새로 쓴 글들을 하나로 엮고, 오독(誤讀)오역(誤譯)을 바로잡아 새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던가요? 책이 나온 뒤 가족들과 지인들을 불러다가 소중한 약속을 나누다가, 오랜 세월 한솥밥을 먹어 온 벗님들을 문득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욕심은 후회를 남기고, 반성 없는 후회는 파멸을 부른다는 금언을 되새기며, 이 공동체에서 더 머물게 될 몇 년 간 좋은 추억들만쌓고 싶은 소망으로 파편화된 제 학문적 견해들이나마 엮어 올리오니, 부디 소납(笑納)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7. 12. 31.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규익 드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7.01.03 01:33

새해를 맞으며

 

 

 

2016년 12월 31일 득량만에서의 해넘이

 

 

2017년 1월 1일 득량만에서의 해맞이

 

 

                                                  2017년 1월 1일 득량만에서 만난, 추억의 아침 연기

 

 

1990년대 초쯤일까요. 복거일의 소설 <<역사 속의 나그네>>를 읽고 나서, 한동안 타임머신을 저 자신의 화두(話頭)로 틀어쥐고 지낸 적이 있습니다. 불혹에 접어들면서 시간의 위력을 깨닫게 되었고, 시간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이 제 내면을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기 시작한 시점이었지요. 그로부터 참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 욕망이 망상(妄想)의 근원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역사 속의 모든 호걸들도 그저 ‘(역사를) 앞사람으로부터 받아서 뒷사람에게 이어주는고리에 불과하다는 진리. 바로 그 진리란 특별한 공부 아닌 나이가 알려주는 자연법칙이라는 점을 절감하게 된 것이지요. 비로소 철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작비금시(昨非今是)'! 요즘 연말연시만 되면 누구나 한 번씩 인용하곤 하는 <귀거래사(歸去來辭)>의 명구이지요. 고백하건대, 길을 잃고 헤맸으나 아직 멀어지진 않았으니/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잘못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實迷塗其未遠 覺今是而昨非)’는 도연명의 깨달음에 힘입어, 나와 조상의 지난날들을 찾아 헤매다가 많은 시간들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옛날의 어떤 점들이 잘못 되었고, 지금은 어떤 점이 옳거나 나아졌는지, 참으로 궁금하지만 시간은 아무것도 해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저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감수(甘受)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손쉬운 타성에 푹 젖어들고 말았습니다.

 

작년에는 참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의 소천을 통해 죽음의 의미와 가족관계의 허망함을 깨달았고, 가까운 사람들의 아픔을 통해 치열한 삶과 성취보다 건강이 우선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오?’라는 예수의 말씀(마태복음 1626)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입니다.

 

가치와 중요성은 객관성을 바탕으로 하는 개념들일까요? 아니면 지극히 주관적인 개념들일까요? 가치가 있어서 중요한 것일까요? 아니면 중요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참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모두에게 가치 있는, 아니 모두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서로 물고 뜯으며 적개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지내온 지난해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미움이 더욱더 크게 증폭될 올해를 걱정합니다. 이제 좀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고 싶은데, 다시 어느 편에 서서 불편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게 될 것이 뻔한 2017년이 두렵습니다.

 

반복하건대, 손에 잡히지 않는 타임머신을 타고서라도 과거로 돌아가서, 그 당시 정의와 최선을 행했다고 자부하는 호걸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왜 우리는 새해만 되면 지난 시간대의 자신을 후회스런 눈빛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그들의 말을 듣고 판단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 저는 그저 크게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 살아가렵니다. 좀 더 따스한 눈빛으로 주변 사람들의 아픔을 다독일 수 있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하지도 못할 일들을 하겠노라 떠벌이게 될 정치인들을 미움 아닌 연민으로 바라볼 여유와 폭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올해 여러분들에게 신의 가호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새해 벽두에

 

백규 드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11.22 20:08

 

 

 

 

제자의 시집을 받아들고

 

 

