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퇴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1.02 새해 인사
  2. 2012.04.21 가거지(可居地)를 찾아
글 - 칼럼/단상2013. 1. 2. 14:08

  2013. 1.1. 새벽/숭실대 국문과 06학번 박형준 촬영 전송  2013. 1.1. 새벽/숭실대 국문과 06학번 박형준 촬영 전송  2013. 1. 1. 새벽/ 숭실대 국문과 06학번 박형준 촬영 전송  2013. 1. 1. 새벽/숭실대 국문과 06학번 박형준 촬영 전송  2013. 1. 1. 새벽/숭실대 국문과 06학번 박형준 촬영 전송  2013. 1. 1. 새벽/숭실대 국문과 06학번 박형준 촬영 전송                                        

 2009년 겨울/백규 촬영(양양 솔비치 해변)

 

 

 

새해인사

   

계사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동안 저와 인연을 맺어 온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새해 인사를 올립니다.

새해에도 더욱 건강하시고 가정이 평안하시길 빕니다. ‘뱀이 무성한 풀밭을 쑥 빠져 나가듯’ 바라시는 모든 일들을 순조롭게 이루시길 빕니다.

 

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지난해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자세히 말씀드리긴 뭣합니다만, 어렴풋하나마 앞으로의 삶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되었고, 참하고 ‘이쁜’ 며느리를 얻었으니, 나름대로 선전(善戰)한 한 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안정적이라 평가 받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점도 국가를 위해 무척 다행한 일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지난 해 연말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 분야의 책을 낼 생각으로 노력해왔습니다만, 막판에 약간 주춤거리면서 금쪽같은 시간들을 허비하다가 그 계획은 무산되었고, 결국 올해로 이월하게 된 점은 무엇보다 후회스럽습니다. 쌓아놓은 벽돌이 빠지면서 담벼락이 무너지듯, 연구 스케줄의 한 부분이 무산되거나 연기될 경우 다른 부분들이 줄줄이 밀리게 되니, 복구에 많은 정력이 소비될 것은 당연한 이치이지요.

 

요즈음 강의실에서 젊은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점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표정에서 읽어내는 ‘좌절과 자신 없음’이 가장 아픈 부분입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모인 강의실에서라면 ‘중구난방(衆口難防)’도 용인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아니, 오히려 권장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 제 철학입니다. 전공 지식이 모자란다 해서, 세상을 보는 안목이 모범답안으로부터 좀 어긋난다 해서, 무슨 문제가 되나요? 그런데, 왜 그들은 입을 닫고 있는 걸까요? 흡사 한 마디라도 실수하면 일을 그르칠까봐 전전긍긍하듯이 말입니다. 교수의 눈을 피해 속닥속닥 ‘문자질’은 잘들도 하면서 교수와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견해를 당당히 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다른 대학의 교수들도 비슷한 말들을 하는 걸 보면, 그게 아마 지금 젊은 세대의 일반적인 모습 같기도 하군요. 젊은이들의 기가 살아 있어야 하는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새해엔 우리네 삶이 더욱 팍팍해질 거라는 전망들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늘어나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캠퍼스 그득 들어찬 젊은 제자들의 가슴에 더 이상 좌절을 안겨주지 말아야 하는데, 큰 걱정입니다. 세계정세와 긴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외교 등의 분야를 보면, 세계가 편안해져야 우리도 편안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새 대통령이 현 정부나 집권자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똑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 보기로 합니다.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로 끝난 지금까지의 경험들은 일단 잊기로 했습니다. 쓴 경험들이 이번에도 반복된다면, ‘역사의 전환’을 개인에게 기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다시금 확인하고 좌절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 단호히 믿어 보겠습니다.

 

세밑에 홀연 우리 곁을 떠난 ‘신바람 전도사’ 황수관 선생의 부음을 접하면서, ‘삶의 덧없음’과 ‘살아 있음의 고마움’을 함께 느낍니다. 아마 그 분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건강의 이상을 겪고 계셨으리라 추측해봅니다. 그래서 평소 건강관리가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욕심을 줄이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습니다.

 

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댁내 두루 평안하시길 빕니다.

