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8.01.17 12:47

작비금시(昨非今是)의 깨달음

 

 

4년 전(2013. 9.~2014. 2.) 미국에 다녀와서 책(<<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 푸른사상, 2014. 11.)을 한 권 낸 바 있다.(백규서옥 블로그 No.119 참조) 당시 그 책을 교수들에게 증정하면서 나름대로의 소회를 적은 서한도 책갈피에 끼워 보냈는데, 책을 받았다는 반응은 10% 정도였고 그 서한에 대한 반응은 거의 zero에 가까웠다.

 

객쩍은 짓을 했나?’라고 자책하며 한동안 겸연쩍은 시간을 보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그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지난해 숭실 근속 30을 맞게 되었다. 나름대로 어떻게 기념을 할까 생각하다가 부랴부랴 새 책(<<<거창가> 제대로 읽기>>, 학고방, 2017. 10. 23.)을 내고, 교수들에게 돌렸다.(백규서옥 블로그 No.3 참조) 학자가 시간의 마디마디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수단으론 책을 능가할 게 없다는 것이 내 철학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의 응답률은 대략 20%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표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휴지통에 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겠지만, ‘당신과 같은 직장에서 한 솥밥을 먹으며 30년을 근속하고 있노라는 인사는 전해지지 않았을까.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허전한 마음을 다독여야 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논문을 쓰다가 책 한 권이 필요하여 책장을 뒤지던 중, 책들 속에 끼여 질식하기 직전의 <<인디언과 바람의 땅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를 발견했다. 책을 펼치자 이쁘게편집출력된 서한이 접힌 채로 툭 떨어졌다. , 바로 내가 정성스레 작성하여 교수들에게 보낸그 편지였다. 읽어보니, 숫자(3336/3033)만 바꾸면 현재의 내 상황을 정확히 드러낼 만한 내용이었다. 교수직이 얼마나 따분한생활인지, 이 글을 읽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이 편지를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숫자만 바꿔 이곳에 올리고, 그 때 그 편지와, 그 글에서 숫자만 바꾼 숭실 근속 30년의 인사장을 늦었지만 이곳에 올린다.

 

                                                       ******

 

        님께

 

 

안녕하신지요?

인문대 국어국문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조규익입니다.

 

엊그제 여름이었는데, 벌써 겨울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늘 그래 왔습니다만, 최근 들어 시간의 덧없음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저는 해군사관학교의 전임을 시작한 스물넷부터 36년째, 경남대학교의 전임을 시작한 스물일곱부터 33년째 상아탑을 지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도 저보다 앞서 이 길을 걸어가신 선배님들을 뵈며 참으로 끈기 있게 한 길을 걸어오셨구나!’라고 경이로운 눈길을 보내곤 했는데, 저도 이미 그 반열에 들어서 있음을 깨닫습니다.

 

그간의 세월을 돌이켜 보면, 그저 잠시 졸다 깨어보니 한낮이 기울어 버린그런 느낌입니다. 이제 비로소 흘려보낸 시간의 덧없음과 함께 맞이하는 시간의 질과 양이 나날이 달라짐을 절감합니다. 명문 <귀거래사(歸去來辭)>를 통해 마음이 육신의 노예가 되어(心爲形役)’ 동분서주하던 과거의 시간대에서 전원으로 돌아온 뒤 어제가 그릇되었고 지금이 옳다(昨非而今是)’고 선언한 도연명(陶淵明)을 떠올립니다. 저도 무명(無明)의 어제에서 깨달음의 오늘로 돌아 왔다고 한다면, 좀 주제넘은 말일까요? 시간의 소중함을 이해하고 좀 더 본질에 충실한 생활로 돌아간() 것을 도연명이 말한 작비금시(昨非今是)’의 뜻으로 이해해도 되겠지요?

