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6. 1. 8. 16:33

우리 시대 교수들의 자화상

 

 

 

#아침에 조교로부터 전화가 왔다. 몇 년 전 교수들에게 지급한 노트북 컴퓨터의 사진을 찍어내라는 학교 본부의 공문이 내려왔단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지급받아 써온 세월이 오래지만, 사용하는 도중에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건 처음이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 어쩌면 학교에서 지급받은 컴퓨터마저 사적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교수들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지난 해 모처럼 국가기관으로부터 연구비를 받게 되었다. 그 사이에 바뀐 규정들 때문일까. 연구비를 집행하기가 아주 까다로워졌고, 그에 따라 기분 또한 묘해졌다. 예컨대, 연구과제 관련 도서를 구입하려면 연구비 카드로 결제해야 하고, 영수증과 거래 명세서는 물론 책의 표지까지 일일이 복사하여 제출해야 한다. 사지 않았으면서도 샀다고 돈을 요구하는 교수들이 있는 걸까. 영수증만으로는 그들을 믿을 수 없다는 뜻이리라.

 

#병아리 교수 시절. 갓 부임했을 때 인상 좋게 나를 환대해주던 이공계의 호남형 시니어 교수가 있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의 연구비를 수주하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난 1년 뒤 검찰에 불려 다닌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수군대는 연구비 횡령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당시 병아리 인문학 교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로부터 1년쯤 뒤 형사처벌과 교수직 파면의 소식이 들려왔고, 또 그로부터 얼마쯤 뒤 작고 소식이 들려왔다. 교수들이 구름 위의 존재들이 아님을 처음으로 깨달았고, 선배 교수들에게서 비로소 갖가지 사람냄새들을 맡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연구비에 관련된 교수들의 추문이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하기 시작했다. 군 복무 중인 아들을 연구원으로 허위 등록하고 수천만 원을 용돈으로 지급한 일, 연구원의 인건비를 빼돌려 수억 원을 동생의 통장으로 입금해 편취한 일, 학생 십여 명을 허위 연구원으로 등록하고 수억 원을 빼돌린 일, 연구원들에게 입금되는 수당 중 상당액을 자신의 통장으로 돌려받아 생활비로 쓰다가 들통 난 일, 빼돌린 수억 원의 연구비로 주식 투자를 하다가 발각된 일, 연구비로 집에서 피자를 시켜 먹거나 해외에서 아이들 장난감을 샀다가 들통 난 일 ...그 수법과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남의 논저를 표절하거나 부정하게 중복 게재하여 연구윤리를 위반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장관이나 국회의원으로 진출하려다가 청문회의 그물망에 걸려들기도 했다. 매스컴의 매서운 추적을 따돌리지 못하고 그런 비리가 발각되는 경우도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 뿐 아니라, 남의 책에 이름만 바꾸어 다시 출판하는 이른바 표지갈이에 참여한 파렴치 교수들 수백 명이 최근 법망에 걸려들기도 했다.

 

#“2015년 굵직한 현안마다 교수들이 안 보였다/부정·비리·불공정평가에도 침묵이대론 안 된다.()내년에도 올해처럼 교수들이 무기력에 빠져 월급봉투만 들여다보고 있다가는 더 큰 희생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교수신문>(20151228)의 아픈 지적이다. 교수 집단의 나태와 패배의식을 이처럼 매섭게 꼬집은 글을 근래 목격한 적이 없다. 그나마 교수들에 대한 애정이 눈꼽만큼이라도 남아 있기에 <교수신문>은 이런 고언을 실었을 것이다 

 

***

 

사실, 검찰에 소환되거나 매스컴의 추궁에 답해야 하는 교수들 모두 관행을 방패막이로 들고 나선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회개만으로도 벅찰 텐데, 이른바 물귀신 작전으로 남까지 옭아매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물 타기 해보려는 것일까. 자신이 속해있는 공동체의 선후배, 동료들을 모두 공범으로 모는, 또 한 번의 파렴치를 자행하는 뻔뻔함을 보라. 물론 교수도 인간, 무엇보다 생활인이다. 교수라는 직업을 통해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고 자식들을 가르쳐야 하는 속계(俗界)의 범부(凡夫)들임에 틀림없다. 이들을 데려다가 장관이나 국회의원으로 쓰고자 한 꺼풀 벗겨보곤 진동하는 구린내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세상 사람들의 무지와 편견을 접하면서, ‘내가 참 그동안 좋은 시절을 보냈구나!’라는 깨달음을 비로소 갖게 된다.