                                                                                                                                                           백규

영국의 정치가 핼리팩스(Halifax) 백작은 “가르치는 일에 따르는 허영심은 가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고 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 스스로 묘한 열기에 휩싸일 경우, 나 자신이 ‘매우 모자란 인간’임을 잊을 때가 많다. 강의실로부터 조용한 연구실로 돌아와 열기가 식으면, 그때서야 내 생각과 말을 직시하게 되고, 가끔 등짝에 식은땀이 흐르곤 한다. 그래서 인간에게 매우 긴요하고 귀한 일이되 스스로를 자만과 착각에 빠뜨리기도 하니,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양날의 칼과 같은 일이다.

 

***

 

오후 잠깐 들른 우편함에 아담한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최석균 시인의 <<수담(手談)>>이란 시집. 최석균이라? 순간 학부 4학년의 앳된 얼굴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꿈같이 흘러버린 25년의 세월, 경남대학 시절의 그를 떠올릴 수 있었다. 중저음의 그는 차분한 성격을 갖고 있었다. 온몸에서 풍기는 성실함이 경상도 억양과 어울려 묘한 매력을 발산하던 친구였다. 그렇던 그가 그 사이에 중견 시인으로 자라나 두 번 째의 멋진 시집을 내고, 내게 ‘감당할 수 없는 헌사(獻辭)’까지 달아 보내 준 것이었다. 30년 가까운 세월의 강을 격(隔)한 지금, 그 시절 그와 만나던 마산시 월영동의 강의실을 떠올리려 애를 써본다. 나는 과연 그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내가 뱉어낸 말들 가운데 단 한 마디라도 기억해주는 친구가 있을까. 혹시 내가 젊은 시절의 혈기와 격정으로 세상을 저주하는 말을 내뱉었고, 그 말들 때문에 세상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상이나 심어준 것은 아닐까.

 

***

 

사실 나는 지금도 강의실에 들어가면 당황스럽다. 준비해온 말들은 입 안에서 맴돌다 사라지고, 학생들의 표정과 내 시선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비로소 말문은 새롭게 열리곤 한다. 그러니 제대로 정돈되지 못한 말들이 튀어 나가는 건 당연한 일. 가끔은 나 자신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멋진 멘트가 튀어나가기도 하지만, 대개 뱉고 나서 후회되는 말들이 적지 않다. ‘자신이 바보라는 사실을 순간순간 깨달으면서도 바보임을 잊은 채 살아가는 인간이 선생’이라는 것도 그 때문에 나온 경구(警句)인 듯 하다.

 

***

 

20년의 세월을 지내고도 나를 기억해준 제자가 이 순간 나를 감동시키기도 하고, 나를 부끄럽게 만들기도 한다. 지난날의 부끄러운 추억은 대부분 치기(稚氣)어린 열정의 소산임을 자인한다. 그런 온축(蘊蓄) 없이 성마르기만 했던 열정으로부터 내 제자들은 과연 무엇들을 배웠을까. 일찍이 도연명(陶淵明)은 말했다. “지금까지 마음은 육신의 부림을 받았으니 어찌 홀로 슬퍼하리오. 지난 일의 부질없음을 깨달았고, 앞일을 따를 수 있음을 알았다네. 실로 길을 잃어버림이 아직 멀지 않으니, 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그른 줄을 깨닫는다네[旣自以心爲形役 奚惆愴而獨悲 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實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라고. 선생으로서의 내 과거는 부끄러움으로 점철된 시간대이나 이제 그 그릇됨을 깨달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올바로 살아갈 만한 기틀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는가.

 

***

 

최 시인의 시집 제목은 수담(手談)이다. 그것이 ‘손의 말’이든 ‘손으로 하는 말’이든, 입은 닫은 채 샘솟는 마음을 손끝으로 풀어놓는 반상(盤床)의 서사(敍事)임에 틀림없다. 세상사 복잡함도 가로 세로 각 19줄• 361개 교차점으로 이루어진 바둑판에 모두 그려낼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무엇을 찾아 아등바등하는가. 그는 아마도 바둑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모조리 터득한 듯, 그의 안목이 자못 형형하다. 반상을 통해 우주와 세상의 이치를 들여다보는 최 시인의 혜안을 감상들 하시라고, 독자 제위께 한 작품만 보여드리고자 한다.

