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7.05.04 투표권 '자가 박탈'의 변
  2. 2012.03.10 못난 놈들
  3. 2007.07.08 대선 주자들, 담론의 격을 높여라
글 - 칼럼/단상2017.05.04 17:23

 

투표권 '자가 박탈'의 변  

 

 

 

목하 대통령 선거운동이 진행 중이다. 며칠 남지 않은 종착역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번에 나는 내 투표권을 스스로 박탈하기로 했고, 아내가 내 판단과 결정의 증인이 되기로 했다. 성년 이후 대통령 선거를 위한 투표에 여러 번 참여했지만, 결과가 만족스러운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설사 당선되었다 해도 그 직책을 만족스럽게 수행하는 대통령이 없었다. 최근의 탄핵사건은 그 비극의 정점이었다. 그러니 투표장에서 붓 뚜껑을 들었던 내 손과 그 손을 움직인 내 판단력이나 탓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그래서 이번엔 스스로에게 한시적 공민권 박탈의 실형을 내리기로 한 것이다.

 

참 후보들에게 불만이 많다. 대통령이란 분명 도덕군자도, 박식한 학자도, 순발력 뛰어난 전장의 장수도, 능숙한 행정가도, 출중한 장사꾼도, 말솜씨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웅변가도, 글 솜씨로 사람을 움직이는 문필가도 아니다. 그러나 대중은 이 모든 것을 합친 능력자를 대통령으로 뽑길 원한다. 나보다 나은 인격과 능력을 갖춘 인물을 뽑고 싶어 한다. 그런 인간만이 우리를 대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기준이 뒤죽박죽으로 뒤엉겨 그냥 아무나뽑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다 보면 ×하나를 대통령으로 뽑아 놓고 매일매일 어안이 벙벙해 하는어떤 나라처럼 되는 것 아닌가.

 

후보들의 말을 듣고 그들의 행적을 뒤져보라. 얼마나 구린 구석들이 많은가. 뻔한 질문에 답변이 궁색하여 진땀 흘리는 모습들을 보라. 거칠 것 없는 나에 비해 그들은 얼마나 자유롭지 못한가. 둔사(遁辭)를 농하며 상대가 파놓은 덫을 빠져 나가려는 가련한 몸짓들을 보라. 아무도 무언가를 추궁하지 않는 달달보살인 나에 비해 그들은 얼마나 불안하고 긴장된 삶을 살아가는가.

 

그들도 대통령(후보)이란 허울을 벗겨 놓으면지극히 평범한 장삼이사(張三李四)’들 가운데 하나이리라. 진실은 바로 거기에 있다. 겸허한 마음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대통령직을 수행하고자 하는 결기(決氣)만 있다면, 대통령으로서 충분하다. 내가 매일 만나는 친구들이나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만나서 나누는 정담(政談)’은 정치인 누구 못지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통령 후보들의 도덕과 상식 수준보다 이들이 훨씬 우위에 서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가끔 친구들 중의 하나에게 대통령의 허울을 씌워서 청와대에 들여보내는 상상 유희를 즐기곤 한다. 그들 중의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아도 탄핵으로 쫓겨난 그녀나 지금 그 대통령직을 차지하기 위해 부나방처럼 달려든 15명보다야 낫지 않겠나 생각한다. 누구 말대로 이번에도 어느 사기꾼이 대통령으로 뽑히나’, ‘국민을 얼마나 괴롭게 할 것인가라는 불안감 때문에 대통령은 하늘이 낸다는 속담만 원망스러울 뿐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03.10 16:29
 

못난 놈들

 

                                                                                                                                                           백규

 

대학입학 후 소설가 정을병의 ‘개새끼들’이란 제목의 소설을 읽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경험을 했다. 그가 통타(痛打)한 것이 과연 ‘시대의 부조리’였는지, 아니면 우리 모두의 내면에 들어 있을 ‘악마적 근성’이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맹수들이 날뛰는 사바나 속에서 작은 초식동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내 운명을 비로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작품에 나오는 부조리는 작가의 체험이었다. 작품을 탈고한 뒤 제목을 어떻게 달 것인가를 두고 그는 아마도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머리에 떠오르는 고상한 제목들이 좀 많았을까. 등짝을 서늘하게 하는, 그럴 듯한 제목들 또한 제법 있었으리라. 그러나 ‘간지 나는’ 제목들을 두고 밤을 새워가며 고심하다가 결국 ‘개새끼들’로 낙착을 본 것이나 아닐까.

