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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9.11.17 아, 성오 선생님!
카테고리 없음2019. 11. 24. 00:33

 

                                                                                                                                                                                                                                       백규

 

  최근 들어 귀촌준비에 ‘올인’하다시피 해온 지난 몇 년간이 자꾸만 떠오르고, 부질없는 질문들만 꼬리를 잇는다. ‘조율만 하다가 연주다운 연주는 해보지도 못하는’ 피아니스트처럼, 준비에만 내 인생의 진액을 모두 소진해가고 있는 건 아닌가. 길게 느껴지기만 하던 시간의 여울들을 넘다 보니 어느 새 내 몸과 마음을 송두리째 던져야 할 타이밍에 도달하면서 자꾸 주춤거려지는 것은 왜인가. 몸에서 기름기가 빠져나가는 것과 정비례로 마음에서도 자신감이 빠지고 있는 것일까. 늙어갈수록 생활에 편리한 대도시가 좋을 거라는 선배들의 조언을 귓전으로 흘려 들었는데, 그 말들이 고장 난 레코드판 다시 돌아가듯 지금서야 새록새록 마음에 되살아나는 것은 왜인가.

 

  얼마 전 시청으로부터 건축허가를 받았고, ‘대지 분할・경계 측량’을 끝냈으며, 오늘 집터와 주변 땅의 지번(地番)을 받았다. 지난 몇 달 간 토목사무소를 통해 토목측량을 했고, 건축설계사무소를 들락거리며 건축설계를 마쳤으며, 그 설계를 구현하기 위한 기초 작업까지 비로소 마무리한 것이다. 초보 농부의 서툰 농법으로 잡초에 휩싸여 신음하다가 올 한 해 가색(稼穡)의 장인(匠人)들로부터 ‘땅 대접’을 제대로 받은 내 아름다운 땅에 붉은 고추 대신 집을 심게 된 것이다! 바로 내년 봄에.

 

  그동안 집 짓는 일은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는 충고들을 선배들로부터 무수히 들었다. 닳고 닳은 건축 시공업자들을 상대하다 보면 마음대로 되지도 않을 것이며, 돈은 돈대로 들고 집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 뻔하다는 것이다. 집 한 채 짓고 나면 ‘폭삭’ 늙고 만다는 것이다. 그동안 살던 아파트에서 그냥 눌러 살든지, 굳이 시골에 가려거든 누가 살다 내 놓은 집을 얻어 잠시 살아본 뒤 결정하는 게 백 번 현명한 일이라는 것이 그들의 중론이었다. 사실 집 한 채를 짓는 데 드는 돈이나 정력을 생각하면 은근슬쩍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그냥 그런 말들을 수용하여 도시 한 구석의 내 후줄근한 공간이나 시골 어느 골짜기 누군가 살다가 버려두고 떠난 공간에서 내 삶을 마치고 싶은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 나는 어린 시절 초가집에서 살았다. 농부로 자수성가하신 부모님이 나무와 흙으로 지으신 집에서 10대 중반까지 살다가 집을 떠났다. 그로부터 몇 십 년 세월, 하숙집・자취집・아파트 등을 전전하며 이 날까지 살고 있다. 부모님의 집과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만 빼면, 모두 ‘남의 집’에서 살아온 것이다. 부모님의 집도 내 집은 아니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도 남이 지어놓은 ‘끔찍하게 획일적인 공간’일 뿐, 아직도 내 집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덧없이 살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인생, 잠시라도 내 손으로 지은 집에서 살다 가는 것을 사치라 타박할 수 있는가. 나는 내 뜻에 따라 지은 내 집, 그것도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룬 집에서 살고 싶을 뿐이다.

 

  2년 반 후에 찾아올 정년. 내겐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자연과의 대화와 사색을 통해 내 공부와 인생을 마무리해 가리라!’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14년 전 유럽 여행 중 하이델베르크 대학 건너편 언덕에서 만난 ‘철학자의 길’이 아직도 내 눈에 선하다. 네카 강이 흐르고 하이델베르크 고성과 대학촌이 손에 잡힐 듯이 건네다 보이던 그 언덕길. 그 때 나는 그 길을 걸으며 그 옛날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들을 떠올려 보았다. 칼 야스퍼스, 칼 만하임, 헤겔, 가다머 등등. 쟁쟁한 철학자들이 그 길을 걸으며 생각을 다졌을 것이다. 내가 집을 지으려는 곳에 그렇게 예쁜 대학촌은 없다. 눈을 들면 폐교된 옛 초등학교와 띄엄띄엄 무리지어 서 있는 민가들이 전부다. 그러나 그것들을 품어 안고 있는 산세는 하이델베르크 못지않게 아름답고 보암직하다. 그 경치만 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맑은 생각의 샘물이 퐁퐁 솟아남을 느낀다. 그래서 그곳에 내 작은 와옥(蝸屋)을 앉히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세계를 여행하고 집에 돌아와 그것을 발견한다.”고 아일랜드의 문인 조지 무어(George Moore)는 말했다. 그간 나는 내가 필요로 하고 세상이 필요로 한다고 믿는 것들을 찾아 세상을 두루 돌아다녔으나, 어쩌면 그것들은 환상이나 신기루였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 조지 무어의 말처럼 그것들 모두는 앞으로 내가 지을 집 안에 오롯이 들어앉아 있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내 집을 짓는다. 아니, 지어야만 한다. 그것만이 그간 환상을 찾아 헤매 온 내 영혼을 포근히 안식하게 하는 길일 수 있다.

 

에코팜은 밤 천지다

                                          

이 배추를 누가 다 먹을꼬

 

 

일을 마치고 동네 분들과 가볍게 한 잔을...

                                                          

 

 

 

Posted by kicho
카테고리 없음2019. 11. 17. 05:51

, 성오 선생님!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비보입니까?

엊그제까지도 청청하시던 선생님께서 이렇게 홀홀히 떠나시다니요!!!

2019년 11월 8일의 이 비보는 부모님 소천 이후 최대의 충격으로 저를 후려쳤습니다.

 

인사동에서 선생님을 뵌 지난 6월 6일을 잊지 못합니다.

청년처럼 당당하신 모습으로 인사동 한 복판에서 저희 부부를 기다리시던 선생님을 잊지 못합니다. 반년만 지나면 ‘미수(米壽)’라고 말씀하시며 쓸쓸하게 웃으시던 선생님의 표정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569516350122180&id=100011914603684&sfnsn=mo

 

이제 저는 논문을 써서, 책을 써서, 누구에게 보여드려야 하나요?

제 일거수일투족을 응시하시리라 믿어온 선생님이 안 계신 이곳.

다시 저는 누구를 표준으로 스스로를 다잡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정신적으로 의지해온 선생님을 보내 드릴 수밖에 없는 지금.

저는 적지 않은 나이 육십 대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이제 날짜만 헤아릴 뿐 제게는 저를 지탱할 힘도 거친 바다를 항해해 나갈 등대도 없습니다.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2019년 11월 11일, 선생님의 발인 날 아침

중국 절강대학 빈관의 객실에서

크게 울며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