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2.04.04 국회의원 후보 김모씨의 '욕설난장'
  2. 2008.02.27 참회의 글
글 - 칼럼/단상2012. 4. 4. 15:34

국회의원 후보 김모씨의 ‘욕설 난장’

                                                                                                                                                               백규


국어선생으로서 낯을 들지 못하는 나날이다. 그간 어린 영혼들에게 교과서만 읽혔을 뿐 ‘정확하게 말하는 법’ ‘아름답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지 못한 점을 통렬히 반성한다. 이 땅에서 우리말과 글을 팔아 밥을 먹고 있지만, ‘지저분하고 천한 말들의 향연장’으로 전락한 우리네 삶터를 목도하면서 비통한 마음을 금할 길 없는 나날이다.
  최근엔 더욱 기가 질리는 광경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선량(選良)[즉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나선 김모씨. ‘몸집만 어른’인 그로부터 우리 사회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고 들어서도 안 될’ 최악의 언어테러를 당하고 만 것이다.
그는 누구인가. 나이로 쳐도 불혹인 40이 멀지 않았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했으며, 모 대학 교수까지 역임했으니, 그를 보고 ‘철이 없다’는 표현을 갖다 댈 수는 없으리라. 그 뿐인가. 아무나 명함을 내밀 수 없는 정당에서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까지 받은 몸이다. 선량이 되어 민의(民意)를 대변하겠노라고,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 이 나라를 바로잡아 보겠노라고 대단한 포부를 밝힌 ‘대단한 인사’가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그는 입만 열면 하수구나 변기에서 풍기는 악취보다 더 구역질 나는 욕설들을 내뱉을 수 있을까. 그가 속한 그룹을 열렬히 지지하는 어떤 매체는 아예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그 매체와 비슷한 성향이면서도 얼마간 양식이 살아 있는 다른 언론들까지 그의 ‘지저분한 언사’를 대서특필할 정도로 그의 욕설은 우리 사회에 충격적이었다.
***
얼마 전, 길 가던 중 초등학생들 곁을 지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이 주고받는 말들의 대략 90%가 욕이었다. 그들은 욕설을 그야말로 숨 쉬듯 내뱉었다. 그 욕설의 대부분은 성(性)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들 대부분은 그런 욕설들이 진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그 초딩들’의 욕은 ‘나꼼수’나 유튜브를 통해 확인한 ‘그 어른들’의 욕에 비해 애교스럽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접한 김모씨의 욕설은 구역질이 나서 끝까지 들을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초등학생들과 김모씨의 언사가 연결되면서 나는 김모씨 같은 어른들의 말, SNS 등을 통해 여과 없이 중계되는 그 욕설들이 바로 우리 시대 아이들의 ‘언어 교과서’임을 알게 되었다. 나 같이 고지식한 국어 선생들의 입장에선 그들 말대로 우리들과 ‘쨉이 되지 않는’ ‘살아있는 국어선생들’이 바로 ‘김모씨들’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한편으론 고마운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사실 요즘은 초등학생에서 어른들까지 욕이 일상화 되어 가고 있다 한다. ‘상아탑에 숨어 살아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 험한 욕 한 번 듣지 않고 살아온 그대는 세상물정 모르는 말 하지 말라'는 면박을 친구로부터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요즘의 세태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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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김모씨는 왜 그런 욕설을 내뱉는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나꼼수’는 왜 욕을 일상어처럼 사용하는 것일까. 그들의 입장에서 그것을 ‘아주 잘 못 된’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들의 내면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오물’을 뱉어냄으로써 후련해지는, 일종의 자기중심적 ‘카타르시스’의 효과를 노린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 모두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는 전제 아래, 그런 ‘오물 치우기’를 그들 스스로 감당하겠다는 ‘소영웅주의’의 발로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길게 따질 필요도 없이 김모씨 역시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리고 있는 가장일 텐데,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그런 말들을 아내나 아이들에게 들려 줄 수 있을까. 자신의 아이들이 밥상머리에서 자신이 ‘나꼼수’에서 내뱉는 그런 말들을 내뱉는다면[왜? 아빠가 이미 대중을 상대로 내뱉었으니까!], 그는 아버지로서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으며, 또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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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만 돌아오면 특히 ‘말’이 험해진다. 사실 김모씨가 뱉은 욕설은 ‘말’의 범주에 속하지도 못한다. 적어도 말이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욕설들에 대체 무슨 메시지를 담을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제대로 된 정치의 역사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들은 ‘말 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학교에서도 기껏 교과서만 읽었지, ‘제대로 된 화술’을 가르친 적이 없다. 그래서 정치인들만 모아 놓으면 육두문자와 폭력이 난무하기 마련이다. 지난 선거에도 나는 정치인들의 ‘담론 수준’을 비판하는 글들을 여러 편 쓴 바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저급해지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한다. 예의를 갖춘 언사와 멋진 논리만이 상대를 굴복시키는 ‘최종병기’임을 알만한 인사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게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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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과 혀[즉 말]는 근심의 문이며, 몸을 죽게 하는[망치는] 도끼’라는 것이 <<명심보감>>의 금언이다. 철없는 아이들이 쳐주는 박수에 도취되어, 보기에도 딱한 ‘소영웅주의’에 도취되어, 아이들마저 사용하길 꺼려하는 욕설들을 마구 내뱉은 김모씨. 이제 그 말들이 가시가 되어 자신의 앞길을 막게 되었으니 ‘남을 이롭게 하는 말은 따습기가 솜과 같고, 남을 해치는 말은 날카롭기가 가시와 같으니 한 마디 말이라도 무겁기가 천금과 같고, 한 마디라도 남을 해치면 아프기가 칼로 베는 것과 같다’는 <<명심보감>>의 경구를 재삼 명심하면서, 깊은 산속에 들어가거나 가까운 교회당에라도 가서 꽤 긴 참회의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2012. 4. 4.>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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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08. 2. 27. 14:16
 

