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기도서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6.02.03 대학의 반지성적 문화(1)
  2. 2013.10.09 미국통신 17: 오클라호마의 숨어 있던 별 ‘Guthrie City’ 2
글 - 칼럼/단상2016. 2. 3. 16:06

 

 

지금 한국의 대학들에 만연되고 있는 '반지성적 문화'가 어디 한 두 가지랴?

어느 학교라고 콕 집어 말하고 싶지 않고,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모두 거기서 거기. ‘도낀 개낀’ ‘난형난제’, ‘도토리 키 재기의 대학사회 아니더냐! 한 치 앞서 간들 무어 그리 나을 게 있고, 한 치 뒤쳐졌다고 무어 그리 못할 게 있을까?

 

한 달 전쯤인가서울의 어느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대학원생 하나가 찾아와 자못 흥분된 어조로 내게 말했다.

 

하루는 도서관에 들어가는데, 큰 덤프트럭 두 대가 도서관의 책을 그득하게 때려 싣고학교 밖으로 나가더군요. 궁금해서 직원에게 물어본즉 덤덤한 어조로 보존서고에 있는 도서들을 폐기처분하는 중이라고 하데요.”

 

그래. 제정신을 갖고서야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의 어느 대학에선들 학자로살아갈 수 있겠느냐? ‘집안이 좁으니 세간들 가운데 때가 묻은 것들을 골라 쓰레기장에 버리듯, 버리는 거겠지!’라고 대답하는 내 마음이 심히 불편했다.

 

#그 대학 교수로 있는 친구의 말. 며칠 전 논문을 쓰다가 급한 책이 있어 학교 도서관을 검색하니 보존서고에 소장되어 있더란다. 그러나 지금 정리 중이라 볼 수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 '정리'라는 것이 '폐기물 처리'를 말했고, 미루어 짐작컨대 그 책들은 폐기도서 트럭에 실려 나간 게 분명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제자를 통해 이웃 학교의 도서관에서 다섯 권이나 되는 그 책(영인 자료 본)을 빌려다가 아예 복사제본까지 해버렸단다. 대학생들은 잘 보지 않아 자리만 차지하는 책이니, 도서관 직원들도 버리고 싶었을 것이다만약 그런 (귀한) 책을 폐지로 취급하여버렸다면, 속된 말로 '참 망할 ××들'이라고 그 친구는 크게 흥분했다.

 

#꽤 오래 전이다. 이름뿐이었지만, 도서관의 무슨 위원이라 하여 1년에 한 번 정도 있는 회의에 나간 적이 있었다. 누군가 이제 IT 시대이니, 페이퍼 북은 줄이거나 없애고 e-book 체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지 않다고, 서양의 명문대학들은 미련해서 도서관에 페이퍼 북 채우는 노력을 기울이는 줄 아냐고 역설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하기야 엔지니어들이 대학의 수장이나 도서관의 책임자로 군림하는 시대이니, 그들에게 도서관의 의미를 묻는 것은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 격일 것이다.

 

#내 연구실에는 출판사 사장들이나 영업사원들이 수시로 들른다아직은 제법 책을 사주기 때문일 것이다. 끙끙 무거운 책 짐을 들고 방문한 그들에게 주로 인문학 도서들을 폐기처분하는’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의 만행^^을 말해줄 수가 없다. ‘앞으로 경기가 풀리면 출판시장도 좋아지지 않겠느냐?’는 입에 발린 위로의 말이나 뱉어낼 뿐, 축 쳐진 그들의 어깨를 받쳐 줄 희망적 언질을 건넬 방도가 없다. 내가 아무리 강심장이라 한들 힘들게 만든 책들이 소설책들처럼 잘 읽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처분된다는 말을 그들에게 어찌 해줄 수 있으랴.

 

***

 