 

대학이 망해가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밥벌이를 못하는 젊은이들이 그득그득 쌓이면서 국민들이 대학을 불신하게 되었고, 밥벌이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학문이나 교수들을 불신하게 되었다. 밥벌이도 못하는 대학이나 학문, 그리고 교수가 과연 필요한가.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이 제 앞가림이라도 하게 만들려면 대학은 과연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 대학을 둘러싼 세상 사람들의 의심과 질타가 이제 정점에 이른 듯하다.

 

그 불신의 핵심적 대상이 인문학인데, 그러나 인문학만 도려낸다고 대학이 제 구실을 할 수 있을까. 이공학이나 경영학이 도려낸 인문학의 빈 자리까지 차지한다고 옛 대학의 영화가 회복될까. 사실 국민들이 대학 무용론을 깨달아가면서 등록금의 액수에 대한 저항이 높아져왔고, 설사 등록금이 더 낮아진다 해도 앞으로 대학은 텅텅 비어버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해당 학문 분야의 교수들은 스스로 변하기보다 혹시 지금까지 지탱해 온 밥그릇이 날아갈까 봐 전전긍긍한다고 정부의 교육당국자나 대학 본부는 이들에게 눈총을 쏘아댄다. 사정이 나은 분야의 교수들은 궁한 분야의 교수들을 우습게 여기고, 코너에 몰린 교수들은 잘 나가는 분야의 교수들을 경계한다. 그래서 지금 대학은 불신과 반목이 만연한 연옥이고, ‘큰 학자 하나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소시민이나 양산하는 공작소일 뿐이라고 누군가는 질타하는 것이리라. 제대로 된 학문적 업적을 이룰 수 없도록 세팅된 지금 대학의 시스템과 의식 아래 큰 학자가 출현하기를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緣木求魚)’의 어리석음일 것이다.

 

생활인 혹은 소시민! 참 좋은 말이다. 하루하루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착하게 살아가는 장삼이사들이 바로 생활인 아닌가. 공적인 돈을 주머니의 용돈처럼 꺼내 쓰려는 교수들, <교수신문>의 질타처럼 할말을 하지 못하고 월급봉투만 바라보는 요즘의 교수들이 존재하는 한, 21세기 한국의 대학교수들은 대부분의 착한 생활인들보다 몇 단계 아래쪽에 위치한 못난이들임을 결코 부정할 수 없으리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12. 31. 13:26

               

轍鮒之急

飽食煖衣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다는 보도가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것. 즉 거짓으로 윗사람과 주변사람들을 농락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일에 대하여 딱히 반론을 제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사실 저도 이 달 초 같은 신문으로부터 올해를 대표할만한 사자성어 두 건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은바 있습니다. 당시 저는 조용히 눈을 감은 채 한 해의 영상을 뒤로 빠르게 돌려보았습니다. ‘지록위마’가 떠오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사실 그건 너무 싱거운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언제 우리네가 ‘지록위마’의 거짓과 비리로부터 자유로울 때가 있었던가요. 특히 지도층의 가식과 위선, 혹은 ‘갑질’의 행태에서 한 번이라도 벗어나 본 적이 있었나요. 지금까지, 아니 지금부터 앞으로 언제까지나 ‘지록위마’의 상황을 그러려니 여기며 살아가는 게 속 편한 것이 우리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팔자가 아닌가요. ‘지록위마’가 새삼 올해만의 사자성어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철부지급(轍鮒之急)’과 ‘포식난의(飽食煖衣)’ 등 두 가지 성어를 추천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적실하게 나타낸 말이라고 본 것입니다.

 

‘수레바퀴(자국) 속의 붕어’ 즉 ‘생존을 위해 당장 한 바가지의 물이 필요할 뿐 장강대하(長江大河)의 물은 먼 훗날에나 필요하다’는 것이 ‘철부지급’의 뜻이고, ‘생활고로 죽어가는 서민들을 살려내는 것이 시급한데, 나라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너무 멀리만 바라보고 있다’는 현실 비판이 그 말의 속뜻입니다. 당장 한 줌의 곡식이 없어 죽어가는 서민들을 바라보며 ‘100년 대계(大計)’를 고창(高唱)하던 그 시절의 위정자들을 장자(莊子)는 한심하게 바라보며 이 말을 했을 것입니다.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 같은 비극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데, 당장 이들을 살려내지 못하는 위정자나 정치인들은 대체 무얼 쳐다보고 있는 걸까요.