 

계사년 정초

 

백규 조규익 드림

 

 

*사진은 숭실대학의 멋진 제자 박형준 군(국문과 06학번)이 새해 첫날 새벽 설악산에 올라 찍어 보내준 ‘새해 첫 선물’입니다. 박형준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저 혼자 간직하기 미안하여 이곳에 올립니다.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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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칼럼/단상2012. 4. 21. 17:52

가거지(可居地)를 찾아

 

 

 

 

                                                                                                                                                       


                                                                                                                                                          백규

어릴 적 자신의 ‘주검 옷’을 미처 마련하지 못한 노인들이 초조해 하는 모습을 뵐 때마다, 그 분들의 마음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못난 자식들이라 해도 당신 마지막 가는 길에 옷 한 벌 못해 입힐 것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안달하시는 걸까?’ 생각하며 그 분들의 속내를 가늠하지 못했다. 당신들 스스로의 손으로 최고의 주검 옷을 만들고 싶으신 마음, 그 옷을 입고 ‘고운 자태로’ 저 세상의 첫 문턱을 밟고 싶으신 그 마음을 철없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악다구니처럼 뜯어갈 줄만 알았지 부모의 마음을 한 치도 헤아리지 못하는 자식 놈들, 제 가족이나 자신의 치장에는 돈 아까운 줄 모르면서 부모를 위해서는 푼돈을 아까워하는 자식 놈들, 바쁜 세상 탓만 하며 모든 걸 대강대강 장사치들의 손에 맡겨버리곤 ‘할 일 다 했다’고 손 터는 자식 놈들을 보며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들어가는 여행길만큼은 스스로의 손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이 땅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매 순간 갖고 계시는 거다. 이 땅의 어떤 자식이 그 지극한 속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우리나라 노인들이 땅에 발붙이고 말년을 살아가며 땅 속으로 들어갈 날을 준비하는 것은 오랜 세월 이어 내려 온 삶의 지혜이자 법칙이다. 번잡한 도회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떵떵거리다가 어느 순간 닥쳐 온 죽음 앞에 허둥대는 현대인들로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철학이기도 하다. 노후나 죽음에 대한 대비의 전통이 끊어진 것은 산업화에 이은 고도정보화의 물결 탓이다. 요즘 그 격랑이 점점 잦아들어 평온을 되찾고 있기 때문인가. 일부이긴 하지만 이제 현대인들이 조부모나 부모세대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지혜의 전통을 찾아 나서게 된 것도 그로부터 생겨난 성찰의 덕분이리라. 자식들을 독립시키고 직장에서 퇴임한 다음 잡답(雜沓)의 도시를 탈출하여 조용한 전원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관조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깨달음의 묵직한 보따리를 텅 빈 농촌에 풀어놓고, 잠시 후면 몰려 올 자식들의 귀향을 기다리며 살다가 슬그머니 흙 속으로 스며드는 것. 한 줌 흙이 되어 소나무를 잣나무를 밤나무를 키우는 거름이 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삶일 것이냐.

나이 사십 후반이라면, 틈틈이 전국의 산과 들판을 돌아다녀볼 일이다. 돌아다녀보면 안다. 우리를 키운 8할이 계곡의 바람과 고운 물, 보드라운 흙이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 역시 거기라는 것을. 그러기 위해서라도 욕망을 버리고 ‘살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최고의 인문지리서 <<택리지(擇里志)>>를 쓴 이중환(李重煥 ; 1670~1756)이야말로 우리 역사상 드문 선각자다. 살 만한 곳의 조건으로 그는 네 가지를 제시했다. 지리(地理)⋅생리(生利)⋅인심(人心)⋅산수(山水)가 그것들인데, 그 가운데 하나만 빠져도 낙토(樂土)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지리란 ‘장풍득수(藏風得水)’ 즉 풍수를 포함한 그 땅의 현실적⋅형이상학적 이치, 생리란 그 땅이 인간에게 허락할만한 경제적 가치, 산수란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루어 인간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경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다한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頑惡)하다면 소용없는 일. 괜한 텃세로 들어와 정착하려는 사람들의 의지를 꺾어놓거나 사사건건 트집으로 괴롭힌다면, 차라리 사막 한 가운데서 선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편이 나을 것이다. 다녀보면 안다. 우리네 강토 안에서 이 네 조건 갖춘 땅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

  정년퇴임한 곳 언저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얼쩡대는 인사가 있다면, 어리석은 후배들을 닦달하고 작당하여 소리(小利)를 탐하려는 자가 있다면, 고개 들어 마지막 광채를 불사르며 바다로 스며드는 태양을 응시해볼 일이다. 깨끗하지 못한 우리를 자신의 넓은 품에 받아들여 정화시키고, 마지막을 아름답게 해 줄 대자연이 우리네 삶터 바로 곁에 있지 않은가. 허탕 치는 나날이지만, 오늘 또 다시 ‘가거지(可居地)’의 탐색에 나서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2012. 4. 21.>    

Posted by ki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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