내게 미국 대학들의 가장 감명 깊은 공간은 도서관이었다. 교수도 학생도 실제적인 학구 활동은 그곳에서들 펼치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대학자 노교수를 만난 것도 숲처럼 빽빽한 서가들 사이에서였다. 적어도 내가 찾는 사람들은 늘 연구실 아니면 도서관에 있었다. 그런 도서관들에서 멀쩡한 도서들을 폐기하는 꼴을 보지 못했다. 공간이 충분한 점도 그 이유의 하나는 될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수백 년 그들을 지탱해온 지성적 문화 풍토를 누구도 거역하려 들지 않기 때문으로 보였다. 물론 그들에게도 공간의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대학 도서관들에서는 기프트 센터(gift center)’를 마련하고 서고에서 퇴출되는 책들을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학생들이나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대학 도서관 뿐 아니라 지역의 공공도서관들도 마찬가지였다. 정기적으로 폐기 도서들을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다시피하고 있었다. 책을 한 보따리씩 들고 나오며 함박웃음 짓는 그들이 부러웠다. 한없이 부러웠다. , 선진국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학문적 변화주기로 볼 때 인문학과 이공학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실용적 도구학과 정신적 학문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대학의 본질에 대하여 다시 논하고 싶지 않은 것은 이미 이 땅에서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대학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형이하적 도구학 전공자들이 패권을 휘두르고, 나라 전체로도 지도적인 학자들이 모조리 사라진 형국이니, 지금의 대학들은 대학이 아니다. 대통령이 대학을 알 리 없고, 교육부 장관은 정권의 입맛에 맞춰 우왕좌왕하다가 정치판으로 복귀하면 그만이며, 교육 관료들은 잠시잠시 그런 장관의 손짓에 맞춰 춤추는 것으로 소임을 다한다고 생각하는 나라, ‘해외 유학 동안 열등생으로 지내다가 복귀하여 지배자 행세하는’(김종영, <<지배받는 지배자-미국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돌베개, 2015, 참조.) ‘지적 사기꾼들’(어떤 인사의 말 인용)이 학문 권력을 독점하는 나라, 정치권과 학계를 부지런히 오가며 곡학아세(曲學阿世)해도 대단한 학자로 대접받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하기야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면, 페이퍼 북 없이도 논문 한 편을 써내는 날이 조만간 올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인사가 내 주변에 있으니, 다시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으랴!ㅠㅠ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John M. Olin Library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John M. Olin Library 서가

 

 


세인트루이스 소재 워싱턴대학교(Washington University, Saint Louis)의 John M. Olin Library 서가

 

 


미국 스틸워터(Stillwater) 시립도서관

 

 


스틸워터 시립도서관에서 폐기도서들을 싼 값으로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모습

 

 


오클라호마주립대학(OSU)의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

 

 


오클라호마주립대학(OSU) '에드몬 로우 라이브러리(Edmon Low Library)'의 서가

 

 


오클라호마주 거쓰리시티(Guthrie City)의 카네기 도서관
(오클라호마 주에서 가장 먼저 세워졌음)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10. 9. 12:47

 

오클라호마의 숨어 있던 별 ‘Guthrie City’

 

 

 

오클라호마 시티로부터 35번 하이웨이를 타고 20~30분을 달리자 길가에 ‘Oklahoma Territorial Museum[오클라호마 지역 박물관]’이란 입간판이 서 있었다. ‘territorial’이란 이름에 관심이 갔다. 특수한 분야를 표방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박물관이란 시간과 지역을 초월하는 공간인지라, ‘territorial’을 강조한 그 이름이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이다.


Oklahoma Territorial Museum 전경


오클라호마 주 인디언 분포도

 

105일 토요일. 맘먹고 기억 속에 각인된 그곳엘 갔다. 거쓰리(Guthrie) 인터체인지로 진입하니 겉보기에 한적한 시골이었다. 다운타운이라 할 만 한 거리의 주차 공간들은 텅텅 비어 있었으나 도시 곳곳에 서려 있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았다. 이곳이 바로 오클라호마의 첫 주도[州都, Capital]였다. 인근의 오클라호마 시티에 주도의 지위를 넘겨 준 뒤 와신상담(臥薪嘗膽)해 온 듯하지만, 한 번 지나간 역사의 물결을 되돌리기란 불가능함을 그들인들 모를 리 없을 터. 힘들여 보존하고 있는 영화의 옛 자취들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주 간선도로를 따라 100년 넘는 건물들이 즐비하고, 거리에는 승객들을 가득 실은 당시 모양의 버스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옛날 모습의 트롤리 버스
 

잠시 걷다 보니 하얀 천막들이 우리의 길을 막았다. ‘Guthrie Escape’란 명칭의 가을 축제였다. ‘거쓰리로의 탈출쯤으로 번역될 수 있을까. 큰 도로 위에 설치된 각각의 천막들에는 각종 미술품, 음식, 와인, 의상, 도자기, 공예품 등이 그득그득 전시되어 있고, 천막 거리를 벗어난 곳의 가설무대에서는 그룹 싱어들과 악사들이 각국의 민속음악들을 공연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100년이 훨씬 넘는 건물들이 우뚝우뚝 서서 축제의 현장을 굽어보고 있고, 사람들은 그 사이를 냇물처럼 흐르고 있는 시간의 여울에서 물고기가 되어 유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시간이 각인된 그 자리에서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 축제의 힘임을 비로소 느껴본 우리였다.