 

꽤 오래 전에 귀한 자료(<거창가>)를 입수한 뒤 책 한 권과 논문 여러 편을 낸 바 있으나, 다른 데 신경을 쓰다가 그 귀한 것을 그만 10년 넘게 망각의 늪에 빠뜨려 놓고 있었습니다. 최근 새로 쓴 글들을 하나로 엮고, 오독(誤讀)오역(誤譯)을 바로잡아 새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우리네 속담이 있던가요? 책이 나온 뒤 가족들과 지인들을 불러다가 소중한 약속을 나누다가, 오랜 세월 한솥밥을 먹어 온 벗님들을 문득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욕심은 후회를 남기고, 반성 없는 후회는 파멸을 부른다는 금언을 되새기며, 이 공동체에서 더 머물게 될 몇 년 간 좋은 추억들만쌓고 싶은 소망으로 파편화된 제 학문적 견해들이나마 엮어 올리오니, 부디 소납(笑納)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7. 12. 31.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규익 드림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7.11.18 17:16

󰡔<거창가> 제대로 읽기󰡕를 내며

 

 



거창의 가을


거창의 여름

 

 20001023일 <<봉건시대 민중의 저항과 고발문학-거창가>>를 낸 뒤 최근까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거창가>를 잊어버리고 지냈다. 그런데, 지난 해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부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거창가항목을 새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학계의 ‘<거창가> 담론을 대략 훑어보게 되었다. 17년 전의 논점에서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당시 그 책에 공개한 자료들은 <거창가>에 관련된 그간의 의문점들을 완벽하게 해소해줄 만큼 명료했다. 그러나 당시 새롭고 결정적인 자료를 공개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서였을까. 빠뜨린 부분들과 오류들이 적잖았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뿐 아니다. 그 당시 나는 새로운 자료들을 탈초(脫草)하고 역주하는 데 꽤 고생을 했는데, 근자 그런 번역을 자신들의 것으로 도용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심지어 그 자료의 사진들을 자신의 저서에 무단히 갖다 쓰면서도 출처조차 밝히지 않은 연구자도 있었다. 그런 일들이 내겐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일부 사람들의 말처럼 그런 것이 학계의 관행(?)이라면, 나는 관행조차 이해 못하는 국외자인 셈이다.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간 내 작업을 소중히 간수하지 못한 책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연유로 이번의 책을 내게 된 것이다.

 

조규익 본으로 명명한 <거창별곡>, 거창부 폐장 초(居昌府弊狀 抄)」•「취옹정기(取翁政記)」•「사곡서(四哭序)등을 연결시켜, 당시 거창에서 벌어지고 있던 수령과 아전들의 탐학(貪虐)을 평이하게 설명한 것이 이 책의 핵심이다. 그와 함께 역주 상의 오류를 바로잡아 줌으로써 무단 도용하는 철부지들이 잘못 된 부분까지 그대로 베끼는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거창 현지를 답사하여 그 땅에 아직도 남아 있는 <거창가>의 여운을 찾았고, 그것들의 상당 부분을 책에 담을 수 있었다. 문자 텍스트로 남아 있는 것이 <거창가> 류의 사실적인 고발문학이라 해도, 현지인들의 거주 공간과 산하(山河)는 그 노래의 진정한 모습과 의미가 투영된 또 다른 텍스트였다. 옛날 은사님께서 공부는 발로 하라는 말씀을 진지 드시듯 하셨는데, 못난 제자는 그 뜻을 다 늙은 지금에서야 깨달았으니! 하늘에 계신 선생님께서 내려다보시면서 혀를 차고 계시지나 않을지, 부끄러움으로 모골이 송연하다.