 

‘포식난의’는 <<맹자>> ‘등문공 상편’의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으면서 가르침이 없다면 짐승에 가까워진다[飽食煖衣 逸居而無敎 則近於禽獸]’는 맹자의 일갈(一喝)에서 나온 말입니다. 따라서 ‘제대로 된 가르침’이 전제될 때 비로소 이 말의 의미는 온전해지는 것이지요. 국회의원 김현의 대리기사 폭행사건,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기내(機內) 패악사건 등 올해 일어난 이른바 ‘갑질 사건’들의 근저를 설명하기 위해 이 말은 필수적이라 본 것입니다. 이들은 권력이나 부를 거머쥐고 ‘포식난의’를 즐기는 대표적 부류입니다. 그런데 ‘포식난의’를 즐기면서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함으로써 그들은 맹자의 말처럼 결국 ‘짐승에 가까운 행태’를 보여주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교육이란 ‘지식교육’ 아닌 ‘인간교육’을 말하는데, 그 출발점이자 종착점이 바로 ‘가정교육’입니다. 1차적으로 김현의 부모나 조현아의 부모에게 비난의 화살이 쏠리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

 

그래서 저는 ‘철부지급’과 ‘포식난의’를 올해 이 땅에서 근근이 살아온 서민들의 곤경을 대표적으로 드러낸 사자성어로 들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새해에는 정말로 정치인들이나 부자들이 대오각성(大悟覺醒)하여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한 모금의 물속에서 몸부림치는 서민들의 급박한 사정을 헤아려야 합니다. 요즘 종북주의자들로 매도되는 일부 인사들이 그 ‘종북’의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철부지급’ 중에서도 최고로 급박한 처지에 놓인 북한 주민들의 삶을 먼저 걱정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고, 이 땅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에게 붙어 다니는 ‘무책임’의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라도 어려운 서민들이 겪고 있는 ‘철부지급’의 상황을 해소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새해엔 서민들이 진정으로 ‘포식난의’를 즐기는 원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새해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12. 22. 16:32

 

문학과 환경학회 국제학술 심포지엄[ ‘동요하는 경계들: 자연, 기술, 예술’]-오키나와 나고 시

메이오 대학교/2014년 11월 22-23일 

 

 


문학과 환경학회 국제 심포지엄 표지


 


다큐멘타리의 내레이터로 등장하여 끝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이시무레 미치코 선생

 

 


다큐멘터리 <꽃의 정토로> 타이틀 화면

 

 


이시무레 미치코의 <<고해정토>>의 영문 번역판

 

 


한국의 전통 생태학 관련 논문을 발표하고 있는 필자

 

 


이시무레 미치코의 「꽃의 정토로(花の億土へ)」에 나타난 '문학이론의 척도'를 발표하고 있는
미네소타 대학교의 크리스틴(Marran, Christine L.) 교수

 

 


발표를 마치고 같은 세션의 발표자들과 함께

 

 


점심식사 후 대만 담강대학교(Tamkang University)의 황(Huang, Peter) 교수와 함께 

 

 

 

 

*교수신문 760호(2014. 12. 22)에 실린 글을 이곳에 퍼다 놓습니다.

 

 

 

'환경과 문학' 담론, 그 세련화를 지향하며

   학술대회 참관기-문학과 환경학회 국제심포지엄을 다녀와서
2014년 12월 22일 (월) 10:16:58 교수신문 editor@kyosu.net

   
 

 

▲ 해상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헤노코 해변에 설치한 텐트. 문학과 환경학회 국제심포지엄이 열린 오키나와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조규익 교수는 바로 이곳에서 일본의 환경론이 보다 심도있게 융합 양상을 띄며 발전하고 있음을 목격했다고 말한다. 사진제공= 조규익

 

 

 
 
이 글은 조규익 숭실대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지난 11월 22일부터 이틀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시의 메이오대에서 열린 2014년 동아시아 문학과 환경학회 국제 심포지엄[2014 The International Symposium on Literature and Environment in East Asia[ISLE-EA]/Unsettling Boundaries: Nature, Technology, Art]을 다녀와서 학회 참관기로 보내온 글이다.

