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칼럼/단상2020. 5. 24. 13:59

 

 

제이슨 가족 사진[왼쪽부터 제이슨, 그레이슨, 놀만, 제이콥, 에벌린]
밝은 표정으로 놀고 있는 그레이슨과 에벌린

 

  노마드(nomadism), 노마디즘(nomadism)이란 말이 유행이다. 각각 유목민(遊牧民), 유목(민)주의[遊牧(民)主義 혹은 유목민 정신]로 번역되겠지만, 그 내포는 간단치 않다. 우리 같은 농경 정착민으로서는 쉽지 않은 생활양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유목민이다. 풀이 우거진 곳을 찾아 천막을 세우고 소떼나 양떼를 기르는 사람들. 그러다가 동물들이 얼추 풀을 뜯어먹었다 싶으면 냉큼 천막을 말아 수레나 말 등에 싣고 또 다른 풀밭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 그들은 한 곳에서 진득하게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누구인가. 철학자 들뢰즈와 가타리는 영토화와 나의 발견에 바탕을 둔 탈주의 철학을 고안했지만, 그 근원적 사고가 노마드 혹은 노마디즘에 있음은 명백하다. 특정한 가치나 삶의 방식이란 굴레일 수 있으니, 그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 가고자 하는 것. 그것이 노마디즘이다. 대학 재직 40년 동안 많은 적지 않은 구미인(歐美人)들을 만났고, 두 번에 걸친 미국 체류 기간에도 그들을 만나며 그들의 내면에 남아있는 노마디즘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것이 그들 정체성의 큰 부분이었다.

 

   2013년 풀브라이트 학자(Fulbright Scholar)로 미국의 OSU(오클라호마 주립대학)에 체류하고 있던 나는 여러 명의 패컬티 멤버들과 교유했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사람이 뛰어난 영어 교육자 제이슨 컬프(Jason Culp)였다. 이미 이 블로그에 그에 관한 글과 사진들을 남긴 바 있는데, 그 글에서 나는 그의 영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 바 있다.

 

 

  그와 만나는 과정에서 그가 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외국어 사용자들을 위한 영어 교육]을 전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의 영어가 매우 명료하면서도 정확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라고 모두 표준 한국말을 ‘명료하고 정확하게’ 구사하지는 못하듯, 미국 사람들이라고 모두 표준 영어를 구사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영어만으로 분류할 경우 미국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대충 네 부류로 나뉘었다. 짤막하면서도 느릿느릿한 영어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어른들, 진한 사투리 억양으로 상대방을 갸웃거리게 만드는 사람들, 입에 오토바이 엔진을 단 듯 숨넘어가게 지껄여대는 학생들과 젊은이들, 제이슨처럼 교과서적인 영어로 호감을 주는 소수의 지식인들. 가끔 방송에서 목격하는 오바마 대통령, 전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현 백악관 대변인과 미 국무성 대변인 등의 대중 스피치를 통해 미국 지도자들이나 상류층의 덕목 가운데 ‘언어의 명료성과 모범성’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제이슨에게서 그런 스피치의 전형을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이 글을 내 여행기[<<인디언과 바람의 고향 오클라호마에서 보물찾기>>]에 다시 실었지만, 그것으로 그[그의 가족]와의 관계가 끝나지 않은 것은 잊을만하면 도란도란 전해지는 그의 말이 귀를 간질이는 초원의 산들바람처럼 나를 기분 좋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넓은 초원의 한 귀퉁이에 오두막을 짓고 사는데, 이곳을 찾아와 잠시 양떼에게 풀을 먹이며 쉬다가 안녕!’을 고하고 떠난 그가 몇 년 후 늘어난 가족들과 양떼들을 몰고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이곳을 지나다가 내게 또 안녕!’을 고하는 것 같지 않은가. 내가 귀국하고 한 해 뒤에 그는 내게 연락을 해왔다. 한국의 대학에서 잠시 일할 만한 자리가 없겠느냐는 부탁이었다. 통탄할 만큼 좁은 나의 교제범위 때문일까. 시원한 대답을 못해주었다. 미안한 마음을 문면에 담아 이메일을 보냈으나,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가 6개월쯤 후에 독일로부터 이메일이 날아왔다. 몇 년간 그곳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지내게 되었노라는 메시지와 독일에서 낳은 예쁜 딸 에벌린(Everlyn)도 함께 한 가족사진을 첨부하여. 나는 반색을 하며 반가움의 답신을 보내면서 두어 차례 이메일들이 오가다가 다시 한동안 끊기고 말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덮치면서 초강대국 미국도 힘을 쓰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면서 NYU의 교수로 있는 큰 아이[조경현]와 제이슨의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그런 내 생각이 전해진 것일까. 엊그제 그의 이메일이 거짓말처럼도착했다. 독일에서 임기를 마치고 작년 8월 미국에 귀환 후 잘 지내고 있다는 것, 이번 여름에 이스라엘에 일자리를 잡아놓고 비자를 기다린다는 것, 정년 후 살 집을 사진으로라도 보고 싶다는 것 등을 적은 다음, 새로 태어난 아들 제이콥(Jacob)이 포함된 가족사진을 첨부하여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우리말로 번역한 그 이메일은 다음과 같다.