참회의 글


                                                    조규익


불교경전에 ‘개구즉착(開口卽錯)’ 또는 ‘미개구착(未開口錯)’이란 말이 있습니다.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오묘함을 깨닫기 위해 반드시 되씹어 보아야 하는 경구이지요. 스스로의 노력으로 견성(見性)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려 하면 ‘입을 열자마자 그르친’격이거나 ‘입을 열기도 전에 그르친’ 격이라는 말입니다. 예로부터 불교의 선사(禪師)들이 흔히들 써온 이 말은 진리를 깨닫는데 말이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작은 일(?)에 큰 화를 낸 제가 정작 큰 일을 만나자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입을 열자마자 그르친 일'과 같은 격이 아니겠는지요? 그 당시 제 가시 돋친 말의 대상이 되었던 분에게 비로소 미안한 마음을 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아침 저는 ‘개구즉착’이란 성어에 빗대어 제 그러한 실수를 참회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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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쯤 전인가요? 저는 교육부총리로 임명된 김 아무개 교수에게 직격탄을 날린 적이 있습니다.(*그 글을 아래쪽에 첨부합니다)  당시 논문발표와 관련하여 그 분이 저질렀다고 보도된 일들이나 그에 관한 그 분의 해명이 너무나 궁하고 불쾌했던 저로서는 ‘욱’하는 성미를 참을 수 없었고, 급기야 글 한 쪽을 써서 일간지에 실었던 것이지요.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 글을 읽고 통쾌해 했다면, 어쩌면 그것은 그 분이 당시 인기 없던 대통령의 측근이었다는 점 때문이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그 분에게 미안하게 생각하면서도, 함께 학문의 세계에 몸담고 있다는 외람된 사명감(?)에 저지른 일이었지요.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서고 장관에 임명된 이른바 ‘폴리페서(polifessor)’들의 ‘추한 모습’을 목격하며 부끄러움과 회한으로 참담함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 분들의 행위에 비하면, 그 시절 그 분의 잘못이야말로 참으로 ‘애교스러운 실수’였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저를 몹시도 괴롭히는 요즈음입니다. 그 분의 잘못에 대하여 그런 글을 썼다면, 지금 문제된 분들에 대해서는 과연 어떤 글을 써야 형평이 맞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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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의 글을 표절하고, 한 논문을 십여 곳에 중복 게재했으며, 십여 년 가까이 제대로 된 논문 한 편 발표하지 못했다면, 학자로서 더 이상 무슨 말을 보탤 수 있겠는지요? 그것뿐인가요?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부동산 등에 투기해온 그들의 행위를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교수들은 긴 방학을 즐길 수 있어서, 학문 하는 여가에 전국을 누비며 땅 투기에 전념할 수 있었노라고 ‘당당하게’ 해명이라도 해야 하나요? 연구가 잘 되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부동산 투기라도 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변명이라도 해야 하나요? 연구실에서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고뇌하는 제 주변의 교수들은 그럼 어떤 사람들일까요? 왜 새 정부에는 그런 사람들 뿐인가요? 이토록 그들에겐 ‘이런 사람도 있다’고 자신 있게 내세울 만한, ‘단 한 사람’의 표본적 인물도 없는 걸까요?

