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15.03.28 17:48

 


백규서옥을 방문한 아리안 군

 

 


백규서옥을 방문한 유리 군

 

 

언어구사의 천재들을 가까이에서 보며

 

 

 

몇 년 전 고려인들을 찾기 위해 벨라루스의 민스크에 간 적이 있다. 공항에서 호텔에 이르기까지 드넓은 들판과 자작나무 가로수 길이 인상적이었다. 벨라루스는 1922년 소련에 편입되어 1991년까지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존속하다가, 1991년 독립 선언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와 함께 독립 국가 연합(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의 창설을 주도한 나라다. 당연히 공용어는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였다. 동쪽으로는 러시아, 서쪽으로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남쪽으로는 우크라이나, 북쪽으로는 라트비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니, 이를테면 다수의 민족국가들 속에 파묻힌 육지 속의 섬과 같은 나라였다.

민스크 도착 다음 날 벨라루스 국립대학 한국어과의 요청으로 학생들에게 강연을 하게 되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학생들을 통해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그곳 사람들의 혈통과 말이었다. 강의실에서 젊은 학생들을 만났다. 한국어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서는 영어를 썼는데, 소통의 정도는 기가 막힐 정도였다. 얼굴 모습들은 슬라브 계통의 백인들이었으나, 피부 한 꺼풀만 벗기면 다양한 모습들이 드러났다. 다음 날부터 학과에서 소개해준 두 명의 학생들이 민스크 곳곳을 안내해 주었다. 한 사람은 아리안(Aryan), 또 한 사람은 유리 킴(Yuri Kim)이었다.

 

#1 아리안의 할머니는 이란인으로서 현재 테헤란에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에 관해서는 미처 묻지 못했는데, 그의 얼굴 모습으로 보아 할아버지가 아리안족인 듯 했다. 그러니 그의 아버지는 이란과 인도계의 혼혈일 것이고, 그 혼혈 아버지와 우크라이나 출신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것이 아리안이었다. 내 관심은 그가 지닌 외국어 능력이었다. 그는 이란어, 러시아어, 벨라루스어, 우크라이나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한국어에 이미 능통해 있었고, 막 일본어에 손을 대고 있었음은 물론 중국어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한자도 제법 알고 있는 눈치였다. 어머니로부터 젖을 받아먹듯 우크라이나어와 벨라루스어를 마더 텅(mother tongue)으로 받았고, 할머니 혹은 아버지로부터 이란어를 받았으며, 중학교~대학에 이르는 학교 교육에서 영어와 프랑스어, 독일어, 한국어를 익힌 것이었다. 대개 마더텅으로 두, 세 개의 언어를 습득한 경우, 마음만 먹으면 또 다른 언어를 배우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라는 것을 그들로부터 알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한국에 와서 모 대학의 어학코스를 최우등으로 마치고 돌아가 벨라루스 국립대학에서 대학원을 이수하면서 어학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2 내가 벨라루스에 머무는 동안 내게 친절을 베푼 또 하나의 벨라루스 청년이 유리였다. 워낙 한국어에 출중하여 당시 학부생의 신분임에도 한국어 강사로 활약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카자흐스탄에 살고 있던 할아버지가 고려인이긴 했으나, 할아버지 자신이 고려 말을 버린 지 오랜 상태였을 뿐 아니라 그들은 서로 왕래도 없었다. 당연히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학에서 한국인으로부터 한국어를 배우자마자 마스터했다고 한다. 그의 언어 내력이 궁금하여 가계를 캐물었다. 할아버지는 고려인이고 할머니는 타타르인으로서 카자흐스탄 사람들이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벨라루스로 이주하여 벨라루스인 여자와 결혼하여 유리를 낳은 것이었다. 화학 전공자였던 외할아버지와 프랑스어 음운론 교수였던 외할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어머니는 편집 기자였고, 아버지는 가구 및 건축 디자이너였다. 그러니 그가 태어나자마자부터 접했을 언어적 다양성의 실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를, 아버지로부터 카자흐스탄어와 러시아어 및 벨라루스어를, 그리고 간혹 아버지로부터 단 몇 단어라 할지라도 할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고려어의 냄새 정도는 맡았던 것 같다. 따라서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3개 국어를 마더텅으로 물려받은 것이고, 그 후 자라는 과정에서 다민족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학교교육을 통해 여러 외국어들을 덤으로 배우게 된 것이었다. 벨라루스어, 러시아어, 불어, 영어, 독일어,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있는 그는 지금 한국에서 공부하는 중이다.

