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9.19 양다리 걸치기
  2. 2009.03.17 '죽은 어른의 사회'
  3. 2007.04.15 이젠 '죽는 연습'도 해야 할 때다
글 - 칼럼/단상2010. 9. 19. 15:48

양다리 걸치기

 

오래도록 내 주변을 떠나지 않고 있는 친구들 몇이 있다.
자영업을 하는 친구, 회사에서 잘 나가는 친구, 대학에 교수로 있는 친구...
최근 어울린 술자리에서 우린 공교롭게도 같은 주제의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50 중반의 연륜과 경험으로 제법 근수가 묵직해진 친구들, 세상의 단맛 쓴맛 골고루 보아온 그들이었다. 우연히 입을 맞춘 화제가 바로 ‘양다리 걸치기’. 어떤 친구는 현재 진행의 ‘양다리 걸치기’를 경험하는 중이었고, 또 다른 친구들은 이미 경험했거나 목격한 일들을 말했다. 나는 묵묵히 듣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분야가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어쩌면 그리도 같은 모습일까?’ 생각할수록 흥미로웠다.  


회사 친구의 말이 압권이었다. 줄타기의 달인이라 할 만한 후배 사원 하나가 있다고 했다. 그 사원은 틈만 있으면 친구를 찾아 그가 믿지도 원하지도 않는 충성(?)맹세를 하곤 했다. 친구가 1년 남짓의 해외근무 동안 그 후배는 친구와 앙숙의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줄을 댔다. 그(혹은 그 일당)와 술자리를 종종 함께 하며 관계를 돈독하게 발전시켜 나갔다. 그 대가로 그 앙숙은 그에게 작은 은전들을 베풀어 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 후배는 틈틈이 내 친구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확인해준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내 친구는 원칙을 지키는 인물이었으니, 후배에게 특별히 은전을 베풀 일도, 안겨 줄 떡도 별로 없었다. 그런 현실을 간파한 것일까. 그 후배는 내 친구와 ‘최소의 인간적인 관계’만 유지하면서 앙숙과 보다 돈독한 관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좁은 공간, 재채기만 해도 누군지 알아채는 좁은 공동체에서, 아무리 무심한 내 친구라 해도 그런 후배의 처세를 모를 리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것도 그 후배가 살아가는 방법이려니’ 하면서 모른 척 하고 있단다. 그러나 친구가 만나 정담을 나누고자 불러도 업무 핑계를 대곤 하는 후배가 앙숙(혹은 그 패거리)이 술자리에서 전화만 걸면 온갖 일을 미루어 두고 또르르 달려 나간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고 참담함을 금치 못하는 내 친구였다. 더 한심한 일은 내 친구가 그의 그런 ‘양다리 걸치기’를 눈치 채고 있다는 사실을 후배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은 완벽하게 내 친구를 속였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내 친구가 자신의 기회주의적 처신을 꿈에도 모를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친구의 말을 안주로 삼아 달달한 막걸리를 마시며 새삼 세상인심을 깨닫게 되었다. 친구의 경험이 어찌 친구만의 일이랴? 명색이 대학교수인 내 주변에도 그런 군상들이 널려 있음을 비로소 깨닫게 되자 곱게 취한 술이 확 깨는 것이었다. 누군가 말했다. “인간처럼 영악한 존재도 찾아보기 힘들고, 인간처럼 야비한 존재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말을.
  

참으로 제대로 된 인간과 제대로 된 사귐을 갖는 일이 쉽지 않은 요즈음이다.

 

조규익(숭실대 인문대 학장)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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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9. 3. 17. 10:17

‘죽은 어른의 사회’

 

조규익(국문과 교수)

 

얼마 전 한 노인을 만났다. 사회적 지위도 누릴 만큼 누렸고 돈도 많은 분이었다. 그런데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불평이 많았다. 후배들이 자신을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다고 노여워했다. 본인은 나이도 학식도 지위도 누구 못지않은데, 주변의 젊은이들이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들이 자신을 ‘어른’으로 대우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노인은 나이가 많다는 것이 판단의 정당성까지 담보한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 듯 했다. 나는 그 분이 자신의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대체로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자격 없는 어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점은 학부 신입생부터 정년을 앞 둔 교수까지 10대에서 60대까지 모여 있는 대학이나 세대 구성이 더 다양한 사회 모두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노인이라 여기는 노인은 없다지만, 젊은이들의 눈에는 ‘에누리 없는 노인들’만 주변에 그득하다. 그 중에는 간혹 공동체 운영의 헤게모니를 한사코 놓지 않으려는, 추한 모습을 보여주는 분들도 있다. 그러니 젊은이들의 눈엔 ‘제대로 된 어른’보다 ‘탐욕과 편견에 찌든 노인들’만 보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나아가도 모자랄 판에 사회가 자꾸만 뒷걸음질 치는 것은 그런 노인들이 공동체의 선도역을 자임하기 때문이다. 말하기보다 들어주기, 현실적인 일에 초연하기, 후배들을 격려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지갑 열기 등등 자신을 덜거나 버리는 일에 나서야 비로소 노인 아닌 ‘어른’이 될 수 있다. 어른으로 대우해주지 않는다고 후배들을 원망하며 그들과 엉겨서 이해다툼이나 벌인다면, 언제까지나 ‘어른’ 아닌 ‘노인’으로 남을 뿐이다.