***

새 정부에 참여하신 문제 교수님들! 당장 거기서 내려오세요. 거긴 여러분께 분에 넘치는 자리입니다. 제가 강요할 사안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동안 투기로 벌어들인 부동산을 처분하여 제자들을 위한 장학금으로라도 내놓으시는 게 어떨지요? 그런 다음 그간 소홀히 했던 학문 연구에 매진하세요. 그렇게 하는 길만이 그나마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참담한 마음으로 제 실수를 참회하노니, 강호 제현께서는 부디 제 허물을 너그러이 용서하여 주소서. 

 2008. 2. 27.


 백규 드림



*첨부(조선일보 2006년 7월 28일 오피니언 칼럼)


교육부총리, 안 되겠소

                                                         

신임 교육부 장관 관련 사건들과 이에 대한 당사자의 해명이 갈수록 가관이다. 해명은 의혹만 증폭시켜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규모로 번지고 있다. 이것이 이른바 ‘둔사(遁辭)’의 덫이란 것. ‘둔사 즉 도피하는 말은 논리가 궁하고 결국 정사(政事)에 해를 끼친다’는 맹자의 말씀은 이 경우에 딱 들어맞는다. 장관 하마평이 나돌면서 자녀의 외고 편입에 관한 여러 말들이 나돌았다. 그러나 교육문제에 관해 전문가 뺨칠 정도의 소양을 갖고 있는 국민들의 감정을 누그러뜨릴 만큼 그의 답변은 시원치 못했다. 그러다가 제자논문 표절 사건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우리의 지식사회를 감염시킨 표절사건들의 중심에 그가 서 있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냈고, 그 사건의 노출로 학계는 ‘카운터펀치’를 맞은 셈이다. 그 문제에 대해서도 당사자는 ‘전혀 문제 없다’는 반응을 보임으로써 학계와 국민들은 할 말을 잊었다. 곧바로 ‘BK21 논문 중복 게재 사건’이 뒤를 이었다. 이번에는 그도 어쩔 수 없었던지 사과를 했다. 그러나 ‘실무자의 착오’라는 전제를 달아둠으로써 그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다. 표절사건만 해도 그렇다. 제자인 신모씨의 논문이 통과된 것보다 자신의 논문 발표가 앞섰으니, 자신은 표절의 주체가 아니라는 것이 장관의 논리다. 제자에게 설문조사나 데이터 작성을 시킨 일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해괴한 것은 같은 데이터로 제자는 학위논문을, 자신은 일반논문을 작성했는데, 제목도 논조도 결론도 유사하다는 점이다. 시기를 따지면 장관의 논문 발표보다 학위논문 통과가 두어 달 뒤진다. 그러니 자신은 표절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모씨는 장관의 논문이 발간되고 나서야 학위논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는 것인가. 백보를 양보하여 그런 논리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의문은 남는다. 박사학위논문에는 최소한 서너 번의 심사과정이 있다. 심사위원인 자신의 논문이 도용당했음에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인터넷 만능시대, 표절의 전성시대, ‘표절 여부를 가려내는 것이 학위논문 심사의 핵심’이라는 교수들의 한탄을 접하기가 어렵지 않은 요즈음이다. 하물며 직전에 발표한 자신의 논문이 제자의 학위논문에 도용되었는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장관이 한 마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이게 어찌 정상이란 말인가. BK21 논문사건은 표절보다 더 큰 문제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를 위한 고등인력 양성’이란 기치 아래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여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다. 쓴 잔을 마신 필자를 포함하여 전국의 많은 교수들이 몇 개월간 날밤을 새워가며 BK21에 참여하기 위해 애썼으나 선정된 인원은 소수다. ‘피 같은 국민의 세금’으로 세계 수준의 대학을 만들어 보겠노라는 국가의 야심찬 프로젝트에 한때 고무되었던 우리다. 장관은 논문을 중복 투고했으면서도 연구비는 그대로 챙겼으리라. 그렇게 귀한 국가예산을 ‘눈먼 돈’ 쯤으로 여겼단 말인가. 그런 입장으로  어떻게 ‘표절하지 말라, 연구비 집행을 투명하게 하라, 학위논문의 부실을 막기 위해 철저히 심사하라, 자녀들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편법을 쓰지 말라’는 영(令)을 내릴 수 있는가. 장관직 수행에 행정능력이나 기술이 중시된다지만, ‘교육인적자원부’만은 달라야 한다. 국가의 만년 대계를 책임 진 곳이 바로 교육부다. 행정능력을 바탕으로 인격이나 학자로서의 품위에 시비가 따르지 않을만한 인물을 발탁해야 하고, 스스로 ‘적재(適材)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고사해야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강호에 묻건대, 과연 지금이 불거진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장관직을 고수할 상황이란 말인가.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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