축제 공연장 앞에서 만난 가수들


거리의 오래된 악기점


축제장 도자기 부스에서 만난 아마추어 도예가


축제장 장식물 부스에서


거쓰리 축제 포스터


축제장 공연무대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부터 두 개의 네거리를 지나자 박물관이 서 있었다. 건물은 그럴 듯 했으나, 관람객은 우리 둘 뿐이었고, 들어가 보니 빈약한 컬렉션 또한 우리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주로 개척시대 이 지역의 생활사 자료들이거나 복원된 것들이 대부분으로, 1, 2층에 나누어 진열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미 오클라호마 시티의 카우보이 박물관과 털사 시의 길크리스 박물관을 본 우리의 안목을 만족시키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나 박물관과 함께 하고 있는 카네기 도서관은 오클라호마 주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것으로 당시 소장하고 있던 책들과 열람실이 그대로 보존되어 이 도시의 역사적 연원과 문화적 깊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박물관 소장품(집안 모습)


페인카운티의 창설자 페인 기념 페넌트


박물관 소장 가구들


박물관에 전시된 옛날 버스


인디언 체이옌족 추장 울프


카네기 도서관의 모습

박물관에서 나와 중앙의 대로를 타고 끝까지 가자 큰 건물의 '스코틀랜드 프리메이슨 사원(Scottish Rite of Freemasonry)'이 서 있었다. 기독교와 계통을 달리 하는 광신도들의 비밀 결사로서 이미 200~300 년 전부터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백인사회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민간조직이 바로 이것이다. 루스벨트, 처칠 등 세계의 지도급 인사들이 많이 소속되어 있었지만, 그것은 이미 십자군 전쟁 때의 성당 기사단에서 연원되었을 만큼 역사가 길다.


십자군 전쟁 뒤 스코틀랜드로 도피하여 석공으로 변신한 기사들은 비밀 결사를 만들어 유지하며 수백 년을 지탱했고, 그로부터 약 400년이 지난 1717, 흩어져 있던 지부들이 규합하여 프리메이슨의 공식명칭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프리메이슨의 사원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잠겨 있는 사원의 주위를 뱅뱅 돌면서 비밀스런 내부를 보고자 했으나 문은 굳게 잠겨 나그네의 출입을 완강히 막는 것이었다.

프리메이슨을 떠나 클리블랜드가에 위치한 레스토랑 ‘EAT’를 찾았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이 집의 돼지 갈비 바비큐와 맥주 한 잔은 나그네의 출출한 배를 채우기에 충분했고, 모여드는 사람들의 친절한 표정과 응대가 이 지역의 분위기를 말해주고도 남았다.


늦은 점심을 때운 옛날 레스토랑 EAT


레스토랑 EAT 캐시어의 상큼한 미소


레스토랑 벽에 붙어 있는 옛날 상표

 

식사 후 커피 마실 만한 집을 찾다가 들른 곳이 바로 빅토리안 티룸(Victorian Tea Room). 레스토랑이 주업인 그 집에서 차 한 잔만 마시기가 미안해 쭈뼛거리는 우리를 호화롭게 세팅된 자리에 앉힌 다음 여주인 셰릴(Cheryl)은 맛있는 티와 커피를 내왔다. 차를 마시면서 여주인과 우리는 이 도시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시를 세운 인물 거쓰리의 이야기, 거쓰리 시의 역사와 문화, 조상들과 자신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 등을 자분자분 얘기해준 그녀는 우리가 미국에 도착한 이후 대학 밖에서 만난 첫 지성인이었다.


빅토리아 다방에서 차를 마시며


빅토리아 다방의 주인 Cheryl씨와 함께

 

그 뿐 아니었다. 한참 만에 일어나 나가면서 찻값을 지불하려 하자 그녀는 돈을 받지 않으려 했다. 미국이 어딘가? 음식 값을 내고도 팁까지 얹어 줘야 하는 나라다. 그런데 우리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난 그녀가 찻값을 받지 않겠다니! 오클라호마의 경건함과 친절함에 이미 감동받은 바 있는 우리는 거쓰리에 와서도 대접받는 기분을 가질 수 있었다. 자본주의의 천국 미국에서 공짜 커피를 마시고, 미국 친구까지 만들게 되었으니, 이만 하면 몇 배 남는 장사를 한 셈이었다. 즐거운 기분으로 거쓰리의 추억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