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0. 5. 24. 08:50

유세(遊說) 유감 

 

6월 2일의 지방선거 투표일이 한 주일 남짓 남았다. 전국적으로 유세가 시작되어 온갖 말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선거판에서 후보들이 내뱉는 대부분의 말들은 공수표(空手票)였다. 뻔히 거짓인줄 알면서도 들어주는 것이 순박한 민심이다. 상당수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를 굳이 따지는 일이야말로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사람의 입을 통해서 빠져나온 말은 들어줄 사람의 귀를 선택하지 않는다. 감언이든 진실이든,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퍼부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행위를 ‘유세’라고 착각한다. 

유세란 후보자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정당의 주장을 선전하며 돌아다니는 행위다. ‘유(遊)’는 각처를 돌아다닌다는 뜻이고, ‘세(說)’는 상대방을 설득한다는 뜻인데, 원래 중국에서 나온 말이다. 과거제도가 생기기 전 각지의 현인(賢人)들은 등용되어 자신의 생각을 정치에 반영시킬 목적으로 제후들을 찾아다녔다. 지금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현책(賢策)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각종 연줄들을 동원하거나 언론매체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국정의 책임자로부터 발탁될 기회를 노리기도 하지만, 그 옛날에는 직접 제후들을 만나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공자는 56세부터 14년간 제자들과 함께 천하를 주유(周遊)하며 각국의 제후들을 만나 유세를 펼쳤으나, 끝내 뜻을 관철하지 못한 채 고향에 돌아가 후진들의 교육에 전념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허둥대며 돌아다니는가? 말재주를 부리고 있지는 않는가?”라고, 유세 도중 만난 미생묘(微生畝)는 공자에게 모욕에 가까운 언사를 던졌다. 그러자 공자는 “감히 말재주를 부리는 것은 아니고, 완고함을 미워하는 것입니다.”[논어- 헌문편]라고 대답했다. 미생묘는 공자의 유세에 혐의의 눈길을 보냈고, 그에 대해 공자는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완고한 제후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공자는 “법률과 형벌로 백성을 다스리면, 백성들은 법망을 피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예로써 다스리면 부끄러워하여 바로잡힐 것”[위정편]이라 설파했으며, 계강자(季康子)란 대부가 도둑을 근심하자 “그대가 도둑질을 하지 않는다면 설사 국민들에게 상을 준다 해도 도둑질을 하지 않을 것”[안연편]이라고 일갈했다. 말하자면 공자의 유세는 감언이설의 말재주가 아니라 좋은 정치에 관한 강의였던 셈이다. 공자가 보기에 제후들이 세상의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아집에 사로잡혀 백성들을 올바로 이끌지 못하는 것이 광정(匡正)해야 할 당시의 문제적 현실이었다. 그래서 노구를 이끌고 천하를 주유하며 유세에 나선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유세하고 다닌 목적은 벼슬자리나 녹봉(祿俸)에 있지 않았다. 부와 권력을 탐해서가 아니라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할 목적으로 제후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그러나 그런 포부가 제후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고향에 돌아가 후진들의 교육에 남은 생을 바침으로써 유세의 참뜻을 후세에 남겨 줄 수 있었던 것이다. 

설득의 대상이 제후 한 사람에서 다수의 주민들로 바뀌었을 뿐 지금도 유세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제후가 정치의 주체였으나, 지금은 주민들이 정치의 주체이자 대상이다. 그 당시 공자가 상대방이 듣기 좋은 말만 내뱉었다면, 어디서든 벼슬 한 자리 정도는 쉽게 얻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누구를 만나든 진심을 말하고자 했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설득하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참된 의미의 유세다. 잔뜩 화장한 얼굴로 선거판에 등장하여 실현시킬 수 없는 약속들이나 남발하며 한 표를 호소하는 감언이설에 넘어갈 유권자는 이제 거의 없다. 지방정치는 나라 전체의 정치를 든든히 세워주는 바탕이다. 지방정치를 식물의 생태계에 비유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바야흐로 유세장의 소음이 나라 전체를 들썩거리게 하지만, 유세의 참뜻이 진심과 겸손에 있음을 아는 후보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유권자 대부분의 생각이다.

                                                        조규익(숭실대 국문과 교수/인문대 학장)

Posted by kicho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