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7. 4. 19. 16:58
퇴임사 수필 칼럼

2007/02/23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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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사


2007년 2월 23일

이재관

39년 근속한 교수직을 떠나며,



  바쁘신 중에 오셔서 인자한 말씀으로 축사를 해주신 존경하는 이효계 총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순서를 맡아주신 교무처장, 교목실장, 경영학부장, 그리고 유한주 교수님, 감사합니다. 축도 순서를 맡아주신 김기태 목사님 감사합니다. 김목사님은 과거에 육군사관학교 교회 담임목사와 국방부 군종실장을 하실 때 저의 신앙생활을 가까이 지켜주셨던 은인이십니다. 웨스트민스터 합창단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시낭송을 해주신 김종천, 송광석군 감사합니다. 저는 숭실에서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특히 가까운 곳에서 항상 도와주시고 사랑을 베풀어주신 숭실대 교직원 선생님들께 최고의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부족한 저를 믿고 따라준 재학생, 졸업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더 잘 가르쳐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 동안 16명의 박사후보가 저의 지도를 받았는데 14명만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떠나버린 2명의 얼굴이 요즘 자꾸 어른거려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멀리서 오신 김용준 교수, 김병우 교수, 권오탁 교수, 강성안 박사, 가까이서 행사를 준비해주신 윤재한 교수, 박유동, 정청식, 홍성의, 김선희 박사께 특히 감사드립니다.

 

  긴 세월 한 울타리에서 형제보다 가깝게 우정을 나누고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우리 경영학부와 경상대학 교수님들께 어떻게 감사의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연구실인 경상관 505호는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별세하신 고 이길영 교수님이 쓰시던 방입니다. 저는 10년 전에 505호실로 짐을 들여놓으면서 그 분의 못 다하신 일까지 더블로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요일, 공휴일 가리지 않고 주당 근 80시간씩 연구실을 지켰습니다. 밤을 새운 날까지 합치면 아마 20년에 해당하는 지난 10년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10년을 더했다면 75세 은퇴를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정년은퇴가 천만다행이고 즐거운 은퇴입니다.


  마지막 1년을 시 쓰기에 몰두하기로 작정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문 한두 편 더 쓰는 것도 좋겠지만, 마지막 1년이 색다르게 장식되었으니 참 좋습니다. 시를 쓰면 머리가 맑아지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과학은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를 종종 우울하게 만듭니다. 이상사회를 추구하는 사회과학도는 이 세상을 한심한 나락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저의 전공인 품질경영 Total Quality Management와 커뮤니티는 한국에서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인증제가 도입되고 대학들도 인증을 얻기 위해 힘쓰고 있지만, 인증제는 TQM과 커뮤니티의 초보단계에 불과합니다. 아, 언제 봄이 올 것인가. 그런 갈등 심리가 저의 시, ‘나의 봄’, ‘색상반전’, ‘신화’ 등에 부분적으로 비쳐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최근에 시에 집중하면서 훨씬 긍정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인터넷 자료를 프린트한 수 만 페이지와 전공서적 수백 권을 연구실에 쌓아놓고 살았습니다. 대학원생들과 씨름을 하다보면 언젠가 또 필요할지 모른다는 마음에 자료를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제 연구실을 비우면서 일부는 도서관과 단대 도서실에 기증했고, 나머지 절반은 집으로, 절반은 쓰레기통에 버렸습니다. 시를 쓰는 마음으로 쓰레기통에 버리면 기분이 한결 좋습니다. 물방울 품은 꽃잎처럼, 잠시만 내 곁에 머물러줘도 감사할 일입니다. 노트와 수만 장의 뭉치를 던져버리는 내가 마치 낙엽을 떨구는 가로수 같다 생각하고 휘파람 불면서 방 청소를 끝냈습니다.  


  시집을 계획한 것은 작년 봄부터입니다. 저는 HTML 태그를 배운 다음 자작시에 사진과 음악을 붙여서 인터넷에 올리곤 했습니다. 중소기업대학원 35기 졸업생 오일균씨가 저의 게시물을 보고 도와주셔서 편집과 출판이 모두 원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오일균씨는 프로 사진작가입니다. 자기가 직접 촬영한 사진 수백장을 꺼내어 일일이 검토하고 주옥같은 70편을 무료로 기증해주셨습니다. 시의 내용과 사진작품이 잘 조화되도록 여러 차례 편집을 수정했고 또 출판비용까지 저렴하게 해주신 점, 너무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AMP 35기 여러분이 응원차 왕림하셨습니다. 임수경 35기 회장(미니골드 대표), 김선희 35기 총무, 김강삼 트레인즈 사장, 김기상 박물관 디자인 가나이넥스 대표, 이점옥 마이더스 대표, 여러분 감사합니다. 시집에 나오는 인물 모델은 대부분 AMP 35기 원우님들입니다. 여러분의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를 아무나 쓰느냐, 어떻게 검증을 받느냐 하는 점에서 고민하다가 영어영문학과 심방자 교수님께 애로사항을 호소했더니 김영호 교수님을 찾아가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누님 같으신 심교수님 조언은 정확했습니다. 김영호 교수님은 저의 습작수준의 시를 일일이 다 읽어주시고 준엄하게 그러나 자상하게 시정신과 방법에 대해 가르쳐주시면서 국어국문학과 조규익 교수님을 찾아가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멋쟁이 학자로서의 삶의 모델을 보여주시는 백규 조규익 선생님, 존경합니다. 문예창작학과 김인섭 교수님의 오늘 말씀은 인문대학 교수님들이 저에게 베푸신 마지막 코스 확실한 피니시블로의 충격이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습작생활을 해보라는 충고로 접수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학문의 경계선을 뛰어넘어 무작정 달려드는 저의 무례를 참아주시고 오히려 감싸안아주신 인문대 교수님들의 협력과 인간미에 저는 홀딱 반했습니다. 이걸 모르고 그냥 목에 힘이나 주고 눈살 찌푸리며 캠퍼스를 떠나게 되지 않은 것은 망외의 행운입니다. 자기 전공만 최고인 줄로 알고 살았는데, 이번에, 학문영역 간 상호이해와 교류가 살아있는 전인교육의 숭실 캠퍼스를 흠씬 맛보고 퇴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 행복합니다.


  이제 끝으로, 제 곁에서 묵묵히 그러나 걱정의 눈길로 긴 세월 응원해준 아내에게 감사드립니다. 아내 조정자는 제가 육사 졸업반 때 전국대학생 학술토론대회에서 처음 만났는데, 한국농촌문제에 관한 발표를 아주 당당하게 했고 저는 그 때 사회를 맡았었습니다. 당시 대회위원장을 맡았던 안병호 시인이 이번 저의 시집에 축시를 써주셨습니다. 보배 같은 친구의 시를 마음에 간직하겠습니다.


  이 모든 감사의 조건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숭실에 오게 된 것도, 여기서 근 30년이나 즐기며 마음껏 연구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마지막 1년까지 참 사랑을 배우면서 떠나게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차고 넘치는 축복임을 느낍니다. 앞으로 제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시간을 보내게 될지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저를 지켜 인도하신 주님께서 또한 좋은 것으로 이미 예비하신 줄 믿고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2007년 2월 23일   이재관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