 

 


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오키나와 나고(名護) 시의 메이오(名櫻) 대학에서 열린 ‘2014년 동아시아 문학과 환경학회 국제 심포지엄’은 한국·일본·미국·타이완·중국·오스트레일리아·홍콩·캐나다 등 세계 각국에서 모여 든 100여명의 학자들과 수십 명의 대학원생들이 모여 벌인 학술의 난장이었다. ‘동요하는 경계들: 자연, 기술, 예술’이란 주제가 암시하듯 현격하게 다른 분야의 학문들이 환경이란 범주로 융합돼야 하는 당위를 모토로 내건 심포지엄이었다.

 

‘전날 밤의 다큐멘타리 상영/이틀에 걸친 논문 발표/환경 분쟁지역 헤노코(へのこ) 답사’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진행된 심포지엄의 메시지는 명확했다. 환경파괴가 단순히 물리적인 문제이거나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한시적인 문제가 아니며, 세대를 넘어 영원히 지속될 뿐 아니라 인문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의 지혜를 융합해 미연에 방지하거나 해결해야 할 ‘절박한 삶의 문제’임을 천명하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심포지엄 전날 밤 참여자들을 위해 상영한 다큐멘타리「꽃의 정토로(花の億土へ)」는 이 심포지엄이 지향하는 결론을 미리 암시한 일종의 가설이자 화두(話頭)였다. 자신의 고향 구마모토 현(熊本縣)의 미나마타(水俣)에서 일어난 비극적인 환경문제를 문학으로 고발해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환경 공해의 고발과 해결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이시무레 미치코(石牟괋道子). 그녀가 주연으로 출연해 미나마타병의 현상과 의미를 심도 있게 설파하고, 시라누이(不知火) 바다의 아름다운 사계를 통해 그 공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시간대의 희망을 그려낸, ‘한 편의 시’와 같은 기록 영화였다.

그 바다가 갖고 있던 본래의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공해로 일그러진 현실의 참상이 대비되면서 자연환경의 파괴가 인류의 삶에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 듯, 전편에 걸친 ‘환상과 리얼리즘’의 융합적 미학이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이시무레 미치코의 삼부작(<<고해정토(苦海淨土)>>, <<신들의 마을>>, <<하늘의 물고기>>)은 이미 환경 문제를 예술로 승화시킨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었으며, 일본 학자들은 물론 서양 학자들도 이시무레 미치코와 그녀의 문학을 ‘환경 혹은 환경문학’의 중심에 올려놓고 그들의 담론을 생산하거나 정제시키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아름다운 헤노코 해변을 누구로부터 지켜야 하는지,
난해한 의문이 떠올랐다. 누구의 말대로 ‘세계전략 차원의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는 미국인가, 아니면 그 미국을 편드는 일본 정부인가, 아니면 일본의
가상적 적대국인 중국이나 북한인가. 그런 것들이 아니라면 개발이란 미명
아래 자연환경을 운명적으로 파괴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들인가.

 

 

서구 사회나 일본이 일찍부터 산업화의 길을 걸어온 만큼 환경 파괴의 문제나 삶의 피폐화 등 인간 소외의 문제를 인식하고 자각해온 역사가 길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만하다. 그런 비극적 현상들을 각종 예술의 소재로 그려내고자 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그러나 철학이나 종교학을 포함한 인문학적 사유를 통해 그런 것들을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성화되면서 환경론이 보다 심도 있는 융합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한 점은 충격이었고, 그것은 적어도 우리가 갖고 있는 환경인식의 낙후성이나 단편성과 대비되는 그들의 학문적 선진성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의 경우 이미 담론화된 철학 혹은 인문과학을 환경과 억지로 융합시키려 한다는 혐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리 환경이 물적인 객체라 해도 그것이 담론화의 대상으로 이미 편입돼 인식의 한 자리를 점하고 있는 한 그들과 대비되는 우리의 후진성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 날 답사한 헤노코(へのこ) 해변을 바라보며, 군사기지 건설의 현실적 필요성과 자연보호의 명분은 양자택일의 문항이 아니라 그 역시 지혜로운 타협과 융합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나름의 판단을 내리게 됐다. 미 해군기지의 증설을 극력 저지하며 투쟁하고 있는 사람들의 텐트 바깥엔 ‘투쟁 3871일째’라는 팻말이 작지만 완강한 모습으로 버티고 서 있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아름다운 헤노코 해변을 누구로부터 지켜야 하는지, 난해한 의문이 떠올랐다. 누구의 말대로 ‘세계전략 차원의 폭거를 자행하고 있다’는 미국인가, 아니면 그 미국을 편드는 일본정부인가, 아니면 일본의 가상적 적대국인 중국이나 북한인가. 그런 것들이 아니라면 개발이란 미명 아래 자연환경을 운명적으로 파괴할 수밖에 없는 우리 자신들인가.