 

일생을 노력해야 겨우 영어 하나를 외국어로 구사하게 되는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그들이었다. 참으로 부러운 그들이었다. 간혹 외국에 나가면서 몇 개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외국인들을 흔히 만난다. 그러면서 외국어에 관한한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뒤처진 사람들이 또 있을까?’라는 한탄을 매번 하게 된다. 그러면서 말은 혼임을 깨닫는다. 혼은 물려받는 것일 뿐 흉내를 내거나 노력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3 최근 나에게 이쁜손녀가 하나 생겼다. 이제 돌을 갓 지난 녀석을 보며 나는 언어 학습의 과정과 실상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다. 녀석이 말을 배워가는 과정과 방법이 참으로 신기하다. 제 어미가 젖병을 물리는 동안 녀석의 눈길 멈추는 곳이 예사롭지 않다. 바로 엄마의 얼굴인데, 그 가운데도 입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었다. 녀석은 무얼 보고 듣는 것일까. ‘자 이제 다 먹었네? 그럼 일어나 트림을 해야지!’라는 엄마의 말을 들으며 엄마 입술의 움직임을 유심히 보는 듯 했다. 말하자면 녀석은 엄마 입술의 움직임만으로도 그 말을 알아듣겠다는 듯 반응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오묘했다. 그러다가 엄마의 말을 흉내 내기 시작했다. 한 단어, 두 단어, 세 단어...녀석이 흉내 내는 엄마 말의 분량은 주간 단위로 늘어나는 것이었다.[나는 사실 짧으면 한 주, 길면 두 주 정도에 한 번씩 녀석을 만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 사실은 매일 달라지고 있을 것이다!] 이제 세 음절짜리 단어들을 흉내 내어 구사하기 시작했고, 문장 단위의 말을 내뱉으려 할 땐 , 하고 소리치며 손짓을 하기에 이르렀다. 말 뿐 아니라, 행동거지도 제 부모와 우리를 흉내 내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따라쟁이라는 애칭으로 놀리기도 하는데, 바로 그 점에 언어 학습의 요체가 들어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인류가 세상에 출현한 이래 말이란 그렇게 전승되어 온 것이다. 젖을 먹을 때 엄마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는 것이 말이다. 그래서 마더 텅인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엄마가 다중언어 구사자(multilingual speaker)’라면, 말에 따라 순위는 생기겠지만, 그 언어들이 그대로 아기에게 전수되지 않겠는가. 바이링궐(bilingual), 트라이링궐(trilingual) 등 흔한 다중언어 구사 엄마들이야 기분 내키는 대로 자유자재로 여러 언어들을 갖고 아기와 소통할 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런 엄마의 아이들은 태어나면서 이미 다중언어 구사자가 될 소지를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

 

우리의 실상을 보자. ‘단일 언어를 쓰는 단일민족이란 말을 자랑처럼 달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같은 말을 쓰면 같은 생각을 하게 되고, 소통 또한 더 잘 되겠지.’라는 우리의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세계화의 시대에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지금 세계에서 유일하게 같은 말을 쓰는동족끼리 총부리를 마주대고 으르렁거리는 곳이 바로 한반도다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부모 자식 간에, 형제자매 간에, 좌파와 우파 간에 툭하면 같은 말을 무기로 죽고 죽이는 싸움판을 벌이는 곳이 바로 이 나라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모습을 한 사람들 사이에 죽고 죽이는 싸움판을 벌이는 데, 대체 단일어를 쓰는 단일민족이 무슨 자랑거리란 말인가.

 

눈만 뜨면, 베트남에서 필리핀에서 시집 온 새댁들을 무시하고 구박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들이 한국어를 잘 몰라서 말이 안 통하니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이다. 우리말을 모르는 것을 차이 아닌 차별의 근거로 내세우려는 것이 바로 우리들이다. 더 고약한 것은 우리말을 모르는 백인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러우면서도 우리말을 모르는 유색인들은 매몰차게 무시하려 드는 일이다바로 우리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못난 식민주의 근성 때문이다.