 

***

 

또 다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오십 중반에 맞이하는 정치의 계절은 또 다른 차원에서 흥미롭다. 정치판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군상들을 보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다수다. 아, 그동안 나는 어떻게 지내 왔기에 ‘어리기만 하던 그들’이 경세제민(經世濟民)하겠다고 나설 때까지 그저 남들을 우러러 보는 낮은 자리에서 속 편하게 앉아만 있었을까. 속아만 살아왔던 지난 세월도 억울한데, 그 사기꾼들이 기른 ‘새끼 사기꾼들’을 새로운 상전으로 우러러 보아야만 하는 시간과 공간에 선뜻 들어와 버렸으니, 통탄할 노릇 아닌가.

 

***

 

시절은 참 많이도 변한 듯. 여성들이 공교롭게도 굵직한 정당들의 보스로 자리 잡고 나라의 미래를 요리하겠노라고 각자 칼들을 집어 들었다. 총선에 나설 각 당의 대표선수[후보]들을 골라 발표하는 행사가 연일 민초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힌다.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탈락한 자들의 모습이다. 각 당은 ‘쇄신’이란 명분으로 기득권자들이라 할 수 있는 현역 의원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각 당은 지역구의 여론조사 등의 방법으로 우선 대상자들을 걸러낸 다음,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일은 없는가, 임기 동안 얼마나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는가, 지역민들로부터 얼마나 지지를 받고 있는가’ 등을 따져 감점하는 식으로 나머지 후보들을 떨어뜨리는 모양이다. 그런데 탈락한 사람들의 모습이 가관이다. 모두 예외 없이 길길이 반발하며 앙앙불락(怏怏不樂)하는 이들의 모습이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집행부의 꼼수에 걸려 억울하게 낙마한 경우도 있을 것이고, 경쟁자의 음해에 피해를 입은 경우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설사 그렇다 해도,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득이 되는지 심사숙고하는 사람을 찾아 볼 수 없으니, 이들을 바라보며 나라가 잘 되기만을 기원해 온 내 지난 세월이 너무나 아깝고 통분한 것이다. 한사코 자신이 탈락한 것은 칼자루 쥔 자들의 ‘복수심’이나 ‘자파 세력의 부식을 위한 꼼수’ 때문이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나 같은 필부의 입장에서도 ‘세상의 변화’를 절감하고 있는데, 내가 경외(敬畏)하여 마지않던 이른바 ‘선량(選良)’들이 그 정도의 상식조차 갖추고 있지 않았다는 말일까.

 

***

그래서 탈락한 사람들 끼리끼리 모여 새로이 ‘작당(作黨)’들을 한다고 한다. 어쩌면 새로 만드는 정당에서 여성이 보스로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붕당(朋黨)을 만들든 정당(政黨)을 만들든 내가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사에 참여했던 인사들이라면 자중할 필요가 있다. 국가 대사에 남녀를 가를 필요는 없고, 여자가 보스라 하여 달리 볼 일도 아니지만, 시대의 변화를 잘 읽어보라. 세상의 ‘마초’들이여, 지금은 남자가 호령하던 시대에서 ‘한없이 너그럽고 따스한’ 어머니의 입장에서든 ‘오뉴월에도 서리를 내리게 하는’ 원부(怨婦)의 입장에서든 이제 남자들은 당분간 물러나 앉아 보조역에 충실하거나 ‘때를 기다리며’ 은인자중해야 할 시기로 바뀌었다! 누구누구 손꼽히는 남자들, 그대들이 아무리 용을 써 보아도 국민들로부터 그녀들보다 나은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것이 그대들의 그릇이고 시운(時運)이다. 시운은 돌고돌아 인력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일. 언제일지 모르나 큰 변화의 주기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럴 경우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새로운 지도력에 승복하고 그 지도력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큰 남자들의 금도(襟度)’다. 그들이 새 시대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놓는다면, 앙앙불락할 것이 아니라 냉철히 자신을 점검하고 수양하며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게 명철보신(明哲保身)의 길이다.

 

***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부왕의 상을 치른 뒤 은인자중하고 있다가 재야의 현자 열(說)을 발탁하여 선정을 베풀게 되었다. <<서경(書經)>>의 <열명편(說命篇)>에서는 그의 대인적 풍모를 ‘명철(明哲)’이라 기록했다. 즉 “천하의 사리에 통하고 뭇사람에 앞서 아는 것을 명철이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만이 진실로 정치와 도덕의 법칙을 정할 수 있다고 했다. <<시경>> <대아(大雅)> ‘증민(烝民)’의 다음과 같은 부분을 눈여겨보자.