최근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 신앙인이든 아니든 많은 사람들이 그 분의 죽음을 애도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그 분이 진정으로 무욕(無慾)의 삶을 살아온 ‘어른’이었다는 점이다. 상당수의 노인들은 이 땅에 명예와 부의 지저분한 껍질만 남기고 떠난다. 아니, 명예와 부의 근처에도 못 가본 채 그것들에 집착한 욕망의 검불들만 날리고 떠나버린다. 소년, 청년, 장년으로 살다가 ‘어른’이 되어보지 못한 채 ‘노인’으로 씁쓸히 세상을 하직하는 게 필부필부들의 삶이다. 노인들은 노인들대로 청년들은 청년들대로 어른으로 죽을지 노인으로 죽을지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슬프게도 지금 우리는 ‘죽은 어른의 사회’에 살고 있다.(2009. 3. 16.)

*이 글은 <숭대시보> No. 990, 2009년 3월 16일자에 실려 있습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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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7. 4. 15. 22:47
이젠 '죽는 연습'을 할 때다
영안실에서


후배의 부음을 받고 영안실로 달려가는 밤길은 멀고도 험했다.
번잡한 도회를 벗어나 접어든 꼬불꼬불 산길은 흡사 ‘저승길’ 같았다.
그랬다. 몇 발짝만 벗어나면 저승이었다. 그게 바로 삶과 죽음의 거리였다.
깜깜한 산길을 달리는 동안, 영안실에 도착해서는 크게 울리라 생각했다.
한 줌의 재로 우리 곁 어딘가에 내려앉을 그의 영혼을 위해 크게 울어 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내어걸린 영정이 너무 화사하고 깨끗했다. 그 미소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없었다. 가슴 저 밑바닥에 준비해간 울음은 작은 신음으로 축소되어 눈자위만 붉히고 말았다. 말없이 이승을 떠난 그와 산 속 영안실에서 그렇게 만나고, 헤어졌다.

영안실에 다니면서 죽음을 수 없이 배운다. 아니 ‘죽는 연습’을 한다.
죽음을 받아들인 그들의 마지막 며칠을 떠올리면서 죽는 연습을 한다.
어떤 이는 숨을 놓는 그 순간까지 ‘살려고’ 버둥대는 통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더욱 애처롭게 만든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초조해하고 당황해한다. 문 밖에 기다리고 있는 저승사자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그들이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기만을 애타게 소원한다. 그렇게 가고나면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큰 못이 하나 박힌다. 어떤 마무리건 의연하지 못할 경우 남는 건 슬픔과 욕됨 뿐이다.

후배의 마지막 며칠을 지킨 또 다른 후배는 그의 마지막이 쓸쓸했다 한다.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다. 아름답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을까. 일종의 자존심이었으리라.      

그러나 삶과 죽음의 교차로를 그토록 쓸쓸하게 건널 이유가 있을까.
그보다 먼저 간 사람들도 많았다. 그도 우리보다 좀 먼저 갔을 뿐이다.
먼저 가는 사람으로서의 소회도 있을 것이다. 살아남을 사람들에게 풀지 못한 서운함도 있을 것이다. 서운함을 넘어선 ‘응어리’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주는 거야말로 떠나는 자의 의무 아닐까. 하기야 선량한 그 친구는 누구와도 그런 서운한 관계를 맺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고운 관계만 맺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니 생전의 인연들을 불러 서운함과 응어리를 푸는 것은 떠나는 자가 잊지 말고 해야 할 일이다. 그것도 정신 있을 때 해야 할 일이다.

영안실은 살아남은 자들의 잡담으로 떠들썩했다. 흡사 살아있음의 행복을 확인하려는 듯, 밤이 깊어갈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는 것이었다. 그들을 내려다보며 후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모두들 영안실에 가면 ‘죽는 연습’이나 한 번씩 해볼 일이다.

수원 연화장 장례식장에서

백규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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