 

 

화점(花點)

 

점에서 꽃이 핀다

하얀 꽃 검은 꽃 그 틈새에

여백의 꽃들이 눈을 뜬다

우화羽化한 날갯짓 잉잉거리며

누운 꽃들의 꿈을 퍼 나른다

묵인과 오판 속에서

바꿔치기와 꽃놀이패 속에서

꺾고 꺾이는 꽃의 향기들

생사를 오가는 꽃의 길들이

아찔아찔 뒤엉켜 자란다

딱히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땅에서

깍지 끼듯 얽힌 이율배반의 손과 손이

저승과 이승 경계점을 넘나든다

툭 던져진 손톱만한 꽃눈이

꽃눈 속에 숨은 모래만한 씨앗이

달만큼 자라서 별처럼 사라지는 거기까지

한판, 우주의 생몰이다

재차 새판을 짜기 위해

가지런히 누워 봄을 기다리는

한 점, 한 점 낙화의 잔영이다.

*화점(花點) : 바둑판에 표시된 아홉 군데의 점.

 

  최석균 시집, 황금알 시인선 59/<<수담手談>>, 황금알, 2012.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01.01 00:30

 

   위 <천리포의 일몰-2011. 7. 20.>
   아래 <동해의 일출-양양 솔비치 앞바다, 2010. 1. 18.>

                                         
 몇 시간만 지나면 또 한 해를 맞는다. 누군들 예외일 수 있겠는가만, 신묘년이 한 뼘 가량 남은 지금 심사가 적잖이 복잡하다. 대충 계산해 보아도 지난 한 해 개운치 않은 일들이 많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잘한 일과 잘못한 일들을 저울에 달 경우 약간 뒤쪽으로 기운다면 일단 후회가 많은 한 해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 옛날 중국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은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작비금시(昨非今是)’의 감회를 노래했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그에게 ‘벼슬에 앉아 있던 시간대와 벼슬에서 벗어나 고향에 돌아온 시간대’는 같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벼슬살이가 잘못된 일이었고, 벼슬을 던지고 고향에 돌아온 것이 옳은 일이었다는 깨달음을 그 시에서 강조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지난 시간대의 어리석음과 잘못을 뉘우친다. 어리석음과 잘못을 1년 단위로 뉘우쳐서 지난해의 그것들이 무(無)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스타트 라인에 다시 올라서서 가벼운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은 ‘포맷이 불가능한 컴퓨터’다. 잘한 일도 잘못한 일도 모두 안고 가야하며 그에 따르는 부담을 함께 져야 하는 운명적 존재다. 잘한 일이 많으면 밝은 인생을 살 수 있고, 잘못한 일이 많으면 어두운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어제의 잘못을 깨끗이 반성하고 ‘새 출발’을 한다고들 말하지만, 그 기억과 상흔이 컴퓨터 포맷하듯 어찌 말끔하게 지워질 수 있으랴. 그래서 사람들은 번뇌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가슴을 치기도 하고 발등을 찍기도 하며, 스스로를 호명하며 저주하기도 한다. 

