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격'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2.03 대통령의 말
  2. 2010.04.26 장관의 탄식
  3. 2010.03.29 지도층의 막말, 떨어지는 국격(國格)
글 - 칼럼/단상2011. 2. 3. 16:15

대통령의 말

 

최근 대통령이 만찬 회동에서 집권당 대표에게 “당신, 이제 거물 됐던데”라고 한 말은 곱씹을수록 우리나라의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찜찜하고 불쾌하다. 신문의 보도대로라면, 당시 대통령이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었다니 비아냥대는 말투였을 것이고, 속마음 역시 편치 않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대통령은 누구인가. 나이로 쳐도 이순(耳順)을 훨씬 넘겨 곧 고희(古稀)에 이를 분이고, 항간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집권당 대표는 이 나라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인사일 뿐 아니라 나이 또한 이순을 넘긴지 오래다. 그러니 두 사람 모두 이 나라 정계의 거물들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대표에게 ‘당신, 이제 거물 됐던데’라고 했다면, 그동안 대통령은 대표를 우습게보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얼마 전 대통령이 추천한 감사원장 후보에게 자진사퇴를 권유한 것이 한나라당이고, 그 일의 주동이 안 대표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번 해프닝이 그로부터 연유되었다는 것 또한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집권 여당으로서도 감사원장 후보에게 많은 문제가 있었기에 대통령의 뜻과 다른 말을 하게 된 것이고, 그 때문에 당이 겪었을 곤혹스러움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과 대표 단 둘이 만난 사석에서라면 이런 저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안가(安家) 회동’이라고는 하지만, 다수의 인사들이 참여한 자리였던 만큼 공적인 성격을 배제할 수 없는 모임이었다. 그런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내뱉듯이 던졌다면, 대통령의 인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조가 망한 뒤 식민 상황과 분단 상황을 거치면서 심화된 이념적 갈등은 우리의 집단정서를 험한 방향으로 몰아 왔으며, 그 위에 더해진 산업화와 비인간화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표출시켰다. 집단 정서의 조악성(粗惡性)은 개인들의 언어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데, 인터넷의 발달로 그런 부정적 성향은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최근 문제되는 ‘악플[악성 댓글]’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간 우리 사회의 음지에서 활약해 오던 조직폭력배 문화[조폭문화]의 1차적 징표는 거친 언어다. 말하자면 대통령이 입에 올렸다던 ‘당신, 이제 거물 됐던데’ 식 어법은 얼마 전까지 조폭세계에서나 통용되던 것인데, 이번 일로 그 어법이 이제 이 사회의 하이클래스에도 수용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표면상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대중사회다. 그러나 언어를 통해 한 인간이 속한 이면적인 계층을 점칠 수 있는 것은 언어가 교양의 정도나 인격을 나타내는 1차적인 잣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라고 감정이 없을 수 없겠으나, 시시각각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노출되어 전 국민에게 알려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면, 아무 말이나 함부로 내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은 무거워야 하고, 전략적이어야 하며, 충분히 모범적이어야 한다.

말을 절제하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나라를 맡겨도 괜찮을지 불안함을 느끼는 국민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대통령의 리더쉽은 힘을 발휘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2011. 2. 3.)
 
                                                                                                               조규익(숭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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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0. 4. 26. 10:43

장관의 탄식 

 

최근 기획재정부 윤증현 장관은 ‘지식의 빈곤을 절감한다’, ‘세계의 중심이 되기에 우리의 지식수준은 어림없고, 너무나 모자라다’는 요지의 한탄을 기자들에게 털어놓았다. 자존심을 생각한다면, 한 나라의 경제수장으로서 쉽게 할 수 없는 말이다. 그래서 그의 말은 그간 세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고 목에 힘을 주던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폭탄선언’이기도 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제회의에 자주 참석, 선진국의 경제계 인사들과 대화를 나누던 그였다. 그들의 대화에는 예술이나 문화 등 폭 넓은 교양에서 전문적인 경제정책까지 두루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객관적인 면에서 윤장관의 소양을 의심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공부를 했고,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의 요직들을 두루 역임했으며 금융감독원장을 거쳐 이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는 그 스스로가 ‘무식함’을 토로했다면, 그 고백 속에는 우리의 문제적 현실을 아프게 지적하려는 복합심리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아는 게 없는 것이 ‘무식’이고, 지혜롭지 못한 것이 ‘무지’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도 지혜롭지 못할 수 있고, 배운 게 없어도 지혜로울 수 있다. 따라서 그의 말은 우리의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강하게 요구한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하루 중 밥 먹고 쉬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를 깡그리 배움에 쏟아 붓는다. 그런 지옥 같은 관문을 통과한 사람들 중 일부가 엔진역할을 하며 이끌어가는 게 우리나라다. 그런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윤장관이 ‘우리는 아는 것이 없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자녀교육에 열성인 나라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만큼 공교육, 사교육에 많은 재원을 투입하는 나라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국격(國格)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모두가 무식하다면 무언가 잘못되었음에 틀림없다. 육체적, 심리적으로 심한 압박을 받을 정도로 아이들이 공부에 몰두해온 것이 우리의 현실임에도 그 결과가 ‘무식’이라면, 우리는 대체 공교육과 사교육을 통해 무엇을 가르치고 배웠단 말인가.