 

그들이 한국어를 잘 모르면 우리가 먼저 베트남어를 공부하고 필리핀어를 배우면 안 되나? 우리 자식들에게 시집와서 손자 손녀들을 낳아주는 베트남 필리핀 며느리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들인가그러니 외국인 며느리들은 구박의 대상이기는 커녕 오히려 우리가 떠받들어야 할 보배들이다. 우리의 아이들을 낳아 이중언어 구사자로 키워줄 훌륭한 어머니요 선생님들 아닌가. 아이를 낳아 젖 먹여 키우는 과정에서 우리말과 베트남 말을 '마더 텅'으로 동시에 전해준다면, 나중에 그들은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우수한 국제인으로 자라게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나라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우린 그들을 소중하게 대접해야 한다. 그들이 당장 우리말을 못하고 못 알아듣는다면, 우리가 먼저 그들의 말을 배워서라도 그들의 마음을 잡아두고 우리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일자리를 찾아 우리나라에 온 동남아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그들이 우리보다 좀 더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 우리말에 서툴다는 이유 때문일 텐데, 그들 역시 우리에겐 소중한 보배들이다. 우리가 마다하는 궂은 일들을 달게 맡아하는 그들. 생각하기에 따라 그들은 우리의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참 못 말릴 정도로 무지하고 거친 사람들이 나를 포함한 오늘날의 한국인들이다. 인종의 전시장인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 나가서는 입도 뻥긋 못하면서, 좁디좁은 내 땅에만 들어오면 안방 호랑이 노릇을 잘도 하는 우리의 잘못된 습성이 바로 언어능력 콤플렉스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는 것이 내 생각인데, 이런 판단에 반론을 제기하실 분 있으면 말씀들 좀 해 보소서!

 

 


벨라루스 국립대학에서 유리 김, 샤두르스키 학장과 함께

 

 

 


벨라루스 고려인협회에서 만난 고려인들

 

 

 


밥을 받아먹는 YB

 

 


엄마를 흉내내는 YB

 

 

YB and her Mom walking on the road by the Han River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2.01.11 01:51


“한국어가 아무 소리 없이 학문어의 자리에서 사라져가고 있다"-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백규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연히 서울 시장의 홈피[원순닷컴]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가슴을 찌르는 말 한 마디를 발견했습니다.

한국어가 아무 소리 없이 학문어의 자리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어문대학장인 유재원 교수가 박 시장에게 보낸 메일의 제목이었습니다. 유 학장의 호소 속에는 언어학자의 프로의식과 함께 말기에 접어든 우리의 병통을 호소하는 지식인의 절규가 들어 있었습니다. 우선 유 학장의 메일 내용을 읽어 본 다음 제 생각을 덧붙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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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가 아무 소리 없이 학문어의 자리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한국어가 학문어로서의 위치를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부터 영국의 대학 평가 회사인 QS(Quacquarelli Symonds)와 공동으로 실시하는 “아시아 대학 평가”에는 한국어 논문에 대한 점수가 아예 고려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 QS라는 회사는 2003년부터 영국의 The Times와 세계대학평가를 실시하고 있으며, 올해부터는 The Sunday Times와 US News and World Report를 통해 세계 대학평가를 시행할 예정이라 한다.

조선일보의 대학평가 기준은 ▶연구능력(60%) ▶교육수준(20%) ▶졸업생 평판도(10%) ▶국제화(10%) 등 4개 분야를 점수화해 순위를 매기는 것으로 연구 능력과 국제화가 모두 영어로 논문을 쓰는 것을 전제로 평가되기 때문에 결국 영어 논문 비중이 70%나 반영되게 짜여 있다. 또 평가의 총괄 책임자도 벤 소터라는 영국 사람이 맡고 있다.

QS의 대학 교수 연구 능력 평가는 ‘스코퍼스(
http://www.scopus.com’)라는 네덜란드 회사가 만든 데이터 베이스와 검색 엔진을 이용하여 각 대학의 이름으로 발표된 논문과 논문 당 인용수를 검색하여 교원 수로 나누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에서의 스코퍼스 관리는 ‘엘즈비어 코리아’에서 하고 있음.) ‘스코퍼스’사는 세계 약 25,000여 개의 학술지를 국제 저명 학술지로 등록하고 있는데, 이 학술지들은 모두 영어로 쓰여 있다. 이 기준을 따르면 한국어로 쓴 논문은 ‘0’점으로 처리되게 마련이다.