 

<거창가>가 비록 지방 관리들의 적폐(積弊)를 고발한 문학이긴 하나, 그건 이미 지나간 시대의 일일 뿐이다. 혹시 당시라면 관민 대립으로 읽힐 여지도 있겠으나, 민주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지금에야 적폐 청산과 관민 화합의 서사시로 이해될 바탕이 이미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봉건 시대 관청의 적폐에 대하여 항거한 거창 사람들의 정신이야말로 끊임없이 기리고 널리 선양해야 할 자랑 거리 아니겠는가. 지금도 <거창가>()에 대한 민()의 반발이나 저항으로만 해석하여 보고도 못 본 체 한다면, 그거야 말로 미련한 처사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임술년(1862) 당시 민란이 거국적으로 일어났지만, 거창 외의 어느 지역에서 <거창가>거창부 폐장 초(居昌府弊狀 抄)」•「취옹정기(取翁政記)」•「사곡서(四哭序)같은 운문과 산문의 장르들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당당히 밝히고 사람들의 단결을 도모한 경우가 있었단 말인가. 세계 역사를 훑어보아도 이와 유사한 사례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 근거들을 잘 갖추어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할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현실적으로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매년 추수가 끝난 다음 거창가 역사 문화제라도 기획하여 거창의 정신을 전국적 아니 세계적으로 선양할 수 있는 일 아니겠는가? 왜 그런 머리들을 쓰지 못하는지, 국외자로서는 답답할 뿐이다.

 

 

이 책의 목차와 머리말을 이곳에 옮긴다 

 

차례

1 <거창가거창부폐장 초·취옹정기·사곡서란 무엇인가?

1. <거창가>에 대한 오해의 전말 3

2. 거창가이고, ‘이재가인가? 8

3. <거창가> 내용의 사실성에 대한 근거 14

4. 붕괴된 수취체제와 민중의 신음 16

5. <거창가> 보조 텍스트로서의 취옹정기取翁政記
사곡서四哭序 55

6. 거창에서 찾아본 <거창가>의 흔적 66

7. <거창가>, 미래를 예비한 을들의 서사적 고발문학 90

 

2 텍스트 원문 및 번역문

1. <거창별곡>(조규익본) 원문 97

2. <거창가> 교합 및 현대어 역본 110

3. 거창부폐장 초원문 142

4. 거창부폐장 초역주 147

5. 취옹정기의 원문과 역주 170

6. 사곡서 원문과 역주 174

 

3 <거창가>(조규익본) 영인본 179

 

Summary 229

찾아보기 236

 

머리말

고서의 매력에 빠져 지내던 시절 고서 전문가 이현조 선생의 따뜻한 도움으로 <거창가>를 만났고, 지금부터 만 17년 전인 20001023<거창가>에 관한 첫 저서를 냈다. 탐서의 현장에얻은 사람과 책이 보물이었다. <거창가>거창부폐장 초·취옹정기·사곡서, 호박 넝쿨에 참외·수박까지 딸려 온 형국이었다.

이미 <거창가>를 두고 몇 분의 좋은 논문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 <거창가>불완전한 텍스트였다. 그 불완전성은 세 건의 산문들에 압축된 콘텍스트가 해결해 주었다. <거창가>의 마지막 퍼즐은 스스로 풀렸다. 그 시기 거창에서 자행된 탐학의 주체가 부사 이재가在稼로 밝혀지자 상당수의 문제들이 싱겁게 해결된 것이다

작년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거창가를 새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민백이 나온 지 25, 필자의 저서 󰡔거창가󰡕가 나온 지 16년만의 일이다. 모든 것들이 전광석화처럼 바뀌는 우리 사회에도 만만디는 있는 법인가.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다.

이전 책의 봉건시대 민중의 저항과 고발문학 거창가란 제목을, 이번엔 ‘<거창가> 제대로 읽기로 바꿨다. <거창가>의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제대로보아야 그 본질이 파악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거창가>에 노래된 갑질들의 내용을 평이하게 설명했고, 이전 책에서 범한 한문 번역과 주석의 오류들을 수정했다. 그 책에 산문들이 너무 복잡·산만하게 배치되어 일반 독자들은 알아보지 못한 흠도 있었다. 그래서 원문과 역주들을 참고하기 편하도록 제2부에 몰아놓았고, 1부에서는 <거창가>를 설명하되 그 산문들을 참고자료로 끌어왔다. 거창부폐장 초를 가사로 풀어 만든 것이 <거창가>이고 문제적 인간들을 풍자한 희문戱文취옹정기사곡서이니, <거창가>의 내용을 설명하려면 이들 산문들을 끌어와야 했다. 현지답사를 통해 거창이 <거창가>에 못지않게 중요한 텍스트임도 확인했다. 아직도 그곳엔 그 시절의 아픔이 살아 있었다. 그걸 이 책에 담게 되어 무척 곰지다.’ 그러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던 ‘<거창가>의 작자 및 거창부폐장 초취옹정기사곡서등의 필자 추정 문제는 부득이 다음 책으로 미룬다. 다소 복잡한 이유 때문이다.