 

환경론의 인문학적·미학적 승화는 단발적 캠페인이나 저항운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환경문제를 ‘대를 이어’ 지속적으로 전개함으로써 새로운 삶의 원리로 격상시키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우리가 환경 문제를 문학이나 예술로 고발하고 형상화 할 뿐 아니라 초기 단계부터 교육과 연계시킨다면 ‘미래의 개연적 환경파괴 문제’는 근원적으로 예방될 수 있을 것이며, 예기치 않은 환경문제들도 체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수월히 마련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역사 발전 원리의 두 축인 당위와 현실은 환경에도 적용돼야 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갖춰야 할때임을 깨달은 기회였다.

 

                                                                                     조규익(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오키나와 전도

 

 


오키나와 나하 시 시가지

 

 


나고 시 도착 후 저녁식사를 한 식당

 

 


마을 식당의 소박하고 정갈한 상차림

 

 


저녁 무렵 나고 만에서

 

 


호텔 창 밖으로 내다 보이는 저녁 무렵의 나고 만

 

 


학술 심포지엄이 열린 메이오 대학 정문

 

 


나고 시 시가지

 

 


호텔 근처에서 만난 교회[종교법인 궁리(宮里) 그리스도 교회]

 

 


교회의 내부

 

 


헤노코 해변으로 가는 길에 만난 미군기지[Camp Shwab]

 

 


투쟁단의 텐트에 부착된 구호[새 지사와 함께 열심히 합시다!!]

 

 


헤노코 해변 해상기지 건설 저지 투쟁 3871일째를 알리는 표지판

 

 


헤노코 해변에서 바라본 캠프 슈와브

 

 


헤노코 해변에서 만난 용궁신사

 

 


헤노코 해변의 아름다운 바위

 

 


헤노코 해변의 방파제

 

 


헤노코 해변 방파제 안쪽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12. 12. 17:19

*<교수신문> 758호(2014. 12. 1.)에 실린 글을 퍼다 놓습니다.

 

 

‘메모리얼 뮤지엄’, 그리고 어떤 기억들의 보존 방식

어느 국문학자의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 답사기
2014년 12월 10일 (수) 15:53:56 조규익 숭실대·국어국문학과 editor@kyosu.net

조규익 숭실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2013년도 풀브라이트 지원의 방문학자로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에서 연구하는 기회를 잡았다. 그는 “이곳에서 틈틈이 아내 임미숙과 함께 주변지역을 두루 답사하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라고 말한다. 오클라호마 곳곳에서 그는 삶의 어떤 순간들을 새롭게 읽어낼 수 있었다. 서울에 돌아온 뒤 그는 이런 경험을 묶어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푸른사상 刊, 이하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를 내놨다. ‘조규익·임미숙의 해외문화 답사기 2’라고 작은 타이틀도 붙인 책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국문학도로서의 외길을 걸어오며 내 지적 능력이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 자유로운 사유와 모색을 끊임없이 반복해왔고, 그것들이 바로 ‘도전과 좌절’이라는 최대공약수로 수렴된다는 사실을 최근 깨달았다.” 그가 말하는 도전과 좌절은, 그의 시선을 일찍이 ‘해외 한인문학’으로 돌리게 했고, 몇 년간의 여행을 거친 후 『CIS지역 고려인사회 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이란 책으로 결실을 맺었다.
이번 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 역시 그런 경험이 녹아든, 그러나 조 교수가 말한 것처럼, 지적 방랑을 거듭해오던 연구도전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는 작은 쉼표 다. 오클라호마라는 낯선 세계에서 그는 마주치는 삶의 현장마다 얽혀있는 사건과 역사의 깊이를 측량하고, 그것을 다시 우리의 삶 속으로 소환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읽어나갔다.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 에는 비극 속에 단련된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노력을 엿본 장면 하나가 인상적이다. 역사와 예술, 인디언의 문화, 대학 등 폭넓게 조망하고 있는 가운데, ‘오클라호마 시 메모리얼 뮤지엄’을 두고 그가 읽어낸 시선은 타자를 통해 다시 우리 안으로 돌아오는, 뚜렷한 성찰적 旅路의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관련 대목을 소개한다.

