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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1.30 블로그의 빗장을 다시 열며
  2. 2016.02.19 사랑하는 국문과 졸업생 여러분!
글 - 칼럼/단상2016. 11. 30. 20:42

블로그의 빗장을 다시 열며

 

 

 

연구실의 오후. 나른함을 느끼는 찰나, 옛 제자로부터 까톡!’이 왔다. ‘이제 블로그에 글을 안 올리시느냐는 항의성 채근이었다. ,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도 있었구나!

 

한동안 의욕상실증에 걸려 있었다. 대통령의 어이없는 비정(秕政)이 만인의 공분(公憤)을 불러왔고, 촛불의 행렬이 거리를 메우는 나날이다. 촛불을 들고 나가든, 촛불 대신 글을 적든, 무언가를 하는 게 옳았으리라. 그러나 저 휩쓸리는 인파 속에서 내 몸을 곧추세울 자신이 없고, 가슴 속 밑바닥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토해내려 책상에 앉아본들, 큰창자 저 밑에 똬리 튼 토사물을 끌어올릴 자신이 없는 게 요즈음이다.

 

미개구착(未開口錯)!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해봐야 부질없음만 절감할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이니, 얼마나 지났을까. 제법 큰 신문들을 통해 어쭙잖은 글 나부랭이들을 써내곤 하던 시절이었다. 사실 나 같은 흙수저에겐 그의 등장 자체가 희망이었다. 그가 기득권층을 다독이며 이 땅 흙수저들의 입지를 다져 나가길 맘속으로 기원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지나치게 말을 잘했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가끔은 할 말을 가슴에 묻어두고 있거나 조용히 다른 쪽의 진영을 미소로만 대했어도, 그런 일은 피해갈 수 있었으리라. 아쉬웠다. 그러나 더 후회스러운 것은 나였다. 좀 더 진득하게 애정을 갖고 지둘려야했었다. 깊은 뜻을 헤아리기도 전에 할 말 못할 말을 쏟아내며,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대는 데 일조를 보태고 만 나였다.

 

허탈함이 컸다. 말의 부질없음에서 오는 회한일 것이다. 적어도 밖을 향해서는 한동안 묵언(默言)으로 일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이었다. 성격은 다르지만, 최근 한두 달 사이의 일도 내겐 그와 같은 의미의 사건일 뿐이다. ‘말을 매우 잘함말을 되게 못함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두 사람. 그러나 두 경우 모두 구설(口舌)은 화환지문(禍患之門)’이라는 옛말을 입증하는 사례들일 뿐이다. 노 대통령은 말을 너무 잘해서, 박 대통령은 말을 너무 못해서 모두 화를 자초했다고 한다면, 현상을 너무 단순화시킨 것일까. 내 느낌에 노 대통령은 어느 경우에도 막힘이 없었다. 독서량도 많았다지만, 구변이 청산유수였다. 만약 그 구변의 70%만 발휘했다면, 어땠을까. 반면에 박 대통령은 참 눌변(訥辯)이다. 오죽하면 별로 호감이 안가는 언론인 출신의 전직 국회의원으로부터 베이비토크(baby talk)’란 비아냥조의 놀림마저 받았겠는가. 세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펑퍼짐한 강남아줌마를 비선(秘線)의 스피치라이터로 쓰고 있던 일만 보아도 말을 못하는 데서 오는 콤플렉스가 얼마나 컸었는지 알 수 있으리라.

 

이제 촛불의 망망대해에 내던져진 대통령이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그 결과 또한 스스로 감당해야 할 터. 애시당초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올라, 자신을 망치고 국민을 힘들게 하며 나라를 휘청거리게 만들었으니, 모두를 기만한 그 죄가 매우 크고 무겁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구약성서󰡕 잠언2813)는 성서의 구절. 그가 향해야 할 회개의 광야가 어디인지 알려주지 않는가. 둔사(遁辭)와 은폐의 덫에 스스로를 가둠으로써, 더 이상 만인을 부끄럽고 참담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내가 닫아걸었던 블로그의 빗장을 열고, 세상과 소통을 재개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두 버리고자 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는, 자명한 진리를 다시 깨달았기 때문이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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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6. 2. 19. 16:10

사랑하는 국문과 졸업생 여러분!