이런 평가 기준에 대한 각 대학의 반응은 상당히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모든 대학은 국제 저명 학술지 게재율을 높이기 위하여 상당한 특혜를 베풀고 있다. 보기로 부산대학에서는 SCI나 SSCI, A&HCI 1 편당 현재 1 억을 지급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경희대는 국제 저명 학술지 논문 1 편당 600 점을 부여한다.

이와 같이 한국어로 논문을 쓰면 ‘0’점을 받고 영어로 논문을 써서 국제 저명 학술지에 실리면 거금의 포상금을 받는 현실에서 한국 대학 교수들이 한국어로 논문을 쓰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국어로 논문을 쓰는 교수는 ‘패배자[looser]’임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만 이런 일이 계속된다면 우리말 한국어는 이 땅에서 학문어로서의 지위를 영원히 잃고 저급한 2류 언어로 전락할 것이 뻔하다. 이것은 예상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나라 대학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대학 개혁이 성공할 경우, 우리나라의 학문 수준은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나 인도, 필리핀과 같은 나라의 위치로 전락할 것이다. 이들 나라의 지식인을 비롯한 지배 계층은 자신들의 모국어로는 학문도 철학도 할 수 없어 영어로 모든 고급 문화 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의 최대 지성이자 사회의 지도 계층인 대학 교수들을 비롯한 한국 학자들이 더 이상 한국어로 논문을 쓰지 않을 때, 한국어의 미래는 절망적이다. 학문과 문학을 창조하지 못하는 언어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이는 지극히 간단한 이치다. ‘청(淸)’을 세운 만주족과 ‘원(元)’을 세게 최대의 제국을 지배했던 몽골족도 한자와 중국어에 문화 주도권을 빼앗기는 바람에 이런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인류 최초의 학문과 사상, 문학을 꽃피웠던 수메르어와 산스크리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사라진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지금의 유럽 문명의 모태인 그리스어와 라틴어는 아직도 서양 여러 나라의 언어에 결정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또 모든 고급문화 생활이 영어로 이루어지게 되면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문맹’에 빠지게 된다. 지금 영어를 문화어로 내세워 한국어를 말살하는 작업이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일반 국민들이 최대의 피해자가 될 것이다. 언어 차별은 인종 차별이다. 우리는 오늘날 우리 땅에서 영어를 사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의해 인종 차별을 받고 있다. 오늘날과 같은 한국어 천대 현상이 계속되는 한, ‘영어를 하는 한국인’과 ‘영어를 못하는 한국인’으로 나뉘어 차별을 받게 될 날도 멀지 않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아무도 나서서 저항하지 않으면 말이다.

***

유 학장의 글을 읽어보신 소감들이 어떠신지요? 참, 절박한데도 그동안 여러분이나 저는 전혀 그 절박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요? ‘말 없는 삶’을 상상해 보셨나요? ‘말을 잃으면 정신을 잃는다’는 격언도 들어서 알고들 계시겠지요? 우리에겐 우리말을 빼앗긴 채 살아본 세월이 있었습니다. 또 우리말을 표기할만한 글자를 갖지 못하고 살아온 긴 세월이 있었지요. 최근 어떤 방송에서 한글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 세종대왕의 삶을 스토리로 하는 드라마가 방영된 바 있습니다. 그 드라마의 내용이 사실인지 허구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적어도 민족사[혹은 민족 정신사]의 방향을 바꾸게 된 세종대왕의 깨달음이나 결단이 어디서 나왔으며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작가 나름의 ‘상상력’이 얼마나 핍진(逼眞)하게 마음에 와 닿는지 우리 모두 공감하지 않았던가요?