 

9년 전 별세하신 김태순 선생님은 생전에 <거창가>거창의 최고 자랑거리라 말씀하시곤 하셨다. 그런 혜안이 없는 요즘을 아쉬워하며, 그 분의 명복을 다시 빌어드린다. 늘 고서를 통해 가르침을 주시는 인산 박순호선생님, 거창박물관의 구본용 관장님, 거창향토사연구소의 김영석 선생님, 정쌍은 선생님, 이산 선생님, 거창군청 이남열 공보담당관님 등께 깊이 감사드린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해온 학고방의 하운근 사장님과, 책을 멋지게 만들어주신 조연순 팀장께도 감사드린다. 이 책에 숭실 근속 30자축의 뜻을 담았다. 건강 속에서 즐겁게 살아온 세월이다. 앞으로도 그러리라 믿고 있다.

 

정유년 가을에

백규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6.04.23 17:37

고서(古書)의 마력(魔力), 인산(印山) 박순호 선생의 힘!

 

 

 

선생 댁 거실에서

 

 

 

선생댁 거실에서

 

 

 

선생댁 거실에서 양훈식, 선생, 백규

 

 

 

인터넷 서핑 중 소설가 김주영 선생의 글(<훔친 책 몰래 보관하기>)을 접했다. 책배 곯으며 고생해온 그분의 어린 시절이 어쩜 그리도 나와 똑 같을까? 놀라운 일이었다. 고희를 훨씬 넘기신 그 분과 나의 시차를 생각하며, 내가 겪은 책 굶주림이야말로 세대를 초월하는 비극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내게는 그 분이 고백한 책 도둑의 과거는 없으니, 책에 관한 절실함에서 내가 몇 수 정도 뒤진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 때문인가. 나는 지금도 책에 관해서라면 사족을 못 쓴다. 아직도 책배 곯던 시절의 궁핍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인 것이다. 책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귀가 쫑긋해지고, 지방에 가서도 그곳 대학 도서관의 장서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고서점의 서가가 무척 궁금해진다. 해외에 나가서도 서점들이나 대학 도서관에서 눈에 번쩍 불이 나는 경험을 하는 건 마찬가지다. 늘 지방의 고서점과 고서 탐색 대열에서 만난 몇몇 동지들이 눈에 어른거리기도 하고, 그런 이유로 훌쩍 지방행에 나서는 경우도 더러 있다. 가끔은 꼭꼭 숨겨놓은 몇 권의 고서들을 어루만지면서 한 자 한 자 써나간 책 주인의 정성을 느껴보기도 한다.

 

사실 고서이든 신간이든 내겐 모두 보물이다. 잘 만들어진 신간은 독서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월이 흐르면 고서가 될 것이고, 후손들도 나처럼 그 책들을 어루만지며 깊은 상념에 빠져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내가 지은 책들은 아낌없이 나눠주지만, 내가 마음먹고 사 모은 남의 책들은 선뜻 주지 못한다. 그런 마음과 자세로 40여년의 세월을 버텨오는 중이다. 그러다가 뵙게 된 분이 원광대 명예교수이신 인산(印山) 박순호 선생이다.

