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1. 2. 3. 16:15

대통령의 말

 

최근 대통령이 만찬 회동에서 집권당 대표에게 “당신, 이제 거물 됐던데”라고 한 말은 곱씹을수록 우리나라의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것 같아 찜찜하고 불쾌하다. 신문의 보도대로라면, 당시 대통령이 ‘못마땅해 하는 표정’이었다니 비아냥대는 말투였을 것이고, 속마음 역시 편치 않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대통령은 누구인가. 나이로 쳐도 이순(耳順)을 훨씬 넘겨 곧 고희(古稀)에 이를 분이고, 항간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집권당 대표는 이 나라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표적인 인사일 뿐 아니라 나이 또한 이순을 넘긴지 오래다. 그러니 두 사람 모두 이 나라 정계의 거물들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대표에게 ‘당신, 이제 거물 됐던데’라고 했다면, 그동안 대통령은 대표를 우습게보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얼마 전 대통령이 추천한 감사원장 후보에게 자진사퇴를 권유한 것이 한나라당이고, 그 일의 주동이 안 대표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이번 해프닝이 그로부터 연유되었다는 것 또한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집권 여당으로서도 감사원장 후보에게 많은 문제가 있었기에 대통령의 뜻과 다른 말을 하게 된 것이고, 그 때문에 당이 겪었을 곤혹스러움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과 대표 단 둘이 만난 사석에서라면 이런 저런 말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안가(安家) 회동’이라고는 하지만, 다수의 인사들이 참여한 자리였던 만큼 공적인 성격을 배제할 수 없는 모임이었다. 그런 자리에서 이런 말을 내뱉듯이 던졌다면, 대통령의 인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조가 망한 뒤 식민 상황과 분단 상황을 거치면서 심화된 이념적 갈등은 우리의 집단정서를 험한 방향으로 몰아 왔으며, 그 위에 더해진 산업화와 비인간화는 다양한 사회문제를 표출시켰다. 집단 정서의 조악성(粗惡性)은 개인들의 언어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데, 인터넷의 발달로 그런 부정적 성향은 갈수록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최근 문제되는 ‘악플[악성 댓글]’들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그간 우리 사회의 음지에서 활약해 오던 조직폭력배 문화[조폭문화]의 1차적 징표는 거친 언어다. 말하자면 대통령이 입에 올렸다던 ‘당신, 이제 거물 됐던데’ 식 어법은 얼마 전까지 조폭세계에서나 통용되던 것인데, 이번 일로 그 어법이 이제 이 사회의 하이클래스에도 수용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표면상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 대중사회다. 그러나 언어를 통해 한 인간이 속한 이면적인 계층을 점칠 수 있는 것은 언어가 교양의 정도나 인격을 나타내는 1차적인 잣대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라고 감정이 없을 수 없겠으나, 시시각각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노출되어 전 국민에게 알려진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면, 아무 말이나 함부로 내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말은 무거워야 하고, 전략적이어야 하며, 충분히 모범적이어야 한다.

말을 절제하지 못하는 대통령에게 나라를 맡겨도 괜찮을지 불안함을 느끼는 국민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대통령의 리더쉽은 힘을 발휘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2011. 2. 3.)
 
                                                                                                               조규익(숭실대 교수)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