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9. 5. 24.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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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봄을 맞은 휴일 한낮의 숭실대학교 캠퍼스>


축제가 사라진 캠퍼스

                                                                            조규익

봄꽃이 한 차례 훑고 지나갔으니 대학가에선 축제들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근래 들어 제대로 된 축제는 간 곳 없고 놀이판만 질펀하게 벌어진다. 대학 바깥의 놀이판에서 흔히 목격되는 꼴불견들이 언제부턴가 축제의 탈을 쓴 채 대학가에 뚫고 들어와 낭만을 질식시키는 요즈음이다. 물 좋고 공기 좋은 계곡에 평상을 깔고 앉아 흥겨운 ‘뽕짝’소리와 알코올 기운에 흔들거리는 바깥세상 놀이판과 흡사한 포맷의 난장들을 캠퍼스에서 목격하기가 어렵지 않다. 비싼 전파를 아낌없이 써버리는 연예인들의 오락프로가 축제라는 미명으로 대학가에 발을 붙인지도 오래다.

 학술제, 예술제, 문학제, 대동제 등등 대학가 축제의 빛나는 이벤트들은 언제부턴가 70년대 학번들의 기억 속에나 가물가물 남아 있을 뿐이다. 공동체의 단합을 추구하거나 종교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들에게 주기적으로 정보를 주입하고 환기시키던 행사가 축제(festival)의 원류다. 세월이 흘러 본질에 변화가 생긴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축제가 갖는 상징성마저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본질이 사라질 경우 그것들은 그냥 ‘난장판’이거나 의미 없는 ‘시간 죽이기’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축제의 나라’라고 부를 만큼 우리나라엔 축제가 지천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게 보아도 본질을 생각하고 신중하게 만들어진 축제는 거의 없다. 오늘날 축제를 기획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축제가 끊임없이 후손들에게 이어져 역사성을 지닌 문화적 자산이 되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은 없는 듯하다. 축제의 본질보다는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수입이나 올려보려는 상업적 계산이 그들의 마음에 그득할 뿐이다. 축제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편했던 기억과 짜증만 잔뜩 남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때 우리에게도 대학들이 사회의 축제문화를 주도하던 시절은 있었다. 특색 있는 대학의 축제들이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인들은 대학의 문화나 행사들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그 기회를 잘만 활용했다면, 대학인들은 오늘날까지 사회를 주도할 문화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이 자율성을 상실하면서부터 사회와의 바람직한 관계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대학을 묶어 놓으니 대학인들의 창조적 역량은 질식 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그렇게 대학이 죽어가는 동안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차분하게 앞 뒤 옆을 분간하며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 문화운동이며 정신운동이다. 뚜렷한 지향 없이 질주하는 사회를 차분하게 붙들어 앉힐 수 있는 효과적인 제동장치가 바로 문화운동이다. TV와 인터넷 등 대중매체들은 이들의 다급한 수요를 충족시키는데 급급하여 건전한 문화운동을 주도할 리더십을 상실하고 말았다. 대중매체들은 오히려 순간적인 향락과 소비를 부추겼고, 사회의 문화의식을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밑바닥까지 끌어 내렸다. 그들이 쉬지 않고 쏟아내는 오락성 프로들은 자라나는 세대들을 일찍부터 오염시켰고, 대학에 들어온 그들은 그런 풍조를 즐기고 대물림하는 전사로 자임하게 되었다. 이처럼 세속적인 놀이문화가 대학에 역류된 것은 대학이 더 이상 문화 창조의 현장으로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축제도 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소중한 기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이나 대학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올바른 방향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은 그들 자신이 축제에 대한 철학이나 기본인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보고 배울 만한 대학축제의 모델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대학에서 배운 것을 건전한 놀이문화로 승화시켜야 대학축제의 이상은 실현된다. ‘대학축제’라는 대전제를 잊지 만 않는다면, 진지성⋅다양성⋅낭만성이 융합된 프로그램들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대학생들을 무한한 가능태로 키워내려면 올바른 축제를 부활시켜 한다. 캠퍼스에 건전한 축제문화가 살아야 공동체로서의 대학 정신이 살아날 수 있고, 대학의 정신이 살아나야 인재들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키울 수 있다. 새로운 세대가 축제를 통해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없다면, 대학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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