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들에게 한 마디
-출연자들의 어법을 제대로 모니터링하라-
정치가 어수선하고 사회가 혼란스럽다 보니,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으로 약칭)에 출연하여 궁금증을 풀어주는 각계의 전문가들이 반가울 때가 많다. 어쩌면 그렇게 내 생각과 같은지 신기할 때도 있고, 비판의 언성을 높일 때면 속이 후련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매일 똑같은 얼굴들이 등장하여 별스럽지 않은 말들을 반복한다고 불만인 아내와 종종 채널 다툼을 벌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처럼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점에서 종편 출연 전문가들의 식견과 말솜씨는 탁월하다. 그러나 가끔 귀에 거슬리는 점도 없지 않다. 최근 방송에 출연하는 변호사들이 부쩍 늘었다. 공부를 많이 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한 그들이니만큼 논리적으로는 흠 잡을 데 없다. 그러나 호칭을 비롯하여 몇몇 말투는 몹시 귀에 거슬린다. 그런 실수들을 반복할 때마다 그들에 대한 신뢰감은 저하된다. 예컨대 어떤 여성 변호사는 존대어법을 남발한다. 분명한 범죄인을 언급하면서도 꼬박꼬박 존대어를 붙이는 그의 어투와 어법이 참으로 듣기에 거북하다.(심지어 서술어에까지 존칭어를 남용하는 통에 '과공(過恭)'의 무리를 지나치게 자주 범하곤 한다.) 법정에서 의뢰인인 범죄인을 변호하면서 반복해오던 습관 때문일까. 물론 범죄인에게 대해서라고 경칭을 사용해서 안 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제3의 장소, 객관적 인용의 경우에서까지 범죄인에게 존칭어를 남발해야 하는지, 참으로 거북살스럽다.
또 다른 여자 변호사도 비슷한 경우다. 오늘 방송에서도 그녀는 누군가의 아내 혹은 부인을 언급하면서 ‘아내 분’이라 했고, 남편을 언급하면서 ‘남편 분’이라 했다. ‘분’이란 사람을 높여 부르거나, 높이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리는 의존명사다. ‘저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라거나 ‘국회의원 세 분이 오셨다’ 등은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정확한 어법이다. 그러나 ‘신문에 보도된 바와 같이 김○○ 씨의 아내 분이 그런 행동을 했다’거나 ‘방송에 출연한 이○○ 씨의 남편 분이 그런 말을 했다’고 말한다면 무언가 어색하다. 그냥 아내 혹은 남편이라 해도 무방하나, 굳이 높여줄 요량이라면, ‘부인’이나 ‘부군’이란 말을 쓰는 것이 마땅하다. ‘아내’란 ‘안(內)+해(日)’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남편이 자신의 각시를 존중해서 부르는 뜻이라고 설명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대부분의 국어사전에서 이 말은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로 설명되어 있으니, 객관적 입장에서 언급하는 특정 남성의 각시를 의미할 경우는 그냥 ‘아내’로 호칭하는 것이 옳다. 그래도 굳이 경칭을 써야겠다면, ‘부인’이란 말을 쓰는 것이 ‘아내 분’ 보다는 정확하고 듣기에도 좋다. 사실 요즈음에는 '제 아내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처럼 상대 웃사람에게 자신의 각시를 가리키기 위한 객관적 호칭으로 쓰는 경향이 일반적이라는 점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젊은 남자 변호사 한 사람은 ‘다르다’라고 해야 할 경우에 자꾸만 ‘틀리다/틀린다/틀렸다’고 말한다. 가끔 그가 출연하는 프로를 보곤 하는데, ‘다르다’라고 정확하게 말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그는 평소에도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말하고 있음에 분명한 듯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다르다’라고 써야 할 곳에 시종일관 ‘틀리다/틀린다/틀렸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다르다’를 써야 할 곳에 가끔은 ‘다르다’라고 맞게 말해야, 그가 제대로 알고 있으면서 방송에서만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봐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의 직업이 변호사임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작은 실수가 아니다. 그가 변론을 하면서 ‘다르다’라고 해야 할 때 ‘틀리다/틀린다/틀렸다’라고 한다면, 변론이 의도한 대로 정확히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 말 때문에 소송의 상대편으로부터 되잡힐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 말이 참으로 귀에 거슬리고, 가끔은 걱정스러울 때도 있다.
신문사에는 교열부라는 곳이 있다. 기자들이 써낸 기사를 편집하고 나면(혹은 편집 이전에?) 전문 기자들이 꼼꼼히 읽고 잘못을 고치는 전담부서다. 그러나 방송국에도 그런 부서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모니터링’이라는 작업을 하긴 하는 모양이다. 비록 생방송이라 해도 제대로 모니터링이 된다면, 그런 실수들이 다음 방송에서는 반복되지 않을 것 아닌가. 그 변호사들이 방송에 등장한 지 꽤 오래 된 점으로 미루어, 시청자들의 인기는 높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그런 말투나 말실수는 제대로 교정되지 않고 있다. 방송사가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방송사가 어쩜 그런 말들을 표준어(법)의 하나로 추인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런 것들을 개인적인 언어습관으로 가볍게 생각하여 용인하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방송은 파급력이 신문에 비해 훨씬 크고, 교육적인 영향력 또한 막대하다. 향후 대중들이 ‘다르다’와 ‘틀리다’가 같은 말이라고 받아들인다면, 그건 지금 사회적ㆍ문화적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는 종편들 때문일 것이다. 부디 종편들이 방송 언어의 정확성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