독일의 애국자이자 철학자인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를 잘 아실 겁니다. 그의 유명한 글 <독일국민에게 고함>은 언제 읽어도 감동적입니다. ‘독일’ 대신 다른 어느 국가나 민족의 이름을 넣어도 통할만한 보편적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글 가운데 오늘날의 우리 현실과 관련하여 큰 깨달음을 주는 문제가 바로 ‘언어’의 존재와 의미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언어를 매개로 전개되기 때문에 인간은 국어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 언어는 한 민족의 특성을 형성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것, 즉 한국인[피히테가 말한 ‘독일인’을 제가 한국인으로 바꾸었습니다]은 한국어라는 살아 있는 특수한 언어를 통해서만 무한히 한국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 살아 있는 한국어를 말하는 한국인은 ‘신적 본질’을 지향하여 드높여질 수 있다는 것[고양(高揚)될 수 있다는 것] 등이 그가 주장한 민족어의 중요성이지요.

우리나라에도 고금을 통해 우리말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선각자들은 많았습니다만. 그 가운데 ‘한문지상주의(漢文至上主義)’ 시대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를 살다 간 최고의 지성 서포 김만중 선생이 그의 글「서포만필(西浦漫筆)」에서 펼친 다음과 같은 주장은 오늘날에도 금과옥조로 삼을만한 선언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생각[마음]이 입에서 나온 것을 말이라 한다.… 우리나라의 어문(語文)은 우리말을 버리고 다른 나라 말을 배우니, 가령 십분 서로 비슷해 보여도 이는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것일 뿐이다. 그러니 길거리의 나무꾼이나 물 긷는 아낙네들이 서로 깔깔거리고 화답하는 말들이 비록 비루(鄙陋)하다 해도 그 진위(眞僞)를 논한다면 정말 학식이 많은 사대부들의 이른바 시부(詩賦)라는 것과 비할 수 없을 만큼 값지다.”

한문으로 쓴 글만이 글로 인정을 받던 시절에 한문의 대가 서포선생은 이런 말로 ‘자국어’와 ‘자국 글자’의 가치를 설파했습니다. 그가 한문의 대가였으면서도 ‘우리말이나 글이 한문에 비할 바 없이 귀하다’고 한 것은 그 분 스스로 말과 글이 인간의 정신적 산물임을 깨닫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사실 외국어문을 잘 한다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중요한 강점입니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요인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본질은 아닙니다. 그것은 도구나 수단에 불과한 것임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자국어로 사색하고 자국어로 논리를 전개해야 하는 인문학의 경우는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한국 사람이 한국의 인문학 논문을 영어로 써야 한다면, 그것은 한국어로 사유하고 한국어로 쓴 논문[실제 종이 위에 적은 것이든,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든]을 영어로 번역한 데 불과한 것입니다. 독일어문이 언제 그렇게 훌륭한 학문어가 되고 문학어가 되었나요? 오랜 세월에 걸친 독일 사람들의 끈질긴 노력이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말로만 ‘민족자주’를 외칩니다. 일본에게 말과 글을 빼앗겼다가 간신히 찾은 때로부터 지금 몇 년이나 지났나요? 그 혹독한 시련에서 벗어난 지 겨우 60년 남짓 지났을 뿐입니다. 우리의 민족 지사들이 일본의 그런 무자비한 폭압에 맞서 얼마나 가열 찬 투쟁을 벌였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말과 글을 빼앗은 일제시대의 민족적 비극과 저항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영어의 쓰나미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말과 글을 버리고 있습니다. 학자들이 밤을 밝혀가며 우리말로 사유하고 우리 글로 써 내는 논문들을 평가의 대상에도 넣지 않으려 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니, 아예 쓰레기 취급을 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민족을 떠들고 세종대왕을 우러러 본다고 하면서 우리의 말과 글을 ‘우습게’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의 것을 버리고 우리가 어디에 가서 우리의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을까요? 국제 학문시장에 나가 우리 인문학의 연구결과를 영어로 발표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연구 활동의 한 부분일 뿐, 전체이거나 본질은 아닙니다. 요즘 들어 왜 우리 사회는 한사코 일의 본말(本末)을 뒤집으려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철학 없는 정권이 몰고 온 말기적 증상이라 간단히 치부해 버리기엔 무언가 찜찜하고 불안한 구석도 없지 않습니다. 대학에 몸담고 있는 우리가 지금처럼 중심을 잡지 못할 경우 앞으로 민족사의 비극은 언제든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근래 들어 엄습해 옴을 느끼는 것은 저 혼자만의 기우(杞憂)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2012. 1. 10.>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