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 10. 8. 22:21

화내는 사람들은 불쌍하다

 

 

젊은 시절엔 자주 화를 냈다.

늘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곤 했다.

헛발질을 해대는 국가는 국가대로, 무질서한 사회는 사회대로, 탐욕스런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화를 돋우는 존재들이었다.

운전대를 잡으면 다른 운전자들 대부분이 불만의 대상이었다.

술에 취한 듯 교통신호를 위반하는 차도, 잽싸게 추월하는 차도, 속 터지게 느린 차도 모두 화를 돋우는 경우들이었다. 어쩔 수 없는 주변상황 때문에 교통신호를 위반하게 되는 경우도, 약속시간이 지났거나 용변이 급하여 추월해 갈 수밖에 없는 경우도, 초보운전이라 달달 떨면서 운전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을 것임을, 그 시절엔 몰랐거나 알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대개 '자기 자신만이 우월하고 남들은 열등하다'는 '굴원(屈原)식 아집과 착각'*에 빠져 지내는 게 화 잘 내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임을, 그리고 화내는 것만큼 인생을 망치는 일도 없음을 나이 들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어떤 친구의 개탄처럼, 작게는 늘 적의를 갖고 대하는 직장의 철딱서니 주니어들이나, 묘한 열패감(劣敗感)에 일생 동안 각을 세우고 대들기만 하는 집안의 손아래 등 주변 인물들이 내뿜는 화의 사기(邪氣)도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화를 내는 일은 심장과 대뇌 속에 수백만 마리의 기생충을 기르는 일과 같음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나이가 준 선물일 것이다. 

 

오늘 인터넷 신문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건보도를 읽었다. 도로 위에서 두 차량 운전자가 다투게 되었단다. 경험으로 추정컨대, 발단은 별일 아니었을 것이다. 자기위주의 협량(狹量)이나 착각 혹은 오해로부터 비롯된 일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화가 치민 운전자가 상대 차를 가로 막고 차에서 내려 위협적인 자세로 걸어오자, 상대 운전자가 그를 자신의 차로 치어 중상을 입혔다는 것이 사건의 내용이었다. 그 기사를 읽은 네티즌의 댓글 중 두 개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

 

#1 가장 중요한 것은 운전 중 상대 운전자의 화를 돋우지 말아야한다. 이 사건의 피해자가 조금의 말조심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가해자가 살인죄로 교도소에 가서 몇 년을 산다 해도, 그것이 피해자에게 도움 되는 일은 아니다. 피해자는 이 사고로 큰 고통을 받았고, 앞으로도 그 고통은 계속될 것이다. 상대방을 화나게 하지 말고 화난 사람 근처에 얼씬거릴 필요도 없다. 잘못하면 그로부터 유탄을 맞을 수 있다.

 

#2 세상 무서운 줄 알고 겸허하게 지금 이나마도 감사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화를 조금이나마 피하는 현명한 처세다. 괜히 일본 사람들이 무조건 친절하고 남 피해 안 주고, 서양 사람들이 처음 보는 상대에게 먼저 인사하고 그러한 문화가 왜 생겼는지 아는가. 험한 세상을 겪어본 데서 나온 자기방어의 처세술이다. 우리는 X도 믿을 게 없는 군상들이 집에서 처자한테처럼 허세가 통하는 줄 알고 세상에 나와서도 그런 식으로 어리석게 군다.

 

참, 현자들의 말이다. 그렇다. 남의 화를 돋울 필요 없다. 그 화가 어디로 가겠는가. 남의 화를 돋우어 싸움이 붙었고, 불같은 화를 참지 못해 달려들다가 상대방의 차에 치여 결국은 하반신이 부러지는 중상을 당한 것 아닌가. 검찰이 판단했다는 대로 가해자가 살인미수죄로 감옥에 갇힌다 해도, 요즘 우리나라 판사들의 정신으론 불과 몇 년의 선고에 그칠 터. 가해자가 감옥에 잡혀 들어갔다고 고소해 할 일인가. 심한 중상으로부터 회복되었다 해도, 후유증에 시달리며 ‘100세 장수시대’에 일평생 불편하게 살아갈 일을 생각해보라. 얼마나 손해인가. 한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일생을 그르친 것 아닌가. 그래서 스스로 화를 참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몇 년 전에 읽은 틱낫한 스님의 책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화는 평상시 우리 마음속에 숨겨져 있다.

그러다가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갑작스레 마음 한가득 퍼진다.

잔뜩 화가 나 있는 사람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의 말은 아주 신랄하며 상대방을 공격하는 말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가 쏟아내는 악담은 듣는 이를 거북하게 만든다.

그와 같은 행동은 그가 매우 고통 받고 있다는 증거다.

마음 한가득 독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이해하면 그에 대한 연민이 생기고, 그의 공격적인 말에 동요되지 않을 수 있다. 결국 화란 우리 마음속의 일이므로 그것을 다스리는 것도 우리 마음속의 일이다.”

 

참 대단하지 않은가. 화내는 상대에게 ‘맞 화’를 내지 말아야 할 이유를 이토록 명확하게 제시한 말이나 글을 틱낫한 스님 이전에 접한 적이 없다. 그래서 그 분이 부럽고 무섭기도 하다. 백 살을 먹은들 화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지하철에서 좀 젊어 보이는 사람이 경로석에 앉아 있다고 욕설을 해대는 노인을 본 적이 있다. 삭정이 같은 몸에 활활 타오르는 화만 남은 듯했다. 불현듯 그 노인이 불쌍했다. 오죽하면 그 나이에 화를 다 낸단 말인가.

 

어쨌든 스스로 화를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나이가 준 축복이다. 그래서 스스로 화를 제어할 수 있는 노인들은 ‘현자’로 불려도 가하다. 물론 이 말에는 그렇지 못한 노인들이 많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으리라. 이제라도 화내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길 일이다.

 

*초나라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의 한 구절 "擧世皆濁我獨淸(거세개탁아독청/온세상이 모두 흐려 있는데 나 홀로 맑고) 衆人皆醉我獨醒(중인개취아독성/뭇 사람들 모두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네)  是以見放(시이견방/이로써 추방을 당했노라)" 참조.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