 

“엄숙한 왕명을/중산보가 받들어 행하며/나라의 잘잘못을/중산보가 밝혔도다/밝고 현명하게 처신하여[旣明且哲]/그 몸을 보존하였도다[以保其身]…”

 

<<서경>>의 ‘명철’, <<시경>>의 ‘명철보신’은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을 잘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비겁하게 숨으라는 말이 아니다. 나올 때와 들어가 있을 때를 분간하라는 말이다. 시운(時運)이 비색(否塞)하면 한사코 나오려 할 것이 아니고, 때가 이를 때까지 수양에 힘써야 한다. 여자가 주도하든 남자가 주도하든, 시대의 소명(召命)을 받은 주체가 거부함에도 한사코 앙앙불락하며 이 집 저 집 대문 앞을 기웃거리는 것은 ‘같은 남자의 입장’에서도 부끄러운 일이다. 선택을 받지 못했으면,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누구를 원망하며 동분서주하는 그들을 우리는 과연 무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

 

이 판국에 더 웃기는 자는 구멍 난 그물을 들고 돌아다니며, 쫓겨난 피라미들이나마 거두겠다고 설치는 인간이다. 그럴 듯한 교수자리 헌 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오두막이나마 ‘패자당(敗者黨) 하나 건사해보겠다고 나선 그를 우리는 과연 무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2012. 3. 10.>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07.07.08 14:08
대선 주자들, 담론(談論)의 격을 높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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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주자들, 담론의 격을 높여라
- 조규익

대선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한솥밥’을 먹어온 사람들이 서로 적이 되어 말에 칼날을 세우고 있다. 〈당서〉 ‘이임보전(李林甫傳)’에 ‘구유밀복유검(口有蜜腹有劍)’이란 말이 나온다. 말은 꿀과 같이 달고 친절하나 뱃속에는 날 세운 칼이 들어 있다는 뜻이다. 원래 무서운 인물을 묘사한 표현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 표현도 양반이다. 모두가 최소한의 수사(修辭)나 미소도 없이 그대로 ‘도끼처럼’ 상대를 내려찍기에 바쁘다. 비록 적이라도 장점을 칭찬해주는 금도(襟度)가 실종된 지는 이미 오래다. 국민들의 수준이야 자신들의 안중에도 없으니 오물 같은 증오의 언사들만 농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 후보들에게 시대를 이끄는 ‘담론(談論)’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자기의 신념이나 객관적 가치의 관점에서 시대적 의의를 인정할 만한 언어가 담론이다. 지금 난무하는 담론 아닌 언설들은 기껏 대운하나 위장 전입, 탈세 등이 거의 전부다. 물론 그것들이 중요치 않다는 건 아니고, 그런 잘못을 파헤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이 되려는 자가 국민들의 의식주를 걱정하고, 그 문제 해결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것을 말릴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게 전부일 수는 없다.

광복 이후 반세기가 흘렀지만 대통령 후보들의 생각은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간 국가 지도자 덕에 우리가 산업화 사회, 정보화 사회, 고도 정보화 사회로 술술 넘어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업이나 국민들의 지혜로움이 그런 변혁의 기조를 만들어왔고, 정치권이나 지도자들은 따라오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이 변화의 기조가 제대로 된 것인지, 우리 사회가 달리고 있는 궤도가 온전한지 점검할 때가 되었다.

우리 경제규모가 세계 11위에 랭크되어 있다지만, 아직도 우리는 선진국 문앞에 서성대고 있다. 국민 모두가 투철한 문화의식을 갖지 못한 때문이다. 사실 문화의식은 전통과 보편주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뛰어넘어 국민적 자존심으로부터 발로되는 것이 문화의식이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문화나 의식을 어떻게 살려나갈 것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인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대선 후보들이 읽어야 할 시대정신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거기서부터 하부 아젠다를 어떻게 설정하고 실행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국가 경영의 이념뿐 아니라 시대정신에 대해서도 무지하다 보니 기껏 한다는 것이 남들의 흠이나 잡아내어 헐뜯는 일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불안하고 짜증스럽다. 검증이란 미명 아래 자행되고 있는 네거티브 전략이 우리 사회의 신뢰기반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는 현실. 검증의 당위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검증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자는 그야말로 ‘하늘을 우러러 한 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 남을 검증하려면 철저한 자기검증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자기검증만 제대로 한다면 굳이 남을 검증할 필요 없고, 그에 따라 ‘네거티브 전략’이란 저급한 용어가 등장할 필요도 없다. 네거티브 전략에는 담론이 필요 없거나, 있어도 저급한 수준으로 족하다. 국가 경영을 위한 미래지향적 기치를 만들어 내놓아야 할 후보들이 남의 말꼬리나 잡고 티격태격할 여유가 없다. 이제 대선 후보들은 담론의 격을 높여야 할 때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