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림2010. 12. 8. 20:26




'아리랑 연구총서'를 엮으며  
 
정선아리랑 아우라지 강물에
거룻배 하나 떠 있다고
어찌 여기만 이 세상이냐
가는 데마다
가는 데마다
사람들은 세상 하나씩 가지고 살면서
다른 세상도 하나씩 가지고 있다가 버리는구나

정선아리랑 아리아리랑
네 극빈으로는 세상 하나하나 버릴 것도 없이
초라한 그림자 데리고 서울로 간다
 -고은, <정선아리랑>-

날마다 새로 태어나고 있는 ‘아리랑’을 본다. 이미 시인의 마음속까지 파고들어 세상 사람들을 관찰하는 렌즈가 된 그것을. 옛날부터 그냥 아리랑에 푹 파묻혀 푸념하듯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달래 온 우리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었다. 골골이 흘러내린 그 슬픔과 회한은 어느 새 거대한 집단정서의 호수를 이루었고, 다시 우리는 그 속에서 함께 미역을 감고 있는 것이다. 가끔씩 우린 그 호수를 떠나보지만, 고향을 찾듯 다시 호수로 돌아오고, 그랬다간 다시 그곳을 탈출하곤 한다. 반복되는 떠남과 돌아옴의 출발점, 아니 도착점에 아리랑은 늘 보란 듯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우리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들판을 헤매다가 새삼 아리랑의 호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 없이 풍덩 뛰어들어야겠는데, ‘돌아온 탕자’가 제 집 문 앞에서 멈칫거리듯, 새삼 아리랑이 낯설다. 우린 그동안 어디서 헤매다가 다 늦은 지금에서야 돌아온 것일까?       
                                                    ***
외국사람 누군가가 “한국 사람들은 모두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 <아리랑>을 갖고 있어 행복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다. 그건 분명 맞는 말이다. 700만이 넘는 코리안들이 해외에 살고 있다. 요즘 한국말을 구사하는 해외 이민 3세 이하를 만나기가 무척 어렵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든 ‘아리랑’ 한 소절 부르지 못하는 코리안을 만나기란 더더욱 어렵다. 따라서 아리랑은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우리말의 꽃, 아니 말을 뛰어넘는 정서적 DNA의 극적인 산물이다.
민족의 노래 아리랑은 해외에서도 ‘코리아(Korea)’를 상징하는 일종의 기호다. 지속과 변이의 과정에서 아리랑의 수많은 각 편[version]들이 만들어졌으며, 문학⋅예술⋅공연⋅방송물⋅축제 등 다양한 방면으로 외연은 확장되었다. 그러나 본격 학문적인 작업은 이제 시작이다. 그 시작을 제대로 하기 위해 그간의 업적들을 『아리랑 연구총서』[전 10권 예정]란 그릇에 담아내기로 했다. 이 책은 그 첫 결실이다. 이 시리즈를 기획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도 일부 연구자들은 선행연구들의 원문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무책임한 ‘재인용’을 반복하고 있다. 문헌 수탐의 번거로움을 참지 못한다거나 찾기 어려운 초창기 문헌들을 제공하지 못하는 학계의 직무유기는 이쯤 청산되어야 한다.
둘째, 아리랑 연구의 어제와 오늘을 정리해야 앞으로 나아갈 이정표를 마련할 수 있다. 그간 학자들의 외면 속에서도 아리랑은 ‘한민족 정서의 핵심’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보다 한 단계 올라서려면 학자들이 나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기존 연구의 정리는 필수적이다.
셋째, 미래지향적 ‘아리랑 담론(談論)’을 펼치려면 ‘패러다임의 전환’에 맞먹을 만한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 시점에서 그간 학자들이 갖고 있던 생각의 저변을 살펴보는 일이야말로 새 출발의 가장 긴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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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예연구소는 아리랑의 기존 연구들에 대한 반성적 모색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는 꿈을 갖고 있다. 지난 학기[2010학년도 1학기/전국학술발표대회 ‘한국 아리랑學의 오늘과 내일’]와 이번 학기[2010학년도 2학기/국제학술대회 ‘한국 아리랑學 확립의 길’]의 학술발표회 및 ‘아리랑 연구총서’의 발간은 이런 소망을 실현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아리랑을 음악⋅문학⋅영상⋅콘텐츠 등 아무리 현란하고 다양한 분야로 응용해낸다 한들, 아리랑의 본질을 학문적으로 규명하지 못한다면, 그것들은 한갓 개인의 상상에 의한 허구(虛構)일 뿐이다. 우리가 아리랑의 본질 규명에 집착하는 것도 민족공동체의 구성원 누구나 공감할만한 진실이 긴요하기 때문이다. 그 일을 위해서는 학자들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래서 ‘아리랑 담론’을 펼칠만한 사랑방을 한국문예연구소는 조용한 가운데 내실 있게 마련하려는 것이다. ‘호시우보(虎視牛步)’란 옛말도 있지 않은가.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살피며 소처럼 신중하게, 그러나 당당한 걸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2010. 11.

        한국문예연구소 소장  조규익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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