 

 

안녕하세요, 조 박사님!

 

나는 당신과 임미숙 씨가 요즘 같은 어려운 시절에 잘 지내시기를 희망합니다. 2020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일어나게 될지 상상할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금년 여름 언제쯤 이스라엘로 이사하기 위해 한 번 더 짐들을 꾸리고 있는 우리는 당신에게 이메일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스틸워터를 떠난 후 우리에게 매우 친절하게 보내 준 당신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레이슨은 한국에서 출판된 책에 실린 우리 가족사진을 보며 대단히 감격해 했습니다. 그는 이제 우리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퍼진 후에도 당신의 건강이 좋다는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흘러간 시간과 거리가 우리를 떼어 놓았어도, 당신과 임미숙 씨는 여전히 우리의 친애하는 친구들입니다. 당신을 방문하여 당신의 고향을 보기 위해 한국을 여행하는 것은 아직도 내 꿈입니다. 정년 후 살 집을 완성하셨어요? 낙원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갖고 있는 사진 좀 한 장 보내 주세요.

 

우리 가족사진 두어 장 첨부합니다. 우리는 2019년 8월 이래 오클라호마에 돌아와 있어요. 우리는 아마도 2020년 6월에 이스라엘로 이사하게 될 겁니다. 그러나 아직 정부로부터 여권들을 받지 못했어요. 그들은 지금 국제 여행을 제한하기 위한 여권의 갱신을 진행하고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우리가 다시 이동할 수 있을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동안 우리의 삶은  "보류 중"입니다. 그러나 신에게 감사하게도, 우리는 잘 지내고 있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을 갖고 있지요.

 

당신의 친구 제이슨 드림

 

 

 

   아, 그는 아직도 노마드의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양떼에게 뜯길 풀만 있다면, 세상 어디에 가도 살아갈 수 있는 인간상이 바로 노마드 아닌가. 우리는 어찌하여 특정한 아니 알량한 이념이나 가치 혹은 삶의 방식에 구애 받으며 이 비좁은 한반도 한 구석에 박아놓은 뿌리를 뽑아내지 못하는가. 끊임없이 낯선 곳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사람들을 이웃으로 만나고 새로운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가.

 

   수백 년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을 시멘트 철근 집을 아름다운 에코팜에 뚜드려 지으면서걸림 없는 노마드 친구의 이메일을 곱씹어 보노라니, 노마디즘을 찬양하고 노마드의 삶을 동경하면서도 그 반대방향으로 치달아가는 내 몰골이 영 마뜩치 않다. 어디선가 맛나고 멋진 풀들이 자라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 나는 어떻게 천막을 말아 짊어진 채 내 소떼를 몰고 그곳으로 달려갈 것인가. 걱정 또 걱정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4. 4. 28. 10:37

 

 

 


제이슨 가족이 살고 있는 대학 아파트[Morrison]

 

 


제이슨 부부와 함께 저녁 식사 중에[Freddy Paul's에서]

 

 


식사 후 제이슨 가족과 함께

 

 


제이슨 집을 방문하여 그의 아들 그레이선[Grayson]과 함깨


 

 

 

탁월한 젊은 영어 교육자, 제이슨 컬프(Jason Culp)

 

 

 

2013827일 저녁. 이미 어둑발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 일곱 시쯤 숙소인 대학 아파트 윌리엄스[Williams]’에 도착했다. 평화로운 초원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그림 같은 아파트였다. 아파트 관리소 FRC[Family Resources Center]의 사무실을 찾아가니 훤칠한 훈남한 사람이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했다. 나중에 그가 우리 아파트의 위층에 사는 OSU 대학원생 제이슨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와 함께 그 아파트에 살며 FRC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하고 있었다.

 

제이슨과의 인터뷰



 

우리는 종종 그를 만났다. 아파트에 문제가 생겨도, 우편물이나 택배 수령에 문제가 있어도, 우리는 그를 불렀다. 학교에서도 내 연구실에서도 나는 그와 자주 만나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실제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게 미국인들인데,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동등한 입장에서 교제할 수 있는 상대가 미국인들이기도 했다. 그와 친구로 만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문화와 한국인들의 삶을 말해주었고, 그는 그간 우리가 모르고 있던 남부 미국인들의 삶과 의식(意識)을 설명해주었다.