  현재 유치원부터 중등학교까지의 교육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준비 단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듯 ‘중등학교는 대학에 골인하기 위한 관문’에 불과하다. 따라서 ‘좋은 인간’을 만드는 것보다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학교 당국이나 학부모 모두의 유일한 목표일 수밖에 없다. ‘폭 넓은 교양과 훌륭한 인성의 바탕 위에 지식을 쌓는 것’이 교육의 보편적인 목표라면, 바탕을 도외시한 채 도구로서의 지식 획득에만 주력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일단 대학만 들어가면 그런 바탕은 저절로 마련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필수 영양소처럼 인간 성장의 단계마다 필요한 것이 교양교육과 인성교육인데, 우리는 대학에 들어가서 한꺼번에 그런 영양소들을 공급해도 되는 것처럼 착각한다. 아이들의 교육실조(失調)가 대학에 들어왔다고 치유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스스로 찾아서 공부할 수 있는 훈련을 받지 못한 아이들, 입시에만 초점을 맞추어 요령껏 자라온 아이들이 대학에 적응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국가나 사회가 아닌 학생들이 수요자라고 착각하는 대학들은 그들 나름의 생존법을 강구하고 애를 쓴다. 학생들의 마음이 떠나가면 대학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수들로 하여금 거친 지식을 ‘말랑말랑하게 씹어서’ 학생들의 입속에 넣어 주길 요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걸 대학들은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라고 강변한다. 그런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어린 시절 받지 못한 예술이나 교양교육을 제대로 시켜 줄 리 없고, 학생들 또한 부족한 영양소를 스스로 찾아서 보충할 리는 더더욱 없다. 지금처럼 교수들이 입으로 잘근잘근 씹어준 전공지식을 간신히 받아먹고 자란 학생들이 졸업 후 사회의 중추를 이룰 때, 우리들의 입에서 ‘우리는 무식하다’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무식함에 대한 자성을 많이 할수록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은 크겠지만, 국민들 스스로가 무식하다는 사실 조차도 알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다.

  조규익(숭실대 교수/인문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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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0. 3. 29. 08:57

지도층의 막말, 떨어지는 국격(國格)

 

전 방송문화진흥원 이사장이 ‘막말’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데 이어,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여성과 관련된 ‘사려 깊지 못한 말’로 공개사과를 해야 했고, 집권당 대표는 특정 종교에 대한 압력의 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여부로 구설에 휩싸여 있다. 이들 뿐 아니라 최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말실수가 잊을 만하면 한 번 씩 언론에 등장하곤 한다. 방송이나 통신, 혹은 입법으로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지도층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말은 우리나라 국격(國格)의 현주소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이 사건들이 공통적으로 야기시킨 문제는 지도층의 말이 갖추어야 하는 품격과 진실성에 대한 회의(懷疑), 그리고 국가 행정이나 정책에 대한 불신이다. 거짓이나 가식에서 결코 품격이 나타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품격의 바탕은 진실성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통용되고 있는 품격의 뜻은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 등으로 요약된다. 그 설명들의 핵심은 ‘바탕과 품위’다.

 예컨대, 금속공업 분야에서 쓰이는 품위란 말은 지금(地金)의 순도를 나타내는 용어다. 완벽한 상태인 100에서 불순물의 수치를 뺀 것이 그 금속의 품위라는 것이다. 인간도 태어날 당시엔 가장 순수하고 깨끗하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각종 불순물이 인간의 내면에 끼게 되는데, 부단한 수양을 통해 그런 불순물이 제거되지 않을 경우 인간도 하등(下等)의 품위를 벗어날 수 없다.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할 수는 없지만, 수양의 정도나 양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 비해 높은 품위를 갖출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 말이고 보면 말에 품위를 갖추는 일이야말로 인간 수양의 정도를 나타내는 표지이자 지도적 인격의 필수요건이다.

 공자(孔子)는 정치의 첫 단계가 정명(正名) 즉 ‘명분을 바르게 하는 것’이라 했다. 명분을 정하게 되면 그에 맞는 말이 있게 되고 무엇을 말하면 반드시 그에 맞는 실행이 있게 되니, 그래야 군자의 말에서 구차스러움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고상한 말이라도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언(巧言)이나 거짓말일 뿐이다. 절제되지 못한 막말이나 책임 지지 못할 ‘구차스러운 말’로 국민들에게 결코 모범을 보일 수 없고, 직책을 공명정대하게 수행할 수도 없다.

  집권층이 방송계의 개편이나 국가의 종교 정책 등을 법적⋅제도적 원칙과 원리에 따라 수행한다고 믿어온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다. 그러나 나라의 법령을 제정하거나 집행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통해 유추되는 실상은 결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국민들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피고, 겸허하게 최선을 다 하는 자세로 그 뜻을 받들어 법을 만들거나 집행해야 하는 것이 관련 인사들의 책무다. 그러나 그들의 말만으로 미루어 본다면, 소리(小利)와 사욕(私慾)의 도구로 공적인 책무를 악용하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어느 시대나 지도층이 가질 수 있는 오만은 여러 형태로 표출된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사려 깊지 못한 말인데, 그 중의 압권은 막말이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홉스(T. Hobbes)는 ‘인간에게 말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자 저주’라고 단언했다.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고 과학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말은 축복이지만, 일시적 욕망에 따라 무절제하게 사용함으로써 재앙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말은 인간과 세상에게 저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남을 해치는 말은 먼저 스스로를 해치고, 피를 머금어 남에게 뿜으면 먼저 자신의 입이 더러워진다’는 태공망(太公望)의 말처럼, 툭하면 터져 나오는 지도층의 막말이나 무책임한 발언들이 자신을 망치는 것은 물론 나라까지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아름다운 말, 문채(文采) 있는 말은 하루아침에 터득되지 않는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제대로 말 교육을 받았을 리 없는 그런 인사들이 지도층으로 활보하는 건 이 땅의 비극이다. 지도층의 막말들을 보며 뜻 있는 국민들은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한다. ‘말 못하는 사기꾼 없다’는 경험칙에 익숙한 국민들이 사회 지도층의 허울 좋은 말이나 막말로 국격이 떨어지는 광경을 속절없이 바라보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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