 

   
 

▲ 오클라호마 시 메모리얼 뮤지엄 건너편 추모공원의 ‘눈물 흘리는 예수님’ 상

 
 


인간은 착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동·서양의 철학자들이 오랜 세월 궁리해왔지만, 앞으로도 쉽게 결론 날 문제는 아니다. 성선설을 주장한 학자나 성악설을 주장한 학자나 아무리 복잡한 논리들을 늘어놓았어도 모두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경우 공자의 말씀(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 공자 말씀하시되 본성은 서로 비슷하나 익혀 얻게 되는 성품은 서로 멀어지게 된다, 『논어』, 「양화」 제2장)에서나 어떤 해결의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 인간의 본성이 악한지 선한지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다만, 태어나 살아가면서 어떤 상황에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길을 가는 것 뿐 아니겠는가. 다만 착한 쪽으로 방향을 틀 경우는 대개 그 정도에 한계가 있으나, 악한 쪽으로 방향을 틀 경우 그 끝을 헤아릴 수 없고, 진행 양상 또한 극적이다. 그래서 고금의 많은 문학가들이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 인간의 악마성을 그려내고자 노력해온 것이리라.


얼마 전부터 “오클라호마에 왔으니 메모리얼 뮤지엄은 봐야 할 것”이라고 어느 지인이 권유했다. 18년 전에 뉴스를 보며 ‘끔찍한 사건’이란 생각은 했으면서도 실감이 안 나 그냥 들어 넘기고 만 셈인데, 이제 그 현장에 온 만큼 안 볼 수는 없는 일. 더구나 훨씬 규모가 크고 끔찍했던 2001년의 ‘9·11 테러’로 치를 떨었던 만큼, 인간 악마성의 한계를 현장에서 느껴보고 싶었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흔히 용의선상에 오르곤 하던 이슬람 테러단체 아닌 미국인들이 자국민들을 상대로 테러를 벌였다는 점을 누군들 쉽게 이해하겠는가. 1995년 4월 19일 오전 9시 5분, 트럭에 실려 온 2천kg 이상의 폭발물이 터져 오클라호마의 연방청사는 처참하게 망가졌고, 보육원 어린이 상당수를 포함 168명 사망에 600여명의 부상자가 생겨났다.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연방청사의 공무원들, 어린이들, 일반인들 모두 테러범들과는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평소 일면식도 없었을 이들에게 엄청난 규모의 폭탄 테러를 가한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주범인 중산층 출신의 걸프전 참전용사 티모시 맥베이(1968~2001)와 종범인 테리 니콜스(1955~)는 둘 다 미시간에 근거를 둔 급진 우익 서바이벌 그룹의 멤버들이었다. 서바이벌 그룹이란 자신이나 자신의 그룹(혹은 국가)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무슨 짓이든’ 저지르는 미치광이 집단이다. 이들의 광기 앞에는 망상을 바탕으로 한 테러나 무차별의 증오만이 있을 뿐, 상식이나 이성은 있을 수 없었다. 18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건의 전말은 석연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계속 미국사회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테러의 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암울한 전망을 갖게 한 사건이었다.


사실 우리 같으면 빨리 그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순식간에 잔해들을 치우고, 그 자리에 보란 듯이 번쩍번쩍 빛나는 새 건물을 세웠을 것이다. 그리고 잠깐 뒤면 새 건물에서 일을 보는 사람들이나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났었냐는 듯 태평해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모조리 사라진 건물터엔 희생자들의 공동묘지와 기념을 만들어 놓았고, 위에서 아래로 1/2가량 파손된 건물을 세심하게 수습한 뒤 박물관으로 재생시켜 놓은 것이었다. 사건 직전부터 발발, 수습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대별 전 과정과 내용, 범인의 체포와 형 집행 등 사건 처리 과정, 희생자들의 신원 및 제반 관련 정보들, 시민들과 전 세계인들의 반응, 국가의 대응 등 사건과 관련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돼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폭발의 위력에 깨지고 부서진 시멘트 벽, 엿가락처럼 구부러진 각종 철 구조물들, 소방관들의 희생적인 구조 활동, 구조견의 대견한 활약상, 상태가 심한 부상자들을 구조하다가 정작 자신은 숨을 거둔 민간인 부상자들의 영웅적 활동, 시민들의 자발적 구조 활동 참여 등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교육의 현장’이었다.