 

대학원 재학 시절, 거질(巨帙)로 영인 출간된 <<한글 필사본 고소설 자료총서>>를 보며 인산 선생의 자료실이 궁금했고, 후학들에 대한 칭찬에 엄격하시던 나손 선생조차 인산 선생에 대해서만큼은 찬사를 아끼지 않으시는 이유 또한 늘 궁금했다. 풀리지 않는 궁금증을 안고 부초처럼 강호를 떠돌다가 21세기에 들어서고 나서야 선생을 면전에서 뵙게 된 것이다. <거창가>에 빠져 지내던 무렵 당신이 소장하고 계시던 이본들을 수차에 걸쳐 보내주셨고, 그 덕에 저서 <<봉건시대 민중의 저항과 고발문학 거창가>>는 크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 후로도 가끔씩 몸소 전화를 주시며 새로운 자료에 갈급하던 내게 중요한 귀띔과 격려를 건네곤 하셨다. 직접 찾아뵙고 자료를 받겠노라는 내 간청을 바쁜 데 그럴 필요 없다고 번번이 단칼에 자르시며 우편이나 인편을 통해 보내주시는 것이었다. 그저 감사의 편지나 전화로, 출간된 책이나 논문으로, 송구스런 마음을 표할 뿐이었다.

 

언젠가 인편에 보내주신 <궁즁도회가>를 분석하여 <<국어국문학>>(157)에 발표했는데, 그것을 보시고 매우 기뻐하시며 전화를 주신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후 보내주신 10여 종의 <한양가> 이본들을 나와 내 문하생 5명이 함께 달려들어 분석연구하여 공저 <<박순호 소장본 한양가 연구>>(한국문예연구소 학술총서 43/조규익정영문김성훈서지원윤세형양훈식/학고방)를 출간했다. 그 직전에는 연구소 주최로 한국문예에 반영된 서울의 형상이란 주제의 전국 학술발표대회를 갖고, 그 자리에 인산 선생을 모셔 고문헌 탐색의 길에 만난 <한양가>”라는 발제 강연을 부탁드리기도 했다. 극도로 가난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시면서 울컥 눈물을 삼키시던 선생의 당시 모습이 내 마음에도 충격으로 다가와 눈시울이 뜨거워진 것은 선생의 가난과 내 가난이 순간적으로 오버랩 되었기 때문이다.

 

선생은 최근 많은 자료들을 한글박물관을 비롯한 공공기관에 넘기심으로써, 좀 더 많은 학자들이 자유롭게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평소의 도타운 뜻을 실현하실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엄청난 자료들이 서고에 그득하시니, 그 점이야말로 민속학자와 서지학자로서 학계에 기여해 오신 선생의 생애가 남들이 추종하기 어려운 넓이와 깊이를 갖추고 계시다는 방증이 아닌가.

 

최근 찾아뵙기를 간청하여 처음으로 허락을 받았고, 차를 몰고 내려 가 뵌 것이 지난 주말이다. 도착해보니, 놀랍도록 해박하시며 열정적인 신선한 분이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책들의 숲에 조용히 앉아 계셨다! 선생의 장서들 가운데 가장 애착을 갖고 계신 고려조의 불서(佛書) 세 권을 황감한 마음으로 친견했고, 보물급의 회화작품들로 오랜만에 안구(眼球)를 세정(洗淨)할 수 있었으며, 각종 필사본들과 두루마리 가사들에 손때를 묻혀보는 호사도 누렸다. 그보다 감격스러운 사실은 선생께서 몸소 귀한 자료들을 한 보따리나 챙겨 주신 점이다. 물론 그거야말로 내 둔한 머리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숙제이자 마음의 짐이지만, 어쩌랴. 학자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다니면서 달라붙어 씨름해야 할 화두(話頭)’ 한 자락 없다면, 그 또한 한심한 일 아닌가.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을 갖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사실 나로서는 선생의 깊은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과연 나라면 고색창연한 옛 문헌들을 자식에겐들 선뜻 맡길 수 있을까. 일생 손때 묻혀가며 애장해오시던 필사본들을 연구 자료로 기꺼이 내어주시는 선생의 깊은 뜻은 무엇이며, 나는 그 뜻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텍스트로부터 의미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작업 못지않게 난해한 또 다른 과제까지 안게 된 것이다. 그 옛날 누군가가 힘들여 써놓은 것들이 수백 년 풍우(風雨)와 수화(水火)의 고비들을 넘은 뒤 불쏘시개나 벽지, 아니면 종이공예의 재료로 망가지지 않은 채 학자들의 손에 오롯이 들어오게 된 것은 과연 누구의 공인가. 선생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석박사논문과 저서를 쓴 수십 명의 학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영인으로 발간된 자료들로부터 혜택을 받은 수백, 수천 명의 학인들을 생각하면, 선생이야말로 우리나라 국문학계를 실질적으로 견인해 오신 주인공 아닌가.