그러나 후회가 나 같은 필부(匹夫)들만의 일은 아니다. 임기 말의 레임덕에 사로잡힌 대통령도 지금쯤 아마 그런 심정일 것이다. 취임 초부터 지금까지 능력 있고 청렴한 사람을 쓰지 못한 채 한사코 주변의 사람들, 인연을 맺은 사람들만 쓰는 대통령을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에 널린 필부들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 준 사례가 바로 대통령의 인사였다. 인사청문회에 서는 후보들마다 어쩌면 그리도 오점들로 가득하단 말인가? 모래알처럼 많은 인물들 가운데 어찌 하여 그런 인사들만을 골랐을까? 대통령과 인간적으로 가까운 사람만을 골랐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내 집 안방의 구들장을 놓을 때도 능력 있는 기술자를 골라야 하거늘, 황차 국가대사를 맡기는 장관을 고르는 일이야 더 말하여 무엇 하리오? ‘까짓것 어떠랴? 일만 잘 하면 그만이지!’라고 밀어붙였으리라. 그런 일들이 누적되다 보니 임기 말에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아마 대통령도 지금쯤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사사건건 사람을 천거하며 압력을 넣던 ‘형님’이나 측근 몇몇에게 가혹하게 대하지 못한 것도 후회일 것이다. 그러나 일을 그르치고 나서 후회한들 무엇하랴! 최상급의 지도자는 처음부터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이고, 그 다음 등급은 한 번 실수 이후에 다시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며, 최하급은 같은 실수를 연달아 저지르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대통령을 최하급이라 해도 할 말이 없으리라. 

사실 그렇다.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사람을 잘 못 보는 일’이다. 사람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는 일만큼 뼈아픈 일도 없다. 국가나 공동체의 공직에 부적합한 사람을 선택하여 후회하는 일은 지금 눈 아프게 목도(目睹)하고 있으므로 논외로 하자. 개인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서로를 잘못 판단한 남녀 간의 사랑은 씁쓸한 비극의 단초다. 만나자마자 헤어지는 요즘 청춘남녀들의 애정 사고는 공부의 당연한 과정이라고 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포함하여 각종 인간관계에서 교언영색(巧言令色)에 속아 가까이 한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는 사례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하고 속을 끓이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하여 부지기수일 것이다. 사람들을 잘 못 보고 믿다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낀 것은 올 한 해의 쓰라린 후회들 가운데 하나다. 그 기억을 지울 수 있으면 좋겠으나, 간단히 포맷할 수 없으니 어쩌랴! 그 영향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니 그 또한 근심이다.

***

 이제 밝아 올 임진년엔 형형(炯炯)한 용의 눈과 과감한 용의 심성을 닮고자 한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수직으로 치솟는 용의 기상을 배우고자 한다. 급격히 흐릿해져 가는 육안(肉眼) 대신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심안(心眼)을 갖추는 일에 매진하고자 한다. 일에 직면하여 이리저리 재며 소리(小利)를 탐하기보다 대의(大義)를 향하여 맹진(猛進)할 것이다. 더불어 공자가 안연(顔淵)에게 전하신 사물잠(四勿箴)[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을 ‘똑 소리 나게’ 한 번 지켜보고자 한다. 나이 먹을수록 판단력이 흐려지고 지혜가 고갈되어 주변 소인배들의 교언영색에 스스로 무너지는 나 자신이 가련하니, 이제부터라도 더 이상 ‘발등 찍는 일’은 반복하지 않을 일이다. 입에 칼을 물고라도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을 사전에서 도려낼 일이다.

                             묵은해와 새해가 교차하는 시점에
                                       
                                        백규, 재계(齋戒)하고 다짐함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1.06.30 00:14

