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07. 4. 1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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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육부총리로 내정된 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부총리에 내정되자마자 평소의 소신과 철학을 내던져 많은 사람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각종 논문과 기고들을 통해 현 정부의 평등주의 교육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해 왔다는 점에서 그의 변신은 경악할 만하다.
  더구나 그는 4일 열린 교육혁신위원회의 세미나에서 학교를 다양화하고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함으로써 획일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마저도 부총리에 내정되면서 없었던 일이 되어 버리고, 대신 정권의 코드에 스스로를 맞추어 버리고 말았다. 심지어 ‘학자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조건 없이 의견을 말한 것과 구체적인 정책으로 발전시키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둔사로 자신의 변신을 합리화하려고까지 했다. 부총리 내정자는 개인이 아니라 공인이다. 막중한 교육정책을 성안하고 집행해야 할 책임자다. 무조건적 평등주의의 이념에 매몰되어있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앞 장 서서 비판해 오다가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견해를 바꾼다면, 앞으로 그가 추진하는 교육정책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그는 정권의 장고(長考) 끝에 내정되었고, 교육부총리로 무난하다는 것이 초기의 세평이었다.
  무조건적 평준화 정책에 대한 비판이나 교육의 수월성 추구, 대학의 자율성 보장 등 김 교수의 교육철학은 나라의 앞날을 우려하는 국민들에게 일말의 희망을 안겨준 것도 사실이다. 교육에 관한 그의 평소 주장은 일생 동안 추구해온 학자의 지론이고 소신이며 철학이다. 일개 필부라 해도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면 합당한 계기와 단계가 필요하다. 자신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생각했다면, ‘정권의 이념과 내 철학은 다르지만, 최선을 다해 그들을 설득하고 대의에 합치되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말했어야 한다.
  한나라 경제(景帝)에게 등용된 선비 원고생(轅固生). 그는 소장 학자 공손홍(公孫弘)에게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혀 이 세상의 속물들에게 아첨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곡학아세(曲學阿世)는 학자의 부끄러운 행태다.
  나라가 자신을 필요로 할 경우, 그 자리를 한사코 마다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자리에 오르고자 한다면 통치자에게 먼저 자신의 철학을 각인시키는 게 마땅하다. 학자가 학문적 소신이나 철학을 굽히는 것은 학자이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정권이 그로 하여금 소신을 버리고 자신들의 코드에 맞추길 바라는 것은 그들이 학문적 업적을 통해 이룩한 ‘이름’만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학문적 소신보다 ‘이름’만 차용하고자 하는 정권에 나설 경우 득보다는 실이 많다. 차라리 학자 아닌 행정가나 코드에 맞는 학자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낫다.
  맹자는 ‘궁하면 그 몸을 홀로 선하게 하고 영달하면 천하를 겸하여 선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분명 장관이 되는 일은 영달이다. 그러나 영달하고 난 다음 ‘겸선천하(兼善天下)’하기는 쉽지 않다. 궁해도 의를 잃지 않는 것이 선비이고, 선비는 자신의 소신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맹자의 말대로 백성들이 실망하지 않으려면 영달한 뒤에도 소신을 지켜 훌륭한 정치를 이룩해야 하는데, 지금이 과연 그게 가능한 상황인가. 영달의 기회를 앞에 둔 그가 자신의 소신을 굽히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왜 자신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구현하려 하지 않는지 이 순간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음을 내정자는 알아야 할 것이다. <2006. 9. 5.>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