 

그와 만나는 과정에서 그가 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외국어 사용자들을 위한 영어 교육]을 전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의 영어가 매우 명료하면서도 정확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이라고 모두 표준 한국말을 명료하고 정확하게구사하지는 못하듯, 미국 사람들이라고 모두 표준 영어를 구사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영어만으로 분류할 경우 미국에서 만난 미국인들은 대충 네 부류로 나뉘었다. 짤막하면서도 느릿느릿한 영어로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는 어른들, 진한 사투리 억양으로 상대방을 갸웃거리게 만드는 사람들, 입에 오토바이 엔진을 단 듯 숨넘어가게 지껄여대는 학생들과 젊은이들, 제이슨처럼 교과서적인 영어로 호감을 주는 소수의 지식인들. 가끔 방송에서 목격하는 오바마 대통령, 전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현 백악관 대변인과 미 국무성 대변인 등의 대중 스피치를 통해 미국 지도자들이나 상류층의 덕목 가운데 언어의 명료성과 모범성이 큰 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제이슨에게서 그런 스피치의 전형을 확인하게 된 것이었다.

 

지금 한국에는 많은 원어민 영어교사들이 활약하고 있다. 모두 훌륭한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지만, 각기 다른 그들의 특징과 개성을 뛰어 넘는 표준성과 모범성을 제이슨에게서 발견했다. 흡사 입술과 내면에 부드러운 모터(motor)를 달아놓은 듯, 그에게선 늘 명료하고 기분 좋은 영어가 솔솔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의 대학이나 공공기관에서 한국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늘 갖게 하는 그였다. 그 역시 한국 같은 나라에 나가 영어를 가르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

 

제이슨 부부와 식사를 함께 한다거나 차를 마시면서, 풋볼 경기를 관람하면서, 새로 태어난 아기를 축하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사이에 개재하는 문화의 차이를 초월하여 상통하는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름을 넘어 같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하는 힘은 바로 언어였다. 대화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평평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소통의 힘이었다. 우리는 그와 그의 가족을 만나면서 미국 체류 기간 내내 행복했다. 타향에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가 이웃에 살고 있는 것처럼 든든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비록 우리에 비해 나이는 어렸지만, 지구촌에 대하여 그가 갖고 있던 식견만은 어느 기성세대보다 월등했다. 그리고 글로벌화 된 세계에서 좀 더 멋진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게 해준 그였다. 조만간 한국에서 그를 만날 수 있게 되길 기대하면서, 그들과의 행복했던 몇 개월을 회상해보는 요즈음이다.

 

 

 

Posted by kicho
글 - 칼럼/단상2013. 10. 21. 10:09

카우보이들, 풋볼의 진수를 보여주다!

 

언제부턴가 꼭 한 번은 상암벌에 나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거기서 붉은 악마들과 함께 함성을 지르며 내 안에 잠자고 있는 야성(野性)’을 흔들어 깨우고 싶다는 객쩍은 욕망을 슬그머니 가져본 적이 있었다. 친구들과 몰래몰래 가는 눈치를 보이곤 하던 작은 녀석은 끝내 함께 가자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 하루, 이틀, 사흘... 그렇게 내 청춘은 저물고 말았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몇몇 곳에 폐허로 남아있는 기원전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혹은 극장]에 혼자 오도마니 앉아서 흥분에 달아오른 관중들의 함성을 상상하곤 했다. 우리는 지금 풋볼[American Football]의 나라 미국, 그 중에서도 풋볼을 중심으로 아름답게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는 이곳 OSU의 스틸워터에 와 있다. 한국에 있을 때 미국 하면 야구를 떠올렸지만, 이곳에 와서 느껴보니 야구나 축구는 간 곳 없고, 풋볼이 이었다. 이 대학에는 큰 규모의 각종 경기장들이 여럿이고, 체육관 시설도 입이 벌어질 정도다. 그러나 규모나 인기도에서 풋볼을 능가할 종목이 없고, 풋볼 경기장인 분 피켄스 스테이디엄(Boone Pickens Stadium)을 능가할 경기장도 없는 듯하다.

 


멀리서 내려다 본 Boone Pickens Stadium



 Boone Pickens Stadium의 앞면

                                                

우리가 이곳에 도착하면서 게임데이(game day)’라는 생소한 말을 종종 들었고, 그 때마다 이 한적한 스틸워터에는 사람들이 북적대고 외부의 차들이 모여들곤 했다. 큰 주차장에는 각지에서 몰려든 RV(Recreational Vehicle) 차량들로 가득하고, 거리 곳곳을 차단하여 차량통행을 막기도 했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풋볼게임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언젠가 한 번은 직접 경기장에 가서 구경하리라 마음먹게 되었다.