                      <중국 호남성 장사시의 거리에서 만난 술(酒鬼酒) 기념 표지석>           

                                     <중국 호남성의 한 식당에서 맛본 술>



한국인이 본 중국의 술 문화

                                                                                                                                                       조규익

내가 중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1995년,  연변대학의 학술발표대회 자리였다. 발표가 끝나 점심식사 자리에 가니 푸짐한 음식이 차려 져 있었고, 자리에 앉자 맥주 잔 반 정도가 채 안 되는 크기의 술잔이 돌았다. 말로만 듣던 중국의 음식과 술이었다. 당시 좌장(座長)이던 권철 교수가 술을 따랐고, 좌중의 참석자들은 권 교수의 선창(先唱)에 따라 ‘깐뻬이(干杯)!’를 화답(和答)하며 잔을 비웠다. 나 역시 그에 따랐고, 잔을 내려놓기 무섭게 술이 채워졌다. 그곳의 주도(酒道)가 그러려니 하면서 주는 대로 벌컥벌컥 마셔댔다. ‘까짓것 중국술이라 해도 별 수 있겠나?’ 라는 배짱이 발동(發動)한 것일까. 소주 두 병 정도의 평소 주량과 젊음에 대한 과신(過信), 그리고 술에서 중국인들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미련한 오기(傲氣) 때문이었을 것이다. 넉 잔까지는 아무 기별도 없었다. 그러나 다섯 잔 째 들어가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여덟 잔쯤 들어가자 눈앞에 이상한 물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열 잔이 들어가자 옆 사람들의 동작이 어항 속의 물고기들처럼 슬로우모션(slow motion)으로 보였고, 열두 잔 째 드디어 필름이 끊어지고 말았다. 다음 날 호텔에서 간신히 일어나 위문 차 찾아온 중국의 교수에게 ‘어제 그 술 몇 도 쯤이나 되우?’ 하고 묻자,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58도!’란다.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25도짜리 한국 소주 두 병 정도의 주량인 내가 58도짜리 중국술을 벌컥벌컥 마셔 댔다니! 함께 독한 술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은 중국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나의 미련한 호기(豪氣)가 심히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중국의 술을 만났고, 그 후 지금까지 중국을 방문할 때마다 중국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곤경을 치르곤 한다.

백주(白酒), 모태(茅台), 오량액(五粮液), 죽엽청(竹葉靑), 수정방(水井坊), 이과두(二锅头), 공부가주(孔府家酒), 고량주(高梁酒), 검남춘(劍南春), 서봉주(西凤酒), 노주노교(泸州老窖) 등 진짜인지 짝퉁인지 알 수는 없으나, 4천여에 달한다는 중국 술 가운데 마셔본 것만 10여종이 넘는다. 그런데 이런 중국술들은 반드시 기름 진 중국의 음식과 함께 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반주(飯酒)문화도 여기서 나왔을 것이다. 밥상에는 대부분 술이 따른다. 그런데 중국의 술들은 대부분 알코올의 도수(度數)가 높아, 기본적으로 한국의 주당(酒黨)들은 중국의 주당들을 이길 수 없다. 중국 내에서도 북방 사람들이 남방 사람들에 비해 훨씬 독한 술을 다량으로 즐겨 마시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중국의 술 문화는  역사가 길다. 고대로부터 중국의 각종 문헌이나 문학, 예술 등에 남아 있는 술의 자취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도연명(陶淵明)⋅이백(李白)⋅백거이(白居易)⋅소동파(蘇東坡)⋅이하(李賀) 등의 시인, 죽림칠현(竹林七賢) 중의 주호(酒豪) 유령(劉伶), 문인(文人)이자 정치가(政治家) 구양수(歐陽脩) 등은 자타가 공인하던 고금(古今)의 술꾼들이었다. 이 가운데 이하(李賀)의 <장진주(將進酒)>, 이백(李白)의 <월하독작(月下獨酌)>, 유령(劉伶)의 <주덕송(酒德頌)> 등은 중국인들의 술 문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하의 <장진주>를 살펴보자.

  <前略>               <전략>
況是靑春日將暮     하물며 청춘의 하루가 장차 저물려 하는데
桃花亂落如紅雨     복사꽃 어지러이 떨어져 붉은 비 내리는 듯
勸君終日酩酊醉     그대에게 권하노니, 종일토록 얼큰히 취하게나
酒不到劉伶墳上土   술이란 무덤 위의 흙까지 따라가는 게 아닐 것이니.
<將進酒>의 뒷 부분-

