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리 걸치기
오래도록 내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는 친구들 몇이 있다.
자영업을 하는 친구, 회사에서 잘 나가는 친구, 대학에 교수로 있는 친구...
최근 어울린 술자리에서 우린 공교롭게도 같은 주제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50 중반의 연륜과 경험으로 제법 근수가 묵직해진 친구들, 세상의 단맛 쓴맛 골고루 보아온 그들이었다. 우연히 입을 맞춘 화제가 바로 ‘양다리 걸치기’. 어떤 친구는 현재 진행의 ‘양다리 걸치기’를 경험하는 중이었고, 또 다른 친구들은 이미 경험했거나 목격한 일들을 말했다. 나는 묵묵히 듣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분야가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어쩌면 그리도 같은 모습일까?’ 생각할수록 흥미로웠다.
회사 친구의 말이 압권이었다. 줄타기의 달인이라 할 만한 후배 사원 하나가 있다고 했다. 그 사원은 틈만 있으면 친구를 찾아 그가 믿지도 원하지도 않는 충성(?)맹세를 하곤 했다. 친구가 1년 남짓의 해외근무 동안 그 후배는 친구와 앙숙의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줄을 댔다. 그(혹은 그 일당)와 술자리를 종종 함께 하며 관계를 돈독하게 발전시켜 나갔다. 그 대가로 그 앙숙은 그에게 작은 은전들을 베풀어 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 후배는 틈틈이 내 친구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확인해준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내 친구는 원칙을 지키는 인물이었으니, 후배에게 특별히 은전을 베풀 일도, 안겨 줄 떡도 별로 없었다. 그런 현실을 간파한 것일까. 그 후배는 내 친구와 ‘최소의 인간적인 관계’만 유지하면서 앙숙과 보다 돈독한 관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좁은 공간, 재채기만 해도 누군지 알아채는 좁은 공동체에서, 아무리 무심한 내 친구라 해도 그런 후배의 처세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것도 그 후배가 살아가는 방법이려니’ 하면서 모른 척 하고 있단다. 그러나 친구가 만나 정담을 나누고자 불러도 업무 핑계를 대곤 하는 후배가 앙숙(혹은 그 패거리)이 술자리에서 전화만 걸면 온갖 일을 미루어 두고 또르르 달려 나간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고 참담함을 금치 못하는 내 친구였다. 더 한심한 일은 내 친구가 그의 그런 ‘양다리 걸치기’를 눈치 채고 있다는 사실을 후배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은 완벽하게 내 친구를 속였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내 친구가 자신의 기회주의적 처신을 꿈에도 모를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친구의 말을 안주로 삼아 달달한 막걸리를 마시며 새삼 세상인심을 깨닫게 되었다. 친구의 경험이 어찌 친구만의 일이랴? 명색이 대학교수인 내 주변에도 그런 군상들이 널려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자 곱게 취한 술이 확 깨는 것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인간처럼 영악한 존재도 찾아보기 힘들고, 인간처럼 야비한 존재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을.
참으로 제대로 된 인간과 제대로 된 사귐을 갖는 일이 쉽지 않은 요즈음이다.
조규익(숭실대 인문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