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7. 4. 12. 00:55
 

폐광 위에 꽃 핀 세계문화유산-쿠트나호라의 은광과 바르보라 성당


                                                                                                                         조규익

체코 프라하 근교의 작은 도시 쿠트나호라. 이곳에 예수회 소속의 바르보라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이 지역 경제의 기반인 은 광산과 직결된다. 쿠트나호라 광산주들과 인근 세들렉 수도원 간의 수 세기에 걸친 종교적 주도권 다툼을 비롯한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공사를 시작한지 5백년 이상이나 지난 1905년에야 완성되었다. 

◀체코 쿠트나호라의 바르보라성당


<쿠트나호라의 은 광산 갱도>
숙소로부터 예수회 대학 옆길을 따라 2km쯤 걸어간 곳에 성당은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숙연하고 아름다웠다. 그 옛날엔 영화를 누렸다지만, 음산하기까지 한 시골의 이 작은 도시에 ‘어쩌자고’ 이토록 멋진 성당을 세웠단 말인가. ‘같고 다름’이야 분명하겠지만, 유럽에서 만나는 모든 성당이나 교회들은 하나같이 휘황찬란하여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그 가운데서도 바르보라 성당은 위용과 기품 면에서 탁월했다. 프라하의 성 비투스 성당보다도 한 수 위였다. 보헤미아 고딕양식의 정수(精髓)가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 성당의 특징은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와 프레스코 벽화. 예수님을 어깨에 메고 물을 건너는 성 크리스토퍼의 그림, 쿠트나호라 귀족 가족의 그림 등 15세기 말 후기 고딕 프레스코화의 화려한 모습이 눈부셨다. 그림 가운데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은 광산 노동자들과 동전 주조자들의 모습들. 그것들은 ‘광부의 채플’ 벽에 그려져 있었다. 동전을 주조하는 모습, 하얀 작업복을 입고 한 손에는 등불을 다른 손에는 채굴도구를 든 광부들의 모습. 이들은 일주일에 6일, 하루에 10-14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우리는 젊은 여성 가이드를 따라 은 광산 투어에 나섰다. 헬멧과 흰 작업복으로 중무장을 하고 묵직한 랜턴을 든 채, 끝없이 땅속으로 내려갔다. 초등학생 하나가 겨우 빠져나갈 만한 갱도 틈 사이로 ‘비대한’ 몸체들을 우겨 넣어가며 지나온 우리들. 가끔씩 발밑에는 수십 길 깊이의 물이 차 있는 웅덩이도 도사리고 있었다.

이렇게 살면서도 그들은 꿈을 가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을 바르보라 성당에서 위로받았을 것이다. 자신들이 번 돈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삶을 즐겼으리라. 그들의 노력으로 이처럼 쿠트나호라 번영의 역사는 이룩된 게 아닌가.

<쿠트나호라 시가지 중심부의 페스트 탑>
 광산의 출구는 바르보라 성당과 예수회 대학 쪽에 있었다. 들어간 곳과 나온 곳이 멀었다. 설명에 의하면 도시 전역에 걸쳐 갱도가 뚫려 있다는 것. 그러니 은 광산의 규모가 얼마나 컸겠는가. 사실 어느 곳 할 것 없이 폐광지역은 대부분 썰렁하다. 살과 기름이 빠지고 남은 해골. 폐광의 이미지는 바로 해골이다. 그러나 쿠트나호라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다시 태어났다. 아름다운 성당과 함께 은광의 갱도에 세계인들의 이목이 몰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 막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광부들. 그들이 벌어들인 돈으로 지은 바르보라 성당. 땅 속에 남은 갱도는 그들의 혈관이고, 바르보라 성당은 그들의 가슴이자 머리다. 갱도 위, 탄탄한 땅에는 수백 년 동안 그들의 후손들이 집을 짓고 살아왔다. 그래서 쿠트나호라는 폐광 지대가 아니라 아직도 광부들의 혼이 살아 움직이는 ‘삶의 터전’이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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