덧없는 인생에 대한 허무감과, 술에 기대어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소망(素望)이 이 시에는 나타나 있다. 시 속의 화자(話者)가 잔을 건네는 상대는 아마도 자신처럼 젊은 친구일 것이다. 복사꽃 어지러이 붉은 비처럼 떨어지듯 자신들의 청춘도 곧 지나갈 것이니 얼마나 허무하냐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 내내 취하도록 술을 권한다고 했다. 유령(劉伶)처럼 술을 좋아하던 인간도 죽은 뒤엔 다시 술을 마시지 못하니, 죽기 전에 마음껏 마시자는 말이다. 27세의 젊은 나이로 죽은 이하(李賀)였다. 열매 맺지 못하고 져버린 복사꽃처럼 아름다운 나이에 죽은 이하는 어린 나이에 인생의 무상을 느낄 만큼 그는 감성적으로 출중했을 것이다.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은 또 다른 차원에서 중국인들의 술 문화를 보여준다.

花間一壺酒   꽃 사이에 한 병 술을 놓고
獨酌無相親   홀로 잔질하니 서로 권할 친구가 없네
擧杯邀明月   잔 들어 밝은 달 바라보니
對影成三人   그림자를 대하니 도합 세 사람이 되었구나
-<월하독작>의 첫 부분-

술은 권해야 맛이고, 술잔을 주고받는 사이에 좋은 인간관계는 형성된다. 중국인들은 상대방에게 술 권하기를 즐겨하고, 오고 가는 술잔을 통해 좋은 벗이 생긴다는 믿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잔을 건넬 벗이 없는 외로운 상황이 그려져 있다. 꽃 사이에 한 병의 술을 놓고 홀로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대체로 서양 사람들은 혼자 술을 마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중국이나 한국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여럿이 함께 마신다. 그래서 시 속의 화자는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밝은 달을 벗으로 끌어들인다. 그런데 달이 자신을 비추어 땅 위에 그림자까지 만들었다.  그래서 자신과 달, 그리고 자신의 그림자 등 ‘세 사람의 벗’이 생겨난 것이다. ‘그림자도 마주하여 세 사람이 되었구나!’라는 부분에는 시인의 행복감이 표출되고 있다. 중국 사람들이 술자리에서 얼마나 함께 마실 벗을 중시해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시작품이다. 이하(李賀)도 이백(李白)도 두주불사(斗酒不辭)의 주호(酒豪)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일세(一世)를 울리던 시인들이었으므로, 인생에서 갖게 되는 허무감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평균적인 중국인들이 갖고 있던 허무감이나 술과 벗에 대한 사랑을 적절히 배합하여 절묘하게 표현한 셈이다.

중국문화가 세계로 확산되면서 중국의 술 문화 또한 세계인들을 매료시킬 것이다. 술은 벗과 함께 마셔야 한다는 관습도 세계인들을 움직일 것이다. 자, 중국의 주당(酒黨)들과 그들의 멋진 술 문화를 위해 ‘깐뻬이!’.