 


게임데이 전날이면 이렇게 대부분의주차장에 RV들이 들어찬다


게임데이에 사람들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경기장까지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그러나 티켓을 구하기 어려웠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거의 1년 전부터 대부분의 티켓이 매진된다는 것이었다. 가끔씩 온라인 사이트에 엄청 비싼 표들이 등장하거나 경기 당일 암표 등을 팔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손에 넣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에게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왔다. OSU 대학원에서 테솔[Tesol; 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을 전공하는 이웃집의 제이슨[Jason Culp]이 풋볼 티켓 두 장을 건네준 것이다. 아내와 장모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구경을 못 가는 바람에 남게 된 두 장의 티켓을 우리에게 선물로 건넨 것이었다.

 

미국 도착 거의 두 달 만에 드디어 미국 Big 12 경기연맹[Oklahoma State, Oklahoma, Texas Tech., Bayolr, Texas, TCU, West Virginia, Kansas, Kansas State, Iowa State] 에서 가장 오래되고 멋진 풋볼 경기장이자 미국 전역의 캠퍼스 안에 있는 것으로는 최고 경기장들 가운데 하나인 OSU의 분 피켄스 스테이디엄에서 난생 처음으로 풋볼 빅게임을 즐기게 된 것이다 

 

오전 1040분 입장. 장관이었다. 경기는 11시부터 시작된다는데 관객 6만 명을 수용한다는 스탠드는 온통 빈틈없는 오렌지 물결로 이미 꽉 들어차 있었다. 학교의 상징색인 오렌지 색 의상들을 입고 응원도구를 들고 나온 학생, 동문, 시민들이 경기장 3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이 경기는 매년 이 시기에 열리는 홈커밍데이(Home Coming Day)’의 메인 이벤트였다] 그라운드에는 식전 행사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스탠드에서 운동장으로 몰려 내려오는 함성은 지축을 울렸다. 스틸워터 47천의 인구에서 학생과 직원을 합쳐 2만 남짓을 빼면 26천이 남을 것이니, 말하자면 OSU 학생, 교직원, 동문, 스틸워터 시민 등이 총동원 되어 스탠드의 6만을 구성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우리로서는 놀라운 팀스피릿(Team Spirit)’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이었다.

 


게임 시작 전의 행사


게임은 시작되고


관람석에서 OSU 식 응원을 보내는 제이슨


2쿼터 이후의 막간 행사

 

경기는 4쿼터로 진행되었다. 각 쿼터 15분씩이었으나, 경기 진행상의 수시 중단, TV 광고를 위한 막간 공연, 작전타임 등이 추가되면서 11시에 시작된 경기는 오후 230분이나 되어서야 끝이 났다. 경기 내내 OSU 카우보이 팀과 텍사스 크리스찬 유니버시티 팀 간의 공방이 숨 막히게 벌어졌고, 대부분 홈팀의 응원자들인 스탠드의 관객들은 질서정연하게 일어나 손을 내뻗으며 ‘OSU Cowboys!’를 연호했다. 그 덕인가. 카우보이 팀은 TCU24:10으로 이기고 학생, 동문, 시민들에게 홈커밍의 큰 선물을 안겨 주었다. 경기를 보면서 그것이 서부 개척시대의 랜드 런(Land Run)’으로부터 나온 느낌을 받았을 만큼 미국 정신(American Spirit)’을 듬뿍 느낀 3시간여의 호쾌한 경험이었다.



                   경기를 벌이고 있는 양팀 선수들


 
                    경기장에서 열전을 벌이는 양팀 선수들

 

 


                              카우보이팀이 득점을 하자 카우걸이 말을 타고 등장한다               

 

OSU의 졸업생 분 피켄스가 2003년 대학 역사상 단일 기부로는 최대 액수인 7억 달러를 쾌척하여 세운 이 경기장. 그는 2005년 다시 165천만 달러를 기부하면서 대학교 체육 경기 분과에서 수령한 기부금으로는 최대액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덕에 최첨단 시설을 갖춘 이 경기장은 OSU와 풋볼 팀에게 환상적인 게임데이를 가능케 하는 환경을 선사했을 뿐 아니라, 다른 대학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지근 거리에 최고 경기장을 마련하여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좋은 경기를 직접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경기장에는 풋볼 사무실, 미팅 룸, 스피드 및 컨디션 센터, 라커룸, 시설관리실, 선수 의료센터, 미디어 시설실, 명예의 전당, 트레이닝 테이블 뿐 아니라 크고 작은 무수한 공간들이 복합적으로 구비되어 있었다.

 

사람들과 함께 경기장으로부터 밀려나오면서 미국인들의 장점 세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단합정신, 모교 사랑, 질서 등이었다.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우리가 실천하지 못하는 그 세 가지에서 그들이 우리보다 앞선 요인을 찾는 것이 과연 부질없는 일일까.

 


                            경기가 끝나고 나오는 관객들의 모습

 
                 관람석에서 Melania

            관람석에서 Jason과 그의 Father-In-Law

Posted by ki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