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 방지법으로 효도 많이 하겠습니다!
길을 건너려고 횡단보도 끝에 서 있는데, 건너편을 보니 기상천외한 현수막이 걸려 있는게 아닌가.
“불효자 방지법으로 효도 많이 하겠습니다!”
○○○○○당 |
갑자기 픽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떤 야당에서 내건 모양인데, 기가 막히는 현수막이었다.
패륜자식들의 소식이 하루가 멀다 않고 터져 나오는 요즈음. 얼마 전엔 참다못한 아버지가 40대 아들에게 양육비와 교육비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일도 있었다. 이런 저런 일들이 터져 나오니, 표가 급한 그 당에서는 그런 패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기상천외한 ‘불효자 방지법’을 내 걸었을 것이다.
대체 효도란 무엇일까. 법이 무서워서 하는 효도를 효도라 할 수 있을까. 내가 하는 효도가 남에게도 효도일 것이며, 내 부모가 생각하는 효도를 남의 부모도 효도로 생각할까. 법조문을 만들려면 효도의 개념이나 실행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터인데, 그걸 대체 무슨 수로 규정한단 말인가.
노부모 학대의 주범이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 세상이다. 학대를 받으면서도 자식에게 혹시 해가 갈까봐 다른 사람들에게는 쉬쉬하는 게 우리네 부모들의 마음이다. 아무리 엄한 법을 만들어 놓으면 뭣하랴. 우리나라에서 불효자식을 사법기관에 고소할 부모의 비율이 몇 %나 될 것이며, 불효를 저질러 고소될 정도의 인간으로 법조문 앞에 무릎 꿇을 자식 놈들은 또 몇 %나 되겠는가. 그러니 일 꺼리 모자라는 변호사들만 가뭄에 단비 만난 듯 부모-자식 송사를 찾거나 부추기며 돌아다닐 것 아닌가. 부모로부터 수임 받은 변호사가 다른 곳에선 불효자로부터 수임 받는 유능한 변호사도 나올 것 아닌가. 오전의 어떤 법정에서는 피해 입은 부모를 위해 변론하다가 오후의 다른 법정에서는 불효자를 위해 변론하는 일도 비일비재할 것 아닌가. 부모와 불효자의 싸움판에서 오락가락하며 변론을 벌이다 보면 ‘불효문제’에 관한 창과 방패가 변호사의 손에서 마련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부모와 자식은 단순히 사회적 계약 관계 혹은 그 이하의 우스운 관계로 전락될 것 아닌가.
참, 할 일 없으면 모자라는 잠이나 잘 것이지. 세비만 받고 놀기가 계면쩍어서들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변호사들로부터 로비라도 받은 것인가. 납득이 안 되는 법을 만들겠다고 대형 현수막까지 내건 그 당의 의도는 대체 어디에 있을까. 표를 얻을 목적으로 내건 것이면, 지금 당장 내리는 것이 좋다고 본다. 표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자꾸만 그런 일을 벌이는 그들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이 법이 제정된다 해도 통과되기 쉽진 않겠지만, 통과된다면 그 순간부터 그나마 남아있던 우리의 미풍양속은 사그리 없어질 터. 불효자 방지법 제정이 불가능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효도가 무엇인지 법리적으로 설명할 도리가 없다.
둘째,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기 위해 들어간 돈과 정성을 산정할 방도가 없다.
셋째, 만일의 사태를 생각하여 애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치부책을 써야 할 텐데, 그 스트레스를 생각해 보았는가. 그리 하여 아이 낳지 않으려는 남녀가 양산될 것이니, 민족과 국가의 생명은 서서히 끊어져 갈 것이다.
참, 살다 살다 별 해괴한 일을 다 보게 된다. 그래서 지금이 말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