미국인들, 아니 이곳을 방문한 세계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죽은 이들을, 살아남은 이들을, 그리고 삶이 영원히 변해버린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이곳을 보고 떠나는 모든 이들은 폭력의 충격을 잘 알게 됐다. 부디 이 기념관이 평안을, 강건함을, 평화를, 희망을, 그리고 평온함을 주기를……”

 

이라고.

 

 


부끄러운 테러, 혹은 비극적 참상을 ‘교육의 현장’으로 바꿔놓을 줄 안다는 점에서 참으로 위대한 미국인들이었다. 이곳을 끊임없이 찾아와 그 때의 충격을 느끼며 자손들에게 테러의 죄악을 교육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모습은 지금도 여전했다. 그 뿐 아니다. 보존된 현장을 바탕으로 밝혀지지 않은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그들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우리가 만약 무너진 삼풍 백화점을, 다리의 상판이 떨어져 내려앉은 성수대교를 그대로 보존해 반성과 경각의 자료로 삼을 수 있었다면, 그토록 비통한 세월호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쯤 우리는 선진국 대열의 앞자리에 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잘못의 현장을 액면 그대로 보여주며 깨우쳐야 한다. 잘못을 반복하는 것은 역사의 부조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것은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무지와 짧은 생각으로부터 생겨나는 비극이다. 이제 우리도 큰 사건의 현장은 오래 보존해 후세를 위한 교육의 자료로 삼아야 할 때다.

조규익 (숭실대·국어국문학과)

Posted by kicho
알림2013. 8. 2. 16:47

 

 

전공 분야의 우물 깊은 곳에서 만난 새로운 영역들 … “작은 것에도 의미가 있죠”

-박태일·조규익·박정규 교수의 어떤 시도들-

                         

                                                              

                                                                                                                                    윤상민 기자 <교수신문>    

 

 

시 전공자의 지역 문학 연구, 고전문학 전공자의 고려인 한글문학 연구, 신문방송 전공자의 시 전집 편역…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종래의 국문학 연구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근포 조순규 시조 전집』, 『소년소설육인집』(도서출판 경진 刊)을 발간한 박태일 경남대 교수(국어국문학과), 『CIS 지역 고려인 사회-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태학사 刊)를 상재한 조규익 숭실대 교수(국어국문학과), 『단재 신채호 시전집』(기별미디어 刊)를 내놓은 박정규 전 청주대 교수(신문방송학과)가 그 주인공이다. 자신의 주 전공 분야를 가로질러 새로운 분야에 발을 딛는 이들의 작업은 어떤 의미일까. 지난 3, 5월에 『근포 조순규 시조 전집』, 『소년소설육인집』을 발간한 박태일 교수의 작업은 지역문학총서 시리즈 15, 16권이다. 말하자면 지역문학연구의 일환으로 시작한 셈이다.

 

박 교수는 오랫동안 계속됐던 일국주의 문학연구에 대한 반성적인 성찰로 지역문화연구를 시작했다. 기존의 국가주의 체제에서 소외됐거나 도태됐던 중견 작가나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우리의 민족문학이라는 큰 전통 속에 남기고 복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국가주의 체제에서 소외됐던 지역작가 발굴 사실 박 교수의 지역문화 연구는 이미 1990년대 후반에 경남·부산 지역을 연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지역문학연구>라는 학술지를 14집까지 낼 만큼 열정적으로 매달렸지만, 학술진흥재단의 변화로 원고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중단됐었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지역문학회(회장 김동근 전남대)를 창립하면서 그의 연구는 오히려 전국권으로 확대됐다. 제주, 전남, 충청, 인천에서 뜻을 같이 하는 교수들이 뭉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로 <한국지역문학연구> 총서를 2권까지 발간했다.