 

 

 

 

대학에 대한 기대와 젊음의 열정으로 반짝거리던 여러분의 새내기 시절이 엊그제인데, 벌써 사회로 나가는 문지방에 서 있음을 보고, 시간이 덧없다는 생각을 거듭 확인하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 앞에서 졸업 축하의 말씀을 전하는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도 교수님들 가운데 내가 맨 먼저 시간의 무상함을 절감하는 계절에 들어섰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을 보며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때를 생각합니다우중충한 유신 말기의 냉기가 대지를 덮고 있던 때였습니다.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내가 대학을 졸업한 뒤 어떻게 입신할 것인가 고민에 싸여 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수렵 채취 시대-농경 시대-산업화 시대-정보화 시대-고도 지식정보화 시대를 두루 거쳐 왔음을 우스갯소리로 내세우곤 합니다만, 사실 내가 당시 농경시대에서 산업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존재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세계사를 관찰할 때 내 세대 즉 한국의 베이비부머들만큼 다이내믹하고 극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들도 없는 것 같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로서 고도 경제성장과 1997년 외환위기, 그리고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두루 경험한 세대이지요. 우리 세대 구성원들 사이엔 간혹 금수저도 있었지만,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은 나와 같은 흙수저들 뿐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아 차라리 과감하게 베팅해볼 수 있는나 자신이고 우리였습니다.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대책 없는' 계획을 세운 뒤 한눈팔지 않고 밀고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다시 올 수 없다는 절박감이야말로 '몸뚱이' 하나로 '도박판같은 세상'에 나서게 한 동력이었습니다. 어느 시대의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부모 형제가 뒷배를 보아줄 수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대략 20년 전쯤인가요. 차를 몰고 미국 모하비 사막( Mojave Desert)과 그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데쓰밸리(Death Valley)에서 아무도 없는 가운데 황혼을 만났던 때를 떠올려 봅니다. 그 때 느낀 막막함이야말로 나를 위해 책임 져 줄 아무도 없다는 실존적 자아인식으로 이어지는 두려움과 절망감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공자는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겼다(孔子登東山而小魯 登太山而小天下)“는 말이 <<맹자>>에 나옵니다. 공자 역시 어떤 계기를 만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 처한 자아를 인식했고, 그 진실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는 말이겠지요.

 

저도 그랬습니다. 모하비 사막과 데쓰밸리에서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두려움과 외로움을 느꼈고, 그런 두려움과 외로움은 내 존재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으로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내가 기댈 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인식 위에서 강한 투지가 생겨났고, 그로부터 종이 위에 어설프지만 미래의 시간계획표를 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신입생들을 만날 때마다 시간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해왔습니다. 아마 여러분에게도 그런 권유를 했으리라 믿습니다. ‘하루, 한 달, 한 학기, 일 년, 십 년, 일생단위의 시간계획을 짤 수 있어야 그나마 '모험 투성이'인 인생에서 패착의 가능성을 줄여준다는 사실을 모하비 사막 한 가운데서 깨쳤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매우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암울하고 막막했던 내 젊은 시절, 흐릿하나마 어떤 가능성을 부여잡고 용기를 낸 덕분에 지금 여러분 같이 별처럼 빛나는 젊음들 앞에서 보잘 것 없는 내 인생의 경험이나마 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점을 고맙게 여길 뿐입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총아(寵兒)들인 여러분의 손에도 어떤 정해진 형태의 성공이 주어진 건 아닙니다. 안정된 직장이나 소시민적 행복이 지금 당장 가시화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만의 나침반을 들고 광야에서 길을 찾는 개척자의 자세로 용감하게 저 문을 나서야 합니다. 지금까지 시간 계획을 하지 않았다면, 바로 지금부터 그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눈앞에서 반짝이는 무궁한 가능성들을 촘촘하게 계획된 시간의 그물로 그들먹하게 건져 올려야 합니다.

 

외로움과 막막함의 한복판에 서 있는 여러분이 자신감만 갖는다면, 최후의 승리는 바로 여러분 자신의 것이 되리라 믿습니다. 모하비 사막을 돌아 수백 마리의 소떼들을 거느리고 돌아오는 여러분을 10년 혹은 20년 후에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하며, 여러분의 행운을 빕니다.

고맙습니다.

 

 

 

2016. 1. 19.

 

 

 

국어국문학과 조규익 교수

 


졸업식을 마치고

 

 

 

졸업식 후 연구실로 찾아온 양훈식 박사 가족과 함께

 

 

 


졸업식 후 연구실로 찾아 온 임민주, 국미진

 

 

 


졸업식 후 연구실로 찾아온 고조, 국미진, 임민주

 

 

 


졸업식 후 연구실에서 고조와 함께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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