 

아직도 유년 시절의 책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한 내 입장에서 스러지지 않는 책 욕심땅보다 두껍다’. 게다가 그 외경(畏敬)’^^의 영역인 고서에까지 욕심을 내게 되었으니, 욕망의 끝을 헤아리기 어려운 게 사실인 모양이다. 누구는 최신판으로 활자화된 자료를 갖고 논문 쓰는 학자들이 대부분인 우리 학계가 한심할 정도로 천박하다고 개탄한다. 원본의 글자를 잘못 읽어 오류를 범한 책들이 부지기수임을 감안하면, 그런 비판도 아주 근거 없는 건 아니다. 사실 원본을 최신 활자로 정확하게 옮겨주기라도 한다면, 비록 소수만이 원본을 접할지언정 그나마 학계의 장래를 위해 다행한 일 아닌가. 이처럼 국문학계를 천박성의 나락에서 건져 주신 셈이니, 선생의 걸어오신 생애와 이루신 업적이 더욱 빛나고 그 빛은 앞으로도 영속되리라 느껴지는 순간이다.

 

 

<<구운몽>>

 

 

 

두루마리 규방가사들

 

 

 

두루마리를 펼친 가사작품

 

 

 

한국에서 가장 오래 전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서

 

 

 

규방가사 <부여행신젼>

 

 

 

<궁즁도회가> 연구논문

 

 

 

박순호 본 <거창가> 소개부분

 

 

 

<<거창가>>

 

 

 

<<한양가 연구>>

Posted by kicho
분류없음2007.07.0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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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새 책 <<풀어읽는 우리 노래문학>>(논형, 2007. 7. 1.)을 펴냈습니다. 전공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우리 고전시가의 아름다움을 알려드리기 위해 쉽게 쓰려고 노력해 보았습니다만, 독자 여러분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걱정스럽습니다. 다음은 이 책의 목차입니다.

머리말

1부 우리 노래 다시 읽기
이별의 비극, 승화된 넋두리의 미학  공무도하가·가시리·원부가
유리왕이 지은 ‘군–민 소통’의 태평가  두솔가
훔쳐보기와 일탈의 미학  서동요·쌍화점·간부가
‘무소유’와 버림의 힘, 그 예술적 발현  우적가
삶과 죽음의 이중주, 그 예술적 형상화  제망매가
위대한 모정의 승리  도천수관음가
비장한 사랑과 죽음, 그 제의적 등가성  불굴가
‘사랑노래’의 시 문법과 미학적 전형성  단심가
서울의 찬가, 인간 욕망의 정치적 수사학  신도가
역사와 현실, 그 경계의 시적 형상화  용비어천가
성과 속의 서사적 대결과 숭고한 결말  월인천강지곡
열어줌과 풀어줌  장진주사
성본능과 일탈의 꿈  만횡청류
완경의 서사로 위장된 정치적 메시지  관동별곡
시대정신과 지식인의 대외인식  일동장유가
패기의 젊음이 엿본 세계, 그 빼어난 표현미  병인연행가
부패한 지배층과 민중의 저항, 그 미학적 승화  물것노래·거창가

2부 삶과 노래, 그리고 노래문학
1. 우리 노래문학의 흐름
2. 우리 노래문학과 자연, 그리고 삶

찾아보기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2007. 7. 3.

백규 드림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