一个韩国人眼中的中国酒文化
文/曹圭益

我第一次踏上中国国土是在1995年,当时是参加延边大学的学术研讨会。
那天,学术会结束后,我跟中方教授们共进了午餐。就座后,一盘盘丰盛的菜肴摆满桌子,一个个比啤酒杯的一半还稍小一点的白酒酒杯摆了一圈,这大概就是传闻中的中国酒桌了。当时由担当主陪的权哲教授倒酒后,只见其他参宴者随和着权教授,齐喊“干杯”之后,很爽快地干掉了杯中酒,我当然也不例外地跟着干了。可没等酒杯落桌,空杯又被斟满。或许这是当地的酒道吧!心里这样想着,我也就一杯接一杯地喝着。“中国酒也不过如此嘛?”不知道是酒多壮胆后口出狂言,还是对平日两瓶烧酒的酒量和自己的年轻过于相信,总之是缘于那份不想在酒桌上输给中国人的傲气才冒出这么个想法。4杯下肚后还没什么感觉,到第五杯时已经开始有点飘飘然,到了第八杯,眼前就开始出现奇异景象,第十杯喝下去,身边的人就像鱼缸中游来游去的鱼儿,上演着各种各样的慢动作,而第十二杯时,脑海中记忆的胶卷已经中断了……第二天艰难起床后才发现,自己不知道什么时候被送到入住的酒店。当向前来问候的中国教授打听“昨天的酒有多少度”时,他不以为然地答道:“58度!”我着实一惊。要知道,当时我的酒量是25度的韩国烧酒两瓶,竟然畅饮58度的中国白酒!我自己都不敢相信。回想前晚一起痛饮烈酒而不醉的那几位中国人,我那愚蠢的豪气顿时变成一种羞愧。
我跟中国酒就是这样相识的,直到今天,每次访问中国,都无法摆脱对它的那份执着,以致时常陷入困境。
在中国4000多种白酒中,我仅喝过茅台、五粮液、竹叶青、水井坊、二锅头、孔府家酒、高粱酒、剑南春、西凤酒、泸州老窖等十几种。不过我总结出一点:中国酒一定要配油腻的中国菜,那样才能喝出味道。中国的饮酒文化也是从这里开始的:饭桌出现的地方,差不多都会有酒。但是中国酒大部分度数很高,尤其是北方地区,相比南方,酒精度数更高。所以,一般韩国“酒党”(能喝酒的人)难以胜过中国“酒党”。
中国酒文化历史悠久,从古代流传下来的诸多文献、文学和艺术中都留有酒的痕迹。陶渊明、李白、白居易、李贺、苏东坡等诗人,竹林七贤之一的酒豪刘伶,既是文人又是政治家的欧阳修等,都是古今公认的“酒鬼”。其中,李贺的《将进酒》、李白的《月下独酌》、刘伶的《酒德颂》等更是把中国人的酒文化表现得淋漓尽致。先让我们来欣赏一下李贺的《将进酒》。
“……况是青春日将暮,桃花乱落如红雨。劝君终日酩酊醉,酒不到刘伶坟上土。”
诗人对如同白驹过隙一样短暂人生的空虚感和试图以酒消愁的心理,从诗中自然地流露出来。看到桃花像红雨一般无序地散落下来,联想到自己的青春亦将匆匆流逝,该有多么空虚?诗中主人劝酒的对象或许是跟诗人一样年轻的朋友,所以“终日”“劝君”,直到“酩酊醉”。即使像刘伶一样喜欢酒的人,死后不也是不能再喝。所以诗人劝道人们生前一定要尽情畅饮。这就是27岁年纪就离开人世的李贺。就像还没来得及结果就凋谢的桃花,在最美好的年纪便结束了人生,由此可见,李贺对人生的无常已经看得非常透彻。
而李白的《月下独酌》却是中国人酒文化表达出的另一番景象。
“花间一壶酒,独酌无相亲。举杯邀明月,对影成三人……”
酒要敬才有情调,觥筹交错间,就结成了良好的人际关系。中国人喜欢敬酒文化,他们相信在酒盏的你来我往之中,能交成好朋友。但是,在这首诗中,诗人没有可敬酒的对象,只好孤独一人,在花丛中自斟自饮。其实,西方人独自饮酒的情形不在少数,但是中国人和韩国人大都喜欢与他人共饮。所以,诗人百般无奈之下,只好邀天上的明月和月光下自己的身影做酒友,如此一来,三“人”同饮,诗人的幸福感便从字里行间情不自禁地表露出来。由此可见,中国人十分重视酒桌上一起喝酒的酒友。
李贺也好,李白也罢,不仅是“斗酒不辞”的酒豪,还是名噪一时的大诗人。因此,他们能把大部分中国人都会感到的空虚与对酒和酒友的热爱恰当地结合在一起,通过诗句,把人生中的空虚巧妙地表达出来。
中国文化在不断向世界传播的过程中,中国酒文化也錚醉着地球人。而酒要和朋友一起分享的习惯也逐渐受到世界各国人的认可。让我们为中国的“酒党”和精彩的中国酒文化“干杯!”

(本文作者:文学博士、崇实大学国语国文系教授、人文大学学长、韩国文艺研究所所长)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