 

그렇다고 경남, 부산지역의 연구가 미진해진 것은 아니다. 이번에 출간된 15, 16권에 이어 그의 예전 작업들의 결실이 계속해서 총서로 출간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의 지난한 작업의 결과물과 그 과정 속에서 뜻을 공유한 이들의 활동은 이렇게 한국지역문화연구의 풍성한 열매로 맺히고 있다.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박 교수는 “지역 문학을 연구하면 유명한 사람들이 아니라 작품의 상업성이 떨어져서 출판이 매우 어렵다. 입력부터 편집, 교정까지 주변 지인과 제자들과 함께 알음알음 하고 있고, 출판에 따른 모든 부담도 편역자 본인이 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HK사업이니 BK사업은 그들의 작업과 상관이 없어 보인다. 이번에 출간한 『근포 조순규 시조 전집 무궁화』에 그가 부여하는 의미는 뭘까. 경남 지역의 중요한 작가의 발굴이라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美文主義의 전통을 가진 한국 시조의 전통과는 다른 사회학적인 시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가 엮어낸 『소년소설육인집』 은 1920년 자생적 계급주의 문학을 몇몇 문학가가 독점했다는 국문학계의 통념의 반대편에 서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아동문학, 지역문학가의 저변을 찾아냄으로써 계급주의 문학에 대한 반성을 시도했다. 올해 출간될 총서 17권은 1950년 이전까지 부산지역에서 나왔던 동인지에 대한 연구다. 잊힌 혹은 뭍힌 매체를 발굴해내기 위해 오늘도 연구실 불을 밝히는 박 교수는 말한다. “작은 것이라고 해서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고려인 1, 2 세대의 한글문학은?

 

해군사관학교, 경남대를 거쳐 현재 숭실대에서 국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조규익 교수. 그는 지난달 『CIS 지역 고려인 사회-소인예술단과 전문예술단의 한글문학』을 펴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이른바 CIS(독립국가연합: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에 속한 몇몇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고려인이 겪어 온 ‘탈향과 이주’의 역정을 추체험했다. 모든 소수민족들은 러시아인이 돼야 한다’는 스탈린의 폭압적인 동화정책, 오랜 디아스포라의 고됨으로 우리 말과 문학과 역사를 잃은 고려인 2, 3세대를 만나고 온 이야기를 그는 이 책에서 풀어놨다. 문학과 역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이었다.

 

조 교수는 외모와 약간의 생활양식, 그리고 ‘고려인’이라는 민족의 칭호만 뺀다면 그들을 동족으로 생각할만한 요소를 발견하기도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일본 제국주의를 피해 이주한 고려인은 구소련의 다수민족에 의해 또 다른 식민지인으로 타자화됐고, 중앙아시아의 황무지에서조차도 ‘주변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구소련 해체 후, 각 공화국들이 독립될 때도 ‘새로운 주변인’일 뿐이었다. 꿈에 그리던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았지만, 이곳 역시 그들에게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공고한 ‘중심부’일 뿐. 조 교수는 3년의 긴 여정 끝에 한글로 기록된 1세대와 2세대 고려인들의 문학과 예술을 추적해냈다.

 

학부에서는 정치외교학을, 대학원에서는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박정규 전 청주대 교수(신문방송학과)가 지난 2월 펴낸 『단재 신채호 시전집』도 그의 광범위한 연구 이력의 일면을 보여준다. 그는 청주대 교협회장 당시 학내 민주화를 요구하다 해직되기도 하는 굴곡진 삶을 살았지만, 그의 연구 지평은 계속해서 확장돼 가고 있다. 당시 민족문화추진회의 고전번역 1기생인 그는 박사과정에서 조선왕조시대의 신문을 연구했던 신문방송학자는 지역 언론, 한국신문학사 등의 연구 속에 1999년 신채호를 만났다. 단재가 지은 시가를 새롭게 발굴하고 기존에 발표됐던 국문시, 시조, 한시들을 정리해 『단재 신채호 시집』을 출간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신채호에 푹 빠져있다. 개화기 암울한 민족적 시련기에 활발한 언론활동과 독립운동, 아나키즘 운동에 매진했던 단재는 감옥에서 순국함으로써 그의 주옥같은 시들 역시 빛을 보지 못하고 역사 뒤켠으로 사라졌다. 박 전 교수는 신체시의 효시로 불리는 육당의 「해에게서 소년에게」(1908.11)보다 훨씬 이전에 단재가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 적지 않은 시가를 발표했으며, 한시나 새로운 형식의 시가를 소개함으로써 전통 시가의 맥을 계승하고 이를 변용해 근대적인 시가를 모색해냈음을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어쩌면 학문이란 이처럼 전공 분야의 우물을 깊게 파내려가며 만나는 수많은 학문의 뿌리들이 뒤엉켜 더불어 뻗어나가는 굵은 뿌리처럼, 결국 하나의 학문이란 이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이들의 다음 저서가 궁금하다. <교수신문 2013. 7. 29. 3면>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