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층의 막말, 떨어지는 국격(國格)
전 방송문화진흥원 이사장이 ‘막말’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데 이어,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도 여성과 관련된 ‘사려 깊지 못한 말’로 공개사과를 해야 했고, 집권당 대표는 특정 종교에 대한 압력의 말을 했느냐 안 했느냐의 여부로 구설에 휩싸여 있다. 이들 뿐 아니라 최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말실수가 잊을 만하면 한 번 씩 언론에 등장하곤 한다. 방송이나 통신, 혹은 입법으로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지도층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말은 우리나라 국격(國格)의 현주소에 시사하는 점이 크다.
이 사건들이 공통적으로 야기시킨 문제는 지도층의 말이 갖추어야 하는 품격과 진실성에 대한 회의(懷疑), 그리고 국가 행정이나 정책에 대한 불신이다. 거짓이나 가식에서 결코 품격이 나타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품격의 바탕은 진실성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통용되고 있는 품격의 뜻은 ‘사람 된 바탕과 타고난 성품’, ‘사물 따위에서 느껴지는 품위’ 등으로 요약된다. 그 설명들의 핵심은 ‘바탕과 품위’다.
예컨대, 금속공업 분야에서 쓰이는 품위란 말은 지금(地金)의 순도를 나타내는 용어다. 완벽한 상태인 100에서 불순물의 수치를 뺀 것이 그 금속의 품위라는 것이다. 인간도 태어날 당시엔 가장 순수하고 깨끗하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각종 불순물이 인간의 내면에 끼게 되는데, 부단한 수양을 통해 그런 불순물이 제거되지 않을 경우 인간도 하등(下等)의 품위를 벗어날 수 없다. 신이 아닌 이상 완벽할 수는 없지만, 수양의 정도나 양에 따라 다른 사람들에 비해 높은 품위를 갖출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가장 직접적인 수단이 말이고 보면 말에 품위를 갖추는 일이야말로 인간 수양의 정도를 나타내는 표지이자 지도적 인격의 필수요건이다.
공자(孔子)는 정치의 첫 단계가 정명(正名) 즉 ‘명분을 바르게 하는 것’이라 했다. 명분을 정하게 되면 그에 맞는 말이 있게 되고 무엇을 말하면 반드시 그에 맞는 실행이 있게 되니, 그래야 군자의 말에서 구차스러움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고상한 말이라도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언(巧言)이나 거짓말일 뿐이다. 절제되지 못한 막말이나 책임 지지 못할 ‘구차스러운 말’로 국민들에게 결코 모범을 보일 수 없고, 직책을 공명정대하게 수행할 수도 없다.
집권층이 방송계의 개편이나 국가의 종교 정책 등을 법적⋅제도적 원칙과 원리에 따라 수행한다고 믿어온 것이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다. 그러나 나라의 법령을 제정하거나 집행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들을 통해 유추되는 실상은 결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국민들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피고, 겸허하게 최선을 다 하는 자세로 그 뜻을 받들어 법을 만들거나 집행해야 하는 것이 관련 인사들의 책무다. 그러나 그들의 말만으로 미루어 본다면, 소리(小利)와 사욕(私慾)의 도구로 공적인 책무를 악용하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어느 시대나 지도층이 가질 수 있는 오만은 여러 형태로 표출된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사려 깊지 못한 말인데, 그 중의 압권은 막말이다. 영국의 정치철학자 홉스(T. Hobbes)는 ‘인간에게 말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자 저주’라고 단언했다.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고 과학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말은 축복이지만, 일시적 욕망에 따라 무절제하게 사용함으로써 재앙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말은 인간과 세상에게 저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남을 해치는 말은 먼저 스스로를 해치고, 피를 머금어 남에게 뿜으면 먼저 자신의 입이 더러워진다’는 태공망(太公望)의 말처럼, 툭하면 터져 나오는 지도층의 막말이나 무책임한 발언들이 자신을 망치는 것은 물론 나라까지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 아름다운 말, 문채(文采) 있는 말은 하루아침에 터득되지 않는다. 그러니 어려서부터 제대로 말 교육을 받았을 리 없는 그런 인사들이 지도층으로 활보하는 건 이 땅의 비극이다. 지도층의 막말들을 보며 뜻 있는 국민들은 진심으로 나라를 걱정한다. ‘말 못하는 사기꾼 없다’는 경험칙에 익숙한 국민들이 사회 지도층의 허울 좋은 말이나 막말로 국격이 떨어지는 광경을 속절없이 바라보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